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3 2013-12-10   1528

[기획주제2] 주민참여예산제도를 대하는 지역복지운동의 자세

주민참여예산제도를 대하는 지역복지운동의 자세

이상희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 간사

1. ‘주민’으로 살고 계십니까?

얼마 전 한 국회의원의 당선 전-당선 후 비교사진이 인터넷 상에서 크게 화제가 되었다. 이는 국회의원 개인의 성품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도구’로서 주민을 대하는 방식이 더 큰 문제로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주민을 도구로 인식하는 행정부와 관료조직, 민주주의 이후에도 몇 년에 한번 투표행위 이외에는 도구로서의 삶에 길들여진 주민들. 2011년 지방재정법 개정으로 전국에서 의무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주민참여예산제도는 이러한 현실을 기반으로 진행되고 있다. 

주민참여예산제도는 지방자치단체가 독점적으로 행사해왔던 예산편성권을 지역 주민에게 되돌려주는 제도이다. 예산편성과정에 시민참여를 확대하여 재정운영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높이고,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필요한 사업이나 정책을 제안하고 논의하는 것이 핵심이다. 브라질 뽀르뚜알레그리 시에서 시작된 주민참여예산제도는 열악한 재정상황으로 한정된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시민이 예산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으로 행정부의 권한을 시민에게 되돌려주는 혁신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2003년 광주북구에서 구청장의 공약사항으로 한국에서 최초로 시행된 주민참여예산제도는 브라질의 방식과 달리 제한된 예산범위 내에서 단순히 새로운 사업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한정되었다. 이는 지방자치단체의 전체 사업에 대한 참여가 아닌, 일부 예산제안권 부여로 행정안전부(현 안전행정부)의 조례안을 통해 전국적으로 동일한 방식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제한된 참여범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주민참여예산제도는 (지역별 차이는 존재하지만) 신청을 통해 참여가 가능한 방식으로, 현재 참여과정 중 가장 문턱이 낮은 제도로 볼 수 있다. 또한 분리/특혜/시혜가 아니라 ‘주민’으로서 참여하고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된다. 여기에서 지역복지운동으로서 주민참여예산이 주목될 수 있다. 

2. 스스로 말하게 하라!

그동안 지역복지운동단체에서 진행되었던 예산운동방식의 흐름을 살펴보면 <표1>과 같다. 지방정부의 복지예산확충과 정책견제를 목적으로 진행된 대변형 예산운동은 지난 10년간 가장 대표적인 예산운동방식이다. 지방정부 예산중 복지예산의 비중을 점검하고, 개발정책에 대한 문제제기를 통해 복지정책의 확장을 견인한 방식으로 정부의 복지정책 확대와 연계되어 실질적인 복지예산의 확대에 기여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전문가, 교수 중심의 대변형 예산운동은 세부적인 정책분석을 하지 못한 채 양적 추이만을 점검하는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천안, 청주, 수원 등 지역의 복지운동단체에서 시행한 활동가 중심 예산운동은 기존의 대변형 예산운동에 현장의 요구를 담았다. 2005년 천안지역의 18개 단체로 구성된 참여예산복지네트워크(사무국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는 복지예산을 숫자가 아닌 정책적 지향으로 재분류 하였다. 대상 영역별 총량만이 아니라, 부문별 복지정책의 지향(장애인 분야예시-장애인 편의증진 및 이동권 확보, 교육권확보, 장애인 생활안정지원, 문화향수권 확대, 직업재활 및 고용확대, 장애인 복지시설 지원 및 인프라 연계)을 담아 사업별 분류를 진행하는 사업 범주화를 도입하였다. 이는 기존의 영역별 총량 확대를 넘어 가치를 담은 정책제안과 예산운동 방식으로의 변화로서 의미를 갖는다. 또한 현장 활동가의 경험을 토대로 주요 사업에 대한 정책 모니터링을 진행하였으며, 이는 구체적인 정책대안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여러 가지 강점에도 활동가 중심 예산운동은  여전히 대변적 활동에 그치고 있으며, 주민이 주체가 아닌 모니터링 대상으로서 존재한다는 한계를 확인하게 된다.

이후 참여예산복지네트워크는 복지정책의 대상별 예산분석 및 제안으로 천안시 전체정책이 아닌 복지예산으로만 한정된 논의의 한계성을 극복하고, 천안시 예산의 권리적 예산 재편성을 목표로 주민참여형 예산운동으로 전환하였다. 2008년부터 7대 권리(사회보장권, 사회복지서비스권, 교육권, 건강권, 노동권, 주거권, 문화권)에 따라 천안시 예산을 재분류하고, 당사자의 권리를 보장을 지방자치단체에 요구하는 방식으로 전환하였다. 예를 들어 장애인활동보조(현재는 장애인활동지원예산) 예산의 경우, 충청남도와 천안시의 예산집행이 조기 소진되어 제도를 이용할 수 없음을 행정부는 아주 당연하듯 여기며 수수방관의 자세에 임했다. 이에 대하여 참여예산복지네트워크는 프로크라스테스의 침대와 같은 정책추진 방식에 전면으로 문제제기를 하였다.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가 필요한 장애인 현황 대비 필요한 시간과 예산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전환하였다. 이러한 요구가 전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예산구조의 한계가 있으나, 행정부의 시혜적 예산지원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였다. 이후 참여예산복지네트워크는 당사자 권리워크샵을 통해 당사자들이 느끼는 생활의 문제점을 모으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하여 권리 원탁회의를 진행하며 시민이 만들고 제안하는 정책방식을 지원하였다. 2012년부터는 당사자들이 참여하여 권리적 관점에서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하고,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정책토론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행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2013년에는 총 12회의 권리워크샵과 원탁회의에 총 317명의 시민이 참여하였다. 

