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0 2010-05-10   1504

[동향 7] 국민건강보험의 정책결정 과정에 국민은 빠져라?

김 창 보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실장





 MB정부가 본격 출범하기 이전부터 말은 있었다. 2007년 겨울 대선이 끝난 뒤부터 ‘좌파척결’, ‘좌파적출’이란 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 ‘레드컴플렉스’를 벗어난다고 생각하던 마당에 우리 사회의 진보세력들에 대하여 적대적 태도를 보이는 것에도 당황스러웠지만, ‘척결’, ‘적출’, ‘청소’라는 말에서도 자신이 아닌, 자신들을 반대하는 세력 모두를 ‘제거’해야 한다는 인식에 어이없어했던 기억이 난다. 이런 분위기에서 ‘촛불’은 ‘빨갱이’를 대체하여 우리 사회에서 ‘좌파’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2008년 봄 분명히 ‘촛불’은 ‘전국민’을 상징하는 것이었는데, 저항이 잦아들자 곧바로 ‘촛불’은 ‘좌파’의 상징이 되었다.

집권세력은 그들이 ‘좌파’로 몰아버린 세력들을 억압하는 방법은 유치했다. 최소한 20년 전에 사용하던 방법들이 부활되었기 때문이다. 언론을 손아귀에 틀어쥐고, 경찰력으로 공포감을 조성하며, 국정운영에 이들을 배제하고 ‘어용’ 세력을 내세우면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는 전면적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정책결정과정에서 국민의 목소리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1. ‘지침이 내려왔다’


집권세력에 의해 ‘좌파’로 몰려진 진보적 시민단체들을 찍어내는 것은 보건복지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2008년 여름, 건강보험재정운영위원회(이하 재정위)에서 건강세상네트워크는 아무런 해명조차 듣지 못한채 위원자격을 박탈당했다. 그 자리는 친정부적 성향의 ‘한반도선진화재단’이 차지했다. 그러더니 2010년초,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제3기 위원의 임기가 만료되자 경실련 위원이 아무런 설명없이 위원자격을 박탈당했다. 그 자리 역시 ‘바른사회시민회의’라는 ‘임의단체’에게 돌아갔다. 그러더니 3월말 저소득층의 최저생계비를 심의 의결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이하 생보위)의 위원 임기가 끝나자 참여연대와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쫓겨나는 일이 생겼다.

아마도 이런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올해 여름 제5기 재정운영위원회 임기가 만료되는 순간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높다. 경실련, 참여연대와 같은 단체가 재정운영위원회에 계속해서 잔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문제는 이런 과정이 어떤 기준이나 절차도 없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명분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냥 위(?)에서 내려온 지침에 의하여 추진할 뿐이었다.


2. 최소한의 기준과 절차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위에서 내려온 지침대로 추진하기엔 뭔가가 부족했다. 당연히 말썽이 생기고 있다. 경실련은 건정심 위원 자격을 박탈당한 뒤, 곧바로 여러 시민단체들과 함께 행정소송을 냈다. ‘왜 경실련을 바꾸었는가?’를 묻는 소송이 아니라 “왜 바른사회시민회의인가?”를 묻는 소송이었다.

일단 복지부는 위원을 교체하는데 있어서 어떤 기준도 제시한 바 없었다. 보건의료와 관련한 활동, 특히 건강보험과 관련한 활동의 경력조차 따지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바른사회시민회의라는 단체에 자격을 부여한 것을 설명해 보라는 요구에 복지부는 제대로 응답하지 못했다.
게다가 ‘바른사회시민회의’는 법인도 아닐뿐더러,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된 적도 없는, 사실상 법적 검증을 한번도 받지 않은 ‘임의단체’였다. 작년 연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1천개가 넘는 비영리민간단체가 등록되어 있는데, 굳이 법적 등록조차 되어 있지 않은 단체를 건정심 위원 단체로 인정한 이유는 무엇인지 복지부는 설명하지 못했다.
여기에 절차적인 문제도 있었다. 건정심에 참여하는 가입자대표 위원을 결정하는 문제라면 기존 가입자단체 또는 가입자들이 모여있는 ‘건강보험재정운영위원회’에 의견을 묻는 최소한의 절차라도 거쳐야 했다. 그러나 이런 절차도 없이 복지부가 임의로 위원을 결정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결국 복지부는 스스로 편파적임을 드러내고 말았다. 아무런 근거와 기준, 절차도 없이 일단 ‘좌파 시민단체’를 제외하고 뉴라이트 계열의 단체를 넣는 결과에만 치중했다.


3. 손숙미 의원의 황당한 입법 발의 – 정책결정의 민주주의 후퇴


이런 와중에 한나라당 손숙미 의원이 건강보험 수가협상과 정책결정 과정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가입자측의 영향력을 축소시키는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는 집권세력이 건강보험 정책에서 스스로 비민주적인 관점을 드러낸 상징적 사건이었다. 우선, 국민건강보험의 주인인 국민을 대표하는 ‘가입자대표 위원’의 의미를 인식하지 못한 특징을 보였다. 특히 건강보험 수가 협상에 대하여 가입자대표들이 모여있는 ‘건강보험재정운영위원회’의 의견은 자문으로만 그치도록 권한을 제한했다. 한마디로 수가협상은 알아서 할테니 국민은 정해진 보험료만 잘 내라는 식이다.

