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를 위한 건강보장은 가능할까-노숙인 의료급여제도의 현황과 과제
박유경 l 예방의학 전문의,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박사과정
올 겨울 홈리스추모제를 지켜보며
수 년 째 겨울이 되면 거리, 쪽방, 고시원 등에서 숨을 거둔 홈리스들을 추모하는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노숙인의 사망률은 일반 인구집단에 비해 1.5배에서-3.2배나 높으며, 건강수준 역시 그 만큼이나 좋지 않다. 홈리스가 생활하는 환경을 떠올려보면 금방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는 사고에 의한 외상 문제가 중요했지만 점차 알코올 중독, 만성병, 감염병 등에 의한 질병부담이 커지고 있다. 새 해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안산시에서는 한 거리 홈리스가 뇌출혈이라는 응급상황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처치를 받지 못하고 병원을 전전하다가 숨을 거두고 만 일이 있었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가진 의료 안전망의 현실이다. 사회에서도 가장 취약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마저 놓치는 그물이라면 그 구멍의 크기란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알만 하다.
우리나라 헌법과 법령에는 여러 종류의 건강권이 명시되어 있다. 보건의료기본법 제10조(건강권 등)에는 ‘모든 국민은 성별, 연령, 종교, 사회적 신분 또는 경제적 사정 등을 이유로 자신과 가족의 건강에 관한 권리를 침해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렇다. 건강권이나 시민권을 포괄하는 인권은 보편성, 즉, ‘그 사람의 어떠함과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마땅히’ 라는 개념을 기본으로 담고 있다. 쪽방 한 칸에 몸을 누인 이에게도, 매섭게 추운 거리에서 잠을 청하는 이에게도, 오늘의 하루가 무사히 지나갔음을 감사하며 둘러앉아 소박한 밥상을 차린 가족에게도,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야경을 즐기는 이에게도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권리라는 말이다. 그러나 한 사회가 지닌 건강권의 인식 수준은 사회의 가장 취약한 인구집단이 처한 상황을 보면 가늠해볼 수 있다.
보편적 권리로서의 건강권이 아니더라도 홈리스에 대한 사회의 책임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어느 사회나 홈리스가 존재하나 그 양상은 다양하다. 한 사회에서 노숙인의 발생은 그 사회가 지닌 특성- 구체적으로는 빈곤정도와 저렴주거(affordable housing)의 규모-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의 노숙인 문제는 1997년 IMF 이후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으며 IMF시기 이후에도 그 규모가 줄지 않고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렇게 역사적이고 사회구조적인 특성과 더불어 국가가 추진하는 노숙인 정책방향이 노숙인 양상에 최종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는 사회보험인 건강보험과 공공부조인 의료급여제도라는 건강보장체계를 갖추고 있다. 두 트랙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각지대 때문에 지자체별로 긴급구호 및 의료보호와 같은 제도를 추가로 운영하고 있으며 홈리스에 대한 건강보장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이 사이에서 변화를 겪고 있다.
노숙인 의료제도의 구조적 변화
노숙인 의료는 2012년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에 의해 의료급여제도 안에 포함되기 전까지는 지방자치단체별로 노숙인을 지원하는 의료보호사업에 의존했다. 의료필요가 있는 노숙인이 시설 또는 무료진료소를 통해 진료의뢰서를 발급받아 보건소 및 국·공립병원 등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발생한 의료비는 관할 자치구를 통해 사후 정산하는 방식이다. 즉, 지자체가 온전히 그 몫을 감당해왔기 때문에 지자체 역량에 따라 보장수준이 지역별로 다르고 재정 상태에 따라서도 불안정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노숙인 등’이 의료급여 대상자로 포함되면서부터 보다 안정적인 국가 보건의료체계로 포함된다는 차원에서 구조적인 개선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노숙인복지법 자체는 용어나 구체성 등의 아쉬움이 있지만 기존의 노숙인과 부랑자로 국한된 개념을 보다 확대시켰다는 점과, 홈리스의 각종 기본적 권리에 대한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을 명시하고 의료를 포함하여 주거, 급식, 일자리와 같은 지원을 아울러 법적으로 체계화시켰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틀의 측면에서 큰 변화가 있었던 것에 반해 현실에서 당사자들이 느끼는 온도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무엇 때문일까? 법이 실행된 지 2년이 넘어가는 동안 각종 한계점들이 지속적으로 지적을 받아왔고 일부는 개선된 부분도 있지만 여전히 명확한 문제들이 남아있다.
법령의 내용에 따르면 노숙인 의료급여는 1종에 해당하며 본인부담금이 면제된다. 그러나 여전히 비급여항목은 본인부담이기 때문에 높은 비급여 비중과 현실적인 소득상황을 고려할 때 의료급여만으로는 온전히 의료를 이용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급여의 포괄범위라든가 진료의료서가 있어야 상위 전달체계(예를 들면, 의원에서 병원 또는 병원에서 종합병원)에 속한 의료급여기관을 이용할 수 있는 절차와 같은 부분은 일반 의료급여제도와 비슷하다. 그러나 노숙인의 경우 또 다른 제약들을 가지고 있다.
