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5 2025-01-01   14103

[복지톡] 영케어러를 넘어 모두의 돌봄 안전망을 위해

조기현ㅣ돌봄커뮤니티n인분 대표 

인터뷰 및 정리 | 전은경, 장지희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활동가

아픔을 나누고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된 자조 모임이 돌봄 청소년을 돌봄 청년들이 지원하는 프로젝트로 발전했고, 이는 다시 영케어러를 위한 정책적 변화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돌봄청년커뮤니티n인분이 있다. 이 커뮤니티를 이끄는 조기현 대표는 돌봄 과정에서의 어려움과 사회 변화의 필요성을 글로 풀어내는 작가이기도 하다. 영케어러만을 위한 지원 체계 마련이 아니라, 모든 돌봄 당사자를 포괄할 수 있는 공적 돌봄 체계의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조기현 대표를 만나보았다. 

돌봄커뮤니티n인분 대표 조기현 작가가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2024년 12월 16일, 참여연대, 돌봄청년커뮤니티n인분 조기현 대표(사진=참여연대)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글 쓰고, 돌봄청년커뮤니티n인분(이하 n인분)을 운영하고 있는 조기현이라고 합니다. 

현재 대표로 활동하고 계신 돌봄청년커뮤니티n인분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흔히 우리가 밥 먹을 때 n인분 하자고 이야기하듯이, 가족이라는 이유로 과도하게 짊어져 왔던 돌봄의 부담을 n인분으로 나누자는 뜻에서 단체명을 만들었어요. 제가 2019년 <아빠의 아빠가 됐다> 책을 출간한 이후에 연락을 해온 6명의 독자와 함께 자조 모임을 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2021년 7월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지금 n인분은 대표인 저와 사무국장님이 계시고, 많은 비상근 활동가가 멘토 양성 과정을 거친 이후 영영케어(영케어러가 영케어러를 돌봅니다) 활동에 참여하거나 증언대회 등에서 목소리를 내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n인분의 목적은 돌봄 의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또 우리에게 필요한 커뮤니티를 직접 만들어 나가는 것인데요. 영케어러들이 겪는 가장 큰 고통인 고립의 문제를 어떻게 해소하고 서로 연결될 것인가를 고민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에서 단체를 설립했습니다. 누구나 잘 돌보고 누구나 의존할 수 있는 돌봄 안전망을 만들어가는 것이 n인분의 중요한 목표인 것이죠. 2023년 3월경 비영리 임의단체로 등록했는데, 사단법인으로 전환하려고 하고 있고요. 

문재인 정부 시기 청년기본법이 제정되면서 부처마다 청년정책 자문위원회가 생겨났고, 청년정책에 대해 검토하는 자리들이 생겼었는데요. 당시 보건복지부의 민간위원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강도영 사건의 발생과 함께 돌봄 청년을 위한 대책이 물 흐르듯 만들어졌습니다. 이 과정에 자조 모임을 함께하던 영케어러들과 참여하며 모두가 ‘나의 돌봄 경험이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주고, 내가 겪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느끼게 되었죠. 이 활동 이후 영케어러들에게 필요한 프로그램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가자는 생각으로 돌봄과 애도 연습, 돌봄 학교, 영영케어 프로젝트 등의 사업을 진행해 왔습니다. 현재 가장 주력하고 있는 사업은 영영케어 프로젝트이고요.

‘돌봄’의 주체를 생각할 때, 가족을 돌보는 청(소)년, 영케어러의 존재를 떠올리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영케어러의 규모는 얼마 정도 될까요? 그리고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가족돌봄청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영케어러’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정부 조사에 의하면 영케어러의 규모는 10만 명으로 추정되는데요. 다만 이 수치는 전적으로 돌봄을 맡고 있는 경우만 포함된 보수적인 추정치입니다. 참고로 영국, 뉴질랜드, 스위스 등의 선행 연구에서는 돌봄을 담당하는 유소년 인구를 전체 유소년 인구의 5~8% 정도로 추산하고 있어요. 한국의 11~18세 유소년 인구에 단순히 대입해 보아도 18만 4천 명~29만 5천 명의 추정치가 나옵니다.

