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4 2014-11-10   1100

[칼럼] “비겁함을 벗어던지려는” 보수의 복지관(觀)

“비겁함을 벗어던지려는” 보수의 복지관(觀)

남기철 l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예산과 관련하여 복지의 문제가 새롭게 조망되고 있다. 이제 우리사회에서도 복지라는 이슈는 늘 중요한 사회이슈가 되곤 하니 특별한 일은 아닐 수 있다. 최근 상황에서 독특한 점이라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갈등에 뒤이어 정부가 교육청과도 복지예산으로 갈등을 빚게 되었다는 것이라 하겠다.

 

어찌 보면 최근 정부는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예산 간 싸움붙이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누리과정 예산편성을 교육청에 떠넘기면서 이를 시행하기 위해 무상급식 등의 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식이다. 일부 보수언론에서도 무상복지정책 때문에 나라 곳간이 바닥난다면서 아우성이다. 대표적인 보수성향의 자치단체장은 국가재정문제를 아젠다로 설정하고 복지포퓰리즘을 혁파해야 할 때라면서 우리나라는 세금을 적게 부담하고 있으니 복지를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은 전임 단체장의 무상급식 정책을 일정기간 유지했던 것뿐이니만큼 선거에서 무상급식 등 복지정책을 공약으로 이야기한 바 없다며 무죄를 항변하기도 한다. 재미있는 점은 왜 보수세력이 ‘무상복지’ 철회의 쟁점을 전면화하지 않느냐며 보수에 대해서도 비겁하다고 공격하는 모양새를 보인다는 것이다.

 

대개의 국가에서 보수와 진보는 복지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보수진영은 통상 국가의 개입을 줄이는 즉, 복지를 줄이는 정책을 선호한다. 진보는 시장경제 일변도로 인한 양극화나 사회적 배제의 문제에 집중하며 대안 중 하나로 복지의 확충을 주장한다. 물론 보수도 진보도 그 성향의 정도나 구체적인 사안에서는 다양한 입장을 보이곤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유독 강하게 나타나는 특징은 보수나 진보나 할 것 없이 선거나 여론이 특히 중요한 국면에서는 모두 복지를 주장한다는 것이다. 공공성이 강화되는 ‘복지’냐 아니면 시장중심의 ‘성장’이냐를 놓고 선거나 국민의 공론을 모아야 하겠지만 그간 그렇지 않았다. 아직까지 선거에서 시장경제의 성장 대 사회복지와 공공성이라는 구도를 명시적으로 놓고 선거를 치른 적은 없다. 심지어는 복지의 축소와 관련된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복지를 외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때문에 전문가들이 관심을 가지고 정책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슬로건 자체만 가지고는 보수건 진보건 모두가 다 복지와 공공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은 복지를 중요하게 여기고 이를 확충하는 정책을 편다는 점에서는 양자가 차이가 없다고 보고 다른 부분에서 ‘선택’의 기준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모두가 복지를 주장하는 선거의 상황은 기본적으로 보수진영의 ‘비겁함’과 관련될 수 있다. 복지보다 성장, 대기업 등 기득권의 유지를 중시한다는 입장을 밝히지 않는 것이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섰던 보수단체장은 재정 이야기를 하자며 복지와 관련한 보수진영의 비겁함을 공격한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의 보수도 복지와 관련한 논의에서 비겁함을 벗어던지는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소위 ‘세모녀법’ 혹은 ‘복지3법’의 내용을 볼 때,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법안은 실제 ‘세모녀 사건’이 몇 번을 재발하더라도 안전망을 통해 지원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긴급복지지원은 여전히 그 대상기준이 까다롭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국민의 생활수준이 최저생계비 이상이 되도록 국가가 책임진다는 국가책임, 국민권리의 측면을 법률에서 삭제해버리고 국가의 재량적 프로그램으로 돌아가려는 모양새다. 아무리 잘 보아주려고 해도 세모녀와 같은 복지사각지대의 비극을 해소하기 위한 대응책은 아니다. 생계급여와 특히 의료급여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부담을 중장기적으로 줄여보려는 의도가 강하다. 그럼에도 ‘세모녀’를 들먹이며 비겁한 호도를 계속하고 있다. 사실은 권리와 급여가 줄어드는 것이지만 오히려 더 좋아지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보수가 복지에 대응해왔던 구태적 방법이라 할 것이다.

