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4 2024-07-01   4779

[동향2] 한국의 성평등 퇴행에 대한 국제사회의 극심한 우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 제9차 한국심의 NGO대응 후기

오경진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

여성인권에 관한 권리장전, CEDAW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UN Convention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 CEDAW)은 여성인권에 관한 권리장전이라고 불릴 만큼 성평등과 여성 권리를 가장 포괄적으로 담고 있는 유엔의 인권협약이다. 1967년 여성 차별의 문제만을 별도로 다룬 유엔 최초의 문서인 ‘여성차별철폐선언’이 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후로 12년이 지난 1979년에 유엔총회에서 본 협약이 채택되었다. 한국은 1984년 협약을 비준하였으며, 이번 2024년 5월 제88차 위원회 회기에서 제9차 정기 심의를 받았다.

CEDAW와 같은 유엔 인권협약기구는 독립적인 인권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를 갖고 있어 국가로부터 독립성이 보장되고, 대부분 모니터링과 권고 기능만을 가진 다른 유엔인권기구와는 달리 정부에 법적 의무를 부과한다는 특성이 있다. 한국 여성 시민사회는 여성 인권을 위한 법·정책 개선에 관한 정부의 책무를 요구하는 정책 옹호 활동에서 CEDAW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

CEDAW 심의 과정은 사전 세션과 본심의, 후속 이행 조치로 구성된다. CEDAW 위원회는 본심의가 열리기 약 2회기 전 사전 세션 실무그룹(Presessional Working Group)을 구성하여, CEDAW 조항별 핵심적인 질의들로 구성된 쟁점 목록(List of Issues)을 정부에게 보낸다. 2023년 2월 말 진행된 제9차 한국 정부 심의를 위한 사전 세션을 앞두고 여성연합을 비롯한 19개 여성·시민사회단체들은 NGO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단체들은 보고서에서 2022년 5월 취임한 윤석열 정부가 한국 사회에 만연한 구조적 성차별 문제를 부정하고 성차별 문제를 개인의 문제이자 남성과 여성의 싸움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치부하며, 성평등 정책 전담 부처인 ‘여성가족부’ 폐지를 꾸준히 시도해 오고 있는 상황을 지적하였다. 또한 현 정부의 이러한 기조가 지난 30여 년간 한국 여성운동의 끈질긴 투쟁으로 더디게 진전시켜 온 성평등 정책마저 전방위적으로 후퇴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도 전달하였다.

지난 2년간 급속도로 퇴행한 한국 성평등 현실을 알리다.

2024년 5월 CEDAW 위원회 제88차 세션에서 제9차 한국 정부 본심의가 진행되었다. 2023년 2월 열린 사전 세션 이후 약 1년 3개월 만이다. 그동안 한국의 성평등 정책은 더욱더 퇴행하였다. CEDAW 위원회가 이번 심의에서 참고하는 정부보고서는 2022년 5월 위원회에 제출된 것으로, 2018년부터 2022년 3월까지 이전 문재인 정부가 이행한 결과만이 담겨 있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을 비롯한 총 26개 여성·시민사회단체 및 네트워크는 이 정부보고서에는 담겨 있지 않은 성평등 관련 최근 현안을 CEDAW 위원회에 잘 전달하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정부 심의 약 한 달 전 CEDAW 위원회에 제출한 NGO 보고서를 필두로, 정부 심의가 열리는 기간 동안 제네바 현지에서도 다양한 로비활동을 진행하였다. ‘비공식 NGO 브리핑(Public Informal Briefing)’에서의 구두 발언, CEDAW 위원들을 초청하여 한국의 여성인권 현안에 대해 발표하는 ‘NGO-CEDAW 위원 간 비공식 간담회(Private Lunch briefing)’ 개최 등을 통하여 한국의 성평등 정책 퇴행 현실을 알리며, 위원회가 적절한 정보를 기반으로 한국의 성평등 정책 현황을 심의하도록 지원하고 실효적인 권고를 이끌어내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노력하였다.

