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환 |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교수1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지났다. 내란의 위기를 시민의 힘으로 넘어선 끝에 들어선 정부였던 만큼, 보건의료 분야에 대한 기대도 적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의 의대 증원 강행과 그에 맞선 의료계의 집단행동으로 1년 넘게 의료가 마비된 직후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실제로 정부가 내세우는 1년의 성과를, 정부의 표현 그대로 정리하면 결코 적지 않다. 5년간 연평균 668명 규모의 의대정원 확대가 확정되었고, 졸업 후 일정 기간 지역 복무를 의무화하는 복무형 지역의사제가 도입되었으며, 국립의학전문대학원 설립의 법적 근거도 마련되었다. 비대면진료가 15년 만에 제도화되었고, 의료분쟁조정법을 비롯한 여러 입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무엇보다 1년 넘게 이어진 의정 갈등이 일단락되어 전공의가 복귀하고 의대 교육이 정상화되었다. 전임 정부가 남겨놓고 간 파국을 어떻게든 수습한 것은 분명한 성과다.
이러한 성과들이 어떤 그림 안에 놓여 있는지는 정부 스스로 그린 설계도에서 드러난다. 2025년 9월 확정된 123대 국정과제에서 보건의료는 ‘기본이 튼튼한 사회’라는 국정목표 아래 자리 잡았다. 복지부가 주관하는 ‘국민건강을 책임지는 보건의료’(전략 3)의 세부 과제는 네 가지로, 지속가능한 보건의료체계로 전환(83번), 지역격차 해소·필수의료 확충·공공의료 강화(84번), 일차의료 기반의 건강·돌봄으로 국민건강 증진(85번), 국민 의료비 부담 완화(86번)로 구성되어 있다.2 면면을 보면 공공의료의 강화와 보장성 확충, 일차의료 등이 고루 담겨 있어, 어느 하나 빠진 것이 없어 보인다.
문제는 이 고른 목록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했는가다. 의정 갈등을 수습한 것과 보건의료의 정책기조를 바꾼 것은 전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내세우는 성과의 내용을 한 꺼풀 들춰 보면, 공공성에 근간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난 1년의 보건의료 정책은 두 개의 관성으로 굴러갔다. 하나는 보상을 중심으로 한 필수의료 강화이고, 다른 하나는 시장 창출을 겨냥한 산업화다. 유능과 실용을 내세우는 이재명 정부는 무언가 달랐을 것 같지만, 사실 이 정부가 새로 시작한 것은 없다. 공공의료의 강화와 건강보험 보장성 확충이 채워야 할 자리를, 민간에 대한 보상과 시장 창출 기조가 대신 채웠을 뿐이다. 이 글은 지난 1년의 보건의료를 이 두 축, 곧 필수의료와 산업화로 나누어 살핀다. 물론 이 두 축으로 지난 1년을 온전히 담을 수는 없다. 지역사회 통합돌봄과 정신건강처럼 별도의 고민이 필요한 의제들이 적지 않다. 다만 이 글은 그 모두를 다루는 대신, 필수의료와 산업화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새 정부의 정책기조가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기에 적합한지 묻고자 한다.