가족돌봄청년이라는 단어를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 현장의 의견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어요. 실제로 현장에 있는 실무자들은 가족돌봄청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가족을 돌보고 있는 청소년에게 가족돌봄청소년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면, 앞으로도 계속 해당 청소년이 가족 돌봄을 도맡아야 한다는 인식을 강화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있었어요. 가족돌봄청년이라는 명칭은 가족돌봄에 대한 부담을 완화하기보다 오히려 강화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돌봄의 사회화 흐름에 맞지 않는 시대착오적 명칭이라고 생각해서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돌봄청년 멘토 양성과정(영영케어 프로젝트)에 참여한 참여자들이 모여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2024년 1월, 돌봄청년 멘토 양성 과정(영영케어 프로젝트) 1기 모임에서 각자가 생각하는 돌봄에 대한 정의와 돌봄 생애사를 공유하며 멘토링을 위한 준비를 거쳤다.(사진=본인제공)

돌봄청년커뮤니티n인분에서는 영케어러들이 모여 자조 모임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조 모임을 기획하게 된 이유나 계기가 있을까요? 자조 모임의 진행 방식이나 그동안 자조모임을 진행하면서 달라진 점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아버지가 큰 화상을 입고 병원에 들어간 이후 6~7년 동안 아무런 공적 지원도 없이 혼자서 아버지를 돌보는 일을 지속했어요. 그 과정에서 나와 비슷한 사정의 당사자들을 모아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사자를 모으는 일이 쉽지 않더라고요. 돌봄을 당연히 가족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느끼거나, 다 같이 모여 우울한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내 경험을 먼저 솔직하게 터놓고 밝혀보자는 생각으로 <아빠의 아빠가 됐다> 책을 출간했어요. 그리고 이 책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습니다. 

이 당시 모인 6명의 사람과 함께 자조 모임을 꾸렸고, 자신이 겪은 돌봄의 경험과 어려움, 감정 등을 이야기했어요. 처음에는 자조 모임을 통해 친밀감도 쌓고 외로운 감정도 해소하면서 꾸준히 모임을 이어가는 것에 목적을 두었는데요. 점차 영케어러 당사자들이 직접 청소년 영케어러를 찾아가 문제 해결을 도울 필요성을 느끼게 되면서 자조 모임이 지금의 영영케어 프로젝트로 발전하게 되었죠. 그 결과 지금은 11명의 멘토가 양성되었는데요. 본인이 직접 자조 모임을 운영하는 멘토도 있고, 1대1로 밀착해서 영케어러를 돕는 멘토도 있습니다. 다양한 역할 모델의 멘토들을 양성하고, 스스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현재는 자조 모임만 진행하고 있지는 않아요. 자조 모임에서 습득한 스킬을 활용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서로 돌보고 지지하는 과정도 필요하지만, 여기에만 머무르지 말자는 것이 모임의 지향점이에요. 문제해결형 자조 모임의 성격이 짙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돌봄청년 멘토 양성 과정 ‘영영케어(영케어러가 영케어러를 돌봅니다)’도 운영 중이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어떤 과정인지, 이 과정을 기획하게 되신 배경이 궁금해요. 

영케어러들의 공통적인 어려움은 도와주는 사람이 부재하고, 돌봄의 과정을 상의하거나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고립의 양상이 돌봄의 부담을 더욱 가중시킨 것이죠.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줄 사람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건 모두가 가지고 있는 바람이었고요. 그래서 2023년 하반기부터 영영케어 프로젝트 참여자를 모집하기 시작했어요. 예상보다 많은 신청이 들어왔고, 자신의 돌봄 경험 속에서 얻은 지식과 역량을 공유하고 싶어 하는 당사자들이 많았습니다. 자신의 지식과 역량을 파악하는 워크숍을 진행하고, 관계 맺기를 위한 기본적인 상담 스킬이나 복지 혜택들을 공부하는 시간을 가진 후 맞춤형 매칭을 진행했어요. 영영케어는 단순히 수혜자와 제공자의 구도에서 멘토링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간의 돌봄과 학습의 과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관계망을 만들어가는 과정인 것이죠.  

아직도 돌봄은 가족의 역할이자 의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고 느껴지는데요. 사회가 돌봄을 분담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이유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여전히 시설이나 공적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느껴요. 돌봄이 사회적 책임이라고 말은 하지만, 여전히 가족이 돌봄을 해야 한다는 효의 정동이 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돌봄은 분명히 사회적 책임이고, 우리가 시민으로서 그 돌봄에 어떻게 협력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상상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사회서비스원처럼 안정적인 돌봄노동 환경, 돌봄 직무에 대한 전문성을 쌓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돌봄의 질이 높아질 수 있고, 언제든 돌봄 공백을 채워줄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돌봄이 시장화되고 공공성이 약화되면서 돌봄 노동자를 찾지 못해 일을 그만두고 돌봄에 전념하는 사례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어요. 안정적인 시스템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영케어러들은 24시간 집에 매인 채 돌봄 이외에는 아무런 활동도 할 수 없고, 더욱 힘든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공공 돌봄이 필요한 것이죠.

