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지 않은 열정이 만든 건강한 운동
변혜진 건강과대안 연구원
인터뷰 및 정리 ㅣ이경민(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보건의료운동의 침체기는 곧 변혜진의 침체기라는 사담이 있다. 그만큼 현재 보건의료운동에 미치는 변혜진 연구원의 영향력이 크다는 말이다.
내가 처음 변혜진 연구원을 본 때는 2014년 8월 마지막 날,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의료민영화 국민설명회였다. 당시 스쳐지나가던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춰세워 경청하게 만들만큼 그녀의 목소리엔 짙은 호소력이 있었다. 그 호소력의 근원은 기술이 아닌 지금까지 그녀가 살아온 삶의 내공이었다.
사람이 기계가 아니기에 지칠 때도 있으련만 변혜진 연구원을 보면 그 말도 예외가 있는 듯하다. 시들지 않는 불꽃같은 에너지를 소유한 사람, 변혜진 연구원. 한때 문학도를 꿈꿨다는 그녀에게 그녀가 직접 경험했던 보건의료운동 이야기를 들어보자.
보건의료운동 활동경력 소개 부탁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97년도에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 인의협)에 입사해 2000년까지 있었고 2001년부터는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이하, 보건의료단체연합)에서 활동하였다. 그리고 현재는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에서 상근연구원으로 있는데 건강과대안은 광우병 사건을 겪으면서 다른 전문가들과의 협업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토대로 만들어진 단체이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의 병설연구소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아이를 출산하지 않았나? 인생관, 운동관의 변화가 있었나?
사람들이 너그러워지고 말이 느려졌다고 한다. 아이의 에너지 덕분이라고 본다. 저녁에 아이랑 보내는 시간이 많은데, 머리가 단순해지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일의 스트레스에서 덜해지는 느낌이랄까? 출산하고 3개월 동안 육아만 했을 때, 편하고 좋았다. 예전에 일을 할 때, 머릿속에서 일을 지울 수 없어 잠을 잘 자지 못했는데 말이다. 숙면을 못하니 수면제를 달고 살았고 수면제 때문에 위장이 안좋아서 위장약도 먹고 우울증도 있고, 건강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아주 좋아졌다.
병원에 앉았는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 어떻게 아이들에게 병원비를 받을 수 있는가? 미국도 이제는 여러 시스템이 도입되어 아이들에게는 병원비를 받지 않는다. 인간성을 되찾는 것이 필요하고 이것이 바로 상식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안전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었는데 안전, 교육, 공동육아 등이 나의 문제로 다가왔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일가정양립의 어려움이 있지 않나?
남편이 적극적으로 육아를 분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문제는 제도에 있는 것 같다. 사실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사람은 대부분이 여성인데, 아이가 애착을 형성하는 그 시기에 남편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출산휴가 또는 육아휴직을 부모가 함께 쓰고, 소득보전도 되어야 한다.
전공은 보건의료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학사 때는 경영학을 공부하고 이후에는 사회학을 공부했다. 웃긴 이야기인데, 문학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매년 신춘문예에 원고를 내고 1월 1일이 되면 잠옷바람에 신문을 사서 내 이름을 찾곤 했다. 매번 좌절을 경험하다 대학원에 가서 교수 추천을 받아야 등단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대학원에 가기로 맘을 먹었다. 그리고 대학원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수소문을 하고 다녔다. 그러다 지인을 통해 의사들이 모여서 꿍짝꿍짝 하는 곳(?)이 있으니 가서 일해보라는 권유를 받고 들어가게 되었는데, 거기가 바로 인의협이었다.
인의협에서는 주로 무슨 활동을 했나?
