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6 2026-07-10   34067

[복지칼럼] 우석균이 남긴 복지운동의 발자취

정형준  |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처장

우석균 선생님이 지난 6월 7일 작고하셨다. 그는 사회운동 전반에 참여해 큰 업적과 영향을 남겼다. 개인적으로 나에게는 사회운동의 스승이었고, 동지였고, 지도자였다. 대중적으로 한미 FTA 협정 당시 보건 부분의 핵심 전문가로 널리 알려졌고,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투쟁에서도 중요 전문가로 활약을 했다. 그는 의사이자 보건의료 전문가였으며, 행동하는 사회운동가이기도 했다. 항상 거리에서 시민들과 함께하고 발언하고 연대해왔다. 2001년 글리벡 공대위,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반대 점거 농성, 2014년 세월호 천막 농성, 2016년 과잉 진압에 따른 백남기 어르신 사망사건, 2016년 박근혜 탄핵 투쟁, 최근 윤석열 퇴진 투쟁까지 노동자, 서민,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에 빠진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미 여러 언론을 통해 우석균 선생님의 사회운동에서의 역할과 기릴 점에 대해서는 다양한 신문기사와 부고 글들이 많이 나와 있다. 방송도 있으니, 고인에 대해서 더 알고 싶은 분들은 찾아서 살펴보면 좋겠다. 

우석균 선생님의 사회운동에 대한 기여와 유산은 여러 측면에서 되짚을 가치가 있으나, 이번에는 복지운동에서 그의 발자취를 기록하고 그 유산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그는 복지운동에서는 ‘부자에게 세금을, 빈자에게 복지를!’ 이란 주장을 중심에 두고 복지국가 운동을 지지했다. 그에게 사회복지는 노동자, 서민의 투쟁을 통해 쟁취해야 할 권리였고, 권력자들이나 부자들이 시혜적으로 제공하는 사회정책이 아니었다. 그래서 지난 40여 년 간 중요한 복지 쟁점이나 사회적 난제에서 그는 언제나 노동자, 서민의 편에서 복지정책을 사고했고 논쟁했고, 행동했다. 이 과정에서 지식인으로서 다양한 학자, 전문가들과 수많은 논쟁을 벌였으며, 그에 기반을 둔 대중행동을 조직했다. 그리고 정책적 과제에서도 본인의 입장을 가다듬고 발전시켰다. 그중 중요한 몇 가지 유산에 대해서 정리를 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2000년 의약분업을 둘러싼 의사집단의 집단진료 거부에 대한 그의 투쟁과 예리한 분석이다. 혹자는 의약분업을 약가마진 감소에 불만을 가진 의사집단(주로 개원의들)의 경제투쟁으로 평가하지만, 그는 당시 의사집단의 진료거부를 단순한 의사집단만의 경제적 저항으로 보지 않았다. 2000년은 한국의 건강보험 정책에서 중요한 해인데, 조합방식의 건강보험이 단일 보험자인 국민건강보험으로 통합되어 출범된 해다. 건강보험통합은 1990년대 수많은 저항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시민들의 연대 투쟁으로 쟁취한 사회복지 운동의 성과다.

건강보험통합은 단순히 가난한 지역조합들을 통합해 단일 건강보험 재원을 만드는 작업이 아니었다. 통합은 근본적인 목표인 주요 선진국처럼 건강보험으로 대부분의 의료행위가 보장되고, 시민들은 무상의료에 가까운 의료서비스를 받게 하는 과정의 조건으로 주창된 과제였다. 그 때문에 건강보험 통합 이후 획기적 보장성 강화, 기업과 부자들의 보험기여 확대, 건강보험을 통한 영리적 의료행위의 규제, 지불제도 개편, 공공의료 확대 등이 계획되어 있었다. 건강보험의 확대는 궁극적으로 민영보험 시장의 축소, 영리적 의료의 축소, 공공의료의 확대로 나아가게 된다는 점에서 반복지 세력은 1995년부터 조합 방식의 건강보험 운영을 지지하면서 민영보험 확대, 민간 병원 중심 의료공급, 비급여 존속 등을 주장했다. 하지만 건강보험 통합과제가 개혁 과제로 대세에 오르자, 이들 반복지 세력은 가장 기본적인 개혁인 의약분업 정책조차 문제를 제기하면서, 복지 확대의 단초를 막으려 들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성공해서 건강보험 통합 이후에도 한국은 가까운 대만이나 일본이 도달한 높은 보장 수준의 보편적 의료보장제도에 도달할 수 없었다.