대표님도 20세부터 영케어러로 살아오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돌봄의 역할을 맡으면서 삶의 방향이나 미래 계획에 큰 변화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아버지를 돌보며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20대 전체를 돌봄을 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돌보지 않는 삶을 상상하기가 어려워요. 이전에도 아버지가 없었다면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을 여러 번 받아왔지만, 아픈 아버지가 있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항상 답해왔어요. 과도하게 모든 것을 짊어지지 않고 적당히 내 삶을 유지하면서도 아픈 아버지와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해 왔죠. 

아버지를 돌보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사회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는 거예요. 아버지가 쓰러진 후 공장을 다니면서 사회복지와 사회학 공부를 병행했고, 내가 겪고 있는 일이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일인지, 변화할 수 있는 부분은 없는지, 해외 사례는 어떠한지 등을 고민하고 공부했어요. 2012년에 복지국가에 대한 책이 많이 출간되었는데요. 이때 사회에 대한 관심과 고민이 많아졌고, 내 고통이 나만의 고통이 아니라고 해명하고 싶다는 마음에 계속 공부하면서 목소리를 내왔죠.

2024년 10월 31일, 참여연대에서 열린 돌봄시민 증언대회에서 돌봄청년커뮤니티n인분의 강하라는 영케어러로서 지적장애가 있는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돌봄 경험을 공유했다.(사진=참여연대)

영케어러로서 겪는 어려움 중 사회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개인적으로 아버지를 돌보면서 느꼈던 우리나라 사회복지 시스템의 가장 큰 한계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세요.

신청주의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청소년, 청년의 경우 서비스가 있어도 받지 못하는 경우를 더 많이 봤어요. 분절되어 있는 서비스를 찾아다니다가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많고, 행정복지센터든 복지관이든 구청이든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복지 신청과 상담을 받기 때문에 일을 하거나 학교에 다니는 영케어러들이 찾아가기 어렵죠. 

영케어러는 ‘숨은 인구’라고 이야기되는데요. 존재하지만 찾기 어렵다는 의미에서 쓰이는 말인데, 이런 명명 자체가 무책임하다고 생각해요. 분절적으로 나뉘어있는 서비스들과, 평일 9시부터 6시 사이에 서류를 작성하고 직접 신청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새파란 돌봄>이라는 책에는 돌봄에 대한 슬픔과 고통뿐만 아니라 돌봄을 통해 느낀 기쁨과 보람도 함께 기술되어 있는데요. 영케어러들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느낀 점을 공유해 주세요.

<새파란 돌봄>은 영케어러 7명을 인터뷰해 르포 형식으로 풀어쓴 책인데요. 어느 하나 할 것 없이 모두 강렬한 인터뷰였지만, 돌봄의 경험이 장기화되었을 때 이 경험을 자신의 삶에서 승화하는 방식이나 돌봄을 단순히 불행으로만 바라보기보다 앞으로 살아갈 힘으로 인식하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래서 자신이 겪었던 문제를 또 다른 누군가는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과 그 마음으로 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이야기했어요. 공동체 참여를 통해 자신의 과거와 트라우마를 직접 마주하고, 그것들에 지배당하지 않고 잘 소화해서 앞으로 살아갈 힘을 얻은 분들이 많이 있어요. 

