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6 2026-06-10   80601

[기획5] 지역사회통합돌봄은 탈시설의 언어를 가져야 한다

송아영 | 연세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지역사회거주, 주거권, 그리고 돌봄의 재구성 

2024년에 제정된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통합돌봄법」)과 함께 시범사업과 평가, 그리고 세부 시행령 등의 마련을 거쳐 2026년 3월 드디어 통합돌봄이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동법 제1조에서는 다음과 같이 본 법의 목적을 설명한다.

“이 법은 노쇠, 장애, 질병, 사고 등으로 일상생활 수행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살던 곳에서 계속하여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의료·요양 등 돌봄 지원을 통합·연계하여 제공하는 데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건강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하고 증진하는 데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통합돌봄의 시작은 돌봄을 더 이상 개인과 가족의 책임으로만 두지 않고, 지역사회와 공공이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제도적 형태를 갖추고 시행된 첫걸음으로 그 의미가 깊다. 그러나 우리는 출발이 곧 도착을 의미하지는 않음을 잘 알고 있다. 통합돌봄이 실제로 지역사회에서 작동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대상자의 범위, 서비스의 충분성, 지방자치단체의 역량, 재정 기반, 보건·의료·요양·복지 간 연계, 지역 간 격차 등은 이미 자주 지적되는 주요 한계이다. 하지만 오늘 이 글에서 필자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돌봄은 어디에서 이루어지는가?

돌봄이 지역사회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면, 그 지역사회는 구체적으로 어디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통합돌봄법」의 목적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병원이나 시설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곳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그 삶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공간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결국 ‘집’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집은 돌봄의 배경이 아니라 돌봄이 가능해지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된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 소위 ‘요보호’ 대상자에 대한 정책과 서비스를 시설을 중심으로 설계해 왔다. 전문성과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돌봄과 서비스는 관련 전문시설에서 제공되었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장소에서 분리된 채 시설 안에서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로 살아왔다. 이 과정에서 이들에게 ‘살던 곳’은 오래전에 잊혀졌다. 혹자는 시설도 일종의 ‘집’으로 볼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의 존엄성, 자율성, 사생활, 독립성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시설은 집이라고 보기 어렵다.

바로 이 지점에서 통합돌봄은 탈시설의 문제와 만나게 된다. 집이 돌봄의 기본 조건이라면, 시설을 돌봄의 자연스러운 장소이자 보호가 필요하다고 여겨진 사람들의 사실상 주거지로 간주해 온 기존 체계 자체를 다시 물어야 한다. 시설이 집을 대신할 수 있다고 보는 한, 통합돌봄은 시설 안에 머물러 온 사람들을 지역사회 주민으로 회복시키는 정책이 되기 어려우며, 반쪽짜리 통합돌봄으로 남게 될 것이다. 통합돌봄이 말하는 ‘지역사회에서의 삶’은 현재 지역사회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만 허용되는 삶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시설과 병원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던 사람들에게도 열려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장의 본질은 분명하다. 지역사회통합돌봄은 현재 지역사회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연결하는 정책에 그쳐서는 안 된다. 통합돌봄은 돌봄서비스를 지역사회에서 받지 못해 시설이나 병원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던 사람들, 그래서 시설에 거주하거나 병원에 장기입원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다시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비전까지 포함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통합돌봄은 반드시 탈시설 논의와 만나야 하며, 그 중심에는 주거정책이 놓여야 한다. 