이런 인식의 근저에는 ‘협상과정’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자리잡고 있다. 협상과정에서 당사자들은 스스로 유리한 쪽으로 결과를 이끌기 위해 근거를 제시하고 요구를 상대방이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는 ‘협상’이라면 보편적인 과정이다. 그런데 손숙미 의원은 이런 과정을 ‘공정하지 못한 갈등’, ‘없어져야 할 갈등’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 건강보험재정운영위원회를 지목했던 것이다.
손숙미 의원의 개정안 내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건강보험과 관련한 중요 정책에 대한 결정권한을 갖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위원 구성에서 공익대표를 4명 더 늘리자는 안을 내놓았다. 이는 현재 건정심의 구조가 가입자대표 8명, 공급자대표 8명, 정부 및 공익대표 8명으로 되어 있는 구조에 공익대표를 늘리자는 안으로 결국 정부의 입장대로 언제나 결정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현재의 구조 만으로도 언제나 정부의 입장에서 결정된다는 점에서 가입자, 공급자 모두의 불만을 받고 있는데, 손숙미 의원은 이런 구조적 문제를 파악하고 근본적으로 해결하려 하기 보다는 오히려 불만 발생의 원인을 강화하는 쪽으로 잘못된 방안을 내놓았다. 이와 같은 발상은 정책은 전문가가 결정하는 것이라는 오도된 ‘전문주의적 인식’과 건강보험 가입자대표에 대한 불신이 깔려있다.

이런 점에서 결론짓자면, 손숙미 의원의 발의안은 현재 집권세력과 의료공급자들이 사회적 합의의 상대 당사자이면서 동시에 우리 국민을 대표하고 있는 ‘가입자대표’를 무시하고 인정하려 하지 않는 오만한 태도를 보인 상징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건강보험 정책 결정에서 국민의 권한을 축소하는 반민주적 관점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4. 국민건강보험의 정책결정을 국민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


국민건강보험은 국민의 것이다. 건강보험을 위해 국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건강보험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건강보험 정책 결정 과정에 어떻게 국민의 참여를 보장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학자들의 연구결과가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현재 건강보험재정운영위원회를 ‘건강보험가입자위원회’로 변경하고, 건강보험 보장수준과 보험료 수준을 연계하여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건강보험에 대하여 국민이 책임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으며, 이와 같은 결정을 통해 건강보험이 획기적으로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2000년 국민건강보험이 처음 출범할 때 [국민건강보험법]에는 이와 같은 취지가 어느 정도 담겨져 있었다. 가입자대표가 모여있는 건강보험재정운영위원회에 수가협상 권한을 부여하는 한편, 지역가입자의 보험료를 결정하고, 직장가입자의 보험료 수준에 대한 의견을 낼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즉, 건강보험 재정의 지출과 수입을 건강보험재정운영위원회가 관여하도록 한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 국민은 건강보험의 주인으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2001년 봄 건강보험 재정위기가 발생하고 [건강보험재정건전화특별법]에 의거하여 2006년말까지 건강보험 제도가 운영되면서 이런 취지는 후퇴하기 시작했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로 권한을 대폭 넘겨주면서 재정운영위원회의 역할은 축소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이제는 아예 수가협상에도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 운영과 정책결정에서 가입자대표의 권한 축소가 시도되는 것이다.
 
 이는 결국 건강보험의 주인인 국민이 건강보험 제도로부터 배제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반민주주의적인 방향이다.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건강보험제도로 가기 위해 건강보험의 정책 결정은 국민에게 되돌려주어야 한다.


5. MB정부의 가버넌스에 시민사회가 계속해서 참여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협상의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없다. 더군다나 국민의 대표인 가입자대표를 무시하고 배제하려는 노골적인 모습이 보인다. 게다가 불편하면 ‘좌파’라는 딱지를 붙이고 기준과 절차, 근거도 없이 일단 자르고 본다. 이런 모습은 이번 MB정부에 들어서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뿐만 아니다. 정부는 친기업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며, 보건의료정책에서 ‘의료산업 육성’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 국민의 건강불평등과 건강권의 보장에는 관심이 없다. 이런 분위기에서 시민사회가 MB정부의 가버넌스에 참여하는 것이 올바른 판단일지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건강보험 관련한 정책 결정 과정에, 협치(協治, governance)의 과정에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시민사회는 아직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고 있다. MB정부의 반민주적 정책결정 과정에 문제제기하고 반민주성을 확인한 이후에 해도 늦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판단을 긴 시간동안 유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번 여름이 고비일 것 같다.

월간 <복지동향> 2010년 05월호(제1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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