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5 2025-02-01   10877

[기획3] 건강이 인간의 기본권이라는 인식에서 탄생한, 이탈리아 국영의료

문정주 | 가정의학과 전문의, 전 서울의대 겸임교수

2014년까지 십 년간 나는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에서 우리나라 공공병원을 평가하고 지원하는 일을 맡았다. 공공의료를 강화한다는 목표는 뜻깊었지만, 실제로는 도달할 수 없는 먼 곳을 바라보며 안간힘을 쓰는 일이었다. 의료 현실의 무게에 비추면 매우 미약한 일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의료는 시장에서 마치 상품을 사고팔듯 거래된다. 수익 논리가 의료 현장을 지배하고 공공성은 대수롭지 않은 듯 여겨진다. 정부가 관리하는 국민건강보험이 있다고 해도 환자가 이용한 의료비 일부를 내주는 데 머무를 뿐 이윤을 추구하는 병원들을 통제하지 못한다. 시장에서 승자는 전체 의료기관의 95%를 차지하는 사립병원이다. 이 병원들은 건강보험 수가가 너무 낮다고 불평하면서도 매출을 올리고 번성한다. 반면에 전체의 겨우 5%인 공공병원은 사방에서 손가락질을 받는다. 진료가 부실하다고,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다고 타박을 받는다. 정부의 공공의료 정책은 그저 현 상태를 유지하는 선에서 멈춘다. 공공성을 외면하고 수익 논리에 압도된, 이와 같은 의료제도가 과연 지속 가능할까.

“우리나라 공공의료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상상력이다.” 십 년간 문득문득 떠오르던 생각이다. 위축될 대로 위축된 공공의료가 얼마 안 되는 예산 지원으로 해결될 리 없었다. 그보다는 무엇을 바랄지, 어떤 변화가 필요할지, 꿈꾸고 상상하는 것이 먼저일 성싶었다. 그래서 직장을 벗어나게 되었을 때 그동안 관심 있게 보았던 이탈리아 국영의료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좌파와 우파가 손잡아 이룬 국영의료

서유럽에서 의료제도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독일을 비롯해 7개 나라가 채택한 사회보험 방식으로, 지역 또는 직종별 의료보험 조합(질병 금고)이 보험료를 거두어 의료체계를 관리하는 제도다. 둘째는 영국을 비롯해 10개 나라가 시행하는 국영의료로, 세금으로 국가가 직접 의료를 운영하는 제도다. 두 제도는 의료 운영의 주체가 조합이냐 국가냐로 나뉘지만, 누구나 의료를 이용할 수 있게 사회가 보장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이탈리아는 국영의료를 1978년에 도입했다. 헌법에 건강을 인간의 기본권으로 보호한다는 조항이 마련된 것은 일찍이 1948년이었다. 그러나 우파가 장기 집권하면서 후속 법률을 제정하지 않아 그 헌법 조항은 있으나 마나 했다. 변화는 20년이 지난 1968년에 시작되었다.

68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서유럽을 휩쓴 이 혁명은 이탈리아에도 격렬한 변화를 일으켰다. 아버지(Padre), 신부(Prete), 정당(Partito), 주인(Padrone)으로 상징되는 기존의 권위를 학생과 노동자가 강력히 비판했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위대의 함성 앞에서 전통적인 관습은 무너졌고 가톨릭교회와 장기 집권당인 기독교민주당(기민당)이 예전의 지배력을 잃었다.

기민당에 대립하는 최대 야당이 공산당이었다. 집권당이 되지는 못했어도 이탈리아반도의 중부와 북부에서 꾸준한 지지를 받아 제2당의 지위를 지켰다. 이 당 또한 시대적인 변화 한가운데에 있었다. 공산권의 맹주인 소련과 거리를 두게 된 것이다. 1968년에 소련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한 뒤로 독자적인 길을 모색했고, 1970년대에 들어서는 프랑스, 스페인 공산당과 공동으로 유로 코뮤니즘, 즉 서유럽형 공산주의를 공식화했다. 무신론 대신에 종교의 자유를 수용하며, 공산당이 권력을 독점하는 일당제 대신에 다당제를, 폭력혁명 대신에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하는 이념적 전환이었다. 이와 같은 변화와 함께 공산당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높아졌다. 1976년 총선에서는 공산당 의석이 집권 기민당과 거의 비슷할 정도로 늘어, 우파 중심의 정치 질서에 큰 충격을 가했다. 더욱이 당시는 중동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원윳값이 3배로 뛰면서 오일쇼크가 일어나 경제위기가 시작된 터였다.