특히, 단체들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2022년 5월부터 지금까지 약 2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정부보고서에 담겼던 이행 성과는 후퇴되었고 한국 여성의 현실은 더욱 열악해졌다는 점을 위원회에 전달하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여가부 폐지 시도가 여성단체와 시민들의 강력한 반발로 좌절되자, 현재는 후임 장관을 임명하지 않는 등 성평등 정책 전담 부처를 철저히 무력화하고 있는 점,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을 ‘카르텔’로 매도하고 국가권력을 오용하면서까지 시민사회에 대한 감시와 위협의 날을 휘두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여가부 폐지를 철회할 계획이 있나?’라는 위원의 질문에도 정부는 답변을 회피

5월 14일 열린 제9차 한국 정부 본심의에서 CEDAW 위원들은 최근 2년간 한국 정부가 CEDAW 협약, 그리고 지난 제8차 정부 심의 후 권고한 최종견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우려를 표했다.

2022년 말 대선 시기 윤석열 대통령의 안티페미니즘에 기댄 선거전략 및 여가부 폐지 시도로 대표되는 반여성 인권 정책은 몇 년째 국제사회가 매우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한국 대선 과정과 결과를 통틀어 주요 외신들이 가장 주목했던 점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CEDAW 위원들은 대통령이 한국 사회에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고 선언한 사실, 지난 2년간 급격한 성평등 정책 축소와 예산 삭감, 여성 차별 해소 정책이 실종되고 있는 현실을 강하게 지적하였다. 여가부를 폐지할 경우 실질적 성평등 정책 추진에 많은 제약이 따를 것이라는 우려를 전하며, 정부가 여가부 폐지 계획을 철회할 의향이 있는지도 정확히 질문하였다. 여가부 폐지 공약이 2022년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안티페미니즘 정서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아무런 논리와 근거 없이 내세운 공허한 수사였다는 점이 국제사회에 전부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여가부 폐지가 성평등 기능을 축소하는 게 아니라는 모순되고 무성의한 답변으로 일관하였다.

제8차 최종견해에서 긴급 과제로 명시되었던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위원들에 질의에도 한국 정부는 또다시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는 답변만을 반복하였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2007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로부터 지금까지 거의 모든 인권 협약에서 수차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를 받아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정부는 ‘사회적 공감대’만을 운운할 뿐, 그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어갈 책무를 완전히 방기해 왔다.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라는 말은 국제사회에서 한국 정부가 인권 개선을 위한 이행 주체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질문받는 자리에서 늘 면피용 멘트로 등장한다. 한국의 부성주의 원칙을 폐지하고, 협약 16조 1항 (g) 유보를 철회할 계획에 대한 위원의 질문에 대해서도, 자녀의 성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지에 대해 사회 내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고 답변하였다. ‘결혼과 가족 관계에서의 평등’이라는 CEDAW 협약의 기본 원칙조차도 사회적 공감대를 핑계로 이행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형법 297조 강간죄를 동의 여부로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위원들의 지적에 대해서도 법무부는 “비동의강간죄 도입은 피고인에게 사실상 입증책임이 전환되며, 여성의 의지를 폄하하는 것이라 더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답변하였다. 형사 범죄 입증 책임은 검사에게 있고, 강간죄 구성요건이 ‘동의’로 바뀌어도 형사재판의 근본 체계는 변경되지 않는다. 이러한 정부의 무성의한 답변은 동의를 판단하는 성폭력 국내 판례 및 해외 입법례가 다수임에도 동의는 입증하기 어렵다는 편견과 왜곡을 확산하는 무책임한 발언이다.

또한 정부는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임신 중지 비범죄화 이후 안전한 임신 중지를 위한 구체 조치의 도입에 관한 질문에 대하여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은 ‘위헌’ 결정과 다르다고 주장하면서,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처벌 규정에 대한 일부 위헌적 요소를 인정한 것에 불과하고, 낙태죄가 전면 위헌이라거나 폐지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답변하였다. 안전한 임신 중지 보장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을 도입해야 할 책무를 몇 년째 방기하고 있는 정부가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의도적 오독을 내세우는 태도에 현장에서는 탄식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성소수자 권리 보장과 관련해서도 반차별, 교육, 건강, 결혼 및 가족 관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CEDAW 위원들의 질문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원론적인 차원의 정부 정책을 단순히 언급하거나 법제도 개선을 위한 ‘사회적 합의’의 필요성을 반복할 뿐이었다. 한편, 위원회가 국가 성교육 표준안 개정에 관한 지난 권고 이행 여부 및 트랜스젠더 성별 정정의 수술 요건과 비혼여성의 보조생식술 접근성의 제한, 결혼과 가족 관계의 영역에서 동성 배우자의 권리 보장을 위한 법제도 개선에 대해 질문하고, 성소수자 권리 보장에 깊은 관심을 표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CEDAW 위원회, 여가부 강화, 차별금지법 제정, 강간죄 개정, 일본군‘위안부’ 의제를 긴급 과제로 명시해

