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4 2024-09-01   6099

[동향1] 동성 부부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인정 대법원 판결의 의미

류민희ㅣ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2024년 7월 18일 오후,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왔다. 다양한 색의 우산 아래 환한 미소를 띤 이들의 모습은 마치 움직이는 무지개 같았다. 조금 전, 동성 부부도 국민건강보험 제도 하에서 피부양자 자격을 가질 수 있다는 판결이 마침내 대법원에서 선고된 것이다.1)

법정을 나서는 이들의 밝은 웃음과 대법원 유튜브 생중계 채팅창을 가득 메운 무지개 깃발 이모티콘들. 이 모든 것이 한국 사회에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는 분수령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4년 전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이들의 방청 참여조차 어려웠던 시기에 시작된 이 투쟁이 마침내 결실을 본 순간이었다.

이날의 감격과 환희는 수많은 성소수자와 지지하는 이들, 그리고 사회의 변화를 갈망하는 모든 이의 가슴에 깊이 새겨졌다. 공동대리인단의 일원이자 동성혼 법제화를 위한 ‘모두의 결혼’ 캠페인 구성원으로서, 이 역사적인 순간을 되새기며 그동안의 여정과 앞으로의 과제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오랜 투쟁의 결실

이 사건의 시작은 2020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성욱 씨와 김용민 씨 부부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 홈페이지에 동성 부부의 피부양자 등록 가능 여부를 문의했고 ‘사실혼 배우자라면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 자격이 있다’라는 답변을 받았다. 곧 성욱 씨는 어려움 없이 용민 씨의 피부양자로 등록했다. 하지만 8개월이 지난 10월,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갑작스럽게 등록이 취소됐다.

상처받고 분노한 마음을 안고 2021년 봄, 부부는 용기를 내어 건보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부당한 처사에 맞서 시작된 법적 투쟁은 마침내 대법원까지 이어졌고,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이들의 희망과 지지를 안고 진행됐다. 하지만 모든 순간이 평안했던 것은 아니다.

2022년, 1심 서울행정법원은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동성 간 결합’을 현행법상 사실혼으로 인정할 수 없으며, 이성 간 결합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보아 다르게 취급하는 것이 헌법의 평등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2) 이 시기는 당사자들에게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권리를 주장하고 요구하는 것은 용기 있는 행동이지만, 법정에서 자신의 삶과 관계를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그들의 마음을 무겁게 눌렀다. 그리고 결국 그렇게 자신들의 삶을 법적 잣대로 재단 당하고도 인정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깊은 상처를 안겼다.

하지만 판결 이후 대중의 반응에서 희망의 빛을 발견했다. ‘옳지 않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라는 목소리들의 힘을 받아 원고 부부와 대리인단은 항소했다. 결국 2023년 서울고등법원 항소심은 동성 결합 상대방에게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로서 평등의 원칙을 위반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3)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라는 표현으로도 유명한 2심 판결이 분수령이 되었다.

건보공단은 대법원에 상고하였다. 이 사건은 전원합의체에서 다뤄졌다.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 총13명으로 구성된 전원합의체는 사회적 영향이 큰 사건들을 심리한다. 이는 이 사건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지표였다. 상고심이 시작된 지 1년 반 정도가 지난 2024년 7월 18일, 대법원은 마침내 판결을 내렸다.

변화의 순간: 대법원이 말한다.

대법원은 피고 건보공단이 이 사건 처분을 통해 사실상 혼인 관계에 있는 사람 집단과 달리 동성 동반자 집단에 대해서는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두 집단을 달리 취급하고 있는데, 이러한 취급은 합리적 이유 없이 사실상 혼인 관계에 있는 사람과 차별하는 것으로 헌법상 평등 원칙을 위반하여 위법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동성 동반자의 피부양자 지위를 인정하지 않은 처분이 절차적, 실체적으로 위법하다는 2심 판결을 유지하면서, 더 나아가 동성 동반자 관계의 인정과 존중을 강조했다.

“동성 동반자는 단순히 동거하는 관계를 뛰어넘어 부부 공동생활에 준할 정도의 경제적 생활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성 동반자와 마찬가지로 개인의 존엄과 성평등을 바탕으로 동거·부양·협조·정조의무와 애정과 신뢰를 기초로 결합한 동반자 관계이자 일차적 가정공동체 관계에 있다는 점에서 본질상 차이가 없다.”

“피고는 이 사건 처분을 통하여 사실상 혼인 관계에 있는 사람 집단에 대해서는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면서도, 동성 동반자 집단에 대해서는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두 집단을 달리 취급하고 있다. 이러한 취급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을 차별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동성 동반자를 직장가입자와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피부양자에서 배제하는 것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로, 그가 지역가입자로서 입게 되는 보험료 납부로 인한 경제적인 불이익을 차치하고서라도, 함께 생활하고 서로 부양하는 두 사람의 관계가 전통적인 가족 법제가 아닌 기본적인 사회보장제도인 건강보험의 피부양자 제도에서조차도 인정받지 못함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자유, 법 앞에 평등할 권리를 침해하는 차별행위이고, 그 침해의 정도도 중하다.”

그리고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 의견은 새로운 가족 공동체로서 동성 동반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사회와 국가가 이들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추가로 전달했다.