이때 파격적으로 공산당이 기민당에 연정을 제안했다. 격변의 시기에 적극적으로 국정 안정에 기여해야 파시즘과 같은 전체주의의 발흥을 막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연정은 위기를 타개할 획기적인 방안이었으므로 기민당도 이를 받아들였다. 오랜 세월을 대립하던 양쪽 진영이 손을 맞잡은, 이른바 ‘역사적 타협’이었다. 타협과 연정이 유지되었던 삼사 년 동안, 결실로 이룬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국영의료다.

1977년 6월 28일, 공산당 대표 엔리코 베를링구에르(왼쪽)와 기민당 대표 알도 모로(오른쪽)가 두 당 사이에 ‘역사적 타협’을 성사시키고 손을 맞잡았다. 이로부터 1년 6개월 뒤에 국영의료법이 의회를 통과했다.(제공=문정주)

당시 이탈리아의 의료보장은 차별적이고 불평등했다. 인구 절반이 국립 기금(의료보험 조합)에, 나머지 절반은 200개가 넘는 사립 기금에 나뉘어 가입했다. 직업이 무언지, 직장이 튼튼한지 아니면 영세한지에 따라 보장의 내용과 범위가 천차만별이었다. 직장이 없고 돈이 없어 아무 데도 가입하지 못한 사람도 인구 중 7%나 되었다. 시민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었다. 기민당과 공산당은 신속히 의료보장 개혁에 나섰고 진통 끝에 1978년 12월, 「국영의료법」을 제정했다. 법의 첫 장 첫 절이 이렇다.

”공화국이 국영의료를 통해 건강을 개인의 기본권이자 집단 공동의 관심사로 보호한다.“

이어서 국영의료를 정의한다.

”국영의료는 개인적 특성이나 사회적 조건을 구별하지 않고 인구 전체에게, 평등을 보장하는 방법으로,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증진하고 유지하며 회복하게 하는 모든 기능·시설·서비스·활동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나라에는 헌법, 의료법, 보건의료기본법, 공공보건의료법, 국민건강보험법 어디에도 건강을 인간의 기본권이라 하는 대목이 없다. 이처럼 법률적 출발부터 우리와 다른, 이탈리아의 국영의료를 소개한다.

주 정부에 권한과 책임이

이탈리아 국영의료는 주별 자치로 운영된다. 중앙정부의 역할은 국영의료의 목표, 원칙, 필수 서비스의 범위를 정하고 국가 보건의료계획을 세우며 세금을 배분하는 데에 그친다. 그 외 의료체계 운영을 위한 모든 실무 책임과 권한은 20개 주 정부에 있다.

주 정부는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국영의료를 운영한다. 첫째, 주 면적을 몇 개의 권역으로 나누고 권역별로 의료본부(Azienda Sanitaria Locale, 이하 ASL)를 둔다. ASL은 사업기관으로서 질병 예방 등 공중보건사업을 시행하고 일차의료, 동네 외래진료센터, 직영병원 등을 관리해 시민에게 의료를 제공한다. ASL에 필요한 재정은 주 정부가 인구를 기준으로 배분한다. 둘째, 주별 지역보건의료계획을 3년마다 세운다. 국가 계획의 틀 안에서 주 정부의 목표와 전략을 정하는 것으로, 중앙정부의 검토를 거쳐 확정한다.

20개 주의 평균 넓이가 우리나라 강원도 면적과 비슷하고 평균 인구는 300만 명으로 경상남도 인구와 비슷하다. 주별로 평균 7개의 ASL을 두며, 연간 평균 56억 유로(약 8조 원)를 국영의료에 쓴다. 중앙정부의 지침에 따라 주별 국영의료 예산의 5%를 공중보건사업에, 50%를 일차의료 등 동네의료에, 45%를 병원의료에 배분한다.