인의협에 들어갔을 때가 1997년, IMF때였다. 당시 병원에 가지 못한 사람들이 인의협으로 전화를 많이 했다. 그래서 나는 인의협에 의사가 많으니 노숙자, 실직자 등에게 치료를 해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제안을 했었는데, 조직에서는 환자유인알선의 문제 등으로 인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우석균 선생님을 설득해서 결국 서울역 지하에 노숙자 진료소를 만들었는데 거리에 누워있던 분들이 하나둘씩 몰려왔다. 이 사건으로 통해 나를 비롯해서 함께 했던 의사선생님들도 하고자 했던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당시 실직자 진료비 50% 감면 사업도 함께 했는데, 실직자인 것을 증명하는 서류를 가지고 인의협 사무실에 오면 내가 도장을 찍어주고 이 사업에 동참하는 병원을 소개시켜 주는 거였다. 당시 아이를 가진 엄마들이 많이 와서 도장을 받아 갔는데, 당시 많은 사람들이 IMF로 힘들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오죽 삶이 힘들었으면 그 도장을 받으러 왔겠나 싶었다.
이런 사업들을 하면서 보건의료운동에 깊이 빠져들었다. 보람을 많이 느꼈다. 그리고 일정부분 환상이 생기기도 했다. 어둡고 깜깜한 곳에 하얀가운을 입고 진료하는 선생님들을 보니 너무 멋있어 보였다. 요즘도 농성장에 가서 선생님들이 진료하고 사람들은 위로를 받고 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아름다워 보인다. 내 남편(이상윤)도 도움이 필요한 현장에서 진료를 할 때, 너무 사랑스러워 보인다. 의술은 돈에 매이지 않을 때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인의협을 그만두고 보건의료단체연합에서도 활동을 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운동은 무엇인가?
첫 번째는 앞서 언급했던 노숙자 진료소를 시작한 것이다. 이후 노숙자 진료소가 서울시 노숙자 지원센터가 되었고 현재도 운영되고 있다. 두 번째는 의약분업이다. 의약분업은 보건의료단체연합, 참여연대, 경실련, YMCA 등 시민사회단체가 주축이 되어 추진했었다. 의약분업이 되기 전에는 약국에서도 약을 받고 병원에서도 약을 주기도 했는데 리베이트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였다. 문제를 제기하기 전, 조사를 해봤는데 아프지 않은 환자가 병원에 갔더니 병균 13알의 약을 주더라. 지금도 우리나라 약 사용량은 OECD 평균의 3배이다. 이러한 현실을 폭로하면서 의약분업을 추진했다.
당시 의약분업은 꽤나 큰 이슈였고, 의사들이 장기간 파업을 하기도 했는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처음에 의사협회도 쉽게 동의를 하는 듯 했다. 그런데 이후에 의권투쟁본부를 만들어 파업에 들어갔다. 유례없는 3달의 파업이었다. 전화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이 왔는데, 전화를 끊자마자 전화가 왔었고 나중에는 귀가 너덜너덜해지는 것 같았다. 당시 의약분업에 반대하는 항의 전화를 언론사가 취재해 방송 된 적이 있었는데, 당시 항의하는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성희롱을 했다. 기가 막혔다.
현재 김용익 의원과 조홍준 교수님이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이후 의사협회에서 두 사람을 제명시키고 의사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소송을 했다. 그리고 인의협이 인분협이라고 하며 홈페이지에 항의글을 폭탄처럼 쏟아내 인의협 홈페이지를 2번이나 바꾸기도 했다. 이찬진 전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님이 변호를 해주셨고 결국 소송에서 이겨 2,000만 원의 소송비를 받았다. 그 돈을 의미 있게 써보자고 생각하던 차에 광우병 사건이 발생하고 건강과 대안을 만드는데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찬진 위원장님도 당시 엄청난 협박편지를 받았다고 하시더라.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폭언과 협박을 받았다. 당시 의사들이 파업을 할 때, 대구에서는 응급실도 폐쇄했는데 조정래 선생님이 “나는 세상의 끝을 보았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이라크 전쟁 때 했던 활동도 있지 않았나?
