월간복지동향 2000 2000-08-10   1222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에 대한 의견

금년 2월 17일 입법예고되었던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이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5개월이 지나서야 국무회의를 통과하였다. 이미 수급자 선정과 관련된 지침이 만들어져서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확정 공포된 시행령의 내용 및 수준은 예측할 수 있는 것이긴 하였지만 법 제정의 목적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등 여러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법 제정의 취지로 볼 때 입법예고안보다도 후퇴된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입법 예고 기간 동안 시민단체에서 문제점 지적과 함께 의견서를 제출하였는데, 받아들여진 것은 하나도 없는 반면, 정부의 타 부처, 지자체 등의 의견(혹은 요구안)은 대폭 수용되었다.

부양능력 판별기준

개악(改惡)의 대표적인 것으로 부양능력자 판별기준을 들 수 있다. 입법예고안을 보면 부양능력자와 차상위계층에 대한 판별기준으로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20% 미만인자로 설정되어 있었고, 부양의무자에 관한 규정에서 수급자와 차상위계층에 속하는자는 부양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정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에 대해 기획예산처는 재산기준을 도입(수급자 재산기준의 1.2배)하자고 요구하였는데, 소득기준 120%에 맞추어 재산기준도 1.2배로 설정하자고 주장하였다. 결국 기획예산처의 요구대로 재산기준을 첨가하여 재산기준의 120% 미만(2003년 이후에는 재산의 소득환산액이 최저생계비의 42%미만)을 설정하였다. 그런데 부양능력 판별 기준에 재산기준을 설정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왜냐하면 현 기준대로 한다면 예를들어 생활이 매우 어려운 노부부의 경우 재산이 조금 있는 부양의무자(예를 들어 자녀)가 있다고 한다면 그 부양의무자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수급자로 선정될 수 가 없게 되었다. 예를 들어 수급 신청가구(2인)에 재산과 소득이 거의 없는 가구라고 하더라도 소득이 전혀 없는 부양의무자 가구(4인)에 재산이 7,320만원 이상 있다고 한다면 수급 신청가구는 수급자로 선정될 수 가 없다는 점이 문제이다. 설사 그 재산을 처분하려고 하는 중이라고 하더라도 그러하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하게 된 주요 이유중의 하나가 수급자 선정을 합리적으로 개선하자는 것이었는데, 부양능력 판별기준에 재산기준을 신설한 것은 그러한 취지를 역행하는 처사로 보여진다.

'개별가구'의 개념

여전히 개선되지 못한 사항은 다음과 같다. 먼저 시행령에서 정의하고 있는 가구개념(제2조)이 문제이다. 수급자로 선정되는데 있어서 가구의 소득과 재산 및 부양의무자가 그 기준이 된다. 따라서 가구원이 누구인지와 그 구성원이 몇 명인지를 판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구 개념이란 서로 부양의무관계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누가 가족이고 누가 부양의무자인가를 구분해 주는 것이다. 가구원수는 수시 사실확인을 통해 실제 동거사실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는 것이 원칙이나 시행령 에는 타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가구원(30세 미만의 미혼자녀)의 경우도 가구단위에 포함시키도록 되어 있고, 또한 주민등록표상에는 타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실제로 동거하고 있는 경우에도 동일 가구원으로 인정하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규정은 선의의 피해자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생업상의 이유로 주민등록상, 실제 모두 타 지역에 거주하는 30세 미만의 미혼자녀를 동일 가구로 인정하는 것은 최저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이 동일한 곳에서 같이 거주하는 다른 가구 보다 훨씬 더 많이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타 가구와 똑같이 처리됨으로서 수급자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높게 된다.

그리고 주소득원의 형제, 자매의 경우는 동일가구원으로 보도록 하고 있는 점이 문제이다. 성인으로서 생계를 같이 하는 2촌 이내의 혈족은 부양의무자일 뿐 동일 가구로 보면 곤란하다. 왜냐하면 형제, 자매관계라고 하더라도 생계와 주거를 달리하면 부양의무관계가 없기 때문에 수급자로 선정되기가 쉬워지지만 생계와 주거를 같이할 경우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게 됨으로서 그들로 하여금 오히려 가구를 분리하도록 만들 소지가 있다. 대부분의 성인 형제, 자매가 같이 사는 경우는 어느 한 쪽이 생활하기가 매우 불편할 경우이고, 도움을 받고 있는 형제, 자매는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되며, 부양자는 부양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따라서 미안한 마음과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 그리고 가능한 한 형제, 자매가 같이 거주하게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국가의 부담을 줄여 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동일한 곳에서 거주한다고 하더라도 성인 형제, 자매간에는 반드시 부양의무자로만 처리할 필요가 있다. 한편, 비닐하우스촌 거주자나 노숙자, 쪽방 거주자등과 같은 주민등록지에서 살고 있지 못하거나 주민등록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아무런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큰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기타

차상위계층의 개념 규정에 있어서(제36조) '소득'개념을 소득인정액(혹은 소득평가액)으로 변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해당 가구의 경우 장기질환자나 학생(대학생 포함)이 여러명 있는 경우 소득은 높으나 실제 생활은 매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건부 수급자 제외 규정(제8조)에 대학생인 경우 조건부 수급자에서 제외하는 규정이 마련되어 있으나 휴학생에 대한 규정이 없다. 대학교육이야 말로 확실한 자활방법임을 감안하고, 또한 수급가구의 열악한 소득상태를 감안하여 최소한 휴학기간 1년 동안은 조건부 수급자에서 제외할 필요가 있다. 휴학기간은 학비를 벌기 위한 기간인데, 그 당시의 소득을 가구 소득에 포함시킬 경우 수급자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또한 생계급여액이 대폭 줄어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오히려 휴학기간 동안의 본인의 소득은 공제해 주는 조항의 신설이 필요하다.

이러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의 문제점은 현재의 행정 인프라 및 재정 여건을 지나치게 감안한 결과로 보인다. 다른 말로 하면 소득 파악이 제대로 안된다는 이유로, 또한 재정낭비를 줄여야 한다는 이유로 저소득층의 욕구를 상당 부분 제한할 여지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요보호자들이 여전히 보호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현실여건 때문에 기초생활보장을 제한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기초생활을 보장하는데 필요한 것이라면 행정 및 재원을 필요한 만큼 확충해야 할 것이다.

허선 / 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월간 <복지동향> 2000년 08월호(제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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