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5 2025-05-01   8304

[기획2] 한국 경제의 새로운 모델 제안

정세은 |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낙수효과’ 이데올로기: 여전히 강력한 자본 우대 성장론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저성장과 분배 악화로 고통받고 있다. 이 두 가지 현상이 동시에 발생한다는 것은 저성장의 문제가 저소득계층에 집중되어 이들이 심각한 고통을 느낀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성장보다 분배 악화가 더욱 문제이다. 저성장이더라도 분배가 어느 정도 평등하다면 국민 모두의 삶은 좋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성장이 무의식적으로 주는 공포와 고성장이 무의식적으로 주는 매력이 너무 크다. 그로 인해 ‘선성장-후분배’ 전략, 즉 과거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내세웠던 논리가 여전히 지배력을 발휘하고 있다.

‘선성장-후분배’ 전략의 문제는 단지 성장이 먼저라는 주장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장을 위해서는 암묵적으로 자본과 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하고 이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주어야 하며 노동과 복지는 희생하고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이다. 이 사고에 사로잡히게 되면 노동 보호를 강화하고 복지를 확대하는 것은 성장 기반을 훼손하여 저소득층에게도 피해가 간다고 생각하게 된다. 노동 규제 완화와 정부 규제가 줄어야 투자와 고용이 일어나고 성장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선성장-후분배’ 전략은 ‘낙수효과’ 논리와 동일하다.

그런데 이러한 전략하에서 한국 경제는 과거 가난한 농업국가에서 중화학공업 발전을 이룬 신흥국으로, 최근에는 글로벌 기업을 거느린 선진국, 문화 콘텐츠 강국으로 업그레이드됐다. 이러한 눈에 들어오는 성과로 인해서 ‘선성장-후분배’ 논리, ‘낙수효과’ 논리는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강력한 원리로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흐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성장률은 빠르게 하락하고 있고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자유주의 개혁의 성공: 저성장이라는 모순적 결과

‘선성장-후분배’ 전략하에서 군부는 노동의 희생을 요구하면서 산업화를 추진했다. 고도성장과 산업화에 성공했지만, 노동 억압, 부정과 부패, 불공정한 분배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그러나 국민들에게 그러한 문제들을 감수하고서라도 산업화 정책에 찬성했겠느냐고 묻는다면 아마 긍정적인 답이 다수일 것이다. 그만큼 당시에는 성장에 목말랐다. 1987년 민주화를 달성한 이후 분배 악화를 포함한 불균형의 문제들을 해결할 기회가 생겼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는 ‘노동법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여전히 ‘선성장-후분배’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세계시장에서 우리 기업이 경쟁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국민이 밀어줘야 한다,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했던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이식을 강요당했다. IMF가 요구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따라 재화시장, 금융시장, 자본시장은 더욱 개방되었고 4대 부문 개혁이 실시되었다. 신자유주의 경제모델의 핵심은 국가가 후퇴하고 경제운용을 금융시장에 맡기는 것이었다. 논리는 “금융시장의 기능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것이므로, 주어진 자원의 제약하에서 국가 경제는 가장 바람직한 경제 상태를 실현하게 되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그 효과를 누리게 된다”라는 것이었다. ‘선성장-후분배’, ‘낙수효과’ 논리는 신자유주의의 ‘단기적 이윤극대화 원리’로 바뀌었다. 국가는 후퇴했으나 자본의 편으로 후퇴했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외환위기 이후 재벌개혁이 있었지만, 실상은 ‘재벌-국가’ 동맹이 ‘재벌-금융자본-국가’의 새로운 동맹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재벌은 금융자본의 견제를 받게 되었지만, 어느 정도 이윤을 챙겨주면 될 일이었다. 국가는 재벌을 지원하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을 바랐다. 2000년대 중국이 세계 무대로 등장하고 FTA가 활발하게 체결되는 등 세계시장이 통합되면서 우리 기업들이 국제적 선두기업이 되지 못하면 망한다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그것이 한국 경제가 선진화되는 것이고 모든 국민에게 이로운 것이라고 여겼다.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금융자본과 동맹을 맺은 재벌은 세계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는 다국적 기업이 되고자 노력했다. 빅딜을 통해서 국내 독점도를 올리고 국내 인력 구조조정을 통해 이윤을 극대화했으며, R&D와 마케팅을 강화하고 해외공장 건설, 국제 밸류체인 형성을 통해 다국적 기업으로 성공적으로 변신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은 재벌이 국내에 미치는 낙수효과가 약화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다국적 기업의 본국답게 국내에는 R&D와 마케팅 기능, 본사 기능이 강해지는 반면, 제조기반은 약화되는 일이 벌어졌다. 남아 있는 제조기반, 새로 건설되는 제조기반은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집중했으며 자동화 투자가 진행되어 제조업에서의 좋은 일자리가 크게 줄었다. 재벌 성장의 낙수효과는 제조기반 해외 이전, 로봇화 투자, 국내 연관 관계의 약화로 인해 줄었다. 재벌의 본사 기능이 집중된 수도권에서만 낙수효과가 느껴지는 수준으로 변하였다. 이러한 변화들이 현재 한국 경제의 구조적 특징들을 만들어 냈다.

