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6 2026-01-01   70892

[복지칼럼] 5년의 저주를 넘어서

윤홍식ㅣ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재명 정부의 2년 차가 시작되었다. 돌이켜보면 민주화 이후 우리의 정치 시계는 늘 부푼 희망의 새벽에서 시작해, 쓸쓸한 환멸의 황혼으로 저물곤 했다. ‘민주 정부’라는 간판을 걸고 출범한 정부는 저마다 “내 삶을 바꾸겠다”고 약속했지만, 5년 뒤 우리가 받아 든 성적표는 늘 당황스러웠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과 더욱 가파르게 벌어진 불평등, 그리고 청년들의 자조 섞인 한숨. 도대체 왜, 민주적 선거로 권력을 교체해도 우리의 고단한 삶은 도돌이표처럼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일까?

비극의 본질은 무대 위 배우들의 ‘무능’이나 ‘의지’에만 있지 않다. 진짜 문제는 배우가 바뀌어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낡고 견고한 무대 장치’에 있다. 5년짜리 정권이 실패하는 이유는 집권 세력이 게을러서, 무능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넘어서야 할 구조라는 장벽이 너무나 거대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지지율이라는 숫자에 쫓기며 단기 처방에 급급했던 지난 시간 동안, 한국의 사회·경제적 위기를 잉태하는 근본적인 시스템, 바로 ‘성장 방식’은 단 한 번도 제대로 수술대에 오르지 않았다.

우리가 겪는 모순의 뿌리는 1960~70년대, ‘권위주의 반공개발국가’가 설계한 차가운 청사진 속에 닿아 있다. 경제만 성장하면,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 당시 정권은 체제 경쟁 승리라는 명분 아래 ‘선(先) 성장 후(後) 분배’를 국시로 삼았다. 국가는 재벌 대기업 중심의 수출 주도 성장을 설계했고, 노동자의 권리와 시민의 복지는 “나중에 잘살게 되면”이라는 유예된 약속 속에 묻어두었다. 복지의 빈자리는 오직 가족의 희생으로 메워야 했다.

안타까운 일은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이 ‘성장 방식의 톱니바퀴’가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니, 오히려 세계화라는 흐름을 타고 수출 대기업 중심의 독주 체제는 더욱 공고해졌다. 역대 민주 정부들은 복지 지출을 늘리고 안전망을 짜기 위해 분투했다. 하지만 ‘성장 방식’ 자체가 만들어내는 노동시장의 거대한 이중구조(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를 방치한 채, 쏟아지는 물을 바가지로 퍼내는 식의 복지 확대는 한계가 명확했다. 시장이라는 원천에서 불평등이 콸콸 쏟아지는데, 재분배라는 모래주머니로 그것을 막기에는 재정적·정치적 한계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위기의 원인인 성장 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복지가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는 분명했다. 개혁 세력이 번번이 좌절한 이유는 바로 이 지점, 경제정책(성장)은 기득권의 논리에 맡겨두고, 사회정책만으로 위기를 봉합하려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실 정말 복지확대를 통해 시장이 만드는 문제를 완화하려고 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이 거대한 딜레마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5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반세기 동안 굳어진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구조를 깨트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략적 병행’이다.

개혁적인 정부는 두 개의 전장에서 동시에 승리해야 한다. 첫째, 개혁 정부는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단기적인 효능감’을 반드시 증명해야 한다. 당장 주거비의 고통을 덜어주고, 돌봄의 짐을 국가가 확실히 나눠지는 ‘피부에 와닿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포퓰리즘이 아니다. 더 깊은 수술을 감행하기 위해 환자의 체력을 비축하는 일이다. 이러한 정치적 지지기반 없이는, 기득권의 저항이 따르는 구조 개혁을 밀고 나갈 동력을 얻을 수 없다.

둘째, 이러한 성과를 발판 삼아 임기 내내 성장 방식의 근본적 전환을 위한 주춧돌을 충실히 놓아야 한다. 단기 부양책의 유혹을 넘어, 장기적으로 생산과 분배의 물길을 바꾸는 과감한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을 쥐어짜는 대기업의 약탈적 관행과 대기업이 주도하는 숙련노동을 우회한 제조업 수출에만 의존하는 구조를 끊어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제조업과 서비스업, 노동자의 숙련과 자동화(인공지능), 내수와 수출이 균형적인 생산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과감한 증세를 통해 국민의 삶의 토대를 닦는 보편적 복지 확대도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성공’했다. 하지만 그 성공은 불평등으로 대표되는 사회경제적 위기의 심화를 대가로 한 ‘이상한 성공’이었다. 이제 이 이상한 성공의 덫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5년 단임 정권이 반복적으로 실패하는 이유, 우리가 이상한 성공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민주적으로 집권한 정부가 임기 내에 성과를 내려는 조급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의 문제를 외면하고, 중장기적 구조 개혁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단기적 민생 문제에 대응해야 한다. 하지만, 정권 교체가 무의미하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기대와 환멸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가 중장기적 개혁도 병행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씨앗을 심고, 다음 민주당 정부가 그 숲을 보게 하겠다는 역사적 책임감이 필요하다.

취임식의 뜨거운 함성으로 시작해, 떠나는 뒷모습을 향해 존경의 박수가 쏟아지는 대한민국 헌정사 최초의 ‘아름다운 완주’가 되기를 소망한다. 내란을 지지하는 세력에게 다시 정권을 내줄 수는 없지 않은가.

월간<복지동향> 2026년 1월호(제3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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