그렇게 된 여러 가지 이유 중 가장 중요한 역사적 질곡은 의약분업 정책에 대한 의료공급자의 완강한 저항을 핑계로 수많은 반복지 세력이 의료제도 개혁을 좌절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큰 틀에서의 의료정책 전반, 복지정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우석균 선생님은 파악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의사들의 2000년 집단 진료 거부는 ‘의약분업 반대’ 라는 매우 낮은 수준의 의료개혁에 대한 경제적 저항으로 보였으나, 그 이면에는 건강보험 정책 전반의 개혁에 저항하는 자본의 후원과 조장이 있었다. 실제로 병원자본, 제약자본, 보수언론, 보수정치세력 모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의약분업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의사집단의 집단행동을 조장하거나 일부 지원했다. 당시 한나라당이나 조선일보는 의사들의 진료 거부보다 개혁 과제에 대한 비난에 더 열을 올리고 있었고, 일부 전문가들은 이를 수수방관하거나 양비론을 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석균 선생님은 의사로서 수많은 의사의 집단행동이 정의롭지 않음을 논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의약분업 정책에 대한 보수우파와 반복지 세력의 반대를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는 당시 상당수 개혁주의적 의사들도 동료들을 옹호하거나 양비론에 있을 때조차 의사들의 부당한 집단진료 거부를 반대하고, 양심적이고 개혁적인 의사들과 연대했다. 이 때문에 당시 진료거부를 비판한 소수의 의사들과 마찬가지로 친한 동료 의사들, 선후배들, 의사단체 회원들의 비난과 따돌림을 받았음에도 마지막까지 글을 쓰고, 토론하며 반복지적 시도를 저지하려 노력했으며, 그런 토론과 분석은 이후 건강보험 정책과 의료 공급에 대한 입장에 가로 새겨져 있다.

한편으로 단순하게는 의사로서의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동료 의사들과도 처절하게 논쟁하였고, 결과적으로 보편적 건강보장 정책과 무상의료정책을 지지하고 연대할 후배들과 그 자원들을 양성했다. 만약 당시 무늬만 개혁을 표방한 의사단체나 보건의료 전문가들처럼 의약분업 투쟁을 지지하거나 양비론으로 접근했다면, 아마도 한국 사회복지의 미래는 더욱 암울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자본 종속적 태도는 벗어나기 어려워졌을 것이다. 결국 이런 투쟁에서 ‘암부터 무상의료’, ‘공공의료 강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같은 쟁점은 더욱 구체적으로 발전하게 되고, 이를 정리한 것이 우석균 선생님의 복지 운동에서의 큰 업적이다.

두 번째는 사회복지와 건강보장에서 국가책임과 기업부담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발전시킨 점이다. 앞서 봤듯이 2000년 건강보험 통합에도 보건의료 개혁 과제인 지불제도 개편, 성분명 처방, 공공의료 강화는 전혀 추진되지 못했다. 도리어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의료선진화위원회를 만들고, 영리병원 추진, 민영보험 활성화 등 의료민영화 정책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복지 영역에서도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낮아지고, 의료급여 환자들은 공격을 받았고, 긴축재정론이 복지 확대의 암초로 드러난다.

우석균 선생님은 우선 의료민영화 정책에 대한 예리한 비판을 통해서 민영보험의 문제점, 영리병원의 문제점을 가장 앞장서 비판했다. 영리병원이 수많은 주변 의료기관을 영리화시킬 것이라는 ‘뱀파이어’ 이론, 영리병원 한두 개 만드는 게 무슨 문제냐는 시장주의자들의 주장에 건강보험이 어떻게 망가지는지도 자세히 분석했으며, 대중적으로도 알기 쉽게 설명했다. 또한 민영보험이 건강보험을 근간부터 파괴할 것이란 예측 등도 했는데, 이는 지금 너무나 유효하다. 의료민영화 반대 투쟁에서 그의 기여와 헌신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가장 핵심적으로 기억하는 업적이다.

