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재ㅣLAB2050 이사장
들어가며1
아이의 건강을 줄자로 잰 키로만 판단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부모는 숫자만 올리려 혈안이 되고, 병원은 영양이나 체력은 외면한 채 성장호르몬 주사만 권할 것이다. 그러나 아이의 진짜 건강은 키가 아니라 체중, 면역력, 영양 상태, 정서적 안정까지 종합적으로 살펴야 알 수 있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정부는 우리 경제의 ‘진짜 건강’을 찾으려는 정부다. 실제로 경제성장 모델로 ‘진짜성장’을 제시하고 있다.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정부의 ‘가짜성장’과 대비되는 방향이라고 설명한다. ‘가짜성장’은 부동산 중심의 반짝 성장, 소수 부유층만의 성장, 모방을 통한 성장이었던 반면에, ‘진짜성장’은 기술 기반의 지속적인 성장, 모두가 참여하는 성장, 창조에 기반한 성장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진짜성장’은 세부적으로 AI 3대 강국 진입, 에너지전환, 지역성장과 국토공간혁신, 공정과 상생의 시장경제 및 노동시장 구축이라는 과제를 통해 달성한다는 계획이다(국정기획위원회, 2025).
그런데 이런 ‘진짜성장’이 실제로 이루어졌는지는 어떻게 측정하고 평가할 수 있을까? 우리 정부와 언론은 GDP를 기준으로 경제를 평가하는 관행을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물론 일부에서는 GDP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잠재성장률을 그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잠재성장률 역시 측정의 기본 틀은 GDP에 두고 있다. 그러나 GDP는 ‘진짜성장’을 측정하는 도구가 되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GDP만으로 ‘진짜성장’을 측정하려는 정부는, 아이 건강을 종합적으로 챙기겠다면서도 줄자로 키만 잰 뒤 그 숫자만 관리하라고 부모에게 알려주는 병원과 같다. 아이를 정말 건강하게 만들고 싶다면, 우선 종합적인 건강상태를 알려주는 지표가 필요하다. 그 지표를 평가하고 개선하면서 아이 건강을 종합적으로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GDP는 ‘진짜성장’의 일부만, 그것도 불완전하게 측정하는 도구다. 진짜성장은 경제의 다양한 영역과 환경, 노동, 인권, 참여, 공정성 같은 다양한 가치를 함께 달성해야 하는 성장이다. 따라서 진짜성장에는 새로운 측정도구가 필요하다. 삶의 질 전반을 세밀하게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참성장지표(Genuine Growth Indicators)가 그런 측정 틀을 제공할 수 있다.
GDP는 옳은가?
“한국은행은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3%일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이런 뉴스를 통해 통해 많은 국민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올해 우리 사회는 3%만큼 더 나아지겠구나. 내 삶의 질과 사회의 지속가능성도 그 정도 좋아지겠구나.’
하지만 이런 생각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지금 우리는 국내총생산(GDP)의 크기를 기준으로 경제성장률을 측정한다. 그런데 GDP는 삶의 다양한 측면 중 시장에서 화폐로 거래되는 부분만을 집계한 것이다. 환경 및 사회적 가치는 모두 빠지며, 경제적 가치 중에서도 불평등이나 불필요한 지출처럼 실제로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지 못하는 요소는 빠진다.
GDP의 문제점을 가장 시적이면서도 가장 과학적으로 비판했던 1968년 로버트 케네디의 캔자스대 연설은 이를 잘 보여준다. 미국의 존 F. 케네디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는 1968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다. 베트남전쟁의 전황이 변화하고, 반전 시위가 격화했고,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사건이 벌어지고, 흑인민권운동이 확산되던 격동의 시기였다. 이 시기에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로 출마한 로버트 케네디는 3월 캔자스대학을 방문해 이렇게 연설했다.
“우리의 국민총생산(GNP; GDP와 유사한 당시의 경제성장지표)은 공기 오염과 담배 광고, 고속도로에서 사망한 사람들을 치우는 구급차를 성장으로 측정합니다.
국민총생산은 사람들이 감옥을 탈출하지 못하도록 가두기 위해 만든 특수잠금장치도 성장으로 측정합니다.
이 지표는 미국 삼나무와 경이로운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도 성장으로 여깁니다.
네이팜탄과 핵무기와 시위진압용 장갑차도 성장에 기여하는 것으로 계산합니다.
