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누스 박사는 올해 서울평화상과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이는 무하마드 유누스 박사의 진지한 순수성에 세계가 귀를 기울여 주기 시작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라민은행과 함께. 그라민은행은 유누스 박사의 미션을 구현한 조직체이기 때문에 유누스박사와 그라민은행의 공동 수상은 함께 일하는 동역자들과 영광을 나누고자 하는 좋은 본보기라 여겨진다.
사진 1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방글라데시의 빈곤퇴치 운동가 무하마드 유누스 그라민은행 총재 – 생략
방글라데시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 유학까지 다녀와 치타공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던 유누스 박사가 마이크로크레딧을 통한 빈민구제 사업에 나서게 된 계기는, 기아선상에 헤매는 방글라데시의 빈곤 앞에 이론의 무기력함을 느끼고 조브라마을로 들어가면서 부터였다. 조브라 마을 주민들은 고리대금 업자의 횡포로 하루 노동의 대가를 고리대금 업자에게 고스란히 받쳤고, 겨우 끼니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돈만 손에 쥘 뿐이었다. 정상적인 금융기관을 이용할 수 있는 서민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리대금의 유혹을 물리치기 어렵다. 일례로 필리핀의 어느 섬에는 ‘56제도’라고 해서 오전에 5페소를 빌려서 오후에 600페소를 갚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어이없는 일이 세계 도처에서 비일비재한 실정이다. 이에 유누스 박사는 빈곤층이 고리대금의 예속 상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인위적인 외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고, 조브라 마을 주민 42명에게 27달러를 빌려주어 빚을 갚는데 사용하게 했다. 1976년 마이크로크레딧과 그라민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린 사건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그라민프로젝트는 많은 활동가와 수혜자들의 의지로 1983년에는 그라민은행으로 법인형태를 전환하는 등 확장의 길을 걸어왔고, 창립 30주년을 맞이한 올해에는 직원 18,151명, 지점 2,185개를 운영하는 거대 은행으로 발전하였다. 30년 세월동안 그라민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약 600만명에 이르고, 이들 가운데 58%가 자신의 삶을 바꿔 빈곤에서 벗어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라민은행의 마이크로크레딧이 방글라데시에서 보인 성과로 △생활수준이 급속히 향상 △여성의 권한 신장 △출산율 저하 △여성의 평균수명 증가 △초등학교 진학률 100%, 중고등학교에서 여학생 비율이 남학생을 능가하게 된 사실을 들 수 있다.
마이크로크레디트의 세계 동향
이렇듯 그라민은행이 방글라데시에서 성공하게 되자 1997년 139개국에서 2,900여명의 사람들이 워싱톤에 모여 ‘마이크로크레딧’ 정상회의를 개최하기도 했으며 UN은 2005년을 ‘마이크로크레딧의 해’로 결정하여 세계 빈민층의 삶을 변화, 개선시키려고 하였다. 국가의 발전 수준과 상관없이 마이크로크레딧은 소외 계층의 복지금융과 일자리 창출을 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국제기관에서 적극 권고하고 있다. 이는 가난한 나라의 국민이건 부자나라의 국민이건, 담보나 보증인을 세울 수 없다면 금융 서비스로부터 소외되어 빈곤의 늪에 빠져들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사진 2 – 생략
그러나 마이크로크레딧의 형태는 나라마다 상황에 따라 다양하다. 앞서 말한 그라민은행은 방글라데시아와 인도에서 공동대출-공동상환을 시차제 융자방식(Staggered Loan Disbursement)으로 시행하여 무담보의 위험을 방지한다. 또한 대출 실행 이후에도 교육등 지원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한편, 상호 의견을 교환할 수 있도록 주1회 이상의 모임을 정기적으로 개최하여 자조 능력을 배양하고 있다.