주 정부의 성향과 형편에 따라 국영의료 운영에 차이가 있다. 대개는 집권당이 좌파인 주에서 국영의료에 예산 투입이 활발하고 의사를 비롯한 인력을 충실히 확보한다. 대표적인 곳으로 에밀리아로마냐주, 토스카나주를 들 수 있다. 반면에 우파가 집권당인 주는 국영의료에 다소 소극적이며 의료 민영화를 꾀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곳이 롬바르디아주다. 한편으로 남부와 북부 간에 격차도 상당해서, 캄파냐주에서 시칠리아주에 이르는 남부는 북부에 견주어 사회경제적으로 낙후해 의료에 예산 투입도 부족하다.

우리에게 이탈리아 국영의료의 운영체계는 의료에 대한 지방분권을 보여준다.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익숙해진 현실을 다시 돌아볼 기회를 준다.

누구에게나 가정의가 있다

1978년 국영의료가 도입되면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가 일차의료(primary care)에 있다. 이전에 가정의(medico do famiglia, 영어로 family doctor)를 고용하는 사람은 일부 부유층뿐이었다. 그들은 전속 의사를 집에 두고 마음껏 의료를 이용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은 조합이 지정한 의사에게서 진료받아야 했다. 가난해서 의료보험에 가입하지도 못했을 때는 그조차도 불가능했다. 그러나 국영의료가 도입된 뒤 사람들은 누구나 ASL을 통해 자기 가정의를 선택하고 일차의료를 받을 권리를 누리게 되었다.

왕진 온 가정의는 진찰과 상담을 마치고 약을 처방해 준다.(제공=문정주)

일차의료는 동네에서 가정의가 환자와 등록 관계를 맺고 질병 예방, 진료와 상담, 왕진 등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몸이 아플 때 사람들은 맨 먼저 가정의를 찾는다. 감기 기운이 있어서, 허리가 아파서, 가슴이 아파서 진료실을 찾아가 진찰받고 검사나 약을 처방받는다. 고혈압, 심장병, 당뇨병 등 만성질환을 앓는 환자는 정기적으로 진료실에 간다. 진찰과 처방을 받을 뿐 아니라 자신의 건강 상태를 이야기하고, 질병에 관해 설명 듣고, 건강관리 방법을 상의하며 짧게는 10분에서 길게는 40분씩 상담한다. 때로는 왕진도 청한다. 아파서 이동할 수 없을 때 왕진을 받을 수 있다. 만약 암과 같은 중증질환으로 병원에서 치료받고 퇴원했을 때는 가정의가 일정 기간 정기적으로 왕진한다. 왕진을 포함해서 가정의가 해주는 모든 것이 무료다.

가정의는 환자에 관한 보고서를 받아본다. 진단검사 결과 보고서, 환자를 의뢰받은 전문의가 보내주는 진료 보고서, 환자가 이용한 응급실의 응급진료 보고서, 환자가 입원했던 병원의 퇴원 보고서를 모두 받아 본다. 보고서의 내용을 환자의 진료와 상담에 반영한다.

병원 의사가 가정의에게 보내는 환자의 퇴원 보고서(제공=문정주)

가정의를 언제든 바꿀 수 있으나 사람들은 대개 한 번 정한 관계를 유지한다. 오랜 시간을 거쳐 의사는 환자의 가족, 직업, 주거 환경 등을 파악하고 환자를 이해하게 된다. 환자 또한 의사를 신뢰하게 된다. 

이탈리아의 전체 의사 중 약 30%가 일차의료를 담당한다.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3년간 주 정부가 정한 일차의료 수련을 마치면 가정의로서 자격을 획득한다. 가정의는 우리나라의 개업 의사처럼 자영업자이며, 국영의료와는 고용이 아닌 협약 관계에 있다. 국영의료가 가정의에게 지급하는 보수는 등록 인원당 금액을 받는 인두제(capitation)에 따른다.

