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1 2001-06-10   792

자활사업: 반성을 넘어 전략으로

지난 3년 간 보건복지부 예산이 2배로 늘어났다. IMF 관리체제로 상징되는 경제난 하에서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지만, 현정부의 적극적인 사회정책 의지가 뒷받침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최근 정부는 복지를 더 늘리라는 시민단체들의 압박과 함께 "경제가 나쁜데 무슨 복지냐"는 반발을 동시에 수렴해야 하는 좌우협공의 상황에 놓여 있다. 생산적 복지정책의 대표 기수라는 기초생활보장이나 자활지원사업도 예외는 아니다.

일부 언론과 학자들은 기초생활보장제도가 가짜 빈곤층을 양산하며, 근로의욕을 떨어뜨리는 주범이라고 보고 있다. 흔히, 최저임금의 두 배가 넘는 최저생계비를 그 증거로 들고 있다. 더구나 자활사업이 취로사업과 별반 다른 게 없을뿐더러, 대상자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대표적인 '퍼주기식 복지'라는 것이다.

반면 시민사회단체들은 현재의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모든 빈곤층들에게 충분한 수준의 생계비를 지원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불만이 크다. 또한 빈곤층들이 현재 상황에 빠진 것은 자신들의 경쟁력으로는 노동시장에서 생존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따라서 정부가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가운데 경쟁력이 취약한 사람들을 위해 보호된 일자리(사회적 일자리)를 만들지 않는다면 자활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자활지원 예산을 현재보다 대폭 늘려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기대와 현실

5월 1일 현재 자활사업 참가자는 비취업대상자 3만5천명, 취업대상자 1만4천명으로 전체 수급자의 3% 수준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되기 전, 자활사업 참가자를 전체의 15%까지 추정했던 데 비하면 그 숫자가 여간 적은 것이 아니다. 대신에 기초생활보장법 수급자 중 근로능력이 있다고 판정된 37만명 중 24만명은 '공식적'으로 일을 하고 있다. 당초 근로능력자 중 반 정도를 정부의 자활지원이 필요한, 달리 말하자면, 생계비에 안주할 우려가 있는 조건부수급자로 예상했던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아닐 수 없다. 가구여건상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대다수가 이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여러 가지다. 우선 현재 수급자들 중 근로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어떤 일이든 하려 한다. 이는 우리 나라의 노동윤리가 서구보다 월등히 건강해서라기보다, 현재의 수급액으로는 제대로 된 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4인 가족 기준 월 96만원 최저생계비가 너무 많다는 주장도 있지만, 실제 현금급여는 월 평균 35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그 금액만으로는 '복지수혜에 안주해' 사는 게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물론 수급자들이 근로수입이나 기타 소득을 제대로 신고하느냐는 문제가 남아 있지만, 이는 변호사, 의사, 호화 사치업소의 수입도 파악 못하는 처지에서는 우리 사회 시스템의 문제이다.

다음으로 자활사업 참가자 숫자가 적은 것은, 자활사업을 통한 경제적 이득이 수급자들의 기대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현재 자활사업에 참가해서 얻을 수 있는 추가수입이 5∼15만원에 그치고 있어서, 그만한 금액을 노동시장에서 보충할 수 없는 경우만 자활사업에 참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결국 근로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다시 말해 자활 가능성이 낮은 사람들 위주로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한가지 더 심각히 받아들일 것은 자활프로그램의 효과 문제다. 비록 당장의 경제적 실익이 적더라도 자활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써 자활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면 자활사업은 환영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자활지원 프로그램은 단순근로 위주의 취로형 자활근로이거나 2주에 한번 구직활동 경과를 보고하는 취업알선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약간의 추가소득이나 형식적 확인절차가 자활사업의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후견기관 프로그램이나 직업훈련, 자활공동체는 아직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참여자들의 의지나 능력이 낮은 이유도 있고, 서비스 제공자들의 경험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이들 프로그램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사회적 지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의 자활지원사업은 사실상 소득보조적 프로그램에다, '조건이행 절차'에 그치고 있다. 이것이 생산적 복지가 기대했던 자활지원사업의 모습인가?