하지만 그는 의료민영화 반대 투쟁에만 집중해 그 이면의 논쟁을 무시하지 않았다. 당시 이런 의료민영화 반대 분위기에서 의료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대안들도 나왔다. 의료민영화에 반대만 해서는 보편적 건강보장과 무상의료에 도달할 수 없다는 주장은 너무나 타당했다. 그러나 복지정책 논쟁으로 들어가면서 건강보장을 위한 재정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부터 이견들이 존재했다. 일부는 노동자, 서민이 보험료를 더 내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서민증세론을 주장했고, 이후에 이들은 더 나아가 ‘선보험료 인상운동(만 천 원의 기적, 건강보험 하나로)’까지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우석균 선생님은 이를 ‘신복지 운동’으로 규정하고 그 본질이 진정한 복지운동이 아님을 논증했다. 복지국가는 노동자, 서민이 재정기여를 하지 않아서 쟁취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당연한 명제를 확인했다. 재정적 기여 논의는 복지운동 전반을 수동적으로 만들뿐더러, 확장된 재원을 복지확대가 아니라 다양한 사회서비스 공급자(의료공급자 포함)에게만 도달할 수 있는 위험성을 막지도 못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래서 복지운동의 본질을 훼손하고 이를 재정 논의로 협소화시켜 결국 노동자, 서민 대중을 수동화한다는 점을 우석균 선생님은 예리하게 비판했다.

이는 현재도 연금, 의료, 산재, 주거 등 모든 복지운동 쟁점에서 똑같이 투영된다. 기업과 국가가 더 많은 재정을 확충해 사회서비스를 확대해야 한다는 점을 놓치게 되면, 사회복지는 품앗이 수준으로 전락한다. 긴축재정론자들은 어차피 재정이 남아도 향후에 벌어질 재정적자를 핑계로 복지를 확대하지 않으며, 재정이 없으면 그걸 핑계로 복지를 확대하지 않는다. 재정논쟁은 비본질적일 뿐 아니라 복지확대라는 대전제가 성립된 이후에 따라붙는 논의다. 무엇보다 누가 돈을 낼 것인가는 결국 대중투쟁과 정치투쟁이 결정한다. 다수 대중이 재정확충에 동의한다고 자동으로 복지확대가 따라온다는 생각은 공상이다.

결국 국민연금에서도 우리가 내는 보험료율 인상보다 소득대체율이 적정노후소득을 보장해야 한다는 문제가 우선되듯이, 건강보험도 적정보장성이 확보되고 그 자원을 이후 국가와 기업이 조달토록 하는 게(일부는 사회적 합의가 되어 노동자, 서민이 부담할 수도 있다) 복지운동의 원칙이다. 이런 원칙을 고수하면서 우석균 선생님은 재정운동으로 협소화되는 신복지 운동과 맞섰고, 그 덕분에 더 큰 운동의 후퇴를 막을 수 있었다. 이후에 건강보험 재원을 소득 중심으로 개편한다면서 자산에 대한 부과를 철회하려는 정의롭지 않은 부과논의에 대한 반대, 기업과 노동자의 사회보험료 분담비율을 바꾸는 문제, 건강보험 재원에 대한 국고지원을 확대하는 문제 등에서도 분명하고 개혁적인 입장을 유지하면서 복지운동 내 후퇴를 막아냈다.