이라크 전쟁 당시, 의약품을 들고 1달 동안 이라크를 갔었다. “이라크 어린이에게 폭탄이 아니라 의약품을”이라고 해서 한겨레와 함께 진행하여 6억 원을 모았다. 마취제 없이 아이들이 생살을 자르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많은 돈을 기부해 준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돈이 모여서 2번이나 이라크에 들어 갈 수 있었다.
당시 사람들이 국경없는 의사회도 못들어가는데 이라크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겠냐며 비관적이었다. 어느날 우석균 선생님이 집에 바래다 주면서 이라크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를 종로한바퀴 도는 동안 설명해 보라고 했다. 그래서 선생님을 설득했고, 종로 5가 사거리에서 선생님이 ‘알겠다. 가자’ 고 응답했고 바로 다음날 한겨레 신문 관계자와 미팅을 하고 이후 함께 진행했었다. 한겨레 신문에 전면 광고를 내고 돈을 모았는데, 상상 이상으로 시민들이 움직였는데 정말 감동이었다.
현재는 무언가를 이루는 운동이라기보다 최악을 막는 운동을 하고 있다.
그렇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사회복지시스템이나 안전망을 만드는 시기였다. 그래서 의약분업도 하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하는 일이 가능했다. 그러다 노무현 정부 말기부터 막는 운동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하고 있다. 한미 FTA운동과 같은 경우, 물론 우리가 원하는 데로 결론지어지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국사회가 열과 성의를 다한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자, 시민, 주부 등이 연대하여 운동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데 미국에 맞서 7-8년을 지연시킨 것 아닌가.. 그래서 개인적으로 후회는 없고, 각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이 최선을 다했다고 본다. 이기지는 못했지만 지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처럼 반대운동을 통해 시민들이 교육된다고 보며 그래서 반대운동이 중요하다.

점차 진행되는 의료민영화, 영리화에 대한 생각은?
의료민영화는 많은 아쉬움이 있다. 건강보험을 제외하고 90% 이상이 민간의료기관이고 비급여가 많아지는 등 허술한 부분들이 있는데, 어느새 자본이 침투하여 눈덩이처럼 커져버렸다. 이런 대응을 그동안 안일하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진입했을 때, 공공의료기관 확충을 주장했었는데, 더불어 강하게 추진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며 의료분야가 점차 상업화, 민영화되는 것을 막지 못해 많이 아쉽다.
현재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무슨 연구를 주로하나?
건강과 대안은 3-4년 전부터 의료관광, 과학기술과 건강, 병원인력구조는 어떻게 볼 것인가 등 당장 답은 없지만 꾸준하게 방향정립을 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특히 생명공학분야가 활성화 되어서 개인정보에 대한 문제가 커지고 있고 생체정보가 돈이 되는 상황에 놓였다. 그리고 건강과 대안은 08년부터 의료인 말고 다른 영역의 연구자를 모시고 있는데 운영위원회의 절반이 외부인이다. 인류학, 여성학자, 바이오메디컬. 변리사 등이 주축이 되고 있고, 고박상표 선생님도 주 멤버셨다.
건강과 대안에서 번역 중에 있는 책이 곧 발간 될 예정이다. 그동안의 건강불평등에 대한 연구는 소득이 적고 노동시간이 길고 가난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건강이 악화되고 암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는 것들의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번 연역 중인 책은 기존 데이터만 보여주는 방식의 문제를 제기하며, 건강불평등의 사회계급적인 제반 문제를 거론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의료자본과 맞서야 함을 얘기하고 있다.
기대되는 책인다. 나중에 출판되면 알려달라.
보건의료단체연합에서 활동적인 기획 사업을 하다 현재는 연구일을 주업무로 하고 있는데 어떤가?