노숙인 의료급여제도의 문제점
첫째는 선정기준과 절차에 관한 부분이다. 노숙인 의료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법령이 지정하는 ‘노숙인 등’에 해당하는 자로서 동시에 다음의 두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① 노숙인 일시보호시설, 노숙인 자활시설(쉼터) 입소자 중 ‘노숙인 법’에 따른 노숙인 해당기간(거리에서의 노숙생활, 노숙인시설 입소기간, 쪽방 거주 등) 이 지속적으로 3개월 이상 유지된 것으로 확인된 사람으로서 질병, 부상, 출산 등에 의해 의료서비스가 필요한 사람.
② 국민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거나 6개월 이상 체납된 사람.
노숙인 의료급여 자격자로 선정이 되기 위해서는 노숙인시설을 통해 신청서를 제출하고 지역 의료급여사업팀의 자격선별작업을 받아 시설로 그 결과를 통보받고 급여증을 전달받게 된다. 우선은 이 두 기준만 하더라도 현실적인 기준이 되기 어렵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다. 예컨대 노숙인 해당기간이 2개월인 경우라든가, 건강보험료 체납기간이 3개월인 경우라면? 의료급여 대상자에서 제외된다. 실제로 시설에서 3개월 이상을 거주했지만 건강보험료를 어렵사리 납부하고 있던 한 홈리스는 폐암에 걸린 이후 건강보험으로는 도저히 본인부담을 감당할 수가 없어 의료급여를 받기 위해 건강보험료가 6개월 이상 체납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례가 있을 정도다. 당사자의 의료필요를 우선한 기준이 아니라 법제적 측면을 우선한 탓이다.
선정기준 뿐만이 아니라, 시설을 중심으로 노숙기간을 확인하고 신청 받는 시스템도 제도의 진입 장벽이 된다. 일정한 지역에서 오랜 시간 머물지 않는 노숙인의 특성, 주변에 노숙인 시설이 없는 지역적 여건, 거리노숙이나 쪽방 같은 다양한 홈리스 유형으로 인해 접근성은 떨어지게 된다. 이는 단순한 거리의 문제를 넘어서 제도 자체의 접근성 문제에 해당한다. 예컨대 법이 ‘노숙인 등’으로 확장한 대상에는 쪽방 거주자도 포함되지만 쪽방을 담당하는 쪽방상담소는 노숙인 시설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쪽방 주민들은 의료급여에 관련한 정보나 신청절차 등을 알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고시원, 비닐하우스 거주 등 취약거주에 해당하지만 노숙인시설에 접근이 떨어지는 사각지대가 추가적으로 존재한다. 2014년 기준으로 서울시 전체 노숙인 중 시설급여와 건강보험 자격유지자를 제외한 1,013명 중 371명(36.6%)만이 의료급여 대상자로 포함된 상황은 그 문턱을 실감하게 한다.
둘째는 이용 가능한 의료기관 측면에서 심각한 접근성의 제한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노숙인 의료급여의 경우 일반 의료급여와 달리 ‘노숙인 지정 진료시설’만을 이용할 수 있다. 이는 의료급여 수급자들이 일반 병의원 중 직접 선택의료기관을 지정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노숙인 지정 진료시설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노숙인 등에게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노숙인 진료기관으로 지정한 의료급여기관(노숙인법 제12조)’이다. 제1차나 제2차 의료급여기관 중에서 지정하며, 지자체장은 관내 국공립병원, 보건소 또는 민간의료기관과 협의를 거쳐 이를 지정하도록 되어있다. 노숙인 진료시설의 지정현황을 보면 법이 시행된 2012년은 2차 의료기관이 지정되지 않은 광역시·도만 해도 광주, 울산, 충북, 경남 등 무려 네 곳이나 되었다. 대전은 지정된 1개의 2차병원이 시립정신병원이어서 실질적으로는 2차병원으로서의 기능을 다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특히 서울 외의 지역에서는 지정병원이 없거나 접근성이 너무 떨어져 차라리 의료급여 수급을 반납하는 사례마저 생겼다. 2013년에는 그 수가 일부 증가하였지만 대전의 사례처럼 그 내실을 들여다보면 과연 제대로 기능하기 위한 것인지, 급하게 비난을 피하기 위해 구색만 맞춰 지정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일차의료기관에 있어서도 문제가 있다. 일차의료기관에 해당하는 의료시설은 모두가 보건기관인 보건소와 보건지소다. 그나마도 보건기관 모두가 지정된 것도 아니며, 지정되지 않은 곳은 이용할 수 없다.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 일차의료의 조건에도 불구하고 한 구에 하나 뿐인 보건소는 홈리스들에게는 먼 곳일 수 있다. 게다가 보건소의 진료기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서 과연 필요에 맞는 진료가 가능한 여건인지도 확실치 않다. 민간의료기관이 일차의료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한민국이지만 홈리스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아닌 셈이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노숙인 지정진료시설에는 요양병원이 제외된다. 노숙인 의료급여 수급자의 과다이용을 우려해서라고만 하기에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지침이다. 