결국, 공동체에 참여한다는 것은 자신이 겪었던 고통이 반복되지 않도록 막는 일이기도 해요. 인터뷰이 중에서도 누군가는 치료사가 되고, 누군가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또 누군가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사회에 참여하기도 하는데요. 그 모든 활동의 중심에는 고통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도우려는 마음이 있고, 저는 그 마음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돌봄에는 예고가 없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는데요. 특히 젊은 층에게는 ‘돌봄’이라는 주제가 막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갑자기 돌봄의 역할을 맡게 되었을 때는 더욱 큰 두려움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갑자기 가족을 돌보게 된 영케어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지금 맞닥뜨린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우선이겠지만, 위기 상황이 해결되면 자기 돌봄에 힘쓰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아픈 사람이 가장 힘들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욕구와 어려움을 묻어두다가 소진되고 무너지는 경우를 정말 많이 봤어요. 돌봄이 끝난 이후 자신이 무엇을 원했고 어떤 것을 하고 싶었는지 잊어버리는 일들도 많고요. 그래서 자기 돌봄도 병행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와 함께, 자기 자신을 관찰하면서 자신이 어느 부분에서 무너지고 무력함을 느끼는지 알아내는 일이 앞으로의 보완책을 마련하고 회복하는 데 있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자신이 돌보는 환자에게도 함부로 하지 않게 되거든요. 무엇보다 혼자 다 짊어지려고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돌봄을 나눌 사람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부탁을 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돌봄의 부담을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없다면 대화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게 필요하고요. 나밖에 없고 내가 이 모든 일을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은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빨리 무너지게 만듭니다. 고립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영영케어 활동을 전국화하고 많은 영케어러들이 활동에 쉽게 접촉할 수 있도록 디지털 플랫폼 구축을 준비하고 있기도 합니다. 전국적으로 서포터즈를 만드는 일에 집중하고 있어요. 지금은 근거리 멘토링이 어려워서 서울에서 광주나 춘천까지 다녀오기도 하는데 정말 힘들거든요. 그래서 전국적으로 서포터즈를 만들고 잘 연결될 수 있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플랫폼을 구상하게 되었어요. 돌봄 안전망의 한 축에는 사회 안전망이 있고 또 다른 한 축에는 문화 안전망이 있다고 보는데요. 문화 안전망을 통해 일상적인 관계망 안에서 취약한 사람들을 돌보고, 낙인감 없이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이 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돌봄시민회의를 진행하려고 기획하고 있는데요. 시민들과 함께 통합돌봄지원법 시행령도 만들어보고, 시민들과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의견을 모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려고 합니다. 특히 돌봄 문제의 경우 전문가들은 현실과 괴리된 이야기를 하고, 당사자들은 넋두리만을 하게 되는 일들이 많은데요. 이 양극단을 넘어서서 접점을 만들고 중간 지대의 언어를 만드는 게 돌봄 운동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저는 당사자들의 넋두리도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넋두리를 하면서 내 경험을 객관적으로 볼 수도 있게 되거든요. 돌봄시민회의를 통해 영케어러들이 자신의 경험을 공적 언어로 발화할 수 있도록 돕고, 당사자들의 이야기가 전문가에게도 전달되어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가족돌봄아동·청소년·청년 지원법’처럼 영케어러에 대한 지원 근거를 담은 법률안들이 발의되었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되었습니다. 22대 국회에서도 유사한 법률안들이 발의되어 있긴 한데요. 현재 논의되는 법률안들의 주목할 만한 점이나 한계 등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지금은 영케어러를 위한 단독법이 필요한 게 맞는지, 혹시 단독법의 제정이 서비스의 분절화만 발생시키는 것이 아닌지 고민이 있습니다. 현장에서도 다양한 의견과 고민이 존재하는데요. 어느 것이 맞는지 아직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예요. 아픈 사람과 돌보는 사람을 함께 돌봐야 하는데 기존 돌봄 체계에서 이것이 가능한지 의문이 들기도 하고요. 영케어러 단독법을 만든다고 가정하면 그 후 영케어러가 아닌 케어러들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도 걱정이 돼요.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논의가 활발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영케어러뿐만 아니라 케어러까지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기 위해 가장 유효한 방법이 무엇인지 의견을 나누고 고민하고 있어요. 결국 영케어러 단독법안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던 가장 큰 원인도 기존의 공적돌봄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는데요. 공적돌봄체계가 완성되어 있었다면 법안을 구상할 때도 훨씬 혼란이 덜했을 거라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지난 8월 보건복지부는 가족 돌봄, 고립⋅은둔 청년 전담 지원 서비스를 위해 청년미래센터를 개소했고, 서울시 역시 2023년 8월부터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과 사후관리를 위해 전국 최초로 전담기구를 만들어 가족돌봄청년 지원사업 WAY를 운영 중인데요. 최근 영케어러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결과라고 보이기도 합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아픈 가족에 대한 돌봄 책임을 전담하고 있는 13~34세 청(소년)과 19~39세의 고립⋅은둔 청년을 전담으로 지원하기 위해 청년미래센터가 개소되었어요. 현재는 인천, 울산, 충북, 전북 4개의 광역시도에 설치되었고, 센터당 14명의 인력이 배치되어 도움이 필요한 청년들을 발굴하고 이들이 안정적으로 자립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밀착 사례 관리를 한다는 것인데요. 그 중 6명이 돌봄코디네이터로 돌봄 청년을 지원하고 1명당 100명의 사례 관리를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1명당 100명의 사례 관리가 가능할지 의구심이 듭니다. 결국 사례 관리 기능은 포기하고 기존의 방식처럼 신청자만을 대상으로 1년간 사업을 진행하다 마무리 짓겠다는 것으로 보여요. 