“그 누구의 가정공동체도 타인이나 국가에 의해 폄훼되어도 괜찮은 것은 없다…. 다수의견은 동성 동반자 관계를 건강보험제도 상 피부양자의 보호 범주에 차별 없이 포함시킴으로써 국가의 가정공동체에 대한 보호 의무가 구체적 현실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 등에 관한 헌법 원리에 맞게 구현되도록 하는 것이다.”

“사회구성원으로서 한 개인이 이룬 동반자 관계가 오직 동성 간의 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국가가 운영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인 건강보험제도의 보호에서조차 공식적으로 배제되는 것은, 당사자에게는 사회와 국가의 공인된 보호를 받을 존재 가치를 부정당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인간 그 자신을 이루고 있는 성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따라 스스로 인격을 형성하고 가정공동체를 이루며 그 안에서 삶을 영위할 권리에 대해 감내하기 어려운 중대한 침해가 될 수 있다.”

이 문장들은 앞으로의 변화를 예고하는 힘찬 메시지였다. 그리고 건보공단은 7월 30일, 원고 소성욱 씨를 배우자 김용민 씨의 피부양자, “남편(사실혼)”으로 등록하였다.

희망의 물결: 판결의 의미와 반응

이 판결은 단순히 건강보험 문제를 넘어,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의 존재와 권리를 인정하는 큰 승리였다. 그리고 단순한 법적 승리를 넘어,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판결 직후, 소셜미디어는 축하와 감격의 물결로 넘실거렸다. “한국도 드디어 변하는구나!”, “여기서 살 희망이 생겼다”라는 반응이 폭포수처럼 쏟아졌고, 당일 저녁부터 주말까지 곳곳에서 즉석 축하 모임이 열렸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이 판결에 대한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는 경험이었다. 성소수자 당사자나 그 지인이 아닌 이들조차 ‘무언가가 변하고 있다’라는 기대감에 들뜬 모습이었다. 이는 이번 판결이 단순히 원고 부부, 한 집단의 승리가 아닌, 사회 전체의 진보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앞으로 나아가며

외신들은 ‘한국에서 드물게 일어난, 중요한 승리’라고 하며, 한국이 아시아적 경향을 이제야 따르고 있다고 보았다. 현재 전 세계 39개국에서 동성 간 혼인이 가능하며, 최근에 주요 변화가 있는 지역은 아시아 대륙이다.

대만(2019)과 네팔(2023)에 이어, 2024년 6월 태국이 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동성결혼을 법제화했다. 태국의 혼인 평등법은 동성 부부에게 입양, 재산, 상속 등의 권리를 부여하며, 이는 오랜 활동가들의 노력과 젊은 세대의 지지가 만든 결실이다. 일본은 아직 법제화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동성 파트너십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여러 정당이 동성혼 법제화를 지지하며, 여당인 자민당 내에서도 이를 지지하는 움직임이 있어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지역적 흐름 속에서 한국도 대법원 판결로 한 걸음 나아갔다. 하지만 아직 과제가 남아있다.

건강보험 피부양자 지위와 같은 권리가 인정되지 않았던 것은 한국에서 동성혼이 인정되지 않아 발생하는 법적 효과의 하나였다. 한편, 동성혼 법제화는 단순히 하나의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선언이기도 하다. 동성혼 법제화가 가져올 긍정적 영향은 단순히 법적 권리의 영역을 넘어선다. 연구 결과들은 이러한 제도적 인정이 성소수자들의 정신 건강을 개선하고 자살률을 낮추는 등 실질적인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짐을 보여준다. 법적 인정은 사회적 수용으로 이어지며, 이는 곧 차별과 편견의 감소, 그리고 더 포용적인 사회 문화의 형성으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결문의 한 구절은 이 문제의 본질을 예리하게 짚어냈다. 불인정과 배제는 단순한 권리의 박탈을 넘어, 한 인간의 존재 가치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와 다름없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과제의 깊이를 보여준다. 동성혼 법제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며 우리 사회 전체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정부와 국회는 이 역사적 소명에 응답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이 변화에 기여할 수 있다.

이 일에 대한 확신과 결의는 변한 적이 없지만, 이 모든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가장 큰 선물은 함께하는 사람들의 존재와 그들의 행복한 반응이었다. 마스크 너머로 빛나던 방청객들의 눈빛, 1심에 제출된 2천여 명의 간절한 탄원, 원고 부부에게 전해진 이름 모를 이들의 따뜻한 선물들, 그리고 큰 프로젝터 화면으로 승소를 보도하는 뉴스를 함께 지켜보며 기뻐하던 그 순간들…이 모든 기억이 우리의 투쟁에 의미를 더해주었다. 많은 분이 함께한다면 이런 순간들을 무한대로 만들어 갈 수 있다. 모두의 결혼, 사랑이 이길 때까지.

| 미주 |

1) 대법원 2024. 7. 18. 선고 2023두36800 전원합의체 판결 [보험료부과처분취소]
2) 서울행정법원 2022. 1. 7. 선고 2021구합55456 판결 [보험료부과처분취소]
3) 서울고등법원 2023. 2. 21. 선고 2022누32797 판결 [보험료부과처분취소]

월간<복지동향> 2024년 09월호(제3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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