라이플총과 칼을 판매해도, 폭력을 미화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국민총생산을 늘리는 것으로 계산됩니다.
하지만 국민총생산에는 아이들의 건강, 교육의 질, 놀이의 즐거움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시(poetry)의 아름다움도, 결혼의 건강함도, 공적 토론의 지적 수준도, 공직자들의 청렴도 역시 포함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해학, 용기, 지혜, 배움, 헌신, 열정도 측정되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국민총생산은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모든 것을 제외하고 측정합니다.
우리가 미국을 자랑스러워하는 이유를 제외한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는 지표입니다.”
이 격동의 시기, 가장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였던 그가 연설에서 ‘GDP’를 비판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대선 이후 미국이 지향해야 하는 가치를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해 꺼내들었던 것이 아닐까?
GDP가 측정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로버트 케네디는 국내총생산(GDP)이 아니라 국민총생산(GNP)를 사용해 연설했다. GNP는 해당 국가 국적자의 경제활동을 집계한 지표다. GDP는 해당 국가 국경 내의 경제활동을 집계한 지표다. 집계 방법이나 항목은 큰 차이가 없다. 국경보다는 국적을 중시하던 당시 시대를 반영한 지표다. 따라서 로버트 케네디는 GDP를 일컬은 것이라고 봐도 큰 무리가 없다. 혼란스러운 시대에 가치와 이상을 앞세우며 유력 후보로 떠오르던 그는 불행하게도 선거운동 중 암살당하고 만다. 그러나 그의 메시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되었다. GDP를 앞세운 경제성장은 우리 삶의 질과 관계가 없거나 오히려 우리를 더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이다. 경제가 성장하면 삶의 질이 좋아질 것이라는 우리의 직관이 틀릴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실제 사례를 들어 보자. 예를 들어, 입시경쟁이 지나치게 치열해져 사교육비가 늘어난다면, 이는 삶의 질이 좋아진 것인가 나빠진 것인가? 우리나라 학생들의 스트레스와 학부모들의 교육비 고통이 커졌다는 점에서 보면 나빠진 것이다. 하지만 GDP 기준으로 보면 좋아진 것으로 집계될 것이다. 시장에서 더 많은 사교육 서비스가 화폐로 거래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GDP는 사교육비 증가를 사람들에게 더 많은 서비스가 제공되었고 판매되었다는 관점에서 볼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부모가 짊어지게 되는 부담과 아이들이 겪는 고통은 집계되지 않는다. GDP는 시장에서 사고팔지 않는 개인의 부담은 집계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픈 사람이 많아져 의료비가 늘어난다면 어떨까? 건강이 나빠진다면 삶의 질이 악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GDP 기준으로 보면 좋아진 것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의료서비스의 양이 늘어났다고 집계될 것이기 때문이다.
석탄화력 비중이 높은 나라에서 제조업 공장가동률이 높아진다면 어떨까? 공장에서 나오는 제품은 늘어나지만, 미세먼지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탄소배출량이 늘어나 미래 기후재앙을 앞당길 수 있다. 하지만 GDP에는 늘어난 미세먼지와 탄소배출량은 잡히지 않는다.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이 늘었으니 경제가 성장한 것으로 집계되고 말 것이다.
건물이 불타고 다리가 무너지는 사고가 일어난다면 어떨까?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불행한 일로 여기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GDP에서는 이런 인명피해 자체는 집계하지 않는다. 손실된 노동력으로만 여겨질 뿐이다. 오히려 복구과정에서 건설회사가 더 많은 매출을 일으키며 고용을 하게 되니 잠깐의 노동력 손실 뒤 다시 경제가 성장하는 것으로 집계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GDP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은 로버트 케네디만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08년에는 이른바 장 폴 피투시, 조지프 스티글리츠, 아마티아 센 등이 참여한 이른바 ‘스티글리츠 위원회’에서 GDP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 방향을 제안하기도 했다. OECD에서는 ‘더 나은 삶 지수’(BLI)를 내놓았고, 인간개발지수(HDI)나 세계행복지수(World Happiness Index) 같은 지수도 주기적으로 발표된다. 지속가능한 경제후생지수(ISEW)와 참진보지수(GPI)도 역사가 오랜 대안 지표다. 필자가 소속된 민간싱크탱크 LAB2050은 이런 다양한 지표를 종합해 한국형으로 가공한 ‘참성장지표’를 연구해 발표하기도 했다.