WAY의 경우 서울시에 거주 중인 9~34세의 돌봄 청년들에게 상황에 맞는 자원을 연결하는 기구인데요. 기존의 복지 신청 방식과는 달리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등 다양한 채널이 구축되어 있고, 여러 채널을 통해 접수된 신청을 원스톱으로 모아 필요한 정보와 정책, 프로그램 등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현재 600명 이상의 영케어러들에게 상담과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알고있어요. 안타깝게도 내년도 예산이 줄었다고 들었는데 올해처럼 사업이 가능할지 우려가 되네요. 지속적으로 잘 운영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영케어러 전담 기구를 만들기 전에 광역에서 돌봄서비스가 잘 조직되고 원스톱 창구가 마련되어 분절적인 서비스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해야 했다고 생각해요. 특히 35세 이상이 된 당사자의 경우 더 이상 영케어러가 아니게 되는데, 10대 이후로 계속 돌봄을 해왔던 당사자들은 대상에서 제외되면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죠. 이미 말씀드렸지만, 공적돌봄체계가 제대로 갖춰졌다면 배제되는 이들이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영케어러 이슈에만 국한해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의 한계는 분명하다고 봅니다.

돌봄커뮤니티n인분에서는 어떤 정책 과제를 제시하고 계신가요? 또한 영케어러들이 겪는 어려움을 실질적으로 해소해 줄 수 있는 방안이나 정책적 노력으로는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n인분에서 합의된 요구사항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개별 당사자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공적인 언어로 전환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 주력하고 있어요. 영케어러 이슈는 영케어러에게 자기 돌봄비를 지급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보편적인 복지와 지원이 없어서 영케어러가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만을 위한 요구안을 만들기보다 개인의 경험을 발화하고, 다양한 경험을 이슈와 결합하는 것에 더 집중하고 있어요. 당사자들이 함께 요구한 것 중 하나를 꼽는다면 ‘가족돌봄청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 NGO들에서는 주로 3개년 계획으로 영케어러를 위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대부분의 사업이 곧 마무리 단계에 있어서, 영케어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그저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공적돌봄체계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영케어러 전문기구가 광역에 있으면 행정복지센터만이 유일한 복지 신청 통로인 지금보다 훨씬 많은 영케어러들이 찾아가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WAY가 잘될 수 있었던 건 24시간 열려있는 인스타그램 DM, 오픈채팅방, 챗봇, 문자 등 채널의 다각화 덕분이었다고 생각해요. 기존에 구청이나 행정복지센터에서 할 수 없었던 부분들을 한 거죠. 특히 서울시의 경우에는 서울시복지재단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10년 이상의 경력과 전문성을 가진 노동자들이 있어서 이런 사업도 가능했다고 봐요.

<새파란 돌봄>이라는 책에서 제안하기도 했지만, 활동 지원이나 장기 요양 서비스 대상자를 심사할 때 사회복지사가 자택을 방문하는데요. 이때 주 돌봄자의 니즈와 어려움, 고립 정도도 함께 파악하는 것이 필요해요. 다시 말하면 돌봄이 필요한 당사자를 조사할 때 주 돌봄자에 대한 조사도 함께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는 거죠. 지금 운영되고 있는 일상돌봄서비스가 한국에서는 최초로 돌봄자를 국가가 지원하는 제도인데, 일상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한 복지관에서는 영케어러 담당자와 노인 돌봄 담당자가 함께 가정 방문을 한다고 해요. 돌봄자에 대한 지원 제도가 있다 보니 돌봄 당사자와 돌봄 제공자의 필요를 함께 조사할 수 있게 된 거죠. 통합 돌봄을 향한 긍정적 변화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영케어러들은 기본적으로 시간 빈곤을 경험하고 있고, 복지관이나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요. 시간 빈곤의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존중해 영케어러들을 만나고 다가가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복지동향 구독자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영케어러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다만, 영케어러가 가장 안타깝기 때문에 관심이 필요한 존재라는 게 아니라, 영케어러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던 오늘날의 사회복지 문제와 환경을 근본적으로 돌아봐야 한다는 점에 공감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사회복지의 큰 틀 안에서 영케어러까지 함께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월간<복지동향> 2025년 01월호(제3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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