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준ㅣ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들어가며1
12.3 친위쿠데타 이후, 급작스럽게 부상한 극우 정치 물결이 한국 사회를 흔들고 있다. 헌법 수호 책임자인 대통령이 느닷없이 한밤중에 군대를 동원해 헌법을 짓밟는 광경을 목격한 것만도 고통스러운데, 그런 대통령을 지키겠다며 온갖 반민주 담론과 음모론을 끌어들여 폭동을 부추기는 극우 정치 현상까지 마주하게 되니, 이 사회의 충격과 긴장이 이만저만 아니다. 1987년 이후 한 세대 넘게 세월이 지났지만, 반민주 세력이 여전히 국가기구의 중심에 똬리를 튼 현실에 개탄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전쟁과 독재를 꿈꾸는 세력이 권력을 놓지 않는 이 땅의 역사에 새삼 비분강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게 과연 한국만의 현상인가? 아니다. 지금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미국을 비롯해 유럽 곳곳, 라틴아메리카 곳곳에서 극우파가 집권하거나 집권 일보 직전까지 급성장하고 있다. 올해 2월에 실시된 독일 총선에서는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제2당으로 우뚝 섰다. 작년 여름에 반무슬림 폭동이 일어났던 영국에서는 올해 들어 극우 성향의 영국개혁당(Reform UK)이 여론조사 순위 1, 2위를 다툰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에서는 대선을 실시할 때마다 극우파 국민결집(RN)의 마린 르펜이 대선 결선투표 득표율을 계속 늘려가고 있고, 이탈리아에서는 이미 극우파 이탈리아형제당(FdI)이 이끄는 연립정부가 들어서 있다. 그러고 보면 작년 말부터 한국 사회에서 몰아치고 있는 극우 정치 물결은 이런 ‘보편적’ 양상의 ‘특수한’ 표출에 가깝다. ‘극우화’라는 21세기의 유령이 전 세계 를 뒤흔들고 있다고나 할까.
유럽과 한국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이런 극우 정치의 부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같은 점은 무엇이고, 다른 점은 무엇인가? 극우 세력 득세에 맞서는 과정에서 이런 비교가 우리에게 어떤 시사를 던져주는가?
한국과 유럽의 비교를 통해 본 최근 극우 물결의 특징
이런 물음들에 답하기 전에 우선 거쳐야 하는 논의가 있다. ‘극우파’와 ‘파시즘’의 개념적 구분이다. 요즘 이 두 말이 서로 구별 없이 혼용되지만, 둘은 명확히 다르다. 극우파는 파시즘보다 더 큰,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는 용어이고, 파시즘은 극우의 한 부류다. 극우파라는 범주 안에는 왕정복고파도 들어가고 여러 종교 근본주의도 포함되며 강경 신자유주의, 민족지상주의, 권위적 국가주의, 반공지상주의, 우파 포퓰리즘 등도 속한다. 반면에 파시즘은 이런 여러 극우 흐름 가운데 한 가닥, 그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가닥이다.
왜 ‘가장 극단적’인가? ‘파시즘’ 자체가 논자에 따라 상이하게 쓰이는 논쟁적 용어이기에 논의가 꼬일 우려가 있기는 하지만, 나는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직접적 공격과 그 파괴가 파시즘의 핵심 특징이라 본다. 모든 극우 세력은 민주주의의 확장과 심화가 아닌 그 반대 방향에서 현실의 해결책을 찾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선거제도나 대의기구 같은 기존 민주주의 제도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거나 실제로 타격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역사상 이탈리아 파시스트와 독일 민족사회의자들(나치즘)은 달랐다. 이들은 선거로 성장하거나 집권하고는 선거를 폐지했다. 따라서 이들에게서 연유하는 ‘파시즘’이라는 규정은 이들처럼 자유주의-민주주의의 기본 토대를 무효로 하려는 지향과 의지가 있느냐는 기준에 따라 적용되어야 한다.