자활사업의 딜렘마

돌이켜보자면 자활사업의 목표에는 동상이몽이 있었다. 정부는 근로유능력자에게까지 생계보호를 실시함에 따라, 이들이 생계보호에 안주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조건부수급 제도를 도입했다. 반면 시민사회단체나 주민운동단체들은 종전 생활보호법에 있던 자활지원사업을 활성화한다는 취지에서 조건부수급의 적극적 측면에 주목한 바 있다. 즉, 조건부수급이란 '사회가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조건'을 다는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전자와 같은 생계보호 안주 방지는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것은 조건부과 제도가 철저하거나 프로그램이 탁월해서라기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수입이 필요한 수급자들이 간절히 일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도 예가 없는 50대까지 조건부과하고 있지만, 대다수는 조건이행에 관계없이 무슨 일이든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반면 적극적 자활지원이라는 측면에서는 회의적이다. 파출부, 식당일, 부업 등으로 저임노동시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수입이 많거나, 장래 희망이 있어 보이는 프로그램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활사업 참여에 따른 소득은 축소신고도 불가능하다. 근로소득 공제제도가 시행되고는 있지만, 아직 자활사업에 도움이 되는 수준은 아니다.

자활사업은 딜렘마 상황에 빠져 있다. 당초 이 제도에 대한 소극적 기대는 이미 상당한 정도 충족되었지만, 그것이 실질적인 의미의 자활지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현재 취업하고 있는 사람들도 자활이 가능한, 즉, 생계보호에서 탈출할 수 있는 일자리가 아니다. 조건이행은 별 무리가 없지만, 그것이 자활로 이어질 가능성은 요원한 것이다. 자활사업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엄청난 재원과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것이 확인되었지만, 그것을 위한 사회적 합의는 없다.

반성을 넘어 전략으로

상식적으로 자활지원사업이란 실효성 있는 빈곤탈출 정책을 의미한다. 단순히 조건부과를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적으로 책임지는 조건을 통해 빈곤탈출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자활지원 프로그램은 한계적 노동시장의 저임금 취업보다 경쟁력이 없다. 또한 부양의무자와 재산기준으로 인해 광범한 생계보호의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있지만, 이들은 그나마 자활지원사업의 혜택도 받지 못한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막연한 기대'로서의 자활지원사업이 여전히 유포되고 있다. 실효성 있는 지원체계가 확보되지 않은 가운데서도 자활후견기관은 늘고 있으며, 지자체(복지부)·노동부로 나뉜 전달체계도 관성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최소한의 먹는 것, 입는 것을 보장한다는 기초생활보장제도에 생산적 복지의 상징으로서 자활지원사업을 덧붙인 것도 운신의 폭을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 탓만 하고 있을 수도 없다. 시민사회 역시 적극적 자활지원을 위한 사회적 토대를 면밀히 검토하지 못했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막연한 기대와 원론적 방향을 확대 재생산한 측면이 없지 않다. 당위론에 바탕을 둔 과다한 기대와 조급함이야말로 정부와 민간 함께 반성할 일이다.

생계보호 수급자 중 현재 취업을 못하거나 안하고 있는 계층에 대한 근로의욕 유지 및 능력배양이 자활사업의 목표인가? 아니면 상대적으로 근로능력과 의지가 강한 차상위를 포괄하는 빈곤화 억제가 핵심인가? 지금이라도 자활지원사업의 우선적인 대상자와 목표 설정이 필요하며, 그에 따라 정책설계도를 고쳐야 한다. 당위를 강조하기보다 차근차근 모델과 사례를 만드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적 보호의 구체적인 그림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우선구매, 우선위탁, 무상 사회서비스 확대를 통해 빈곤층을 위한 일자리 늘리기는 그 중 가장 중요하다. 저임노동시장으로 진입시켜, 조만간 다시 생계보호대상으로 전락하도록 하는 것이 자활지원사업의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양한 아이템 개발과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참여도 절실하지만, 그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사회적 지지를 조직해야 한다. 실효성 있는 근로소득 공제제도도 필요하다. 비판과 반성을 넘어 전략적 접근이 필요한 이유이다.

김수현 /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연구위원

월간 <복지동향> 2001년 06월호(제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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