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욱ㅣ호서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우리는 매일 수많은 ‘일하는 사람’을 만난다. 새벽에 음식을 배달하는 라이더, 화면 너머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1인 창작자, 학원에서 수업하는 강사, 소프트웨어를 납품하는 프리랜서 개발자. 이들은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지만, 정작 법 앞에서는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가장 기본적인 보호조차 받지 못한다.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이 전제하는 노동의 모습, 즉 한 사업장에 소속되어 정해진 시간에 일하는 전통적 임금노동자 모델은 이미 현실과 크게 괴리되어 있다. 국세청 인적용역 사업소득세 납부자가 870만 명에 이르는 오늘날, 법의 울타리 바깥에 놓인 노동자의 규모는 더 이상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노동시장의 구조적 현실이 되었다.
이번 호 기획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최근 22대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잇따라 발의하고 정부가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일하는 사람 기본법」을 노동정책, 노동법, 사회정책, 노사관계라는 네 가지 시선으로, 입체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한다.
첫 번째 글에서 김종진 소장은 870만이라는 숫자의 실체를 드러낸다. 지난 10년간 3.3% 사업소득 납부자가 두 배 이상 증가했지만, 고용보험 가입률은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실업급여 수급은 사실상 유명무실한 현실을 짚는다. 동시에 ILO의 플랫폼노동 협약 추진, EU의 플랫폼노동 지침 채택, 싱가포르·멕시코·우루과이의 입법 동향까지 조망하며, 국제사회가 ‘노동자인가 아닌가’라는 이분법을 넘어 ‘일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는 무엇인가’로 논의의 축을 옮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본법은 단지 하나의 법률이 아니라 연쇄적 법률 개정의 출발점이라는 그의 진단은, 이 입법이 갖는 전략적 의미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박은정 교수의 두 번째 글은 노동법의 시각에서 이 법의 규범적 의의를 탐구한다. 「헌법」 제32조가 ‘모든 국민’의 근로의 권리를 선언하고 있음에도, 그 실질적 보호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한정되어 온 역사적 간극을 지적하며, 「일하는 사람 기본법」을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한 일종의 ‘권리장전’으로 자리매김한다. 기본법이라는 형식이 지니는 구조적 한계, 즉 선언적 성격에 머물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짚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기본계획 수립 의무화, 후속 개별법 정비, 지방자치단체의 집행 체계 구축이 뒤따라야 한다고 역설한다.
세 번째 글에서 남재욱 교수는 사회보장의 렌즈로 이 법을 바라본다. ‘전국민 고용보험’이라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노무제공자 80만 명 가입에 그치고, 구직급여 수급률이 0.9%에 불과한 현실은 기존 사회보험 체계의 근본적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그는 「일하는 사람 기본법」이 직종 제한 없이 권리 주체를 포괄적으로 규정함으로써 사회보장 사각지대 해소의 법적 기반이 될 수 있으며, 투명한 계약·적정 보수·안전과 건강 등 제반 권리의 보장이 사회보험의 실질적 작동을 뒷받침한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남우근 소장의 마지막 글은 집단적 노사관계의 관점에서 이 법의 영향을 가늠한다. 기본법이 단체교섭권까지 명시하지 못한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면서도, 프리랜서까지 포괄하는 단체 결성권의 확인, 공정거래법과의 충돌 해소, 교섭의제의 확대 등 실질적 효과를 전망한다. 특히 일하는 사람의 노사관계가 개별 기업을 넘어 업종 차원의 공정 경쟁과 지속가능성을 모색하는 ‘사회적 대화’의 성격을 띨 수 있다는 통찰은, 새로운 노동 환경에 걸맞은 노사관계의 상을 제시한다.
네 편의 글을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가 있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은 그 자체로 완결된 해답이 아니라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기본법이라는 형식이 불가피하게 수반하는 추상성과 선언적 성격은 분명 한계이지만, 바로 그 기본법이 개별법 개정의 방향을 설정하고, 정책적 후속 조치를 견인하며, 궁극적으로 노동법 체계 전체의 재편을 촉진하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 근로자 추정제와의 결합, 사회보험법의 적용 확대, 산업안전보건법의 정비 등 수많은 과제가 이 법 뒤에 줄지어 서 있다.
노동이란 단지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한 사람의 존엄과 사회적 시민권의 토대다. 계약서의 형식이 고용인지 도급인지, 플랫폼을 경유하는지 아닌지에 따라 그 존엄의 크기가 달라져서는 안 된다. 870만이라는 숫자 뒤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있다. 이번 기획이 「일하는 사람 기본법」을 둘러싼 논의를 더 넓고 깊게 만드는 데 작은 보탬이 되기를, 그리하여 일하는 모든 사람이 마땅한 보호와 권리를 누리는 사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소망한다.
월간<복지동향>2026년 4월호(제3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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