국가는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을 지원하면서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을 달성하기를 기대했다. 재벌개혁은 시늉을 내는 정도에 그쳤다. 재벌 대주주의 사익추구 행위를 적극적으로 규제하지 않았고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탈취, 단가 후려치기 문제도 방치하였다. 이를 통해 대기업이 영향력 있는 다국적 기업이 되었다. 그러나 낙수효과가 약화되는 모순적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효율적인 금융시장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한다는 논리에 사로잡혀 금융 규제 완화와 금융기관 대형화에 열심을 기울였으나, 금융시장은 실물투자를 지원하지 않고 투기적 금융에 몰두하는 행태를 보였다. 이러한 시스템하에서 외환위기 이후 성장동력은 건설업과 부동산업이었다.

성장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성장의 효과가 정말 크고 낙수효과가 발휘된다면 자본에 혜택을 주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거의 30년 동안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해 왔는데, 그 결과 수출 대기업과 금융자본은 성장했지만, 경제 전체의 성장성이 하락했고 양극화가 심화되는 결과를 맞이했다.

신자유주의: 성장을 목표로 하지 않는 수익성 추구 모델

이러한 결과는 신자유주의의 원리인 ‘이윤 극대화 추구’가 성장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윤 극대화 원리는 ‘자본 대비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적인데, 이 목적을 위해서는 반드시 투자와 고용을 많이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투자와 고용이 작으면서 이윤이 많이 날수록 성공적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신자유주의하에서 저성장과 양극화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자본은 가급적 투자하지 않고 고용하지 않으며, 고용하더라도 가능한 한 임금을 작게 주고자 한다. 건설업과 부동산업이 성장동력이 되어버린 것, 불로소득을 추구하며 일하기를 거부하는 것, 부담스러운 임대료를 내고 주거를 마련하느라 허리가 휘는 사회가 된 것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신자유주의하에서 단기 이윤극대화의 결과가 바로 우리 사회의 심각한 양극화 현상이다. 우리나라의 상대적 빈곤율은 OECD 4위에 해당할 정도로 심각하다. 소득과 자산 격차가 크게 벌어졌고 자산이 자산을 불리는 수준에까지 이르러 소수는 부를 축적하며 안정적인 삶을 살고 그 부를 대물림하는 반면, 다수 국민은 노력 여부와 상관없이 현재도 불안하고 미래도 희망을 품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한편 수익성 추구로 인한 분배의 악화는 다수 국민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 가계소득 축소로 인한 내수 부진, 그로 인한 저성장을 야기하고 있다. 가계소득이 부족해서 소비가 줄어드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이윤극대화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투자와 고용을 유도하려면 높은 수익성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하나의 사례가 바로 유럽의 해상풍력산업이다. 해상풍력사업을 육성하기 위해 유럽 정부들은 보조금을 주면서 민간 발전사의 참여를 유인하였다. 초기에는 가능한 한 많은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보조금을 많이 주었다. 그런데 어느 정도 기업들이 들어오자 비용을 줄이기 위해 보조금을 낮추었다. 그런데 보조금 축소로 인한 수익성 저하에 대해 민간 발전사업자들은 사업 축소로 대응했다. 민간 사업자들은 수익성이 맞지 않으면 투자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윤극대화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경제 전체의 생산성 향상도 도모하기 어렵다. 수익성에 직접 도움이 되지 않으면 개인과 기업이 생산성 향상에 나설 유인이 없다. 특히 국가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는 기초 R&D, 공교육 투자, 노동자의 역량 강화는 불가능하다. 우리나라는 객관적인 혁신 지수는 낮지 않은데 생산성이 낮다는 모순을 안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국가 전체의 생산성이 오르지 않으면 개별 기업이 하는 생산성 강화 노력이 큰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저성장, 양극화 함정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가가 해야 할 일: 정의롭고 신뢰할 수 있는 시장 조성1

국가가 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불공정한 시장을 개혁하는 일이다. 