필수의료 프레임에는 두 가지 결함이 내장되어 있다. 첫 번째는 ‘필수’를 정하는 순간 자연히 ‘필수가 아닌 것’이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중증·응급에 자원이 쏠리는 만큼 일차의료와 만성질환 관리, 돌봄과 예방은 변방으로 밀려난다. 게다가 재정을 쏟아부어도 위기가 풀리기는커녕, 밀려난 영역들이 하나같이 “우리도 필수”라고 외치는 인정 투쟁만 격화된다. 국민의 40%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모든 의료서비스를 필수의료라고 여기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3
둘째는 필수의료에 집중하면 공공의료도 자연히 강화된다는 주장의 허구성이다. 이 프레임은 재정과 권한을 잘 결합하기만 하면 시장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 위에 서 있다. 그러나 기존 공급자에게 돈을 지불한다고 해서 필요한 서비스가 저절로 공급되지는 않는다. 더 깊은 문제는 보상이라는 방식 자체에 있다. 부족한 영역에 보상을 더하면 그 보상이 곧 새로운 가격의 기준이 되고, 한 번 오른 가격은 다음 협상의 출발점이 된다. 인접한 영역들도 같은 명분으로 보상을 요구하니, 재정을 투입할수록 가격만 오른다. 결국 같은 의료를 점점 비싸게 사들이면서도 “여전히 부족하다”는 호소만 되풀이된다. 그렇게 공공의료가 강화되기는커녕, 보상으로 필수의료를 채우려는 시도가 가격만 끌어올린 채 같은 문제를 반복하는 셈이다. 국가는 필요한 서비스를 시장에서 구매하는 주체일 뿐, 직접 생산하는 일은 포기한 채로 있다. 그 결과 어디서, 누가, 어떻게 의료를 공급할지는 여전히 시장이 정한다.
이 허구성은 지난 1년의 정책에서 그대로 확인된다. 보상으로 공급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프레임 안에서는, 인력도 거버넌스도 제대로 작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력정책부터 보자. 증원과 지역의사제는 인력 양성의 기반을 닦았다고 홍보되지만, 정작 그 인력을 키우고 배치할 준비는 비어 있다. 제도의 성패를 가르는 선발은 개별 대학의 재량에 맡겨져 있고, 2027년부터 선발이 시작되는데도 이들을 가르칠 교육 프로그램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증원에 반대해 온 의대 교수진이 지역의사 양성을 떠맡는 모순적 구조도 그대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출구다. 2033년 무렵 인력이 배출되어도 이들이 일할 공공보건의료기관의 확충 계획은 비어 있다. 기존 지방의료원의 기능 회복 전략도, 일차의료 영역에 인력을 배치할 전략도 보이지 않는다. 늘린 인력이 어디서 자라 어디서 일할지가 모두 비어 있는 셈이다.
거버넌스의 현장에서도 같은 한계가 되풀이된다. 약 1조 원 규모의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는 ‘네트워크 강화’를 표방하지만, 개별 의료기관을 넘어 지역 전체가 하나의 병원처럼 움직일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난망해 보인다. 지역에 대한 책임성이 없는 의료기관이 지역 네트워크를 운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통제 장치 없이 재정이 풀릴 듯한 상황에서, 민간병원들은 새로 생기는 특별회계에서 큰돈을 받아 볼 궁리에 몰두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방식이 공공성 확보의 책임을 지역에 떠넘긴다는 점이다. 행정과 인프라 역량을 갖춘 지역이 유리한 구조에서 취약지는 오히려 더 밀려나고, 한정된 재원을 두고 같은 권역 안에서 다툼이 벌어진다. 개선에 보상하겠다지만, 그사이 지역은 정책의 시험장이 되고 공은 중앙이 가져가는 반면 책임은 지역이 진다. 보상으로 시장을 움직이려는 필수의료 전략은, 지역 주민의 건강을 기꺼이 책임질 주체를 끝내 만들어내지 못한다.
AI를 입은 오래된 질주 : 산업화
지난 1년 보건의료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AI 대전환의 드라이브에 보건의료가 적용 대상으로 편입되었다는 점이다. 정책 영역을 가르는 주요한 논리로 ‘AI를 적용할 수 있는가’가 부상하면서, 보건의료 고유의 논리는 점점 더 뒤로 밀려나고 있다. 산업화에서도 복지부의 과제가 ‘무엇을 잘할 것인가’에서 ‘관할을 빼앗기지 않는 것’으로, 수세적 위치에 놓이게 된 상황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간 보건의료 산업화는 복지부의 관할 안에 있었지만, 이제는 AI를 매개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보건의료 산업정책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주도권이 산업 부처로 넘어가는 본격적 산업화가 시작된 것이다.
