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3 2003-12-10   1329

[복지동향 칼럼2] 더불어 살기를 원한다면

최근 끝을 알 수 없게 경쟁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누드열풍은 우리 삶의 자존감을 의심케 한다. 이들은 예술을 위해 벗었다는 그럴듯한 이미지 포장과 함께 자발적으로 동영상을 제공하고 있다. 몇 해 전 집단관음증환자들처럼 인터넷에 떴던 비디오 보기에 열을 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후자가 구체적 피해자들을 가진 ‘사건’이었다면, 최근의 누드제공 열풍은 휴대전화를 주요한 기반으로 자발적인 수요와 공급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초기 휴대전화가 보편화되기 시작할 때만 해도 ‘긴급한 때와 꼭 필요할 때’만 사용하는 것으로 인식되었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사이에 휴대전화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용되고 있다. 이제 휴대전화는 공적인 업무를 보거나 긴급한 경우 사용하는 전통적인 역할에서 실제 있는 공간에 상관없이 실시간 쌍방향 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단말기의 역할확장은 기능이 추가되면서 통화를 통해 소통하던 것과 더불어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기능발달은 통화가 주요했던 휴대전화가 이젠 은밀한 개인 공간제공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즉, 휴대전화와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자발적인 관계형성 외에 자기고립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의 은밀한 선택을 가능케 하고 엄청난 누드열풍의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과거 인터넷이 집단적인 관음증을 가능케 하고 구체적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폭력으로 작용했다면, 휴대전화는 또 다른 유형의 폭력에 자연스럽게 동참하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미디어의 발달은 집단보다는 개인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물론 휴대전화 문자로 112신고가 가능해지고, 실종자의 위치추적 등과 같은 편리성이나 유용성에 대해 부정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러한 것들이 인간을 점점 더 분리시켜가고, 고립화 된 개인의 선택적 소통에 대해서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미 우리의 일상생활에 끼치고 있는 영향에 대한 관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전에 보았던 SF영화들이 점차 현실화되면서, 최근에는 2050년쯤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을 보면, 재수 없으면 저 때까지 살겠구나하는 섬뜩함이 든다. 상상하는 것만으로 행복했던 미래, 그런데 내가 살지도 모르는 미래에는 더불어 산다는 것이 과연 가능이나 할까 싶다.

그래서 개인을 주목하고 있는 새로운 미디어의 세계에서 선택의 능력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제공되는 다양한 가능성 들 중에서 어떤 것을 고를 수 있는 능력, 심지어는 제공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는 능력까지도 요구된다. 그 어떤 것의 선택에는 자신의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가치를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며 더불어 살기를 원한다면, 그에 걸 맞는 선택을 해야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최정미 / 울산참여연대 사회복지센터

월간 <복지동향> 2003년 12월호(제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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