이 점을 감안하면서 유럽과 한국의 극우파를 비교해 보면, 묘한 엇갈림이 눈에 띈다. 유럽에서는 한국보다 훨씬 전부터, 그러니까 2008년 금융위기 이후부터 극우파가 꾸준히 성장해 왔다. 팬데믹 초기에 극우파의 반지성주의적 대응 때문에 잠시 위축되기도 했지만, 팬데믹 후기에 특히 인플레이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닥치고 나서는 급속히 세를 회복했다([그림1] 참고).

그렇기에 대중적 기반도 탄탄하며, 이념과 담론도 나름대로 세련되게 발전해 왔다. 이런 현대 유럽 극우파는 대체로 우파 포퓰리즘 성향을 보이며 성장했고, 지금도 이런 성향에서 벗어나지는 않은 상태다. 반면에 한국 사회에서 지금 문제 되는 극우 흐름은 12.3 친위쿠데타 이후 갑자기 정치 무대 중심으로 난입했다. 그런 탓에 생각과 행동, 조직과 전략 모두 아직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리고 유럽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처음부터 파시즘의 문지방을 무참히 넘어 버린 채로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유럽의 경우를 좀 더 살펴보자. 역사적 계보만 놓고 보면, 유럽 극우파는 파시즘과 훨씬 더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현재 이탈리아 집권당인 이탈리아형제당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무솔리니의 계승자임을 자부하며 등장한 이탈리아사회운동당(MSI)에 뿌리를 둔다. 프랑스에서 집권을 노리는 국민 결집의 전신 국민전선(FN)은 이탈리아사회운동당을 모델 삼아 출범했으며, 마린 르펜의 아버지이기도 한 창당 주역 장 마리 르펜은 독일에 굴종하던 비시 정부를 공공연히 옹호하며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런가 하면 스웨덴에서 제2당으로 급성장한 민주당(SD)의 창당 주역들은 네오파시스트 운동에 활발히 참여한 전력이 있다. 그래서 현재 서유럽 여러 나라 극우파는 ‘포스트 파시스트(post-fascist)’라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포스트 파시즘’은 강조점이 ‘파시즘’에 있을 수도 있지만, ‘포스트’에 있을 수도 있다. 즉, 파시즘의 핵심 특징인 민주주의의 파괴를 실제로 시도할 수도 있지만, 두 세대 넘게 서유럽을 지배해온 민주적 합의의 틀 안에서 극우적 신조(경제적 국수주의, 반이민-반무슬림 등)를 실현하려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할 수도 있다. 이 두 선택지 가운데, 유럽 극우파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후자를 벗어나려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즉, 유럽 극우파는 우파 포퓰리즘과 파시즘을 가르는 경계선을 넘어서지는 않았다. 우파 포퓰리스트도 과거의 무솔리니처럼 이민족과 ‘빨갱이’에 맞선 민족의 단합을 외치고, 나치의 반유대주의와 마찬가지로 무슬림 이주민을 ‘내부의 적’으로 지목한다. 그럼에도 우파 포퓰리즘 세력은 이 모두를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주장한다. 이민족이나 이주민과 결탁한 엘리트에게서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식으로 극우 담론의 정당성을 확보하며, 지지층을 규합한다. 민주주의가 거추장스러운 유산이나 적들의 무기에 불과하다며 노골적으로 이를 부정하는 고전 파시즘과는 구별되는 태도다.
