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석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
지난 2월 2일 시작된 예비후보 등록을 신호탄으로 2010년 6.2 지방선거의 막이 올랐다. 우리는 앞으로 넉 달 동안 “내가 지역 주민을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말의 향연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 동안 하늘과 땅을 가득 메울 말들을 액면 그대로 믿을 국민은 없다. 1995년 지방자치제가 본격적으로 실시된 이후, 지금까지 내뱉어진 말들만 주워 모아도 우리나라 국민은 행복하다 못해 행복에 겨워 몇 번씩 까무러쳤을 것이다. 이제 국민들은 경험적으로 정치인이 내뱉는 말은 그저 말일 뿐이며, 나의 현실은 현재의 모습 그대로 반복될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어떤 후보자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인가?”는 표를 찍는데 별 고려사항이 안 된다. 혈연, 지연, 학연, 그것도 안 되면, 자신과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에게 표를 주는 고질적 관행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公約이 空約에 불과하다는 것과 함께 公約의 내용도 문제다. 그 동안의 지방선거 공약을 보면, 멀쩡한 4대강을 파헤치겠다는 여당이나 4대강 사업 중단에 명운을 걸겠다는 제일 야당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땅을 파고, 산을 깍고, 강을 막는 개발사업 일색이다. 큰 공장을 유치하겠다는 것도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다. 이런 개발사업으로 국민이 행복할 수 있을까? 2009년 12월 4일자 부산일보에 실린 여론조사 결과에서 해답의 단초를 엿볼 수 있다. 차기 시장에게 바라는 일의 순위가 복지 > 환경 > 경제 > 산업 순으로 나타난 것이다. 국민과 정치인이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이 물과 기름처럼 겉돌고 있다.
물론, 지역 개발에 대한 주민의 욕망은 자녀 교육에 대한 욕망에 견줄 만큼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나 곰곰이 뜯어보자. 특목고를 유치하거나 큰 공장을 유치하는 것과 같은 지역 개발사업이 해당 지역 주민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었는가? 또 지역 발전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가? 특목고 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그 지역을 모두 떠날 사람들이다. 그 지역에 삶의 뿌리를 내리며 생사고락을 같이 할 사람들은 특목고가 아니라 그 지역의 고만고만한 ‘보통’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다. 지역 입장에서 봤을 때에는 후자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남는 장사다.
공장 유치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으로 공장 유치의 첫 번째 기대효과는 일자리 창출이다. 그러나 최근의 첨단산업에서는 이조차도 크게 기대하기 힘들다. 지방세수 증대? 이것도 아니올시다. 강준만 교수의 『지방은 식민지다』에 소개된 국내 연구결과는 놀랍다 못해 충격적이다. 2006년 변용환 한림대 교수 연구팀이 발표한 「기업 유치로 인한 지방세수 증대효과」논문에 따르면, 1996년부터 2003년까지 △△기업 홍천 공장의 조세 납부액 중에서 지방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0.22%에 불과했다. 최근 개인적으로 만난 수도권 지역의 한 자치단체장도 산업공단에서 얻는 세수는 크지 않고, 오히려 도로 정비와 같은 기반시설을 갖춰주는데 재정 부담이 크다고 토로한 바 있다. 게다가 애써 유치한 공장이 폐수나 오염 가스를 내뿜기라도 하는 날에는 졸지에 지역의 흉물거리로 전락한다. 이런 식의 개발이라면 차라리 아무 것도 안 하고, 뒷짐 진채 있는 것이 지역의 미래를 위한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
지역 주민이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은 모두가 알고 있는 상식적인 것이다. 내 아이를 언제든 믿고 맡길 수 있는 보육시설, 수준 높은 ‘보통’ 학교, 운동화를 고쳐 매고 한 걸음에 걸어갈 수 있는 생활체육시설, 지척 거리에 있는 공공도서관, 자동차가 아니라 사람이 편한 도로, 쾌적한 환경과 녹지 공간, 나의 곤궁한 상황을 해결해 주는 촘촘한 사회안전망… 우리는 이런 것들을 일컬어 ‘복지’라고 한다.
이번 지방선거가 개발공약이 아니라 복지공약으로 성패를 가르는 장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방선거와 보건복지’를 복지동향 심층분석 주제로 선정했다. 이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루어야 할 일이다. 이번에 안 되면, 다음에 또 하고, 다음에도 안 되면, 그 다음에 또 하는 거다. 이렇게 하다보면, 언젠가는 이룰 날이 올 테다. ‘질긴 놈이 이긴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 같이 통하는 승리의 비책이다.
월간 <복지동향> 2010년 02월호(제1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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