일차의료는 시민의 건강 보호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며 국영의료제도의 기반이다. 고령층 인구가 늘면서 만성질환 환자가 많아져 일차의료가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아직 ‘일차의료가 없다.’ 일부 언론 등에서 1차 진료라는 말을 쓰기도 하지만, 거기서 1차는 조그만 의료기관을 이용한다는 의미일 뿐으로, 이탈리아 국영의료에서 보는 일차의료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에게도 일차의료가 필요하다. 주치의 등록제가 그 출발점이 되리라 기대한다.

동네에서 폭넓게 의료를 이용할 수 있어

시민이 생활 반경 안에서 이용하는 의료를 이탈리아에서는 ‘동네의료’라 한다. 가정의의 일차의료 진료실, 전문의 진료실, 진단검사실, 가정 돌봄, 장기 요양시설 등이 동네의료를 구성한다.

동네에 있는 의료시설 중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외래진료센터’다. 우리나라에서 보는 개인 의원, 큰 병원, 보건소 중 어디에도 들어맞지 않는 까닭이다. 겉모양만 보면 큰 병원의 외래진료 공간을 뚝 떼어내온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 센터는 ASL이 설치한 공공시설이다. 공공 ‘병원’만 보아왔던 우리에게는 생소한, 공공 외래진료센터다.

이 센터의 주요 기능은 동네 주민을 위한 전문 과목별 진료와 진단검사다. 가정의가 환자를 전문의에게 의뢰한 경우, 환자가 여기서 전문의를 만난다. 심장내과, 내분비내과, 산부인과, 안과, 피부과,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등 과목별 전문의가 센터로 온다. 전문의는 자영업자이며 ASL과 협약 관계에 있다. 전문의가 받는 보수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시간당 정액’으로 지급된다. 이에 따라 의사는 환자에게 넉넉한 시간을 들여 진료하고 상담한다. 환자는 전문의 진료를 예약할 때 본인부담금을 내야 한다. ASL이 발행한 ‘티켓’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내는데 상한선이 36유로(약 5만 원)이다. 전문의 진료뿐 아니라 혈액검사, 영상의학적 검사 등 진단검사를 받을 때도 같은 식으로 돈을 내며, 어떤 진료나 검사에도 액수가 상한선을 넘지 않는다.

동네는 의료와 복지가 연결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예가 중증 환자를 위한 ‘통합 가정 돌봄’이다. 가정의가 환자를 위해 ASL에 이 돌봄을 요청하고 ASL이 기초 자치단체와 협력해 팀을 짜서 제공한다. 가정의의 왕진, 간호사의 방문간호, 요양보호사의 배뇨배변 및 활동 보조, 물리치료사의 운동치료, 언어치료사의 언어재활, 사회복지사의 주거 관리지원, 복지단체의 음식 공급 등이 포함된다. 국영의료의 필수 서비스로서 무료다.

노인을 요양원으로 모시기도 한다. 대개 동네 어귀에 요양원이 있어 가족들이 마실 가듯 드나든다. 우리나라에서 요양원이 집에서 먼 곳에, 주택가와 떨어진 곳에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공공병원 네트워크로 환자가 어디에 있든지 치료해

이탈리아에서 병원은 곧 공공병원을 뜻한다. 사립병원이 있기는 해도 규모가 작고 재활이나 노인 요양을 할 뿐이다. 따라서 응급실과 중환자실과 수술실을 갖추고 중증 환자까지 입원시켜 진단하고 치료하는 병원은 거의 모두 공공병원으로, 전체 병상의 80%를 차지한다. 그런데 이탈리아 공공병원의 내부를 짚어가 보면 병원에 관한 우리의 상식이 산산이 부서진다.

첫째, 각 병원은 네트워크의 구성원이며 개별 기관이 아니다. 조그만 분원급 병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수백 병상 규모의 대형 첨단병원도 마찬가지다. 어떤 공공병원이든 네트워크 안에서 다른 구성원과 연결되고 기능을 분담한다.

둘째, 의료진을 포함해 병원의 인력, 조직, 재정, 시설 등 전부가 네트워크 공동의 것이다. 이에 따라 특정 의사는 특정 병원에 소속되는 대신에 네트워크 어디에든 환자의 필요에 따라 이동하며 진료한다.