또한, 유럽 극우파는 전후 서유럽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복지국가 역시 부정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미국 트럼프 정부의 노선, 행태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트럼프 정부는 오바마 정부가 도입한 얼마 안 되는 복지제도(가령 오바마케어)조차 감축하거나 무효로 하려 한다. 트럼프 정부에 직접 참여한 빅테크 자본가 일론 머스크는 연방정부 산하 공공부문을 거의 ‘학살’ 수준으로 대폭 축소하려 한다. 이에 반해, 서유럽 극우 정당들은 오히려 복지국가를 ‘수호’하겠다고 약속한다. 다만 복지국가가 흔들리게 된 원인을 신자유주의에서 찾지 않고 이민, 난민 증가에 따른 정부 예산 ‘낭비’에서 찾는다. 자국 노동계급의 복지를 위해 쓰여야 할 공적 재원이 무슬림 이민, 난민을 위해 쓰이는 바람에 복지제도가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노동계급 내 상당수가 극우 정당들의 이런 ‘복지국가 수호’ 담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 극우 정당에 표를 던진다.
물론 자기만이 ‘민주주의의 수호자’라는 우파 포퓰리스트의 말과 행동에는 기만적인 구석이 있다. 자기편만 민주주의이고 반대편은 무조건 반민주주의라는 입장은 결국 반대편과 공존하길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어느 때든, 서로 대립하는 세력들이 공존해야 하는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돌변할 수 있다. 그러나 사악해질 위험을 내포한 상태와 진짜 사악한 행동을 마음껏 자행하는 상태는 분명히 다르다. 현재 유럽 극우파는 이 두 상태 사이의 경계선을 뚜렷이 의식하면서 우파 포퓰리즘의 한계선 너머로 나아가는 것은 자제하고 있다. 나는 머지않은 미래에 이 경계선이 결국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지만, 어쨌든 유럽 극우파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파시즘으로 나아가는 문지방을 넘지는 않고 있다.
파시즘의 문지방을 넘어선 채 갑자기 등장한 한국 극우파
이와 대조해 보면, 현재 한국 극우 흐름의 기이한 특징이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 한국은 유럽 여러 나라보다 더 가까운 과거에 파시즘 체제를 경험했다. 유신 정권과 제5공화국은 고전 파시즘과는 좀 다르지만, 군부 파시즘이라 할 만한 체제였다. 선거제도나 대의기구 같은 민주주의의 골간이 무너진 체제였다.
그러나 제6공화국으로 전환하고 나서 작년 12월 3일까지는 파시즘의 실질적 위협 없이 대의민주주의를 유지해 왔다. 사회 곳곳에 극우적 요소들이 유럽보다 훨씬 강하게 남아 있기는 했지만, 최근 10년 정도 시간대로 보면 유럽에 비해 극우파의 독자적 세력화가 활발하게 전개됐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윤석열이 정권 위기를 친위쿠데타로 돌파하려는 기상천외한 만행을 시도한 뒤에는 사회 곳곳에 산재한 극우적 요소들(혐중, 반페미니즘, 극우 개신교회 등등)이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결집해 유럽과 비슷한 강도의 극우 물결로 쇄도하고 있다.