산업화 역시 이재명정부의 새로운 브랜드는 아니다. 문재인정부의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전략>(2019)4, 윤석열정부의 <바이오헬스 신산업 규제혁신 방안>(2023)5, 이재명정부의 <바이오헬스 5대 강국 실현>(2025)6은 보건의료 서비스의 공공생산을 외면하고, 보건의료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쓰기 위해 산업 강화로 답해 온 연속선 위에 있다. 필수의료의 언어가 세 정권을 관통했듯, 산업화 기조 또한 정권을 가리지 않고 이어졌다. 그 사이 보건의료를 바라보는 시선의 무게중심은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옮겨갔다. 건강은 이제 국가가 충족해야 할 필요이기 이전에, 키우고 수출해야 할 시장의 하나가 되었다. 환자는 의료 서비스의 수요자가 되고, 진료 기록과 건강 정보는 산업이 채굴할 천연자원이 되었다. 의료를 시장의 언어로 번역하는 이 시선이야말로, 지난 세 정권을 가로지른 가장 일관된 흐름이다.

이재명정부의 AI 기본의료는 이 전환의 한 모습이다. 그것은 지역과 필수의료의 공백을 공공 인프라 대신 AI로 채워내겠다는 발상이다. 정부는 의료데이터의 지속적 개방과 1조 원이 넘는 연구개발 예산으로 시장에 문을 열어주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열린 시장에서 이득과 위험이 비대칭적으로 나뉜다는 데 있다. 기술과 자본을 쥔 민간은 데이터와 제도가 열어준 기회를 수익으로 가져가는 반면, 개인정보 유출과 검증되지 않은 기술의 안전성 같은 위험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남는다. 더구나 이 분배를 결정하는 자리마저 공정하지 않다. ‘AI는 전문성이 높은 영역’이라는 명분은 규제 완화와 데이터 개방을 논의하는 자리에 정작 그 수혜자를 전문가로 불러들인다. 규칙을 만드는 자리에 선수가 앉는 셈이다.
그러나 산업화를 비판하는 것과 멈춰 세우는 것은 다른 문제다. 보건의료 산업화는 자본과 기술과 국제 경쟁이 맞물린 흐름이어서, 한 정부가 의지만으로 완전히 통제하거나 되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공성을 훼손하는 산업화를 막는 일은 중요하지만, 산업화 자체를 멈춰 세우는 일은 현실성이 부족하다. 자본주의의 작동 속에서 일어나는 산업화를 막을 수 없다면, 던져야 할 물음은 필요한 의료서비스의 공급을 어떻게 공공적으로 지켜낼 것인가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산업화는 앞서 살핀 필수의료의 문제와 만난다. 산업화를 막을 수 없다면, 그 흐름이 의료 공급을 휩쓸어 가지 못하도록 막아설 둑이 따로 있어야 한다. 필수의료를 보상이 아니라 공공의 직접 생산으로 풀어내는 일, 그것이 곧 산업화의 압력으로부터 필요한 의료를 지켜내는 방화벽이 된다. 산업화를 막을 수 없기에, 공공의료의 강화는 더욱 절실한 과제가 된다.