건강보장이란 무릇 필요에 따른 보건의료 및 건강을 위한 수단의 이용을 보장하는 것이어야 할 텐데, 이러한 지침은 마치 홈리스에게는 요양돌봄 서비스가 필요치 않다고 여기는 것이나 다름이 없지 않은가. 이는 홈리스에 대한 정책의 전반적인 시각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건강에 대한 권리로서가 아니라 매우 좁은 관점에서 홈리스가 ‘자립’하여 노동하고 국가에 세금을 내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범위에 한에서만 허용하겠다는 시각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요양병원에 입원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런 경계의 밖에 위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장기요양이 필요치 않은 특수한 체질을 가지지 않은 다음에야 홈리스에게 이러한 필요가 없을 리가! 최근 문제가 불거진 요양병원의 홈리스 유인행위와 같은 양상은 홈리스가 직면한 주거, 의료 등의 사회안전망의 허술함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문제점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관리운영과 재정에 관한 책임 사이에 발생하는 사각지대이다. 노숙인 의료급여제도가 생기기 이전에는 지자체가 온전히 그 책임을 지고 재정을 부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의료급여는 재원조달을 시·도 출연금과 국고 보조금으로 마련하되 서울의 경우 50:50, 지방은 20:80의 비율로 부담한다. 따라서 지자체의 입장에서 보면 이전에 비해 책임이 분산되는 셈이 되어 홈리스들이 가급적 지자체의 의료보호보다는 노숙인 의료급여의 혜택을 받는 쪽을 선호하게 된다. 이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대상자를 확대하기 위해 발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쪽으로 유인동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제도를 핑계 삼아 실제적인 필요를 외면하려 할 때 발생하며, 실제로 2013년도에 서울시에서는 노숙인 의료급여 시행법령에 기대어 급여대상자에게는 기존에 지원되던 비급여 부분의 지원이 축소 명시된 지침을 내놓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홈리스행동과 같은 당사자운동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의 목소리에 힘입어 조금씩 개선이 되어가고 있으나, 여전히 제도와 제도 사이의 사각지대는 견고하고 적시에 필요한 진료를 받기에 행정적 사정절차는 복잡하고 오래 걸리기만 하다.
확인 가능한 자료의 한계로 서울의 사례를 계속 들었지만 그나마 서울은 상황이 나은 편이다. 물론 홈리스의 수도 많은 편이지만 지자체의 재정적 여건이나 시설과 지정병원 분포 등을 고려할 때, 의료급여 대상자로 지정된 수나 지정병원의 수를 보면 지역적 불평등이 이 부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더욱 혹독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나마 국가와 지자체에 대하여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시민단체의 활동이 서울과 대도시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것 역시 이를 반영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홈리스도 사회의 한 부분이다
살펴보았듯이 노숙인 의료급여를 비롯한 홈리스를 위한 의료제도는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제도 내로 들어올 수 있는 지점에서 이미 시설 중심의 복잡한 절차와 현실성 없는 기준으로 인해 높은 장벽이 존재하고, 쪽방을 비롯한 취약거주민과 노숙인 시설이 없는 지역의 홈리스들에게는 접근성이 떨어진다. 의료급여 대상자가 된다고 하더라도 노숙인 지정의료기관이라는 제한과 요양병원 제외 적용 등으로 인해 이용 가능한 의료기관의 측면에서 일반 의료급여와 차별적인 적용을 받게 된다. 의료급여의 빈자리를 메꿔주고 긴급한 상황에서 작동해야 할 지자체 의료보호는 당사자의 절실함이 무색하게 재정 절감이라는 숫자놀음의 대상이 되고 있다. 노숙인 의료급여의 신분으로 진료를 받으러갈 때 겪게 되는 차별과 질적 문제는 말할 것도 없는 고질적인 문제다. 홈리스를 마치 처리해야 하는, 관리해야 하는 사회문제처럼 바라보는 한, 큰 틀이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조금씩 이러한 차별과 제도적인 허점들을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일이다.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조건인 건강을 보장하는 것이 사회가 구성원에게 지는 책임이고 이는 정치적 의지와 사회구성원 간의 연대를 통해 가능할 수 있다. 1,500명이 넘는 홈리스 당사자들이 직접 서명하고 많은 이들이 애를 써 법제화를 이루어냈듯이 현장에서의 목소리와 지속적인 사례 검토를 통해 제도를 더욱 현실 적합하고 본래 기대했던 방향으로 보완해 나가야 한다.
월간 <복지동향> 2015년 2월호(제1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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