놀랍게도 한국 극우 정치는 처음부터 파시즘으로 나아가는 문지방을 넘어선 채로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윤석열의 기괴한 모험으로로 촉발됐기 때문에, 우파 포퓰리즘 세력으로서 성장해가는 과정은 거치지 않은 채 갑자기 기존 민주주의 제도 파괴를 공공연히 주장하거나 지지하는 세력으로 출현하고 말았다. 12월 3일 밤, 군대가 국회를 에워싸고 의사당에 난입하는 광경은 집권 후 대의민주주의를 정지시켜 버렸던 과거 파시스트 정권의 행태를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비상계엄을 해제한 국회 의결을 통해 이 친위쿠데타가 일단 실패하자 윤석열은 극우 유튜버들이 그간 주장해 온 ‘부정선거’론, ‘중국 개입’론 등을 내세우며 자기 행동을 합리화하려 들었다. 그러자 이런 담론들을 바탕으로 윤석열 지지층이 급속히 ‘재’구성됐고, 이들 가운데 일부는 윤석열 구속에 항의해 1.19 법원 공격 난동을 벌이기까지 했다. 가두 폭력 행위를 통해 정치적으로 성장하고 난 뒤에 집권, 대의민주제 파괴 등으로 나아갔던 고전 파시즘과 달리 2024~5년 한국에서는 집권 세력의 대의민주제 파괴 시도 뒤에 가두 폭력 행위가 시작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부정선거’ 음모론이다. ‘우리 편이 진 선거는 모두 부정선거’라는 논리(실은 몰-논리)가 ‘그런 선거로 구성된 민주주의 제도 따위는 부정해도 된다’라는 정서를 확산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런 정서는 약간의 선동이나 조직력만 추가된다면, ‘그따위 민주주의는 파괴해도 좋다’는 파시즘의 정신세계로 직행할 수 있다. 지난겨울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가능성이 갑자기 열려 버린 탓에, 현재의 혼란이 탄핵 인용이나 조기 대선 이후에도 진정되지 않고 오히려 가중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떨쳐 버리기 힘들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에 더해 내란 행위에 대한 형사 재판까지 거치며 윤석열이 단죄된 뒤에도 윤석열이 불러낸 극우 정치 물결이 와해하지 않은 채 계속 ‘진화’해 나갈 수 있다.
다만 한국 극우파는 돌연 급조된 세력이기에 유럽 극우파에 비해 한계나 약점도 크다. 지금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거나 ‘부정선거’론에 동조하는 여론은 계급, 계층을 가리지 않고 늘어나는 양상을 보인다. 하지만 이는 달리 말하면 극우 흐름이 특정한 계급, 계층에 깊이 뿌리내리지는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와 달리 유럽 극우파는 나름 착실한 성장 과정을 밟았기에 구 중간계급이나 노동계급 내 특정 부문에 탄탄한 지지 기반을 구축해 놓고 있다. 이런 구심력을 갖춘 정치 세력은 쉽게 극복될 수 없는 법이다. 극우파의 강력한 영향력이 향후 유럽 정치의 상수가 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면 한국 극우파는 당장 위험성은 유럽보다 크더라도 현재적, 잠재적 역량은 ‘아직’ 굳건하지 못한 셈이다. 극우파는 한국 정치에서 익숙한 경로인 온라인 네트워크나 개신교회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세를 불려 나가고 있지만, 삶의 현장에서 특정한 계급, 계층이 지지를 보내야만 할 구체적 근거를 지닌 세력으로까지는 부각되지 못한 상태다. 이 상태야말로 파시즘에 미래를 내주지 않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천금 같은 기회다. 윤석열이 일단 뿌려놓은 파시즘의 씨앗이 사회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선제적으로 대응할 기회다.
내란 진압과 사회대개혁이 동전의 양면인 이유
작년 말부터 지금까지 응원봉 불빛들로 반짝이는 광장에는 응원봉 색깔만큼이나 다채로운 깃발, 플래카드 등이 펄럭인다. 플래카드에 쓰인 구호 또한 다양하다. 그중 가장 빈번히 눈에 띄는 문구는 “탄핵을 넘어 사회대전환” 혹은 “탄핵과 함께 사회대개혁으로”이다. 그런데 이런 문구에 의아해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과 파면을 통해 윤석열이 일으킨 내란을 진압하는 게 급선무인 상황에 ‘사회대전환’은 좀 생뚱맞다는 것이다. 혹은, 파면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는데 ‘사회대전환’을 벌써 내거는 게 섣부르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의문이나 지적에 여러 측면에서 답할 수 있겠지만, 이 글의 주제인 극우파의 급성장과 관련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겠다. ‘내란 진압’은 법률 차원에서는 윤석열 탄핵과 내란죄 형사 처벌 등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내란 진압’을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이해한다면, 여기에는 12.3 친위쿠데타로 갑자기 결집해 세력화하고 있는 극우 정치 물결을 진정시키고 결국에 가서는 고립, 소수화시키는 것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더구나 앞에서 살펴봤듯이 현재 한국의 극우파는 처음부터 파시즘의 성격을 다분히 띤 채 등장했기 때문에 파시즘의 성장을 미리 차단하는 것이 ‘내란 진압’의 과제 목록에 꼭 들어가야 한다.
