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선 희
서울신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일하는 여성들은 오늘도 분주하다. 가사와 육아, 경쟁적인 노동시장으로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다. 특히 어린 자녀가 있으면 삶은 곧 전쟁터가 되어 버린다. 고용 불안과 자녀가 커가면서 닥쳐올 사교육비 부담으로 앞날도 암울하다. 자녀를 직접 돌볼 시간도, 사회로부터 적절한 돌봄서비스를 받기도 어려운 일하는 여성들에게 출산과 육아는 축복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삶의 무게이다.
다시 하락한 출산율, 우울한 숫자 1.15
합계출산율이 다시 하락하였다. 2005년 1.08의 최저점을 기록한 이후 출산율은 잠시 상승하였다. 잠시 동안의 상승에 대해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투자의 결과로 보는 사람도 있었고, 2006년의 쌍춘년과 2007년의 황금돼지해의 효과로 보는 사람도 있었다. 정부는 2004년에 저출산에 대비하는 육아정책지원방안을 마련하고, 2005년에는 새싹플랜이라고 하는 중장기 보육정책계획과 새로마지플랜이라고 하는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하였으니 사실 정부 정책의 효과라고 하기에는 시기상조인 감이 있었다. 그렇다고 한국의 저출산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수긍하는 쌍춘년과 황금돼지해의 효과라고 인정하기에도 마음이 편치 않은데, 그 이유는 다시 황금돼지해가 돌아와 출산에 도움이 되기를 기다리는 일은 인간을 무기력하게 하고,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달력이 만들어낸 2006년과 2007년의 특수가 지난 다음에는 정부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기를 기대했다. 2008년의 1.19라는 합계출산율은 보기에 따라 정책의 효과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출산율이 전년도보다 떨어졌다는 측면에서 정책 효과가 없다고 평하는 이도 있겠으나, 그 숫자가 최저점인 2005년의 1.08보다는 증가하였다는 점, 그리고 2008년 출산 계획을 황금돼지해인 2007년으로 앞당겨 출산하였다는 점(’08년 초반의 출산율은 예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고 ’07년 후반의 출산율은 상대적으로 높았다) 등에서 2008년의 출산율은 1.19보다 더 높았을 수 있었다고 한다. 만약 2009년의 합계출산율이 2008년보다 상회하였다면 우리는 정부의 저출산 대책의 효과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저앉았다. 1.15의 숫자로 주저 않았고 전년에 비해 2만1천명의 출생아 수가 감소하였다. 더욱 우울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나라 출산율이 회복되기 어렵다는 전망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저출산의 원인: 고용 불안, 사교육,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
해결하기 어려운 저출산 문제의 원인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가? 여러 가지 요인의 복합으로 나타난 사회현상이겠지만, 고용 불안, 사교육,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을 주요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다. 고용 불안으로 인한 경제적 불안은 결혼 자체를 미루게 하는 주요 원인이 되었고, 우리나라의 과도한 사교육 광풍은 자식을 낳으면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부부들에게 출산을 포기하게 만들고 있으며, 맞벌이를 해야 중산층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구조가 한편으로는 여성들의 일·가정 양립을 어렵게 만들고 있으니 이 또한 저출산의 주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고용불안과 사교육 문제는 몰라도 일·가정 양립에 어려움이 있는 사회구조라는 데는 다소 이견이 있다고 할 지 모르겠다. 정부가 본격적인 저출산 정책을 추진하기 이전에도 보육정책은 일하는 여성의 육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했었고, 저출산 위기 이후 지난 5년 동안에는 그 어떤 저출산 정책보다 우선순위에 있었으며 많은 국가 예산이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보육시설은 전국적으로 부족하지 않을 만큼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과잉공급 지역까지 생길 정도로 확충되었으며, 보육료 지원 정책은 저소득층 중심 지원에서 소득하위 70%이하(소득인정액 기준 월 436만원, 2009년)에 해당하는 가구에까지 확대하는 동시에 최고 1달에 73만원(0세 기준)에 해당하는 무상보육 대상자도 확대시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도 중앙정부의 보육예산으로 약 2조 원(지방정부 예산까지 포함시킬 경우 약 3조5천억 원에서 4조원 가까이 될 것으로 추정한다)이 편성되었는데, 이것은 전년도 대비 22% 증가한 것으로 사회복지 예산 그 어느 항목에서도 볼 수 없는 증가였다. 또한 보육시설평가인증제도를 실시하면서 보육시설의 질을 향상시키는 노력도 하고 있다.