GDP는 정치적이다
하지만 GDP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여전히 크다. GDP의 문제점에 동의하면서도 여전히 ‘GDP만이 유일하게 측정가능성이 높고 객관적인 지표’라는 현실론을 펼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GDP의 연원을 살펴보면 이 지표 역시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지표가 아니며, 특정한 주관적 견해를 반영하고 있는 지표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잠시 GDP가 등장하던 시기를 되돌아보자. 대공황 직후인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뉴딜’을 내세운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승리했다. 당시 루스벨트 후보가 대공황 극복을 위해 내세운 뉴딜 공약은 연방정부의 적극적 경제개입(재정정책)이 핵심이다.
그런데 당시 미국에는 사회 전체의 발전 정도를 측정하는 종합 지표가 없었다. 과감하고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대공황을 극복하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실은 경제 상황이 어떤지, 정부의 개입이 실제로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 객관화한 지표로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때 루스벨트는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Simon Kuznets)에게 ‘국민계정’ 지표를 만들도록 했다.
영국에서도 유사한 노력이 나타났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년 뒤인 1940년,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는 ‘어떻게 전쟁 비용을 지불할 것인가’라는 책을 펴낸다. 이 책에서 케인스는 국가가 전쟁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국가의 생산능력 지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케인스는 책에서 간략한 추정치를 직접 제안하기도 한다.
GDP는 이렇듯 대공황과 전쟁에 대한 대응력을 측정하기 위해 미국과 영국에서 만든 지표에 뿌리를 두고 있다. UN은 1953년에 미국과 영국의 방식을 상당 부분 반영한 ‘국민계정 체계’를 처음으로 발간했으며 이후 국제 표준으로 확대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GDP는 한 국가의 경제가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지표로 자리매김했으며, 여러 국가의 발전 정도를 계량화해 비교하는 잣대로도 활용된다.
‘국제비교가 가능한 지표’라는 지위를 얻게 된 GDP는 단순히 측정치를 넘어 경제적 규범으로 역할이 확대된다. 어떤 활동이 ‘생산적인가’를 판단하는 지표가 된 것이다. 그리고 어떤 행위가 국가에 이익을 주는지, 또 어떤 행위가 비용을 발생시키는지를 측정하느 기준이 됐다.
그런데 당시 만들어진 GDP는 절대적이며 객관적이며 불변의 가치 기준을 갖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줄곧 수정 보완되어 왔다. 즉 GDP의 집계 기준은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다. 수많은 사례가 있지만, 그 중 몇 가지를 살펴보자. UN은 2009년 ‘국민계정체계 2008’을 승인했다. GDP의 기반인 국민계정 작성기준을 바꾼 것이다. 세계 각국은 이 기준에 맞춰 새롭게 GDP를 산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새로운 기준을 적용하니 한국의 2010년 명목GDP는 이전 기준으로 측정했을 때와 같은 데이터로 비교했을 때 5.1%가 높아졌다. 한국의 상승률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았다. 스웨덴이 4.4%, 핀란드가 4.2%, 미국이 4.0% 높아져 한국의 뒤를 따랐다. 반면 멕시코와 이탈리아는 1.5%, 스페인은 1.6%, 캐나다는 1.7%, 영국은 2.3% 상승하는 데 그쳤다. OECD 회원국의 평균 상승률은 3.1%였다. GDP 작성기준의 변화만으로 한국, 스웨덴, 핀란드는 좀 더 나은 경제로 발돋움했고, 멕시코, 이탈리아, 스페인은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경제가 된 셈이다. 원인은 연구개발비와 무기지출 관련 기준 변경에 있었다.
연구개발비는 쓰고 없어지는 비용일까 축적되는 자산일까? 연구개발의 미래 가치는 어느 정도는 추정할 수 있겠지만, 완전히 알아낼 수는 없다. 상당 부분이 가치 판단의 문제다. 이전 기준에 따르면 기업 연구개발비는 생산 과정에 수반되는 비용으로 처리될 뿐, 부가가치로 여겨지지 않았다. 연구개발의 결과 생산된 제품이 팔려야만 매출과 이익이 발생하면서 부가가치로 인식되고, 그래야 GDP에 산입되는 체계였다. 그런데 새로운 기준에 따르면 연구개발비는 미래에 부가가치를 발생시킬 것으로 기대되는 지출, 즉 투자로 분류된다. 지출한 만큼 자산이 늘어나는 것으로 계산된다. 이것만으로도 2010년 기준 한국 명목GDP가 3.6% 올랐다. 미국, 독일, 프랑스 등을 압도했다.