한편, 아메리카 대륙의 대표적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인 액시온은 68년부터 남미에서 활동해 오다가 93년부터 미국에서 기부와 교육 사업비로 재원을 충당하는 비영리기구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의 액시온은 소수 인종들이 신용을 쌓아 금융기관에 거래할 수 있도록 가교 역할도 수행하며, 공동체 지원방식이 아니라 기존 영세자영업자 대상으로 개인에게 지원하고 있다. 프랑스의 시갈은 자신의 예금을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대출해주려는 예금자들에 의해 자금이 조달되어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을 육성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코시스는 카톨릭 정신의 박애정신으로 설립된 로마예금금고의 사회공헌 활동을 담당하면서 비영리기관의 기금지원과 창업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마이크로크레딧 기관들이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정책이 뒷받침되어 있다. 1977년 제정된 지역재투자법 (CRA, Community Reinvestment Act)을 통해 금융기관이 수익을 얻는 지역에서 일정 비율이상으로 여신, 투자나 기부 등 공헌 활동을 하도록 정하였다. 금융기관은 자산규모에 따라 일정비율 이상으로 중간 이하 소득자에 대한 모기지 대출, 매출 100만 달러 이하의 소기업에 대한 기업대출, 지역개발을 위한 대출을 해야 하며 저소득계층이 많은 지역에 지점을 내야 하고 지역개발금융도 제공해야 한다. 지역재투자법은 은행의 마이크로크레딧 지원 활동을 평가하여 신규지점 개설과 인수, 합병인가 등에 활용되고 있다.
한국의 마이크로크레딧과 사회연대은행
그러면 한국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이 있는가? 사회연대은행과 신나는 조합이 마이크로크레디트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준다. 이들 기관은 돈만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교육, 훈련, 사업 컨설팅을 통해 대출자의 소득 능력이 높아질 수 있도록 육성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의 마이크로크레딧은 ‘은행’이 아니라 ‘비영리시민단체’다. 예금 등 수신행위가 아니라 기부에 의해 자금을 조달한다. 한 사회의 빈곤 퇴치가 한 개인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듯, 마이크로크레딧의 자립 역시 한 기관의 힘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거기엔 ‘사회적 지지’와 ‘연대’가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정부, 시장, 시민사회 모두 마이크로크레딧 기관 스스로 자생적으로 이 일을 수행하라고 하는 형국이지만, 마이크로크레딧 기관만의 열정과 신념, 그간 착실하게 쌓아놓은 사업 노하우만으로는 아무리 용을 써도 불가능하다. 마이크로크레딧 기관이 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정부, 시민사회가 지원하는 사회투자가 필요하다. 더 이상 기부금을 받지 않는 것을 자랑스럽게 공표하는 그라민 은행도 76년 그라민프로젝트를 착수해서 93년까지는 정부와 국제사회의 운영비 지원이 있었다. 사회투자가 활성화되어 있는 프랑스의 경우는 사회연대 개발 인프라는 정부가, 대출재원은 민간 기부금으로 조달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이탈리아에서는 은행의 선진화된 사회공헌 활동으로 마이크로크레디트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다행히 마이크로크레디트를 확대하여 저소득 금융소외계층을 지원하고 양극화 현상을 어느 정도 극복하자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 같다. 또한 고객이 찾아가지 않은 휴면예금을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나 국회에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그러나 휴면예금의 재원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무도 염두에 두지 않고 있는 듯하다. 우리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정책을 도입할 때 그 결과나 실적에 치중한 나머지 그 과정에서 필요한 준비를 간과하여 막대한 예산의 낭비를 가져오는 경우를 종종 본다. 마이크로크레딧의 확대에 앞서 전문가의 양성, 교육체계의 확립, 전달체계, 표준 모델의 개발, 사회적 지원네트워크의 구축, 시스템의 구축 등의 인프라의 구축이 선행되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마이크로크레딧 확대 발전마저 급조했던 과거의 성장 관행을 따르도록 모른 척 할 것인가? 사회연대은행은 그 동안의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를 기초로 한국 마이크로크레딧의 역량을 구축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추가적인 대출보다도 마이크로크레딧이 이 사회의 대안금융으로 자리매김하는데 필요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막막하기만 했던 저소득 금융소외 계층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 마이크로크레딧이라는 대안금융의 디딤돌을 만들고 이를 위한 재원을 마련하는데 역량을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월간 <복지동향> 2006년 12월호(제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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