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4 2024-06-01   2990

[편집인의 글] 누가 국가에 충(忠)을 드러내는(顯)가? 공동체에 기여하는 이들을 감추는 사회

김형용 동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흔히들 일자리에 대한 태도를 세 가지로 구분하여 말한다. 호구지책으로 어쩔 수 없이 하는 생업(job), 자신의 전문성과 성공을 인정받고자 노력하는 직업(career), 그리고 사람이 인생을 걸고 추구하는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천직 또는 소명(calling)이다. 대다수의 노동은 타인이 싫어하는 고된 일을 떠맡는 생업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나 개인은 자유주의 시장경제에서 태어난 이상 열심히 취업 준비를 하고 고통스러운 경쟁에서 살아남아 보다 나은 직업에 종사하기를 희망한다. 그런데 직업적 성취를 이룬다 한들 그들의 삶이 성공이라 할 수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에우데모니아적 행복을 ‘탁월성’에 부여한 것과 같이 일이 소명이 되면 그 사람은 인생의 목표 즉 ‘텔로스’에 부합한 삶을 이룬 것으로 보았다. 삶의 의미가 충만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입신양명보다는 공동체 내에서 가치가 인정되고 보람된 행복한 일을 해야 한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또는 개인의 성취를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체 내에서 주어진 나의 소명을 다하는 일이다. 

필수노동자란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일을 수행하는 이들을 말한다. 나와 우리의 생존에 필요한 타인의 노동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오늘날 사회의 기초적인 삶이 유지되는 데 기본적인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핵심 노동자는 농업종사자, 운송배달, 보건의료, 돌봄, 에너지 생산, 공공행정 분야 등에 종사하는 이들이다. 오해가 있을 수는 있지만 금융업, 부동산업, 그리고 게임과 스포츠업과 같은 고소득 분야 종사자는 필수노동자에 속하지 못한다. 그런데 오늘날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는 이들은 공동체의 생존과는 무관하게 자신만의 소득 지위가 높은 ‘직업’을 가진 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이성적 존재로서 인간이 지혜와 지성을 최대한 발휘하는 상태인 탁월성이 개인의 성공을 위해 추구되고 그 방법은 어떤 직업을 갖는지에 한정되어 있다. 오늘날 소위 최대 지성인들이 모두 의대 입시 열풍에 동참하는 이유는 이와 같다. 반면 필수노동자들은 자연스럽게 타인의 의존을 자립으로 바꾸는 일을 하고 이러한 일이 전통처럼 대다수 사람의 일상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수노동자들은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이나 소명 의식을 가지지 못하고 생업에 머문다. 단지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언론과 정부에 의해 주목되었고, 감염 위험으로 모두가 숨어 있는 상황에서도 위험을 무릅쓰는 영웅들로 묘사되어 칭송되었다가, 재난 상황이 지나가자 이들의 필수적 노동은 다시금 감추어져 버렸다. 

복지동향 6월호를 기획하면서 먼저 떠올린 시의적 이벤트는 현충일이다. 현충(顯忠)이란 나라에 충성한 이들을 드러내는 일이다. 국가 그리고 사회공동체에 헌신하지만, 정당한 인정과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들의 존재를 본 지를 통해서라도 드러내고자 하였다. 첫 번째 글을 보내주신 김종진 소장은 필수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정책의 부재를 지적하고 있다. 코로나19라는 급격한 외부 충격에 당시 정부는 대책 마련과 함께 법 제정까지 노력하였지만, 현 정부는 코로나 위기가 지났으니 필수노동자 지원의 근거가 없다는 태도로 돌변한 것이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찾기보다, 안 할 이유를 찾는 모습’인 정부와 달리, 일부 지자체에서는 필수노동자 지원의 모범적 사례를 찾을 수 있었다. 서울시 성동구가 발표한 필수노동자의 사회적 가치와 위험이 반영된 노동조건 개선 정책들을 참고할 만하다. 두 번째 글에서 방혜린 군인권센터 팀장은 당초 필수노동자의 범위에 군인이 해당될 수 있는지를 논하고 있다. 한국은 60여 년의 징병제 역사에서 군인을 국가를 위한 희생적 존재로 규정했기 때문에, 군인은 아직도 스스로 노동자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기본권 침해에도 불구하고 이를 호소할 창구

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군인도 임금근로자로서 자기 인식을 통해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매우 설득력 있다. 세 번째 글은 이상윤 건강과대안 책임연구위원이 보건의료 부문 필수노동자의 처우와 권익 문제를 다루고 있다. 육체적 그리고 정신적 건강을 위협받는 이들에게 보건의료 서비스 이용은 필수적인데, 정작 서비스를 제공하는 보건의료 인력은 낮은 보수, 과중한 업무, 그리고 다양한 위험에 노출되어 건강을 위협받고 있다. 이들이 보람을 가지고 직무에 만족하며 일할 수 있도록 병원의 인력 운영 및 조직문화 개선이 매우 중요함을 언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승윤 교수는 수년간 불안정노동자를 연구해 온 소장 학자로서, 본 지에 청소노동자 사례를 정리해 투고해 주었다. 한국 사회에서 필수노동은 IMF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비핵심 업무’로 간주된 일자리들이 외주화된 간접고용 형태로 확대되어왔다. 그리고 현재 원-하청 구조의 불합리한 관행에서 불안정 근로계약과 혹독한 근로환경 및 처우 문제가 고착화되었다. 이에 이승윤 교수는 청소노동자를 비롯한 간접고용 노동자의 고용안정과 균등한 대우를 보장하는 법과 제도의 정비를 주문하면서 동시에 구체적인 연대와 행동을 요구하였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지만 모든 노동이 동일한 가치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어떤 노동은 더욱더 존중받아야 하며, 더 존중받는 노동은 사회공동체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일이어야 한다. 필수노동자가 일의 성격에 맞게, 소명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월간 <복지동향> 2024년 6월호(제3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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