군함이나 탱크 같은 무기에 들어가는 돈은 쓰고 없어지는 비용이라고 봐야 할까 아니면 미래에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자산으로 봐야 할까? 가치 판단의 문제다. ‘전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당시 기준 변경으로 무기 중 군함과 탱크 등 군사용 장비에 관한 지출도 고정자산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2010년 기준 명목GDP를 0.3% 높이는 효과로 나타났다는 연구가 나왔다. 한국 정부 지출 중 방위력개선비(군비지출)가 컸기 때문이다. 가장 큰 수혜를 본 나라는 0.5% 상승한 미국이었으며, 대부분 다른 나라는 우리나라보다 효과가 작았다.
연구개발이나 무기가 미래를 위한 투자라면, 교육은 어떨까? 흥미롭게도 GDP는 교육에 지출되는 비용을 투자로 간주하지 않는다. 소비지출일 뿐이다. 역시 가치판단의 영역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설비투자나 금융투자와는 달리 투자행위는 아닌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렇듯이, GDP는 가치중립적 계산과정을 거쳐 나온 지표가 아니다.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판단 기준을 상당부분 담고 있다. 그 판단 기준이 바로 우리 사회의 경제적 규범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GDP의 측정 대상은 애초에 국민의 삶의 질이 아니라 국가의 능력, 특히 전쟁을 치를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런 면에서 GDP는 매우 정치적이다.
참성장지표가 담은 가치
이재명 정부의 ‘진짜성장’은 이 시대의 맞는 경제성장의 모습을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GDP는 그런 모습을 측정하는 데 유용한 지표가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만일 이 지표가 잘못된 것이라면, 경제성장을 하겠다면서 벼랑 끝을 향해 엑셀을 밟으며 속도를 높이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우리는 현재의 GDP가 표상하는 ‘시장에서 화폐로 교환되는 경제적 가치’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시대를 맞고 있다. 국가 경제력 측정 문제가 처음 대두되었던 1930년대는 공황과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 생존하는 일이 지상의 과제였다. 생산 증대를 통한 양적인 경제성장이 최고의 가치로 받아들여졌던 시기다.
이에 비해 지금은 자본주의의 고도성장이 초래한 갖가지 부작용들, 기후위기와 생태계 파괴,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을 뛰어넘는 대안을 모색하고 실천해야 하는 시대다. 지속가능한 공존을 위해 우리 공동체의 가치와 이념, 목표 수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기인 것이다.

예를 들어, LAB2050이 개발한 ‘참성장지표’를 살펴보자. 참성장지표는 경제, 일과 여가, 인적자본, 디지털, 환경의 다섯 개 영역으로 나누어 우리 사회의 진정한 성장을 측정하는 지표다. 기존의 GDP는 이 가운데 경제 영역만을 측정하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참성장지표는 전세계의 다양한 대안지표 사례 가운데 GPI(Genuine Progress Indicators)를 출발점으로 삼아 한국 상황에 맞게 구축한 지표다.
참성장지표는 GDP와의 관점의 차이를 구체적인 지표로 드러낸다. 예를 들면, 참성장지표의 경제 부문을 살펴보자. 기존 GDP에서는 모든 소비지출을 부가가치 상승에 기여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참성장지표에서는 어쩔 수 없이 지출하는 ‘방어지출’은 성장에서 차감하는 방식으로 계산한다. 즉, 주거비나 안전유지비용 같은 소비지출 가운데 일부를 적절한 비중으로 차감한다. 집값 상승이나 안전문제 악화로 일어나는 추가 지출은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게 아니라 사회환경이 악화되는 데 대응하기 위해 지출하는 돈으로 보고, 부가가치 계산에서 제외하는 것이다. 다만 시장 거래의 중요성은 충분히 인정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소비지출은 성장으로 인정해 계산한다. 소비 자체가 가져다 주는 효용은 충분히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불평등이 커지더라도 평균소득만 늘어나면 성장으로 집계하는 GDP와 달리, 참성장지표의 경제부문에서는 불평등이 커질수록 성장분을 차감하는 방식으로 계산한다. 똑같이 소득이 100만원 증가했을 때, 이미 풍요로운 부유층이 느끼는 효용은 빈곤층이 느끼는 효용보다 낮을 것이라는 점에 착안한 계산법이다. 이밖에 GDP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무급가사돌봄노동의 가치, 인적자본의 가치,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무료 디지털서비스의 가치 등을, 참성장지표는 성장에 기여하는 것으로 게산한다. GDP에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 탄소배출, 폐기물 배출, 출퇴근 시간의 증가, 가사노동의 불평등 등은 비용을 발생시켜 성장을 저해하는 것으로 간주해 계산한다(최영준 등, 2022).