직접 생산하는 국가를 기대한다
필수의료는 보상 패러다임에 갇혀 스스로 공급을 만들어 내지 못하지만, 그러는 사이에도 막기 어려운 산업화의 흐름은 계속 이어진다. 지금 보건의료의 병목은 인력 부족이며, 바로 그 지점에서 산업화는 필수의료를 한층 더 어렵게 만든다. 산업화는 ‘더 많이 쓰고 더 비싸게 쓰는 의료’ 없이는 성장하지 못한다. 첨단 시술과 고가 장비, AI 연계 진료처럼 기술 집약적이면서 수익성 높은 영역이 커지면, 의료인력은 합리적인 판단에 따라 그쪽으로 움직인다. 인력이 미용과 비급여로 빠져나가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건강보험 안에서 진료하더라도 ‘의료 혁신’이라는 정당한 이름으로 더 비싼 기술을 쓰는 자리가 더 매력적인 선택지가 된다. 가뜩이나 선발도 배치도 비어 있던 필수의료는, 애써 늘린 668명마저 산업이 키운 고수익 영역으로 흘러가면서 그 빈자리를 더욱 키운다. 산업화가 필수의료 실패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그 어려움을 가중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필수의료의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길을 하나씩 지워 보면 답이 남는다. 보상을 더 얹는 길은 앞서 보았듯 가격만 끌어올린 채 같은 문제를 되풀이한다. 산업 진흥에 기대는 길은 애초에 필수의료의 해법이 아닐뿐더러, 오히려 인력을 빼앗아 사정을 악화시킨다. 그렇다고 산업화를 막으려 애쓴다 한들, 그것만으로 공공성 있는 보건의료 서비스가 생산되는 것도 아니다. 세 갈래가 모두 막히고 나면 남는 길은 하나다. 국가가 의료를 직접 생산하고, 그에 필요한 인력을 직접 양성·고용하여, 국민에게 필요한 보건의료 서비스를 시장과 산업의 논리 바깥에서 확보하는 것이다.
국가의 보건의료 서비스 직접 생산은 이 두 문제를 동시에 해결한다. 공공병원을 짓고, 인력을 직접 양성하고 고용하면, 보상으로 가격을 끌어올리지 않고도 공급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물론 공공이 고용한 인력이라 해서 시장으로 떠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민간의 선택에 공급을 내맡기는 것과 달리, 직접 생산은 국가가 공급의 토대 자체를 손에 쥐게 한다. 나아가 공공 부문이 충분한 규모에 이르면, 그것은 시장의 예외와는 다른 것이 된다. 공급의 가격과 질, 인력의 처우에 기준을 제시하는 준거가 되어, 시장 자체를 규율하는 힘이 될 수 있다. 국가가 구매자로만 남는 한 시장에 끌려갈 수밖에 없지만, 스스로 충분한 규모를 갖춘 생산자가 될 때 비로소 시장을 움직일 지렛대를 쥐게 된다. 필수의료를 진정으로 풀고자 한다면, 국가의 직접 생산을 통한 공공의료의 회복이야말로 유일한 길이다. 서두에서 미뤄 둔 보건의료의 다른 과제들 또한 다르지 않다. 비어 있는 자리를 시장에 내줄 것인가, 국가가 직접 떠안을 것인가. 공공의료를 기치로 정치를 시작했던 정부가, 이제 그 자리로 돌아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 미주 |
- 이 원고는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비판과대안을위한사회복지학회, 사무금융 우분투재단,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등이 공동주최한 『이재명정부 보건복지정책 1년 평가 토론회』의 발표 원고를 기반으로 한 것입니다. ↩︎
- 대한민국 정부, 「이재명정부 123대 국정과제」. https://www.korea.kr/govVision/ ↩︎
- 배재용, 「필수의료에 대한 국민 인식 및 정책 추진을 위한 시사점」, 『보건복지 Issue & Focus』 제459호(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5). ↩︎
- 보건복지부, 「바이오헬스 산업, 미래 주력산업으로 육성한다」[바이오헬스 산업 혁신전략](2019. 5. 22.). https://www.korea.kr/news/policyNewsView.do?newsId=148861034 ↩︎
- 보건복지부, 「디지털 신시장을 창출하고, 바이오헬스 수출을 활성화하겠습니다」[바이오헬스 신산업 규제혁신 방안](2023. 2. 28.). https://nsp.nanet.go.kr/plan/subject/detail.do?nationalPlanControlNo=PLAN0000035434 ↩︎
- 보건복지부, 「바이오헬스 강국 실현을 위한 도약: 보건의료 국가대표기술 30개 선정」[바이오헬스 5대 강국 실현·AI 기본의료 실현](2025. 12. 18.). https://www.korea.kr/briefing/pressReleaseView.do?newsId=156735780 ↩︎
월간<복지동향> 2026년 7월호(제3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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