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의 글
장지연 ㅣ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원
세모녀 사건이 사회를 흔들고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그 와중에 다시 노인요양병원 화재사건이 나고, 그리고 또 다른 무수히 많은 크고 작은 비극적 사건들이 줄을 이어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누가 책임을 지고 어떤 후속조치가 내려졌다는 소식을 들은 바 없는 것은 물론이고, 문제의 원인에 대해서도 우리는 지금껏 분명히 아는 것이 없다. 그런데도 정부와 청와대는 이참에 국가를 개조하겠다고 나서고 있으니, 참으로 도둑놈이 몽둥이 드는 꼴이 아닐 수 없다. 무엇을 어떻게 고치려고 들지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듯하다.
여러 가지 사회문제가 이렇게 곪아 터져 나오면서 주는 메시지는 ‘어떻게라도 좋으니 무조건 지금과는 다르게 고치라’가 아니다. 그래서 복지동향은 현실을 보여주고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일을 계속하지 않을 수 없다. 추스르기 힘든 무력감에 짓눌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호의 기획세션에서는 요양병원과 재가서비스를 통해서 노인들에게 제공되는 요양서비스의 문제점을 짚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의 입장에서도 바라보았다. 우리는 노인들에게 공적으로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오랫동안 외쳐왔고, 이제 서비스의 양은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렇지만 이렇게는 정말 아니라는 것이 주장의 핵심이다. 인간은 일생의 어느 시점에서는 반드시 돌봄을 받아야 살 수 있는 존재이다. 돌봄을 주고받는 일은 인류역사의 어느 순간에도 그쳐본 적이 없지만, 자본주의의 논리 속에서는 돌봄도 이렇게 호혜적인 행위로만 간주될 수는 없게 되었다. 가족 내에서 무급으로 제공되든지 아니면 시장에서 서비스로 거래되든지 간에 돌봄노동에 대하여 적정한 비용을 지급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재생산 비용을 절감하려는 ‘착취’ 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선도적인 여성주의 학자들은 이것을 ‘돌봄노동의 식민화’라고 부른다. 돌봄노동을 공공서비스화 한다는 것은 이런 자본의 논리로부터 돌봄을 제외시키는 것이어야 할 텐데, 국가는 오히려 더욱 지독한 고용주 행세를 하고 있다.
각설하고, 정부조직을 장악한 권력집단이 스스로 반성하고 숨김없이 잘잘못을 가려 대책을 마련하려는 태도를 조금도 보이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를 통해서 이를 심판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우리가 풀어야할 퍼즐이자 과제이다. 복지정치가 선거판에서 부활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7월호 복지동향은 이런 고민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월간 <복지동향> 2014년 07월호(제189호)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