 

오히려 공무원연금을 다루는 입장은 보수정부의 태도가 비교적 솔직하다고 할 수 있겠다. 재정이 부담되니 급여를 줄이자고 한다. 물론 선거가 없는 시점에 그것도 특수직역연금의 하나를 표적으로 진행한 것이기는 하다. 최근 국민의 정서상 ‘공무원’은 박봉에 희생하고 있다기보다는 상당한 기득권을 가진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질시의 대상이고 특권층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때문에 공무원연금의 급여삭감(및 기여증가)은 정서상으로는 상당수의 국민들로부터 특혜를 철회하라는 식의 지지를 얻을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보수세력은 현재 공적 연금의 축소라는 부분을 명시적으로 선언하고 돌파하려는 모양새다. 

 

무상급식과 무상보육과 관련해서는 최근 보수세력의 솔직함이 더 분명해지고 있는 추세이다. 복지포퓰리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다만 무상급식 예산 때문에 다른 복지가 희생된다는 식으로 ‘돌려막기’식 논의를 펴는 것은 궁색해보이지만 나름대로는 ‘한정된 재원’ 하에서 특정한 보편적 복지 프로그램에 찬성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하고 있다. 물론 정통적 보수의 입장이라면 재원의 이야기에만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공공의 개입 자체가 좋지 않다는(시장경제에 자연스럽게 놓아두는 것이 좋다는) 논리가 더 분명할 것이다. 재원의 한정성만 이야기하는 것은 “재원은 과연 한정되어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해서 다시 논란이 생길 수 있다. 물론 증세는 없다는 보수적인 입장을 미리 선언해놓고 나서 재원은 변수가 되지 않는 것으로(상수인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보수는 아직 완전히 보수의 입장을 모두 드러나게 내어놓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최근 반복지적 입장을 몇몇 사안에서 명시적으로 표현하면서 비겁함을 벗어던지려는 시도가 나타나기도 한다. 어쩌면 자신감일 수도 있다. 상대방인 진보세력의 취약성을 본 것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보수가 반복지라는 모습 그대로를 내어보이며 덤벼들 수 있는 이 시간은 분명 진보세력의 약세라는 위기의 반증이다. 하지만 계기일 수도 있다.

 

“중앙의 재정도 어려우니 지방도 고통을 분담하자” 경제정책의 수장이 마치 외환위기시 국민들에게 금모으기 운동을 제안하듯 지방정부의 재정과 복지에 대한 이슈에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재정은 고정된 상수가 아니다. 부자에 대한 감세, 기업의 사회보장분담금 취약성 등 재정의 문제를 부족한 복지의 수준을 낮추어 해결한다는 인식을 바꾸는 것, 보편적 복지국가의 패러다임 전체를 이야기하기에 더 적기일 수도 있다. 진보, 복지의 확충을 주장하는 측이 이야기해야 할 부분도 분명해지고 있다. 보편적 복지의 확충을 위한 담론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공무원연금에 대해서도 공무원이라는 특수성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공적연금의 확충과 관련되는 이슈라는 점을 국민들에게 잘 알려야 한다. 현 기초보장제도의 논점이 권리의 이슈라는 점, 그리고 연금과 사회보장 전반이 튼실해질 때 기초보장 자체의 예산이 비대해지는 것을 근원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광범위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의 사안에 대해 증세와 지방재정의 문제를 전면화하는 것이 관철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쉽지가 않다. 언론환경도 좋지가 않다. 보수는 기본적으로 변화에 반대하는데, 사람들은 경험해왔던 상황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편하기 때문에 이에 동조하기 쉽다. 보편적 복지를 경험해보지 않은 우리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복지가 확충되지 않는 것보다 세금의 가혹함이 더 두렵고 기분나쁘게 느껴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세금이 꼭 좋은 일에 쓰이지 않는다는 의심도 많을 수밖에 없다. 그간의 우리국민 경험이 그렇다.

 

그러나 보수가 복지논의에서 ‘비겁함을 벗고’ 자신들의 속내를 이야기하기 시작할 때, 아무 이야기를 하지 않고 기다려서는 안된다. 복지를 세금 이야기와 연계했을 때, 국민들이 세금의 부분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은 복지의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과 관련될 것이다. 이제 포퓰리즘은 복지논의에 있다기보다는 세금 이야기에 있다. 담세자와 복지수혜자가 분리되는 것은 저소득층에게만 혜택이 가는 선별적 복지의 패러다임이 우세한 경우에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보수는 이 균열부분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연금으로 생활해본 세대가 본격적으로 출현하기도 전에 복지축소가 선행되면 진보나 복지의 확충 입장은 기반을 상당부분 상실할 수 있다.

 

복지논의에서 보수가 비겁함을 벗고 이야기하기 시작할 때, 우리나라의 진보는 더욱 과감하게 논의의 구도를 보편적 복지국가의 지향에 맞추어 설정해야 할 것이다.

월간 <복지동향> 2014년 11월호(제193호)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