3. 낯선 주민참여예산제와 친해지기! – 천안의 시도

하지만 ‘주민’참여예산제도에 대하여 시민은 홍보부족으로 제도 자체를 모르거나, 직접참여경험의 부재로 열린 참여과정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없었다. 또한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아닌 정부의 제도개선으로 전국적으로 의무 시행됨에 따라 행정부 역시 (행정부의 입장에 따르면) 전문성이 부족한 시민들과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지 ‘멘붕’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천안에서는 위와 같은 예산운동 경험을 토대로 주민참여예산제도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1) 저, 천안시에 관심 많아요! – 2012 천안 주민참여예산 원탁회의

200여명의 시민이 좁은 공간에 옹기종기 조별로 앉아 천안시의 주요 정책을 살펴본다. 그리고 영역별로 중요한 정책과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정책을 선정하는 시간을 갖는다. 원래 행사시간인 3시간을 넘어 4시간이 다되어가는 시간. 진행자는 마음이 다급해져, 특정부분을 건너뛰고 진행하면 어떻겠냐고 참가자들에게 물었다. “아니에요. 그냥 계속해요.”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계속 진행하기를 바란다. 그날 천안시민 대부분은 2012년 천안시 주요업무실천계획을 처음 접하고, 시정활동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인다. 놀랍고 흥분되는 시간, 2012년 5월 천안 주민참여예산 원탁회의가 진행되고 있는 현장이다.

우리는 원탁회의를 통해 천안시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높은 관심과 열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매년 두꺼운 책으로 발간되는 예산서와 주요업무실천계획을 시민들이 접하는 일은 쉽지 않다. 참여를 독려하는 중요한 전제조건은 참여를 즐길 수 있는 정보와 자료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기본적 자료도 공유하지 않고, 시민이 제안하는 정책이 현실감이 없다는 행정부의 입장은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정책 및 예산과정을 즐기는 시민의 참여를 가능케 하려면, 시민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홈페이지, 교육을 통해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2) 생활 밀착형 상상력을 자극하라!

주민참여예산제도에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은 회의에 직접 참여하여 논의와 의사결정을 하는 직접참여방식과 인터넷 등을 통한 의견제시와 같은 간접 참여방식으로 나뉜다. 지역마다 설계된 주민참여예산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주민의 생활 가까이에서 발생하는 생활문제를 개선하고 변화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참여방식으로 지역회의가 있다. 하지만 지난해 주민참여예산제도를 통해 결정된 지역회의 의제를 살펴보면, 제도 시행 이전 읍면동별로 배분되었던 주민숙원사업과 큰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도로포장, 배수로 등 시설정비와 관련된 내용으로 일반예산으로 포함되어 추진될 수 있는 사업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올해는 지난해와 달리 주민생활과 밀접한 주제(공원, 벽화, 도서관, 복지 등)가 제안되는 등 의제의 다양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생활 밀착형 정책제안이 확대되기 위해 풀뿌리운동단체의 역할이 기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주민참여예산은 주민의 생활에서 느끼는 어려움과 불편함을 적극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과정이며, 단순 민원인이나 복지수혜자가 아닌 한 지역의 주민으로서 변화를 요구할 수 있는 제도이다. 참여의 가능성을 주민들에게 알리고, 변화를 조직하는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은 풀뿌리운동단체에게 딱이다.

3) 참여할 수 없는 주민의 이야기를 듣자!

현재 주민참여예산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대상은 연령, 학력, 성별에 구애없이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과 지역 내에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종사자까지 확대하고 있다. 즉, 지역사회의 모든 주민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회의운영시간이 오전10시나 오후2~3시로 한정된 운영(지역주민의 욕구에 따라 오후 7시 이후, 주말에 회의를 진행하는 지역도 있다.)으로 참여대상에 포함되지만 회의에 원천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시민이 있다. 소규모 자영업자, 회사원, 그리고 청소년 등이 주민이지만, 주민일 수 없는 주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좀 더 다양한 시민의 의견을 듣고, 정책으로 만드는 과정으로 ‘찾아가는 주제별 원탁회의’가 공식적인 주민참여예산과정으로 진행될 수 있다. 그리고 주민참여예산제도를 통해 제안된 사업내용을 온라인과 모바일을 통해 공유하고, 보다 많은 시민들이 정책 선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다수결의 원칙보다 중요한, 참여의 즐거움과 변화에 대한 상상을 이을 수 있는 과정으로 주민참여예산제도의 활성화를 위한 중요한 기폭제가 될 것이다.

4. 주민참여예산의 한계를 넘어서

주민의 대다수는 여전히 제도를 모름, 예정된 시나리오대로 진행되는 경직된 회의, 공동의 이해보다 개인의 이득에 집중한 제안사항, 현실 가능성이 없는 정책, 주민의 제안에 부정적인 행정부의 입장. 필자가 느끼는 주민참여예산제도 시행 2년의 현주소이다. 주민참여예산제도가 우리 삶의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과정에 ‘나’의 역할이 빠진 채 일방적으로 행정부의 역할만을 요구한다면, 본래 의도와 달리 탱자로 바뀔 가능성이 다분하다. 지역복지 운동의 관점에서 주민참여예산제도에 관심 가져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그동안 행정부의 일방향적 소통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민-지역복지운동단체-행정부를 잇는 연계 고리가 필요하다. 지역복지운동, 주민참여예산제도가 잘 기능할 수 있는 윤활유임을 믿는다.

월간 <복지동향> 2013년 12월호(제1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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