셋째, 병원이 돈을 벌지 않는다. 진료비 수납 업무가 아예 없고, 우리처럼 건강보험에 청구하는 일도 없다. 대신에 주 정부가 ASL에 연간 예산을 배정해 병원 네트워크를 운영하게 한다.

예를 들어보자. 에밀리아로마냐주에서 볼로냐 ASL은 권역 인구 87만 명을 담당하고 9개 직영병원으로 네트워크를 구성하며 병상은 모두 1,500개이다. ASL에 소속된 의사가 1,300명이고 대부분 전문의로서 자기 분야에 따라 응급부, 외과부, 내과부, 엄마와 아기부, 지원부, 종양부의 지휘를 받는다. 의사는 네트워크의 병원 중에 어디든, 자기 분야의 환자가 입원한 데서, 담당하는 수술이 예정된 데서 일하는 것이다. ASL의 대표가 병원 네트워크의 책임자로서 간호, 의료 기술, 행정 인력을 9개 병원에 배치한다. 주 정부가 배정한 연간 예산에서 의사를 포함한 직원 인건비 등 비용 전부가 지출된다.

상상해 본다. 뛰어난 실력을 지닌 외과 전문의가 어느 병원에든 달려가거나 날아가서 위급한 환자를 수술해 살려내는 모습을. 산간벽지에 입원한 환자가 의료진 간 연결에 힘입어 중심부 병원으로 이송돼 첨단 치료를 받는 모습을. 연간 예산이 지급되므로 병원 직원들이 경영 적자나 임금체불의 불안 없이 안정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민주적 정신의학을 실현하다

이탈리아 의료제도에서 다른 나라와 크게 다른 모습을 보이는 분야가 정신 의료다. 우선 정신병원이 없다. 종합병원에 소규모 정신병동이 있을 뿐이며, 정신병원이 없는 대신 동네마다 정신건강센터가 있다. 이곳에 누구라도 언제든 찾아가 상담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와 같은 의료체계의 배경에는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도 조기에 진료받고 적절하게 관리하면 동네에서 이웃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철학이 있다.

이탈리아 정신 의료 개혁의 주인공이 프랑코 바살리아(1924~1980)다.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반파시스트 운동에 참여했던 그는 1944년에 감옥에 갇혀 공포와 고통, 빈대, 오물, 질병을 경험해야 했다. 전쟁이 끝난 뒤 정신과 의사가 되어 1961년부터 정신병원 원장으로 일하게 되면서는 병원이 감옥인 것을 알게 되었다. 높은 담에는 창살이 있고 사방에 자물통이 채워져 있고, 환자들은 모든 것을 빼앗기고 세상과 단절되어 울부짖었다. 감정에 북받친 환자가 난폭해지면 침대에 묶이거나 전기쇼크를 당했다. 한 번 입원한 환자는 오래도록 퇴원하지 못했다.

바살리아는 환자가 존엄을 되찾고 자유를 돌려받는 데서 치료가 시작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신체적 학대를 중단하고 간호사와 직원을 재교육했다. 의사들도 평상복 차림으로 환자와 대화했다. 병동 문과 대문을 모두 열어 누구나 드나들 수 있게 하며, 환자와 직원이 모두 참석하는 회의를 열어 주요 사항을 결정하고 협동조합도 설립했다. 환자들의 변화는 경이로웠다. 스스로 참여하고 발언하며 존엄을 회복해 갔다. 1968년에 바살리아가 낸 책 『시설을 거부하다』는 권력구조 전반에 대한 저항으로 읽히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개혁의 목표는 환자가 병원을 떠나 동네에서 사는 것이었다. 1970년대에 들어 바살리아는 병원 바깥 동네에 정신건강센터를 세우고 주택을 확보해 환자를 몇 명씩 퇴원하게 했다. 몇 년에 걸쳐 그 병원, 트리에스테시 산조반니 병원의 모든 환자가 퇴원하고 동네 주민으로 살게 하는 데 성공했다.