문제는 이와 같은 규모의 재정 투입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들은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그 원인으로 육아 문제를 지목한다는 데 있다. 2007년의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 여성의 80%가 출산과 육아 때문에 일을 시작하지 않았거나 그만둔 경험이 있었다고 하였다. 물론, 자발적으로 부모가 자녀 양육을 선택한 경우도 있지만(표 3), 미취학 자녀를 둔 가구의 10%가 맡기는 비용 문제 때문에, 35%가 맘 놓고 맡길 때가 없어서 일을 하지 않거나 그만두었다고 한 것을 보면 아직까지는 우리나라 보육정책을 효과적인 일․가정 양립 지원 정책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일하는 엄마를 소외시키는 보육정책
보육정책에 대한 투입이 정부의 의도처럼 여성의 일․가정 양립 지원이나 출산 장벽을 완화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보육정책의 핵심은 보육료 지원과 보육시설에 대한 접근성인데 이 두 가지 측면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배제되고 있다. 먼저 보육시설에 대한 접근성의 경우 주요 선진국가에서는 일하는 여성들의 자녀만 보육시설을 이용하게 하거나 보육시설 이용의 우선권을 주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등과 관련 없이 모두에게 보육시설을 개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취업부모 자녀에게 보육시설 이용의 우선권도 부여하지 않는다(약 10% 정도 되는 정부지원시설에 한해 보육시설 이용 우선순위를 법으로 정하고 있지만, 그 우선순위에서 조차도 일하는 부모는 저소득층 등의 후 순위로 밀려나 있다). 보육시설 입소 순위는 보육서비스에 대한 욕구와 상관없이 등록자 또는 대기자 순으로 결정되기 일쑤이다. 보육시설의 접근성은 시간 운영과 서비스 질과도 연관이 있다. 여성들이 참여하는 노동시장은 유연화 되어 다양한 시간대의 노동이 진행되고 있지만 보육시설은 그만큼 유연하지 않다. 야간에, 휴일에, 이른 아침에 자녀를 어디에 맡길지 전전긍긍해야 하는 것이 많은 일하는 여성들의 모습이다. 자녀를 하루 종일 맡겨야 하는 입장에서 볼 때 서비스 질도 매우 중요한 결정요인인데, 일하는 부모들은 여전히 ‘믿고 맡길 곳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일하는 취업부모들의 어려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데, 바로 육아 비용의 문제이다. 보육료 지원의 대상은 소득하위 70%까지(약 평균소득의 100% 수준)인데, 부부가 맞벌이를 하면 이 수준을 넘어서기 쉽다. 2007년 조사에 따르면 월평균 가구소득이 홑벌이 가구의 경우 평균 325만 원인 것과 비교하여 맞벌이 가구의 월소득은 평균 423만원인 것으로 조사되었다(백선희 외, 2007). 즉 평균 소득으로만 본다면, 정부의 보육료 지원은 홑벌이 가구를 위한 것이고 맞벌이 가구는 지원받을 수 없게 된다. 어디 이뿐인가? 2009년부터 시작된 양육수당의 경우도 저소득층의 보육시설 미이용 영아에게 주어지는 것이니 이 또한 받기 요원하다. 즉, 맞벌이 가구는 보육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높고, 보육시간이 길어 보육료 지출도 크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소득으로 인해 정부의 보육료 지원이나 양육수당 지원에서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더 많은 소득이 있으니 자부담으로 이용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상기의 2007년 조사에서 자녀를 직접 키우지도, 그렇다고 국가의 보육서비스 지원을 받지도 못하는 취업부모의 선택은 조부모 등 비공식 보육을 선택하는 일이었다. 취업부모의 56% 정도가 조부모 등 타인으로부터 육아 도움을 받고 있었고 취업부모의 약 15%는 아예 조부모 등에게 주 양육자의 자리를 내주었다. 물론 과거와 같지 않아 부모님이라 하더라도 돌봐주시는 것에 대한 댓가를 지불한다. 육아도움을 받고 있는 일하는 부모의 55%는 그들에게 일정 비용을 지불하는데 그 비용은 현금만 하더라도 월평균 46만원에 이르는 수준이다. 물론 보육시설을 이용할 경우 보육료 지출은 별도이다. 취업부모들이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더 많은 육아비용을 지출하고 있는 것다.
보육정책 자체가 아닌 일가정 양립을 지원할 보육정책을
수요자와 공급자의 겉을 맴도는 듯 한 형국은 결국 문제의 진단과 그 진단에 대한 적합한 대안 모색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영유아보육사업이 1991년에 시작된 이래 보육시설과 정부 예산은, 특히 최근에 들어 가파르게 상승해 왔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이 보육정책은 일·가정 양립 지원에, 출산 장벽 완화에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부모들은 어떠한 보육정책을 원하는 것일까? 일하는 부모이든 아니든 정책 수요자가 원하는 정책의 첫 번째는 ‘국공립보육시설의 확충(5점 만점 중 4.52점)’이었고 그 다음이 ‘보육료 지원(4.46점)’으로 조사되었다. 보육료 지원은 기존의 보육시설 이용 자녀에 대한 지원 외, 맞벌이부부가 보육모(3.81) 또는 조부모(3.77)의 도움을 받을 때도 보육료를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백선희 외, 2007). 취업부모들이 현재의 보육시설 및 보육료 관련 정책에 불만족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와 같은 수요자의 목소리를 외면하면서 2010년 정부의 보육예산 중 얼마 안 되는 국공립보육시설 확충 예산마저 삭감해 버렸다.
더 이상의 저출산의 하락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 동안의 정부 정책으로는 이러한 경향을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다. 출산율 저하를 막기 위해서라도 직장과 사회에서 일․가정 양립이 가능하도록 지원하여야 하고, 특히 보육정책은 그 동안 저출산의 주요 당사자이면서도 정책에서 소외되어 왔던 일하는 부모를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여성의 일·가정 양립의 맥락에서, 그리고 저출산 해결이라는 맥락에서 보육정책의 우선순위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출산과 일․가정 양립에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한 지금의 보육예산 투입 구조도 재검토해야 한다. 또한 전체의 5%대에 불과한 국공립보육시설의 비율을 늘려 공공성 있고 안정적인 보육정책의 기반을 갖추어야 한다. 정책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위기적 상황에서 돌봄책임의 사회화를 위해 가장 적합한 방법이 무엇인지, 보육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에 대해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월간 <복지동향> 2010년 03월호(제137호)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