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3 2013-11-10   1706

[동서남북]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 노동조합은 왜 싸우고 있는가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 노동조합은 왜 싸우고 있는가

변혜진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기획국장

몇 해 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행잡지 ‘SEOUL’ 편이 나왔다. 영어로 소개된 서울 여행편이 궁금해서 들춰 봤더니 서울여행의 주된 추천 사유가 이렇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24시간 영업하는 술집이 있고 밤새 놀 수 있어 밤문화를 즐기기에 좋다는 것이다. 뭐 어떤 홍보든 관광유치만 된다면 좋은 거 아닐까 싶지만 개인적으로는 씁쓸한 소개다. 

우리에게는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24시간 어디서나 술을 사고 마실 수 있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알코올로 인한 사회문제가 무척 많은 나라로 유명한 러시아조차도 밤 10시 이후에는 슈퍼에서 술을 살 수가 없도록 규제돼 있다. 

술 판매와 홍보에 사실상 무규제 상태인 우리나라의 알코올 소비량 지표를 보면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2012년 OECD Health Data를 보면 나라꼴을 갖춘 나라들의 알코올 소비량은 전반적으로 감소추세에 있는 반면 한국의 1인당 알코올 소비량은 감소하지 않거나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게다가 한국은 도수가 높은 증류주로만 보면 그 소비량이 세계 1위로 나타난다. OECD health Data 2012, 나라지표

따라서 한국은 다른 나라들보다 알코올로 인한 피해가 매우 크다. 2000년 기준으로 음주로 인한 사망자 수가 전체 사망자의 9.4%로 미국(4.5%), 캐나다(3%), 독일(4.8%), 뉴질랜드(3.3%)등에 비래 두 배 이상으로 조사됐다. 정우진, 김재윤, 이선미, <음주의 사호경제적 비용>, 집문당. p99   

문제는 알코올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매우 큼에도 불구하고 알코올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정책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1995년 국민건강증진법 제정으로 음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여러 가지 규제들이 논의되었지만 실질적으로 알코올 판매를 규제할만한 제대로 된 정책은 실행된 바가 없다. 술 판매 기업들의 로비와 압력에 정부의 알코올 규제 정책이 번번이 물러선 이유다.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 노동조합의 지난 몇 년간의 갈등과 투쟁은 바로 이런 정부의 주먹구구식 알코올 규제정책으로 인해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금을 피하려는 주류업계와 정부의 행정 관료들의 타협의 산물이 바로 이 글의 주제인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의 탄생의 비밀이기 때문이다. 

국세청 퇴직 관료들의 일자리와 타협한 건강증진부담세 

국민건강증진법이 제정된 후 1997년에 담배에만 부과되던 건강증진부담세를 주류에도 부과해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여론을 등에 엎고 국회는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자 쥬류업계는 건강증진부담세를 회피하기 위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공익기관을 설립하겠다고 나섰다. 건강위해식품인 술로 인한 피해자들을 돕고, 과도한 음주 피해를 줄이기 위한 연구와 캠페인을 하는 재단을 설립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국세청은 건강증진부담세 부과를 취소하고 주류기업의 사회 공헌 활동에 손을 들어 줬다. 그 결과 주류협회가 세금대신 납부하는 연 50억원의 출연금으로 운영하는 한국음주문화센터라는 공익재단이 설립되었다. 2004년 알코올 환자를 위한 치료병원인 카프병원도 설립됐다. 국세청의 보은인사도 함께 시작됐다. 국세청 퇴직 관료들이 국세청의 관리감독을 받는 주류업계 이사로 재취업하는 ‘회전문’ 인사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당장의 소낙비를 피해가자는 심산으로 사회 공헌 운운했던 주류업계는 주류에 대한 건강증진부담금 부과라는 사회적 관심이 소홀해지자 금새 약속했던 공익재단 운영금을 떼먹기 시작했다. 국세청의 관료들도 주류업계 출연금을 좌지우지 하고 싶은 마음에 숟가락을 거얹기 시작했다. 

국세청 고위 관리직 임원들의 퇴직후 새로운 직장이 된 주류업계 이사들은 공익재단을 실지로 ‘공익’을 위해 운영할 마음이 없었다. 2006년 국세청은 ‘음주문화혁신전략’을 내 놓으며 복지부의 관리감독을 받는 공익재단이 한국음주문화센터를 없애고 출연금을 자신들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다른 기구를 만들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의 설립취지에 공감해 카프재단에 입사해 일하던 연구원들과 알코올 치료를 담당하던 카프병원 직원들, 그리고 환자들을 사회로 복귀시키기 위해 노력하던 사회복지사들을 분노케 했다. 그리고 이들은 국세청이 공익재단을 사유화하려는 움직임에 맞서 노동조합을 결성해 공익재단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 나서기 시작했다. 부패한 국세청 관료들과 주류협회의 낙하산 이사진들과의 전쟁은 사실상 2006년부터 시작됐다. 