첫째, 주택시장이 실수요자 위주로 재편되도록 국가가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재개발·재건축 공공성을 강화하고 강제철거를 금지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선이주·후철거 방식의 순환식 개발을 의무화하고, 세입자 보상과 공공 임대 의무 공급 비율도 확대해야 한다. 또한, 전세사기 피해를 구제하고 전세사기 예방을 위한 세입자 권리도 강화해야 한다. 전세사기 피해자 규모가 올해에만 3,000명 가까이 늘어나는 등 전세사기 피해는 아직 진행 중이다. 한시법인 전세사기특별법의 기간 연장과 피해자 신청 자격 완화, 경매 차익이 적은 피해자에 대한 최소 보장, 사각지대 피해자에 대한 지원, 지자체가 임대인 동의 없이 피해 주택을 개보수·관리할 수 있도록 추가 개정이 필요하다. 한편, 주거기본권 보장을 위해 공공주택을 확대하고 주거복지를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확대하고, 장기공공임대주택을 연간 15만 호 이상 공급하며, 공공택지 민간 매각 중단, 기초 지자체별 의무 공급 도입 등을 추진해야 한다.

둘째, 재벌총수 일가의 과도한 지배력 확대 방지를 위한 기업기배구조 개선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강화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인 불투명한 기업지배구조와 총수 일가의 경영권 세습 과정에서 발생하는 편법 증여, 일감 몰아주기 등 불공정한 경영 행태는 공정한 시장 질서를 훼손하고 있다. 대다수의 기업 이사회가 총수의 불법 지시에 대한 거수기가 되어온 현실에서 기업지배와 승계, 재벌총수의 사익추구 등을 위한 재벌총수 일가의 불·편법적인 행태로 인해 소수 주주의 피해가 발생해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도 부재하다. 이는 결국, 시민 대다수의 경제적 기회와 소득 증가 가능성을 제한한다. 또한,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 관행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성장 기회를 막고, 노동시장에서는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비정규직 간의 임금 격차와 고용 불안정을 심화시키며 소득 양극화를 더욱 악화시킨다.

셋째, 소상공인을 괴롭히는 플랫폼기업과 가맹본사의 갑질을 막기 위한 입법과 과도한 임대료 부담을 막기 위한 상가임대차법 개정이 필요하다. 플랫폼이 확산되고 있는데, 이들은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다 시장을 장악했다 싶으면 바로 수수료, 이용료를 올리는 등 다양한 행태의 착취가 만연하다. 배달앱을 통해 포장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도 6.8%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다. ‘온라인플랫폼독점규제법’을 제정해서 자사우대·데이터독점·끼워팔기 등을 금지해야 하고 ‘공정화법’을 제정해서 부당한 광고비 전가와 알고리즘 조작 등을 금지해야 하며 분쟁해결시스템 등 플랫폼 이용자 보호장치도 강화해야 한다. 또한, 대형 유통 시설의 의무 휴업 확대와 출점 규제, 단체협상권 보장을 통해 중소상공인의 권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노점상을 사회경제적 주체로 인정하고, 이들의 생존권적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

국가가 해야 할 일: 불로소득 자본주의 해소와 동반성장·지속가능성장

국가가 해야 할 두 번째 과제는 불로소득 추구를 중단시키고 동반성장을 주도하는 것이다. 첫째, 자본이 불로소득 추구가 아니라 생산적 투자 및 혁신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해야 한다. 자본은 수익이 발생하는 곳으로 흐른다는 사실에 주목한다면 불로소득에 대한 적극적인 환수 조치가 핵심이다. 현재 한국 사회는 풍부한 유동성, 빚을 부추기는 금융정책, 소수 집단의 부의 집중적 소유, 부동산 불로소득에 대한 미미한 환수 조치 등으로 불로소득을 추구하는 문화가 만연하다. 불로소득 환수를 위한 가장 좋은 정책은 세금을 걷는 것이다. 재산세는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에서 걷기 때문에 불로소득 환수 수단이라고 보기 어려우므로 종부세와 양도세를 충분히 거두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양도세를 낮추고 보유세를 올려야 한다고 했던 진보 진영의 암묵적 합의는 재검토가 필요하다. 또한, 종부세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다른 세금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다른 보유세 설계가 쉽지 않고 종부세의 장점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여 종부세를 유지할 것을 제안한다.

둘째, 신자유주의 교리는 국가에 대해 적극적 산업정책을 해서는 안 되며 시장실패를 교정하는 소극적인 수준의 공공재를 공급하는 데 그쳐야 한다고 권고한다. 그러나 이러한 원리에 따랐던 다른 국가들을 보면 제조업 경쟁력의 상실, 공공요금 인상, 민간의 과도한 수익 창출이라는 부작용을 경험하였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원리에 따라 산업정책을 서서히 약화시켜 왔고 우회적 민영화를 추진해 왔는데, 이러한 정책에서 전환해야 한다. 다시금 적극적인 산업정책과 공기업 정책을 살릴 때이다. AI 확산과 에너지 전환이 국가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지만, 이것이 민간에게 맡겨진다면 수익성 창출의 수단이 되어 충분한 투자, 고용, 성장 효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국가는 민간이 하기 어려운 기초 R&D, 인프라 투자, 초기 모험 투자를 주도하여 성장의 판을 깔아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인프라 투자의 확대와 공공 R&D에 기반한 지역 제조업의 부활은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격차를 해소하는 데 있어서도 핵심적 기여를 할 것이다.

