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희 | 한국사회보장정보원 부연구위원
2024년이 대규모 언어모델(LLM)의 해였다면, 2025년은 코드를 몰라도 말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바이브 코딩’의 해였다. 그리고 2026년, 현재의 화두는‘에이전틱 AI(Agentic AI)’다. 이제 AI는 질문에 답하는 수준을 넘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도구를 다루며 일을 끝까지 처리한다. AI가 통제 범위를 넘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며“AI 개발 속도를 늦춰야 한다”라는 경고마저 연일 들려온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은 복지 현장에도 그대로 도착했다. 묻는 말에 답하던 AI는 이제 먼저 전화를 거는 AI가 되었고, 정부는 돌봄과 복지행정 전반을 바꾸기 위한 로드맵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우리는 더 분명히 물어야 한다. 그 속도는‘누구’를 위한 것인가.
휴대전화 화면에 ‘읍면동AI복지상담’이 뜬다. 2024년 11월부터 전국 229개 시군구에서 복지사각지대 발굴 대상자에게 AI가 먼저 전화를 건다. 공무원 한 명이 두 달마다 100명 안팎의 사람들에게 일일이 걸던 초기상담 전화를 AI가 맡고, 그 결과를 담당자에게 넘기는 방식이다. 보건복지부는 이 흐름을 넓혀 올해 하반기 ‘복지·돌봄 AI 대전환 로드맵’을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 9월 21일 보도자료는 ‘든든한 돌봄, 따뜻한 복지, 함께 누리는 AI’를 비전으로 세 축을 제시했다. AI·IoT·로봇을 가정과 시설에 적용하는 ‘돌봄 혁신’, 상담·신청과 행정 업무를 AI로 지원하는 ‘AI 복지’, 안전한 활용 환경과 인력 양성을 다루는 ‘혁신 기반’이다. 로드맵이 내세우는 목표는 접근성, 효율성, 그리고 돌봄 산업 육성이다. 그 기저에는 급증하는 돌봄 수요를 제한된 인력과 재정으로 감당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
문제는 이익을 누리는 수혜자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당사자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효율의 이익은 행정과 재정, 기술 기업에 돌아가기 쉽지만, 오작동과 누락의 위험은 가장 취약한 사람이 진다. 성과도 아직은 불분명하다. 2025년 2차 운영 결과에 따르면, AI 초기상담의 전화 수신율은 64.7%였다. 다시 말해 셋 중 한 명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이들 중 일부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을 확률이 높다. 또 발굴이 빨라져도 연결할 자원이 없다면 AI는 ‘더 빨리 찾아서 더 많이 돌려보내는’ 도구가 될 뿐이다. AI 상담이 사람 앞에서 느끼는 수치심을 덜어준다는 해외 연구도 있지만, 한국 복지 현장에서 아직 검증된 적은 없다.
정부는 AI가 사람을 대신하지 않는 ‘조력자’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AI가 벌어준 시간에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답은 AI가 할 수 없는 일, 곧 ‘관계’와 ‘판단’, 그리고‘연결’에 있다. 첫째, 사람을 찾아가는 일이다. 전화를 받지 않은 ‘셋 중 한 명’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찾아가야 한다. 둘째, 삶의 경과를 지켜보는 사례관리다. 단발성 자원 연계로 끝내지 않고, 대상자의 삶이 어떻게 회복되는지 세심하게 동행해야 한다. 셋째, 지역사회 자원의 조직이다. 지역 주민·기관과 함께 숨겨진 자원을 발굴하고 연결하는 일이다. 넷째, AI가 놓치거나 잘못 분류한 사례를 인간의 눈으로 재검토하고, 반복되는 사각지대를 제도 개선 요구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그리고 오랜 기간 소진에 시달려 온 복지 공무원들이 숨을 고르고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시간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지친 사람은 결코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기 때문이다.
효율화로 생긴 시간은 저절로 사람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새 사업과 새 서류로 채워지기 쉽다. 그래서 로드맵에는 기술 과제만큼이나 시간의 용도를 지키는 장치가 필요하다. 현장 방문과 사례관리가 실질적으로 강화될 수 있도록 업무 구조와 일하는 방식을 새롭게 하고, 처리 건수가 아니라 연결의 깊이를 재는 성과지표를 세워야 한다. 복지 AI의 성패는 얼마나 많이 처리했는가가 아니라, 절감된 시간이 누구에게 돌아갔는가로 판가름 날 것이다.
| 참고문헌 |
- 간호사신문, 2026.9.21, 복지부, ‘복지·돌봄 AI 대전환 로드맵 ’ 하반기 공개
- 보건복지부, 2024.11.25, 어려움 겪는 위기가구 찾기 위해 인공지능(AI) 전화 초기상담 전국 시행, 보도자료.
- 중앙일보, 2025.09.25, 복지멤버십과 AI 초기상담, 국민 행복 위한 디지털 복지 혁신
- Chen W, Zeng Z, Liu W and Yan W, 2026, Disclosure is not destigmatization: rethinking AI and mental health stigma. Front. Public Health 14:1881272
월간<복지동향> 2026년 10월호(제3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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