통합돌봄은 ‘이미 지역사회에 사는 사람’만을 위한 정책인가 

통합돌봄은 살던 곳에서의 삶을 강조한다. 이는 돌봄 패러다임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이다. 병원이나 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 안에서, 가능하다면 자신이 살아온 집과 동네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은 돌봄사회에서 핵심적인 가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살던 곳’이라는 표현은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통합돌봄에서 이야기하는 ‘살던 곳’이 단지 현재의 거주지만 의미한다면, 통합돌봄은 이미 지역사회에 집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연결하는 정책 정도로 축소될 수 있다. 그렇다면 장애인거주시설에서 10년, 20년을 살아온 사람에게 ‘살던 곳’은 시설인가. 정신의료기관에서 장기입원 중인 사람에게 ‘살던 곳’은 병원인가. 노숙인 생활시설에서 오랜 기간 살아온 사람에게 시설은 그들에게 진정한 의미의 집이 되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통합돌봄이 현재의 거주 상태를 그대로 전제하는 정책인지, 아니면 시설과 병원에 머물러 온 사람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를 회복하도록 돕는 정책인지에 관한 근본적 질문이며, 통합돌봄에서 탈시설 논의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탈시설은 단순히 시설을 폐쇄하자는 구호가 아니다. 탈시설은 ‘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시설에서 살아야 한다’라는 오래되고 낡은 전제 자체를 바꾸는 과정이다. 시설 밖으로 나오는 것만이 아니라, 지역사회 안에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주거, 소득, 건강, 돌봄, 관계, 권익옹호를 재구성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따라서 통합돌봄은 탈시설 이후에 덧붙는 서비스 연계정책이 아니라, 탈시설을 가능하게 하는 지역사회 기반정책이어야 한다.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집이 없고, 그 집에서 필요한 지원이 연결되지 않는다면 탈시설은 불가능하다. 반대로 탈시설을 통합돌봄의 핵심 과제로 삼지 않는다면, 통합돌봄은 이미 지역사회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제한적 제도에 머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통합돌봄의 진정한 목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시설은 주거가 아니다 

한국의 사회복지체계는 오랫동안 시설을 보호의 장소이자 돌봄의 장소로 이해해 왔다. 돌봄이 필요한 아동, 장애인, 노인, 노숙인, 정신질환자 등 다양한 집단에 대해 가족이 돌보기 어렵거나 지역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하기 어렵다면 시설에서 보호한다는 방식이 보편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여졌고, 지금까지도 그 방향성은 유지되고 있다. 이 체계가 수행해 온 역사적 기능을 단순히 부정하는 것도, 그동안 시설에서 돌봄과 서비스를 제공하며 노력해 온 많은 시설 종사자들의 수고를 폄하하려는 것도 아니다. 지역사회 지원체계가 거의 부재했던 시기, 시설은 생존의 마지막 안전망이자 공적 보호의 거의 유일한 형태였던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제는 더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시설은 주거가 아니다.”

시설은 잠을 자고 생활하는 공간을 제공할 수는 있지만, 주거권이 보장되는 집과 동일하지 않다. 주거는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주거는 사생활, 선택, 관계, 통제감, 지역사회 참여, 자기결정이 실현되는 삶의 기반이다. 반면 생활시설은 본질적으로 집단적 규칙, 관리, 배치, 통제, 입퇴소 절차, 서비스 제공자의 권한을 전제로 한다. 아무리 좋은 시설이라 하더라도 시설은 개인의 집과 같아질 수 없다.

이 차이는 최근 탈시설 논쟁에서 제기되는 ‘시설에 거주할 권리도 주거권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과도 관련된다. 물론 어떤 사람도 원하지 않는 지역사회 거주를 강요받아서는 안 된다. 탈시설은 자기결정권에 기반하여야 하며, 또 다른 강제적 선택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시설 거주를 주거권의 한 형태로 간단히 인정하는 순간, 국가는 시설을 대체할 지역사회 주거와 지원서비스를 만들 책임을 약화시킬 수 있다. 선택권은 시설과 방치 사이에서 고르는 것이 아니며, 진정한 선택권은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실제 조건이 충분히 마련될 때 가능해진다.

한국의 현실에서 시설 중심성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다. 2024년 기준 전국 장애인거주시설은 1,524개소, 거주 인원은 26,987명으로 제시된다.1 2노숙인 영역에서도 시설 중심성은 뚜렷하다. 2024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노숙인 등은 12,725명이었고, 그중 시설 노숙인은 6,659명으로 전체의 52.3%를 차지했다. 시설 노숙인은 자활시설 1,126명, 재활시설 2,908명, 요양시설 2,625명으로 구분된다. 정신건강 영역에서도 병원과 시설은 여전히 지역사회 지원의 부족을 떠안고 있다.3 2023년 국가 정신건강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정신의료기관 입원환자의 비자의 입원율은 36.5%였고, 중증 정신질환자의 퇴원 후 1개월 이내 동일병원 재입원율은 16.1%였다.4 최근 국가정신건강센터가 발표한 2019~2023년 동향 보고서도 퇴원 후 1개월 이내 외래방문율이 2019년 67.7%에서 2023년 66.1%로 소폭 낮아졌고, 동일병원 재입원율은 18.6%에서 16.1%로 줄었다고 설명한다.5 이러한 수치가 곧바로 사회적 입원의 규모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퇴원 이후 지역사회 기반이 충분하지 않을 때 병원이 주거와 돌봄의 공백을 떠안게 될 가능성을 상상하게 한다.

