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5 2025-04-01   8053

[동향2] “일하다 아픈 여자들”이 없는 세상을 같이 만들고 싶습니다

조건희 ㅣ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일터에서 젠더 관점? 굳이?”

여성, 성소수자, 젠더를 강조하는 글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반응이다. 산업재해를 겪었던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일하다 아픈 여자들》1이 발간되었을 때도 비슷했다. “왜 여기서까지(?) 여성을 이야기하냐?”, “일하다 아프거나 죽는 숫자는 남자들이 훨씬 많다.”, “우리 일터에서는 여성들이 문제 상황을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있는데, 너무 과하게 얘기하는 거 아니냐.”라는 등의 물음들을 여러 번 마주했다.

감사하게도《일하다 아픈 여자들》북 콘서트나 강연 등을 통해 여러 노동조합, 단체들과 함께 만날 수 있었다. 현장 여성 노동자들이 본인의 노동, 아픔의 경험을 꺼내고 나눌 수 있었던 소중한 자리였다. 이 과정에서 “젠더 관점 좋고 필요한 건 알겠는데, 우리 일터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라는 반응도 마주했다. 구호를 넘어 현장의 구체적인 요구안으로 만들어낼 때 어떻게 할지 어렵다는 점에서 나온 고민이었다. 현장에서 여성 노동자의 산재를 어떻게 더 구체적으로 바라보아야 할지, 어떤 변화를 만들어야 할지 등은 책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문제를 드러내고, 싸우며 변화를 끌어내는 데 이 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현장을 다니면서 더욱 커졌다.

산업재해를 매개로 여성 노동자 건강권 바라보기

“이윤보다 노동자의 몸과 삶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이하 한노보연)는 자본축적 그 자체만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의 이윤 중심 경영으로부터 안전과 건강이 뒷전으로 밀린 결과가 산업재해라는 문제의식을 느끼고 활동하고 있다. 산업재해를 유발한 일터의 여러 ‘위험’들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으며, 구체적 개선 방안은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와 힘으로부터 기반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건강권 운동을 하고 있다.

한편 ‘위험’이 노동자의 몸과 마음에 작동한 결과로 발생한 질병이나 사고, 사망 등에 대해 국가는 공적 보험의 형태로 보상하고 있다. 하지만 산재 보상을 받는 건 모두에게 어렵다. 가사 노동자 등 적용조차 되지 않는 직업들이 많다. 여성들은, 소수자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안정한 일자리로 많이 내몰려왔다. 산재 신청과 처리 절차는 여전히 복잡하다. 특히 직업성 암 등 업무 연관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노동자는 아픈 몸을 이끌고, 내 아픔이나 고통이 일 때문이라는 걸 증명해야 한다. 어렵게 인정되어도 잘 치료받고 원래 직장으로 복귀하기에는 여러 장벽이 작동하고 있다.

《일하다 아픈 여자들》은 산업재해를 매개로 여성 노동자의 건강 표이다. 노동자의 건강이 그동안 누구의 관점에서 해석되었는지 질문하는 것은 위험을 젠더 관점에서 정의할 것을 촉구한다.”(책 서문 중) 건강권 운동에 젠더 관점을 더하자는 건, 그 ‘위험’이 누구에게,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한편으로는 어떤 위험이 가려져 있는지를 여성 노동자의 관점에서 다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여성 노동자의 산재 들여다보기: 2016~2021 산업재해 통계 분석

산업재해 현황을 다루는 정부의 공식 통계는 고용노동부를 통해 찾아볼 수 있다. 2023년 7월 이전까지 산재 관련 공식 통계에서 성별이 기재된 기초통계 자료는 “산업재해 현황 분석”이 유일했다.2 저자들은 산재 승인자를 포함하여 신청자까지 대상을 확대하고, 성별, 생년, 신청 상병, 업종, 직종, 발생일 등의 정보를 포함한 자료를 2016년부터 2021년까지 5년 치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에 정보공개청구를 진행했다. 청구를 통해 공유받은 데이터는 그 자체로도 한계가 많았다. 남녀 이분법에 포함되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공식 통계에 잡히지조차 못한다는 점, 신청 상병이 여러 개임에도 재해일자별로 하나의 상병만 나타난 점, 사업장 대분류나 직종이 엄밀하지 않은 점 등이 그 예시였다. 이를 통해 한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어디서, 어떤 규모로 일하는지, 어떤 상병으로 신청하는지, 승인율은 어떤지 보고자 했다.