새로운 북극성이 필요하다
루스벨트나 케인스 시대의 화두가 우리 시대에도 똑같이 유효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쿠즈네츠의 지표를 2025년에 그대로 써야 할 이유도 찾기 어렵다. 로버트 케네디가 이를 비판한 지도 50년이 넘게 흘렀다. 시대 상황과 조건이 달라진 만큼 그에 부응하는 새로운 경제 지표가 필요하다. 당시와 지금 우리가 지향하는 성장의 내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로운 ‘진짜성장’의 길을 찾아야 하며, 이를 측정하고 규범화할 도구로서의 지표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국가는 여전히 케인스와 쿠즈네츠가 고안한 GDP 안에 갇혀 있다. 과거의 낡은 지표를 금과옥조로 삼아 정책의 방향을 설계하고, 집행하고, 평가하고 있다.
인류는 기후위기라는 절멸의 위기 앞에 서 있다. 인공지능은 우리 일자리와 삶의 질서를 통째로 바꾸고 있다. 우리나라는 자살률과 산재사망률이 세계 최악 수준인 곳이다. 출산율과 고령화 속도가 최악으로 치달으며 상당수 지역은 소멸되고 있다. 경제 중 일부만을 그것도 전국 평균으로 다루는 GDP 안에는 이 모든 이야기가 빠져 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방향을 새롭게 제시해줄 수 있는 가치 척도를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다.
해야 할 일은 많다. 우선 정부와 한국은행이 나서야 한다. 정부는 국정과제를 평가할 때 참성장지표처럼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가치를 담고 디지털 시대에 맞춘 지표를 활용해야 한다. 한국은행은 국민계정과 병행해 환경 사회적 가치를 담은 위성계정을 더 많이 개발하며 주기적으로 발표해, 통화정책 수립에도 이런 지표가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통계청은 현재 운영중인 삶의 질 지표를 확대해 정책지표가 될 수 있는 지표로 만들어가야 한다.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는 경제성장률 발표와 같은 주기로, 환경 및 사회적 가치를 담은 지표를 주기로 병행 발표해야 한다. 주기적으로 이뤄지는 경제 관련 통계 생산처럼, 사회환경 데이터 생산도 더 자주 더 많이 이뤄져야 한다. 생활시간조사, 디지털 서비스의 가치 측정, 탄소배출과 폐기물의 측정 등의 통계 등이 시급하게 강화되어야 할 조사들이다. 궁극적으로는 이 모든 데이터를 포괄한 시대에 맞는 새 국민계정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 갈 새로운 지표는 성장 지상주의의 굴레를 벗어나 지속가능성과 공존, 조화의 가치를 품어야 한다. 70년 동안 따라온 북극성, GDP는 지금 그 유통기한이 끝나가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대전환을 이끌 새로운 북극성이 필요하다. ‘진짜성장’은 새로운 북극성을 따라가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 미주 |
- 이 글은 2022년 2월 28일 <피렌체의 식탁>에 게재한 ‘소득지표 GDP 대신 삶의 지표 GPI를 제안한다’ 글을 일부 수정해 업데이트한 글입니다. ↩︎
| 참고문헌 |
· 국정기획위원회, 2025, 대한민국 진짜성장을 위한 전략, 국정기획위원회.
· 최영준, 손종칠, 윤자영, 반가운, 유정민, 이지웅, 윤선우, 고동현, 2022, 참성장지표 개발 연구, LAB2050.
월간<복지동향> 2025년 09월호(제3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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