세 번째로 우석균 선생님은 복지영역에서 민영보험의 본질과 그 폐해를 폭로하고, 민영보험을 규제해야 한다는 투쟁의 최전선에 있었다. 그는 당연히 의료영리화를 부를 민영의료보험인 실손 의료보험의 확대를 처음부터 반대했다. 그리고 실손 의료보험이 확대되자 초기에 이를 저지하지 못한 것을 늘 후회하고 아쉬워했다. 그래서 지난 10년간은 이 문제에 더 집중했다. 실손 의료보험은 초기에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든 실부담 의료비를 부담할 것처럼 상품을 판매했지만, 상품 판매가 궤도에 오르자 지급 거절, 보험료 인상, 보험상품의 개편 등으로 그 본색을 드러냈다. 특히 미국처럼 의료기관과 직접 계약을 맺는 민영보험을 추진하기 위해 2024년 통과된 ‘실손 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그는 4년 전 국회토론회에서도 ‘실손 보험 청구 간소화’ 정책이 결국 병원과 보험사를 계약관계로 만들어 미국식 의료민영화로 나아가는 길이 될 것임을 예리하게 지적했다. 또한 민영보험사가 이런 개인건강정보의 전송, 집적화, 분석 등을 통해 보험상품을 다변화하고 장기적으로 최적화된 의료공급모델을 만들어 미국처럼 돈 되는 환자들만 가입시키는 방식을 추진하게 될 것이라 경고했다.

아쉽게도 의약분업 시기 진료거부에 반대하며 발전시킨 무상의료운동, 재정문제에 대한 비판을 통한 신복지 운동에 대한 반대와 달리 민영의료보험과의 싸움은 미완성으로 끝났다. 그는 작년 와병 중 병상에서도 원격의료와 민영의료보험의 결합, 민영의료보험의 심사평가 기능을 통한 병원 직거래 등을 가장 크게 우려했다. 한국 사회가 경제적으로는 빠른 속도로 양적팽창을 하면서도 불평등이 심해지고, 건강과 보건, 사회복지는 민영화되는 과정에 민영보험사 즉 금융자본 팽창이 심각한 문제라는 점을 알리고자 했다.

아쉽게도 보건의료는 물론이고 사회서비스 전역에 금융자본의 마수를 막아내는 것은 이제 남은 우리들의 과제가 되었다. 사회복지 정책이 단순히 정책적 정합성이나 데이터가 아니라 사회운동으로 만들어지고, 복지정책을 망가뜨리고 민영화하려는 시도는 사회운동이 대중운동으로 막아야 한다는 것을 우석균 선생님은 보여줬다. 그래서 그는 진주의료원 폐원 시도에 맞서 단식투쟁을 했고, 2018년 제주영리병원 공론조사 때는 영리병원 반대 전문가로 제주도로 날아가 영리병원의 문제점을 설파했다. ‘암부터 무상의료’ 운동에서는 선동가였고, 광우병 촛불집회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건강보험 파괴정책을 거리에서 폭로했다. 항상 집회장에 나온 사람들과 늦은 시간까지 토론하고 대화하는 것을 즐겼던 우석균 선생님은 막상 본인의 건강은 거의 챙기지 않았다.

2018년 제주도 영리병원 공론조사위원회는 결국 우석균 선생님의 노력과 사회운동의 결집으로 영리병원 반대를 결정했다. 하지만 원희룡은 공론조사위 결과에 따르겠다는 약속을 쉽게 어기고 영리병원 허가를 강행했다. 당시 공론조사에서 영리병원을 지지하던 전문가들은 모두 윤석열 정부에서 등용되고 승승장구했다. 원희룡도 윤석열 정부의 후계자를 자처하면서 승승장구했다. 반복지 세력에 맞서 싸운 우석균 선생님은 끝까지 투쟁하고 싸우다 병환을 얻었으나, 반복지 세력은 모두 자신의 잇속을 채우고 잘 살았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누구도 권력과 자본, 경제적 이해관계를 위해 살아남는 게 부끄러운 삶임을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우석균 선생님을 기억하는 마지막은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다. 특히 복지운동에서의 그의 발자취는 자본과 기업, 불평등에 타협하지 않은 일관성이다. 그리고 그런 우석균 선생님이 있어서 보건의료 운동은 물론 복지운동 전반도 명확한 복지국가 건설의 입장 속에서 수많은 과제에 대응할 수 있다. 남은 과제는 이제 살아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우석균 선생님을 기억하며 앞으로 벌어질 사회운동의 파고에서도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 이루는 싸움을 계속해 가리라 다짐해 본다.


월간<복지동향> 2026년 7월호(제3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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