시설 거주와 사회적 입원의 공통 기반은 주거 부재다 

통합돌봄과 탈시설의 연결고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설 거주와 장기입원을 개인의 돌봄 필요만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 많은 경우 시설과 병원은 돌봄 필요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지역사회 주거와 지원의 부재가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은 단지 질병이나 장애가 있어서 시설에 가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집과 지원이 없기 때문에 지역사회에서 계속 거주할 권리를 박탈당하게 되면서 별다른 대안이 존재하지 않아 시설과 병원에 머물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정신건강 영역에서 이 문제는 특히 분명하다. 국가정신건강현황 보고서는 2023년 정신의료기관 입원환자의 비자의 입원율이 36.5%이고, 중증 정신질환자의 퇴원 후 1개월 이내 외래방문율은 66.1%, 퇴원 후 1개월 이내 동일병원 재입원율은 16.1%라고 제시한다. 또한 정신의료기관 재원기간, 정신요양시설과 정신재활시설 현황 등을 주요 지표로 다루고 있다.6

이러한 수치는 의료적 필요만이 아니라 퇴원 이후의 지역사회 기반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함께 묻도록 한다. 퇴원할 집이 없거나, 집은 있지만 혼자 생활하기 어렵거나, 증상 악화 시 즉각적인 지원을 받을 수 없거나, 가족에게 돌봄 부담이 집중되는 경우 병원은 쉽게 가장 안전한 곳 또는 현실적으로 유일한 대안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대안의 부재로 인해 병원이 주거의 대체물이 되는 순간, 의료는 돌봄과 주거의 부재를 떠안게 되고 개인의 지역사회 거주권과 주거권은 박탈된다.

노숙인 시설, 장애인거주시설, 요양시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시설은 개인의 욕구 때문만이 아니라 지역사회가 그 사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속된다. 지역에서 거주하며 스스로를 돌보기에 돌봄서비스가 충분하지 않아서, 활동지원 서비스 시간이 부족해서, 높은 주거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보증금을 마련할 수 없어서, 집주인이 임대를 거부하거나 임대 연장을 하지 않아서, 지역사회 관계망이 없어서, 사람들은 시설에 남고 변화하지 않는 지역사회 환경 속에서 시설 거주는 장기화된다. 그리고 시간이 길어질수록 시설은 임시 보호의 역할을 잃고 사실상의 거주지가 된다.

장기요양보험이 시작되면서 노인돌봄의 사회화가 본격화되었지만, 그 사회화의 경로가 언제나 지역사회 거주를 강화하는 방식으로만 전개된 것은 아니다. 제도상 장기요양급여는 재가급여 우선 원칙을 두고 있지만, 장기요양보험 도입 이후 시설급여기관과 요양병원이라는 시설·병원 기반 인프라도 함께 확대되었다. 다음의 [그림1]과 [그림2]의 그래프는 노인돌봄의 사회화가 재가서비스 확대와 함께 시설 중심의 장기돌봄 인프라 확대를 동반해 왔음을 보여준다.

장기요양보험 시설급여기관 수 추이(2008-2024)
장기교양보험 시설급여기관 정원 추이(2008-2024)



물론 시설과 병원이 늘어난 사실만으로 그것이 곧바로 부정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문제는 시설과 병원이 지역사회 주거와 돌봄의 공백을 대체하는 방식으로 기능할 때 발생한다. 시설에 오래 머물렀다는 이유로 시설이 집이 될 수는 없다. 오래 입원했다고 병원이 집이 될 수 없듯이, 오래 시설에 살았다고 시설이 주거권의 충분한 실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통합돌봄이 지역사회 계속 거주를 말하고자 한다면, 이제 질문은 ‘어떻게 시설을 더 잘 운영할 것인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질문은 ‘어떻게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들 것인가’로 바뀌어야 하고 그 기반에 집이 있어야 한다.