고양이에게 맡겨진 생선,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 

부패한 국세청 관료들과 주류업계 이사들은 노동조합에게 사회적으로 약속한 연 50억의  출연금을 제대로 납부할 것, 그리고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 이외의 별도 기구를 만들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3년만에 또 다시 약속을 파기하고 2010년 출연금 지급을 중단했다. 

주류산업협회는 2010년 카프재단에 대한 출연금 지급은 중단하면서도 주류에 대한 건강증진부담금 부과에 대한 여론에는 “주류업계는 소비자 보호 사업의 차원에서 공익재단을 설립하여 자율적으로 예방과 치료, 재활사업을 해오고 있으며, 1997년 이해로 연간 50억원을 알코올 문제 개선을 위한 사업에 투자” (한국주류산업협회, <주류건강증진부담금 부과의 타당성 검토>, 2010. 11)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보고서를 내놨다. 

주류에 대한 건강증진부담금이 이야기될 때는 공익재단 운영을 하고 있는 것으로 거짓 홍보를 하고 실제로 국민과 약속한 출연금은 지급하지 않은 것이다. 어떻게 이런 거짓 보고서들이 아무런 확인도 없이 언론에 보도되었던 것일까? 여기에 보건복지부의 책임이 있다. 

복지부는 공익재단이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카프재단/카프병원)에 대한 관리운영의 책임이 있다. 카프재단의 주무부처는 복지부다. 그러나 국세청의 낙하산 인사에 대한 감사도 제대로 한 적이 없으며, 알코올 환자들을 위한 카프병원과 자활센터의 운영에 대해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결국 주류업계들은 주무관청이 복지부의 묵인 하에 돈이 안된다며 카프병원 폐쇄와 건물 매각을 시도했다. 병원은 강제 폐쇄되었고 환자들은 강제로 쫒겨났다. 연구재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임금은 체불되었고, 임금체불을 견디지 못하고 퇴사한 일부 직원들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다른 직원들이 휴일도 야간근무도 마다하지 않고 근무해야 했다. 알코올 환자 치료 후 사회복귀를 위해 일하는 직원들 중 일부는 환자들이 안타까워 직접 쌀을 구하러 다니고 꽃을 팔아 운영비를 마련하면서 공익재단인 카프재단이 문을 닫지 않도록 애타게 노력해 왔다. 

카프재단 노동자들의 이런 장기간의 투쟁은 시민사회단체의 공분을 불러일으켰고, 여론의 관심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2013년 여름, 진주의료원 투쟁과 함께 또 하나의 공익병원이 돈이 안된다는 이유로 문을 닫았고, 시민사회단체는 카프병원이 폐쇄에 맞서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 카프병원 정상화와 알코올 치료 공공성 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 (이하 시민공대위를 결성했다. 

주류협회는 카프재단에서 손을 떼라  

올 여름, 카프재단 노동조합은 국세청과 주류업계의 비리를 폭로하고, 주류협회는 국민과 약속한 밀린 재단 운영금 157억원을 내놓고 공익재단에서 손을 떼라는 요구를 걸고 농성에 들어갔다. 체불임금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자신들이 몸담아 만들었던 알코올 피해를 줄이기 위한 연구를 계속하겠다는 노동자들과 병원 직원들은 거리에서 쪽잠을 자며 석달이 넘는 거리 농성을 유지했다.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폭우와 싸워야 했고, 한 시간만 앉아 있어도 머리가 뚫릴 것 같은 폭염도 견뎌야 했다.  

노동조합과 시민공대위는 더 이상 주류업계의 돈으로 운영되는 음주연구센터는 존재해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주류업계를 관리감독해야 할 국세청 관료들이 되려 주류업계 이사로 임명되는 낙하산 인사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세청에 보은인사를 제공하며 세금을 회피해온 부패의 사슬을 끊고, 술 판매로 연 매출액이 7조원이 넘는 주류사들에게 ‘건강위해세’를 물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류협회는 노동조합과 시민공대위의 압력에 굴복해 지난 9월 9일 주류협회 재단 이사회를 통해 주류협회는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에서 손을 떼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밀린 출연금 157억이 아니라 1/3에도 못 미치는 50억의 출연금만 지급하겠다고 했다. 

노동조합과 시민공대위는 오랜 논의를 거쳐 공익재단을 공익재단답게 하려면 기업의 손아귀에서는 떼 놔야한다는 원칙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 밀린 출연금 중 일부밖에 되지 않는 50억원 납부를 받아주고 손을 떼겠다는 약속을 받아주기로 결정하고 이를 통보했다. 기업이 세금 회피처로 선택한 ‘사회 공헌’ 이나 공익재단 운영이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를 수 년 동안 체험해 온 노동조합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정부가 허용한 주류업계의 CSR은 결국 음주로 인한 피해를 은폐하고 알코올 판매 홍보의 기구로 활용되고 만다는 것을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 노동자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주류사에게는 건강위해세를! 공익재단은 공공기관화를!