[그림 1]은 산재 신청자들의 성별 비율을 보여준다. 남성:여성=3:1의 비율을 보인다. 승인자로만 한정해도 비율은 비슷하다. 보험에 가입된 숫자가 달라서 그런 걸까? 현재 산재보험 가입자의 성별을 분류해 표기한 자료는 2023년 7월 공공데이터 포털에 공개된 자료가 유일하다. 가입자 성비는 최신 통계 기준 남성 55.5%, 여성 44.5% 정도로 비슷했다. 여성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직장에서 일해서 나타난 게 아니라면, 어떤 요인이 차이에 크게 영향을 끼쳤을까.

우선 직업군을 나눠 보고자 했다. [그림 2]는 성별에 따른 산재 신청자의 직업군을 대분류로 나눈 것이 다. 위 동그라미 3개가 남성, 아래 동그라미 3개가 여성이다. 가장 왼쪽은 사고성 재해, 중간은 질병성 재해, 오른쪽은 출퇴근 재해다. 아래의 동그라미에서 ④로 표시된 부분이 특히 눈에 띈다. ‘기타의 사업’이다.


2021년 기준, 산재 신청자 중 ‘기타의 사업’으로 분류된 사람들의 표준직업분류를 보면, 여성의 경우 주방장 및 조리사가 4,338명으로 가장 많았다. 청소원 및 환경미화원 3,511명, 음식 서비스 종사자 2,474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남성의 경우 배달원 2,472명, 기타 서비스 관련 단순 종사원 1,997명, 청소원 및 환경미화원 1,907명 순이었다.

‘기타’로 뭉뚱그려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특히, 여성이 많다. 그렇게 발생하는 데이터 공백은 산재 승인이 해당 산업의 재해 예방으로 이어지는 데 걸림돌이 된다. ‘기타’의 노동자들이 어떤 위험에 노출되었는지조차 드러나지 않는 상황, 산재 예방은 더욱 요원해지게 된다. 관련하여 책 《보이지 않는 여자들》은 “데이터 공백은 불공평할 뿐 아니라 사업적으로 좋지 않다. 불편한 노동환경은 직원의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장의 데이터 공백은 단순한 불편과 그로 인한 비능률 보다 훨씬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 때로는 만성질환을 불러오고 때로는 여자들이 죽는다.”3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면 어떤 질환, 위험이 산업재해로 대표되어 얘기되고 있을까. 여성 질환은 산재가 될 수 있을까. 물론 그렇다. 예를 들어, 자궁질 탈출은 탈장과 마찬가지로 무리한 힘을 가해야 하는 업무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질환이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보편적으로 그렇다고 인식되는 것 같지는 않다. 유방암, 난소암, 유·사산·조산, 자궁질 탈출 등의 여성 질환은 2016~21년 5년간 총 69건만 신청되었다(승인 35건).

뇌심혈관계 질환은 어떨까? 2021년 기준 남성의 승인율은 41.86%, 여성은 24.53%이다. 뇌심혈관계 질환의 경우 과로로 인해 촉발될 수 있다. 한국과 같은 최장시간 노동 사회, 과로사 산재 인정의 주된 기준은 일터에서의 노동시간이다. 맞벌이 사회라지만 여전히 많은 여성이 가정에서 가사 및 돌봄 노동의 부담을 안고 있다. 그리고 일과 가정생활의 양립과 그 부담의 시간은 산재의 근거로 산정되지 못하고 있다.

근골격계질환은 어떤가? 이는 강한 노동 강도로 인해 누적된 부담이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대표적인 질환이다. 고용 불안정성이 높아 여러 직장을 옮겨 다니는 경우, 한 직장에서의 짧은 근무 기간이 산재 승인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주부로서 가사 노동의 경험 또한 ‘일터’의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해 승인에 방해 요소로 작동하기도 한다. 급식 노동, 간병 노동 등을 옮겨 다닌 여성들이 겪은 근골격계질환이 산재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기사는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불친절한 형태로 꿰어진 숫자들이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동안 여성들은 조선소에서, 건설 현장에서, 콜센터, 급식실, 재택근무지로서 내 집, 또 타인의 집에서 일하고 있다.4 “위험을 발견하고 드러내야 할 산재 통계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으니 통계 방식을 보완하자.”, “여성 노동자들의 산재 승인이 덜 되었으니 더 많이 승인하자.” 정도로 그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환경을 ‘문제이자 위험’으로 인식하고, 이를 조직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주체로 자리잡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젠더 관점으로 노동안전보건운동 바라보기-변화는 가능하다!