셋째, 노동 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서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중노동시장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전체 임금노동자 중 임시직 비율이 2022년 기준 OECD 34개 회원국 중 2위에 해당할 정도로 높은 상황이다. 문제는 이미 기간제법, 파견법, 장애인차별금지법, 고령자고용법 등에서 고용 형태와 장애, 연령을 이유로 한 근로조건(임금) 차별을 금지하고 있으나 효과가 미미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중구조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기조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기존 이중노동시장(1차: 대기업/공공, 2차: 중소기업/민간) 논의만으로는 플랫폼노동·프리랜서 등 비표준적 고용 확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누구에게나 근로기준이나 사회보장, 노동기본권을 보편적으로 보장하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 일하는 모든 사람의 노동권과 복지권이 보장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적 개혁을 실시해야 한다.

넷째, 두터운 수준의 복지 확대는 두말할 필요 없이 국가가 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에너지 전환 외에도 돌봄, 의료와 관련된 복지 인프라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것은 실물 투자인 동시에 사람 투자이기도 하다. 복지 확대는 양극화를 해소하며 저출산과 고령화가 사회에 가하는 고통을 완화하는 중요한 수단일 뿐 아니라 일자리를 창출하여 연쇄적으로 내수를 확대하는 효과를 발휘하는 성장 정책이기도 하다. 복지 확대가 성장 정책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은 편견에 불과하다. 또한, 복지는 고부가가치 산업이 될 수 없다고 보는 것은 자본의 눈으로 보기 때문이다. 복지 부문에서는 고이윤이 창출되지 않지만, 고용 창출력이 크기 때문에 임금이라는 부가가치를 대량 생산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경기에 따른 기복이 적어 경기안정화라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중요한 생산요소인 인적자원을 늘리고 그 질을 올려 장기 성장에도 이바지한다.

국가는 금융정책, 조세재정정책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

첫째, 금융이 금융 전문가들의 손에 맡겨짐에 따라 비생산적으로 변하였다. 금융의 횡포와 부동산과 결합한 금융화의 문제가 심각하다. 금융의 생산적 기능과 포용적 기능이 강화되도록, 금융시스템이 금융 및 실물거래를 뒷받침하고 한 나라의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핵심적인 경제제도로 작동하도록 개혁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모펀드의 과도한 수익 추구를 규제하는 개혁도 필요하다. 한편 경제 안정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통화·금융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최고 이자율을 낮추고 과도한 채권 추심 금지 등을 통해 2,000조 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취약 채무자 보호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감세와 작은 정부, 재정건전성과 같은 재정 보수주의를 추구할 것이 아니라, 성장과 복지 확대를 위해서 국채 발행, 증세 전략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인프라 투자를 위한 재원 조달 전략은 기본적으로 국채 발행이 되어야 한다. 투자로부터 적정 수익을 내서 낮은 금리로 조달한 국채를 갚으면 되기 때문에 문제가 될 일이 없다. 기재부는 재정적자가 GDP의 3%, 국채가 60%를 넘으면 안 된다는 경직적 재정준칙을 도입하려고 시도하고 있는데, 이러한 경직적 재정준칙이 도입된다면 국가의 인프라 투자는 어려워질 것이다.

복지 수준을 대폭 올리기 위해서는 조세부담률도 그에 상승할 정도로 올려야 할 것이다. 당장 윤석열 정부가 실시한 부자 감세를 원상복구 하는 것이 우선적 과제이다. 그 이후 어떠한 증세 전략을 실시해야 할까. ‘바람직한 증세 전략’은 고소득·고자산 계층이 더욱 많이 부담한다는 누진증세 원칙이 우선이다. 그러나 보편적 복지는 보편적 부담과 같이 가야 한다는 점에서 모두가 조금씩 더 부담할 필요도 있다. 이러한 두 원칙을 합쳐서 ‘누진적 보편증세’ 전략으로 정리할 수 있다. 소비세보다는 직접세 증세를 하되 밑구간은 약하게, 윗구간은 무겁게 과세하는 방안이 될 것이다. 이러한 방향으로의 재정정책 기조 전환을 위해서는 재정의 ‘건전성’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성’을 재정정책의 목표로 재설정할 필요도 있다. 국가재정법을 개정해 ‘재정의 목적’을 지속가능성과 국민경제 책임성으로 확장하고 조세 형평성 기준을 명시하자.

| 미주 |

  1. 8개 정당·내란청산사회대개혁비상행동 공동정책토론회, 2025, “정의로운 경제와 민생이 안정된 사회” 발제 내용 참고. ↩︎

월간<복지동향> 2025년 05월호(제3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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