연구를 하면 계속 읽고 생각하고 지속할 수 있어서 좋다. 반면 당장 발생하는 일을 보면 대응 할 수 없어 마음이 바빠지기도 하다. 원래 보건의료단체연합의 일은 쉬겠다고 했으나 협동간사의 제안이 있어 지난달부터 일주일에 한 번은 보건의료단체연합으로 출근을 하고 있다.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이 지금은 더 좋다. 의료분야는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전반적으로 함께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학기술이 진보했을 때, 그래서 기계가 의사를 대신하게 되고, 대중들이 원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얼마 전 남편이랑 농담 삼아 한 얘기가 있는데, 만약 기계가 진단하면 과잉진료는 없을 것 같냐며 우스갯소리로 얘기한 적이 있다.
건강과 대안에서 연구를 하면서 공부하고 시민들과 소통하고 싶다. 예전에는 막는 일에 대해 사람들에게 얘기하기 바빴는데 이제는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연구라는 부분이 조건만 된다면 집중하고 싶다.
시민운동을 계속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인의협에서 했던 활동들이 당시에 보람이 있었고 활동을 하는데 큰 힘을 주었다. 의료라는전문영역을 다루다 보면 상대적으로 느끼는 소외감, 공부를 해도 따라갈 수 없는 것들이 있는데 이것으로 고민할 때, 현재 남편이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우석균 선생님이 많은 지지와 응원을 해주셨는데 주변의 좋은 동지들이 있어 가능했던 것 같다.
현재 시민운동을 하는 후배들의 고민은 운동의 지속성 여부이다.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예전에는 뭔가를 생산해 내고 만들어 내는 일을 했다면 현재는 막는 운동이 주를 이루고 있어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는 것 같다. 보건 같은 경우, 전문영역이 명확하다보니 의사나 간호사 등이 아니면 이 일을 하는데 한계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의료시민단체의 구성을 살펴보면, 의료인이 아닌 로지스틱 간사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활동의 방향, 현황 등을 파악하며 컨설팅을 하는 필요한 인력자원인 것이다.
또한 보건의료, 건강권 운동은 삶 전반의 가치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건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도록 삶의 조건을 바꾸게 하는 것, 사회적 시스템을 바꾸는 운동 등을 시도해 보면 좋을 것 같다. 후배들에게 권유하고 싶다.
참여연대와 오랫동안 보건의료운동을 함께 하고 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참여연대에서 보건의료부문의 역할을 더 열심히 하면 좋겠다. 특히 의료제도가 아닌 건강권 운동의 영역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그리고 시민의 힘으로 의료기관이나 공단 등을 감시하는 일이 필요한데 할 수 있는 곳이 참여연대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의약분업 이후, 병원에서는 처방전을 두 장 발급해야 하는 원칙이 있었다. 한 장은 약국에 주고 나머지 한 장은 환자가 가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병원에서 한 장만 주었다. 참여연대 문혜진 선배가 병원을 다니며 처방전을 두 장 발급하지 않은 곳들을 고발했었던 적이 있었는데, 제도를 만들고 이후에 꾸준히 감시하는 것, 이것이 시민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활동계획은 어떻게 되나?
안식년 때 많이 쉬지 못했다. 임신 만삭일 때도 그랬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보니 아이는 돌봄자가 꼭 있어야 하더라. 그래서 출산휴가 때, 머릿속을 비웠고 그렇게 있다 보니 조급증이 없어지며 잘 안되는 일에 있어서도 때를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부분들이 여유가 생긴 것 같다. 그리고 아이가 살아가야 할 안전하고 건강한 세상, 인간관계가 회복되는 세상 등을 생각하게 되었다.
앞으로도 건강과 대안에서 연구를 계속하고, 일주일에 한번은 보건의료단체연합에 나가며 관련된 일을 할 것이다. 현장에서 운동을 하기보다 의료민영화 및 상업화, 유헬스 방식 등의 연구를 많이 할 것 같은데 의료제도보다 건강권과 관련한 것들, 환경과 건강, 젠더와 건강 등 포괄적이고 거시적인 연구 등을 진행하고 글이나 이슈페이퍼 등으로 만들 생각이다.
월간 <복지동향> 2016년 4월호(제2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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