《일하다 아픈 여자들》을 매개로 만난 노동자들은 다양한 일터에서 다양한 피해를 겪었다. 지하철 청소원 경선(가명) 씨는 관리자로부터 성폭력을 당했지만, 문제를 함께 해결해 주는 주체가 없어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는 점에 힘들어했다. 조선소에서 밀폐감시 업무를 하던 해선(가명) 씨는 자신이 겪었던 사고와 질병을 이야기하면서 회사 눈치를 보고 자신을 탓했다. 이들은 동시에, 일터의 변화를 말하고 변화를 만들어내고자 분투하기도 했다. 승무원 유진(가명) 씨는 본인의 유방암 발병 원인이 야간 비행 근무뿐 아니라 누적된 우주방사선이라는 점을 인정받아 동료들에게 그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산재 신청을 진행했고 승인받았다. 5인 미만의 작은 사업장에서 운전기사로 일하던 진안(가명) 씨는 작은 사업장이라는 이유로 온갖 규제에서 배제되는 현실에 온몸으로 저항했다.

책을 통해 만난 사람들을 포함하여 다양한 여성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등으로 뭉쳐 싸워왔다. ‘별것도 아닌 것·사소한 것·다들 그런 것’이라고 치부되지만, 실존하기에 위험한 요인들을 드러내고 바꿔왔다. 2018년과 2019년, 여러 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연속해서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현장 노동조합과 단체들은 이들의 사망이 ‘개인 사이의 괴롭힘’ 혹은 ‘여초 집단의 태움’으로 명명하는 것에 대항하여, 일 때문에 자살로 몰렸다는 감각을 보편화시켰다. 환자를 혼자 돌보게 만들고, 간호사에게 적절한 교육을 제공하지 않은 병원의 구조적 책임을 드러냈다.

남성 다수 공장에서 유일한 여성이었던 한 제조업 노동자는 회사로부터 몸에 맞지 않는 작업복을 지급받았다. 헐렁한 옷이 그라인더에 끌려들어가 사고가 날 뻔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이 여성 노동자는 생리휴가 지급과 몸에 맞는 작업복 및 탈의실 제공을 요구하며 싸워왔다. 이 외에도 현장의 목소리로 더욱 드러나고 확산하여야 할 과제는 많다.

여성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어 안전한 일터에서 일하기 위한 목소리를 내는 과정은 여전히 힘들다. 그러나 그 싸움은 모두를 위한 싸움이기도 하다. 젠더 관점의 노동안전보건 운동을 하자는 건 여성과 소수자가 더 취약하니까 보호하거나 보장 범위를 확대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취약성이 성별로만 정의되지 않을뿐더러 ‘쓸 만하지 않은 몸’을 지닌 개인들을 일터에서 배제하면, 그 자리는 결국 ‘표준으로 분류된 남성’에게 돌아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일터를 우리의 몸에 맞게 만들어가기 위해 페미니즘 관점을 가져오는 것은 개탄스러워 해야 할 일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 필수적인 일이다.”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부품을 찾고, 생산량만을 정언명령으로 삼는 가부장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에 더 날카롭게 문제를 제기하고, “일하다 아픈 사람”이 없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나가자.

| 미주 |

  1. 이나래, 조건희, 류한소, 송윤정, 이영희, 정지윤(2023),《 일하다 아픈 여자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원, 빨간소금. ↩︎
  2. 2023년 7월, 공공데이터 포털(https://www.data.go.kr)에 연간 성별 산재보험 가입자 수, 산재보험 신청자 수를 담은 엑셀 파일이 올라왔다. ↩︎
  3.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 저/황가한 역(2020),《 보이지 않는 여자들-편향된 데이터는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지우는가》, 웅진지식하우스. ↩︎
  4.  정지윤,“ 일터의 아픈 몸, 왜 여성의 산재는 드러나지 않는가?”,《 일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2025년 3월호. ↩︎

월간 <복지동향> 2025년 4월호(제3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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