앞에서 한국 극우 정치는 아직은 특정한 계급, 계층에 닻을 내리지 못했으며 이것이 극우 정치의 확산, 강화를 막으려는 세력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여유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다. 윤석열 정부 내내 경제 사정은 안 좋았고, 12.3 친위쿠데타 이후 몇 달 동안은 팬데믹 시기를 연상시킬 정도로 소비 경제가 위축됐다. 최근에는 미국 트럼프 정부의 무역, 환율 전쟁 때문에 경기가 나아질 가능성이 더욱 희박해지고 있다. 바로 이런 경기 침체 상황이야말로 파시즘이 특정 계급, 계층을 핵심 지지 기반으로 다지기 쉬운 조건이 된다.
현재 많은 시민이 경기 침체로 고통받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심각한 위험에 처한 이들이 있다. 우선 가뜩이나 고용과 소득이 불안정한 플랫폼 노동자, 다양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다. 이른바 ‘디지털 경제’의 성장 탓에, 내용상으로는 분명히 노동자이면서도 형식적으로는 자영업자의 지위를 지닌 노동자들이 양산되고 있다. 소비 경제가 위축될 경우에 이들은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훨씬 더 신속하게 실업과 빈곤의 위험에 노출된다.
보다 전통적인 의미의 자영업자 역시 처지가 그리 낫지 않다. 이들은 특히 팬데믹 이후 누적된 부채로 신음하고 있다. 팬데믹 시기에 정부의 방역 정책에 협조한 탓에 생긴 부채임에도 문재인 정부, 윤석열 정부 모두 부채 탕감은 고사하고 이자를 경감시켜 주는 데도 인색하기만 했다. 그 결과, 자영업자 부채는 1,000조 원을 훌쩍 넘어서고 말았다([그림 2] 참고).

이런 상황에 설상가상으로 내란 정국까지 닥치자, 자영업자들의 형편은 다시 팬데믹 시기로 돌아가고 말았다. 통계청 발표(2025.3.10)에 따르면, 올해 1월 국내 자영업자 수는 550만 명으로 줄었다. 12.3 친위쿠데타 전의 570만 명에 비해 두 달 만에 20만 명이 감소한 것이다. 차기 대선 이후에도 경기가 나아지지 않는다면, 이런 자영업자 폐업 물결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것이다.
이렇게 경제 위기의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계급, 계층일수록 극우 정치의 유혹에 휩쓸리기 쉽다. 고전 파시즘은 전간기에 생활 수준과 지위가 추락하던 구 중간계급을 토대로 삼았고, 21세기 유럽 극우 포퓰리즘은 노동계급 내에서 상대적으로 쇠퇴하는 계층을 핵심 지지층으로 끌어들였다.
2025년 한국 사회에서 이런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 이를 막으려면, 조기 대선 이후 몇 달 동안 긴급하게 경제-사회 개혁을 펼쳐야 한다. 내란 동조 세력을 제외한 정치권 전체가 현재 경제 침체의 고통을 가장 심각하게 체감하는 계급, 계층을 위한 긴급 개혁 조치에 나서야 한다. 예컨대 영세 상공인, 플랫폼 노동자 등의 고통을 경감하고 권익을 확대하는 단호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내란 진압과 사회대개혁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것이다. 즉, 사회대개혁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반파시즘 정치’다.
| 미주 |
- 이 글은 인터넷 언론 ‘민중의 소리’에 실린 필자의 글 “갑자기 파시즘의 문지방을 넘고 만 한국의 극우”(2025.3.11)를 확대, 재구성한 것입니다. ↩︎
월간 <복지동향> 2025년 4월호(제3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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