지역사회통합돌봄과 탈시설은 분리될 수 없다 

장애인거주시설에 사는 사람이 지역사회로 나오려면 집이 있어야 한다. 자신만의 집에서 활동지원, 방문간호, 이동지원, 동료지원, 권익옹호, 응급대응체계의 서비스와 돌봄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 정신의료기관에서 퇴원하려는 사람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안정적인 주거와 지역사회 정신건강서비스, 위기개입, 소득보장, 고립을 줄이는 관계망이 필요하다. 노숙인 시설에서 살아온 사람이 거리나 쪽방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정착하려면 임대차를 유지할 수 있는 주거지원과 생활지원이 필요하다.

이렇듯 탈시설은 시설에서 나오는 순간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탈시설은 지역사회에서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집이 있을 때 시작된다. 그리고 그 집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지원이 있을 때 지속되고 진정한 삶에 있어서의 자기통제권과 자기결정권이 완성된다.

이러한 관점은 해외의 지역사회 기반 돌봄정책에서도 확인된다. 영국의 Disabled Facilities Grant는 장애인과 고령자가 자신의 집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문턱 제거, 경사로 설치, 욕실 개조, 난방·조명 조작 개선 등 주거환경개선 비용을 지원한다.7 이는 집을 고치는 일이 단순한 주거복지가 아니라 시설 입소와 돌봄 의존을 예방하는 돌봄정책의 일부임을 보여준다. 호주의 NDIS는 접근 가능한 주거인 Specialist Disability Accommodation과 일상생활 지원서비스인 Supported Independent Living을 구분하면서도 개인별 계획 안에서 함께 설계한다.8 이는 지역사회 거주가 물리적 주택과 생활지원서비스의 결합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핀란드의 Housing First 정책 역시 노숙인 시설과 임시숙소 중심의 대응을 영구주거와 맞춤형 지원 중심으로 전환해 왔다.9 이 사례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바는 분명하다. 지역사회 돌봄은 서비스만으로 완성되지 않으며, 주거와 주거유지지원이 결합될 때 비로소 탈시설은 현실적인 선택지가 된다.

그럼에도 현재 통합돌봄 논의에서 주거는 주변부에 머물러 있다. 통합돌봄은 의료·요양·돌봄서비스의 연계, 사례관리, 지자체 전달체계, 건강보험공단과 지자체의 역할 분담 등을 중심으로 논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돌봄 서비스의 속성을 고려하였을 때 이러한 논의는 중요하다. 그러나 ‘어디에서 살 것인가’라는 질문이 빠진 통합돌봄은 불완전하다. 통합돌봄에서 AIP(Ageing in Place)를 주장하지만 P(Place)가 빠지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서비스는 공간을 필요로 한다. 방문요양, 방문간호, 재활, 식사 지원, 응급안전서비스는 모두 누군가의 집을 전제로 한다. 그 집이 없거나, 그 집이 안전하지 않거나, 그 집에서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구조라면 통합돌봄은 충분히 그리고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어렵다.

장애인 탈시설 정책에서도 이미 이 점은 확인된다. 보건복지부는 2021년 8월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을 발표하고 2041년까지 단계적 환경조성 계획을 마련했다. 또한 2022년부터 2026년까지 장애인 자립지원 시범사업을 추진하며, 장기거주시설 장애인과 시설 입소 가능성이 높은 재가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주택, 일자리, 자원관리 등 지역사회 자립 전후의 통합적 지원을 제공하고 2027년 본사업 전환을 계획하고 있다. 이는 탈시설이 단순한 퇴소지원이 아니라 주거와 생활 전반의 전환지원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통합돌봄은 바로 이 전환을 제도 중심으로 끌어와야 한다. 통합돌봄의 대상은 현재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시설과 병원에서 지역사회로 전환할 필요가 있는 사람을 포함해야 한다. 통합돌봄의 개인별 지원계획은 서비스 계획만이 아니라 주거계획을 포함해야 한다. 어디에서 살 것인지, 현재 주거가 안전한지, 주택개조가 필요한지, 독립주거가 가능한지, 지원주택이 필요한지, 임대료와 보증금은 감당 가능한지, 위기 시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까지 포함해야 한다.