1975년 9월 16일, 바살리아는 “저항하는 100명의 항공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정신질환자들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트리에스테 상공을 돌아 착륙하는 행사를 벌였다. (제공=문정주)

1973년에는 동료들과 함께 ‘민주적 정신의학’이라는 그룹을 결성했다. 자유, 독립, 존중 등에 기초한 의료 개혁을 추구하며 정신보건법 개정 운동을 이끄는 그룹이었다. 운동은 전국으로 퍼져 나가며 뜨거운 호응을 받았고 정치인들을 움직여, 1978년에 마침내 법이 개정되었다. 개정된 법에 따라 정신병원 설립과 운영이 금지되고 정신질환자가 시민권을 회복하게 되었다.

이제 ‘민주적 정신의학’은 이탈리아 정신 의료 전반을 가리키는 별칭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이탈리아 국영의료는 이를 제도적으로 수용하면서 인권을 존중하고 약자와 연대하는 성격을 더욱 분명히 갖게 되었다.

롬바르디아주의 비극이 보여준 것은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되던 2020년 2월, 이탈리아의 롬바르디아주에서 대규모로 감염이 퍼지고 사망 환자가 늘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베르가모라는 도시에서는 장례식장과 화장장이 부족해, 군대 병력과 트럭을 동원해 다른 도시로 시신을 이송해야 할 지경이라고 했다.

기막힌 일이었다. 이탈리아의 공중보건체계와 국영의료가 코로나19 유행을 막지 못했다. 게다가 충격적인 것은 그 유행이 롬바르디아주에 집중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이 주는 세계적인 패션 도시인 밀라노를 수도로 하여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유하며 산업이 발달한 곳이다. 첨단 의료도 최고 수준이어서 전국에서 암 환자, 심장병 환자, 척추 환자가 밀라노의 대형 병원에서 수술받고 치료받기 위해 먼 길을 오고 간다.

그러나 팬데믹으로 드러난 것은 롬바르디아주의 실망스러운 모습이었다. 그해 상반기 대유행에 전국 환자의 40%, 전국 사망자의 50%가 이 주에서 발생했다. 이 비극 앞에서 롬바르디아주 정부는 감염 확산을 통제하지 못하고, 환자 치료도 제대로 못 한 채 우왕좌왕하기만 했다.

이와 같은 현실의 배경에는 극우 정당의 정책이 있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집권해 온 극우 정당이 국영의료를 위축시키고 경쟁적인 시장 의료체계를 추구해 온 것이다. 일차의료 무력화, ASL의 기능 축소, 사립 대형 병원 유치에 앞장서면서 국영의료의 제도적 기반을 허물었다. 동시에 주 정부가 의료체계를 관리할 수단과 능력은 잃었다.

롬바르디아주의 비극은 사람들에게 국영의료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특히 일차의료의 중요성, 그리고 주 정부의 의료 통제 기능의 중요성을 확인하게 했다. 이에 따라 2021년 이후 이탈리아는 전국적으로 국영의료를 강화하며 특히 일차의료를 보강하는 정책을 세웠다. 롬바르디아주도 이 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의료는 롬바르디아주보다 더한 시장 체계다. 정부가 책임을 회피해 온 지 수십 년, 사립병원이 지배하는 시장이 거의 전적으로 의료를 주도한다. 시장의 목적은 수익에 있고 환자의 건강은 뒷전이다. 롬바르디아주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비극이 앞으로도 우리를 비켜 가기를 바랄 뿐이다.

의료가 공공의료인 나라

이탈리아를 비롯해 서구에는 공공의료라는 말이 없다. 사회보험제도나 국영의료제도가 국민을 위해 의료를 관리하고 보장해, ‘의료’가 그대로 공공의료에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어로 헬스케어(Healthcare)가 의료이자 곧 공공의료를 뜻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의료와 별개로 공공의료라는 말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나라 현실에서 의료라는 말만으로는 공공성의 의미를 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국영의료는 건강이 인간의 기본권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런 만큼, 이 제도는 우리에게 유용한 재료가 될 수 있다. 의료가 곧 공공의료인 나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와 끈기를 얻을 재료다. 나아가다가 길이 막힐 때 상상력을 키울 재료다.

월간 <복지동향> 2025년 2월호(제3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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