그러나 아직 주류협회는 밀린 출연금 50억원도 지급하고 있지 않다. 엉뚱하게도 보건복지부가 뒤늦게 개입해 주류협회의 공익재단 운영권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복지부의 주장은 주류협회가 손을 떼고 나면 카프재단과 카프병원의 관리운영의 책임이 주무부처인 복지부에게 있는데, 그걸 운영할 예산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말이 안되는 변명이다. 세계보건기구는 알코올로 인한 건강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주류기업들의 간접적 마켓팅활동을 규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세계보건기구의 지침은 공중보건학계에서는 매우 미흡한 조치라고 지적되고 있다. 이런 마당에 보건복지부가 주류업계의 홍보업계로 전락하고 있는 공익재단을 계속 주류업계에 맡기겠다는 것은 국민건강을 책임지는 부처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게다가 세계에서 가장 큰 술 기업의 한국지부인 디아지오코리아와 하이트진로, 롯데칠성, 오비맥주 등으로 구성된 한국주류산업협회는 초국적 술기업의 마켓팅 업체인 ICAP과 함께 ‘알코올 유해성 감소를 위한 국제세미나’를 5회나 개최했다. ICAP은 세계 거대 주류회사들이 후원해서 만든 민간 연구소로 공중보건에 해로운 입장을 퍼트려온 단체다. ICAP은 ‘알코올과 폭력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고, ‘술을 마시는 태도가 중요하지 술의 양은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술 홍보 민간단체다. 최근에는 각 나라의 음주운전 규제를 문제삼으며 “합의된 혈중 알코올 농도가 없다”는 것을 이유로 음주운전 기준규제의 중요성을 낮추려 하고, ‘임신중 음주’ 에 대해서도 음주가 해롭다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건강파괴단체다.

ICAP과 매해 ‘알코올 유해성 감소를 위한 국제세미나’를 연 주류협회는 사실상 유해성 문제를 은폐하여, 알코올 환자들을 양산하는 집단인 것이다. 이런 주류협회에게 알코올 문제를 연구하는 공익재단 츌연금과 운영을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다름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은 다른 나라들보다 알코올로 인한 피해가 매우 크다. 최근에 나온 “2010년 국제질병부담연구”를 보더라도 한국의 질병부담 중 알코올 문제가 가장 큰 질병부담 문제인 것으로 드러났다. Global Burden of Disease 2010 Study

 우리나라의 음주 관련 지표들을 보면 연간, 월간 음주율이 77.0%, 59.4%이고 음주관련 사망률도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높다. 그러나 한국은 오직 음주허용 연령 제한만을 하고 있을 뿐, 그 외 주류 판매장소 및 시간제한 정책은 전혀 두고 있지 않다. 1년 365일 24시간 어디에서도 모든 주류를 판매하도록 허용해 준 것이다. 우석균, <한국의 음주 정책, 현주소와 개선 방향>, 2012. 9

이런 현실은 복지부가 국민 건강 보다 술 기업 눈치를 우선해온 결과다. 노동조합과 시민공대위는 지금도 주류협회의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국세청 앞에서 밀린 출연금 지급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고, 보건복지부에는 공익재단을 공익재단답게 운영하기 위해 공공기관화라고 요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오갈 데 없는 알코올 치료 환자들을 위한 카프병원은 하루라도 빨리 정상화되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한국음주문화센터와 카프병원의 공공기관화 투쟁은 지금까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불리웠던 한국 CSR의 현주소와 기업의 사회 공헌이라는 말로 포장된 공익재단 운영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문제와 토론을 제시하고 있다. 이미 국제 엔지오를 통해 기업이미지 세탁만을 위한 ‘그린워시’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이 되어 왔다. 카프재단의 공공화 투쟁은 건강위해식품을 판매하면서 이윤을 챙겨온 기업들에 대한 ‘건강워시(Health Wash)’ 행동 중단을 촉구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국세청과 보건복지부는 주류협회가 공익재단에서 손을 떼게 해야 하고, 주류협회에게는 건강위해세를 물려야 한다. 더 이상 주류기업들의 봐주기 정책 그리고 고위 관료들의 퇴직후 보은사로 건강증진부담금을 면세해 주어선 안 된다. 600만 알코올 피해자들을 위해 정부부처가 지금 해야 할 것은 바로 알코올 규제에 대한 제대로 된 공공정책이고 집행이다.

월간 <복지동향> 2013년 11월호(제1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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