제9차 정부 심의 후 위원회는 한국의 전반적인 여성 차별 실태 개선을 위한 권고를 담은 최종 견해(concluding observations)를 6월 초 발표하였다. 최종견해는 한국 정부의 여가부 폐지 시도가 여성 발전을 위한 법, 정책 체계의 파편화와 우선순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 여가부 장관 임명 실패, 여가부 관련 예산의 급격한 축소, 여성정책의 퇴행, 그리고 여성 발전을 위한 정책 설계에서 여성단체 참여가 제한적인 점에 대한 우려를 분명히 담고 있다. 또한 여가부 폐지 계획의 철회 및 부처 강화, 차별금지법 제정, 비동의 강간죄 도입, 안전한 임신 중지를 위한 포괄적인 정책 도입과 건강보험 적용,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법적 배상을 포함한 피해자·생존자의 구제 등을 주요 권고로 제시하였다. 특히 이번 최종 견해는 현재 한국 정부가 심각한 여성차별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성평등 정책 전반의 큰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권고 전반에서 상기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위원회는 권고 중 1) 차별금지법 제정, 2) 여가부의 인적·기술적·재정적 자원 대폭 확대 및 직원 역량 강화, 3) 동의 여부로 강간을 정의하도록 형법 개정, 4)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생존자에 대한 완전하고 효과적인 구제 및 배상 등에 대해서는 이행 상황을 2년 이내로 추가 보고할 것을 한국 정부에 요구했다.

정부는 국제기준에 따라 여성인권 정책 방향 대대적으로 전환해야

2022년 5월 현 정부 취임 이후, 한국의 성평등 정책은 심각하게 퇴행했다. 이번 제22대 총선에서도 여성과 성평등 의제는 보이지 않았다. 거대 양당을 비롯한 많은 정당은 ‘국가 위기’인 저출산 대책 공약을 마구잡이로 쏟아내었다. 그러나 ‘저출생’은 한국 사회의 심각한 총체적 위기가 만들어 낸 사회적 결과이다. 이미 사회문화적으로 지체된 전통적 가족제도에 대한 심각한 고민 없이 그 규범 안으로 청년들을 끌어들이려 하지만, 단순한 현금 지원성 정책만으로는 이를 해결할 수 없다. 지난 20여 년간 330조 원이 넘게 쏟아부은 예산의 결과가 합계출산율 0.6명대이다. 이 숫자로 이미 정책의 실효성 없음은 증명되지 않았는가? ‘저출산’이 정말 국가 최대 위기라면, 이는 한국 사회의 핵심 위기 요소 중 하나인 구조적인 젠더 불평등을 해소하고, 성평등한 관점으로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정책을 이행해 나갈 때에야 비로소 ‘위기 극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라도 한국 정부는 성 격차 지수 146개국 중 105위(세계경제포럼, 2023년 기준), OECD 국가 중 27년째 압도적 1위인 성별 임금격차 등 이미 국제적인 통계로 증명된 ‘구조적 성차별’을 인정하고, 여성 인권에 관한 정책 방향을 하루빨리 대대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번 제9차 한국 정부 심의 대응에 참여한 26개 여성·시민사회단체 및 네트워크는 정부가 위원회의 최종 견해 이행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을 조속히 마련할 것을 촉구하는 다양한 활동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펼쳐나갈 계획이다. 그중 하나로 <CEDAW 제9차 한국 정부 심의 대응 NGO 활동 보고 및 이행 방안 토론회>를 오는 7월 11일(목) 오후 2시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개최하여 위원회의 한국 정부 심의 내용 및 최종 견해를 심도 있게 분석하고, 최종 견해의 효과적인 국내 이행을 위한 영역별 과제를 점검할 예정이다.

월간<복지동향> 2024년 07월호(제3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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