나가며: 돌봄 받을 권리와 지역사회에서 살 권리는 함께 가야 한다

통합돌봄은 한국 복지국가가 돌봄을 새롭게 사회화하려는 중요한 시도이며, 앞으로 복지국가의 성격을 규정할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통합돌봄이 단순히 기존의 분절된 서비스를 조정하고 연계하는 정책에 머문다면, 시설과 병원에 머물러 온 사람들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서비스의 부재만이 아니라, 그동안의 시설 중심 보호체계가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을 지역사회로부터 분리하고, 삶의 장소를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제한해 왔다는 데 있다. 보호라는 이름 아래 제공된 돌봄이 개인의 존엄, 자율성, 사생활, 관계 맺기, 주거 선택권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사회권의 실질적 보장이라기보다 제한된 형태의 보호에 가까웠다고 보아야 한다.

사회권은 단지 생존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권리로 축소될 수 없다. 돌봄 받을 권리는 어디에서,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지를 선택할 권리와 분리될 수 없으며, 이러한 권리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안정적이고 적절한 주거가 보장되어야 한다. 시설이나 병원이 사실상의 거처가 되어온 현실은 돌봄의 필요가 곧 주거권의 축소로 이어져 온 구조를 보여준다. 따라서 통합돌봄이 진정한 권리 기반 정책이 되기 위해서는 시설 안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을 개선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시설과 병원 밖에서 살아갈 수 있는 조건, 즉 지역사회 안의 집과 그 집에서 작동하는 돌봄과 지원을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통합돌봄의 성패는 더 많은 서비스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연계하느냐에만 달려 있지 않다. 그것은 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시설과 병원에 머무는 보호대상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지역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구성할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 볼 것인지의 문제이다. 기존의 시설 중심 보호체계가 허울 좋은 사회권 보장에 머물렀던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보호는 제공되었지만 선택권은 제한되었고, 서비스는 있었지만 집은 없었으며, 생존은 가능했지만 존엄한 삶의 조건은 충분히 보장되지 않았다. 통합돌봄이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려면 탈시설과 주거권을 제도의 주변부가 아니라 중심에 놓아야 한다. 앞서 살펴본 해외 사례들 역시 통합돌봄과 탈시설이 서비스 연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거와 주거유지지원의 제도화를 통해 가능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집은 시설이나 병원의 다른 이름이어서는 안 된다. 통합돌봄이 진정으로 지역사회에서의 삶을 말하려면 탈시설과 주거권을 제도 중심에 놓아야 한다. 시설 밖으로 나오는 것이 탈시설의 끝이 아니다. 지역사회에서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집, 그 집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지원, 그리고 그 삶을 권리로 보장하는 제도가 있을 때 탈시설은 비로소 시작된다.

통합돌봄의 성패는 결국 이 질문에 달려 있다. 

‘우리는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시설 밖의 집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미주

  1. 보건복지부. 2025. 「2025 장애인복지시설 일람표」 ↩︎
  2. 보건복지부. 2026. 「보건복지부_장애인 거주시설 수 및 입소 현황_20241231」. 공공데이터포털 ↩︎
  3. 보건복지부. 2025. 「2024년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 결과 발표」. 보도참고자료. ↩︎
  4. 국립정신건강센터. 2025. 「국가 정신건강현황 보고서 2023」 ↩︎
  5. 국립정신건강센터. 2025. 「국가 정신건강현황 동향 보고서 2019~2023」 ↩︎
  6. 국립정신건강센터. 2025. 「국가 정신건강현황 보고서 2023」 ↩︎
  7. UK Government. “Disabled Facilities Grants: Overview.” GOV.UK. ↩︎
  8. National Disability Insurance Scheme. “What is supported independent living (SIL).” NDIS. ↩︎
  9. OECD. “Housing First: How Finland is ending homelessness.” OECD. ↩︎

월간<복지동향> 2026년 6월호(제3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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