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은 우리나라 주택정책의 성격이 변화하기 시작한 해라고 말하고 싶다. 여기서 ‘말하고 싶다’라는 표현을 쓴 것은 앞으로 그런 변화가 지속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 가지 난관은 있겠지만 주택정책의 방향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희망하기 때문이다.
2000년 주거권 운동의 회고
정부는 오래 전부터 주택정책이 이제 공급 위주에서 형평성이나 삶의 질을 생각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이야기해 왔다. 그리고 2000년 9월 건설교통부는 주거부문의 국민생활기본선이라 할 수 있는 최저주거기준을 설정했다. 또 주거권 운동 진영에서 제기한 주거기본법 제정에 대한 주장을 수용하여 주거기본법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
하지만 반대 경향도 있다. 최근 주택정책은 건설경기 부양을 위해 이용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집을 더 많이 지어야 일자리도 만들고 경제도 살릴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것은 전에도 여러 차례 반복되던 주장인데 이 과정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주택문제는 무시되어 왔다. 주택을 지으면 그것을 분양받을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주택 때문에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주택을 분양받을 능력이 없다. 그래서 주택을 많이 짓는 정책은 조금이나마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어서 주택을 구입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신도시를 짓겠다는 계획이나 불량주거지역을 완전히 없애겠다는 것이 모두 이런 성격을 가지고 있다.
주거권 운동은 최저주거기준이나 주거기본법 제정과 관련하여 기여한 바가 작지 않다. 주거권 운동 진영은 과거 어느 때보다 전반적인 주택정책의 성격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다. 주거기본법 제정을 위한 입법추진위원회의 결성하여 1998년 이후 계속 활동해 왔으며, 주택정책 변화의 출발점으로 최저주거기준의 설정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주거권 운동은 여전히 몇 가지 사항을 요구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고, 정책 변화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는 못하고 있다.
주거권 운동의 한계를 넘어서
다른 분야의 사회안전망도 그리 잘 갖추어져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주택과 관련된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지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국민의 대다수는 주택으로 인해 갖은 고통을 겪었거나 겪고 있지만, 이 분야에서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한 의문을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했다. 주택은 각자가 열심히 돈을 벌어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국가가 책임질 부분은 아니라고 이해되고, 누구에게 고통을 주건 말건 관계없이 자기 자산을 잘 지키고 불리는 것에 온통 관심을 쏟았다. 이런 상황에서 주거권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주거권을 실현하는 것이 얼마나 오래 걸리고 어떤 과정을 겪을 지도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주거권이 즉각적으로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고 해서 주거권을 주장하는 것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주거를 권리로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누적되어 왔고, 이것은 주거권을 주장해야 할 충분한 근거라 할 수 있다. 또 역사적으로 모든 권리의 실현과 확장 과정과 마찬가지로 주거권은 그것을 가로막는 장애들에 대한 정치적 투쟁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거권을 주장하는 것은 정의롭고 우리 사회가 당면한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를 풀기 위한 지혜로운 방법이다. 또 우리 사회는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과 자원을 분명히 가지고 있고, 더 이상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미루기 어렵다.
주거권 운동은 주거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보호하고 주거권을 신장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주거권 실현이라는 추상적인 목표는 여러 가지 차원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현재 주거권 운동은 두 가지 중요한 한계를 넘어 새로운 지평으로 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주거권, 모든 사람의 권리
먼저, 주거권을 모든 사람의 권리로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실업이나 도산을 당한 이들에게 높은 집값과 저렴한 주택의 부족이 가족 해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는 것을 경험했다. IMF 위기를 맞아 잠잘 곳이 없는 사람들이 서울역으로 몰려들었고, 노숙자 쉼터나 거리에서 생활하는 사람의 수가 2만 명을 넘어섰다.
그리고 이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헤어져서 살아야 하거나 친지들의 집에 더부살이를 해야 했다. 주택보급률은 높아지고 주택가격은 안정된 것과 무관하게 사람들은 살 곳이 없어 고통스러워했다. 우리 사회는 이들의 문제에 대응할 장치를 갖고 있지 못했다. 주거권 운동은 이 문제에 제대로 대응해야 했다. 노숙자의 주거에 대한 권리가 무엇이고, 이것을 사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를 논의해야 했다. 하지만 주거권 운동은 그러한 논의를 벌일 자원이나 논리를 갖고 있지도 동원하지도 못했다. 이 문제를 외면한 채 국민 일반이 어떤 권리를 가져야 하는지 주장하는 것은 공허하다. 노숙자 발생의 중요한 원인이 주택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숙자 대책에서 주거가 중요하게 고려되지 않는 것은 우리 사회의 주거권과 주거권 운동의 낮은 수준을 반영한다.
다음으로, 주거권 실현의 사회적 토대를 갖추는 문제이다. 필자는 주거권 운동은 중산층과 서민을 대변하면서, 그들의 왜곡된 의식을 수정할 수 있는 날카로움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산층과 서민에게 주택은 교육, 의료와 함께 행복의 중요한 고리이다. 주택에 대한 투기가 보편화된 상태에서 시세차액이 남는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서 아파트 분양사무실을 찾아다니고, 동네를 망쳐도 더 높게 재건축을 해야 하고, 본인이 살 능력은 없어도 넓은 평수로 재개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당한 고통을 자녀들에게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서는 집 하나는 어떻게든 물려주어야 한다고 다짐한다. 중산층과 서민의 내 집 마련이라는 소박한 바램은 무시할 수 없지만, 그것과 다수의 국민이 투기적으로 주택을 사고 파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또 내 집 마련의 바램과 가족과 함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공간에 대한 권리는 구분될 필요가 있다. 주택이 우리 사회에서 복지의 중요한 분야로 고려되지 않는 것은 중산층과 서민의 주택에 대한 왜곡된 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중산층과 서민에게 주택은 상품이고 재산 증식의 수단이라는 생각은 매우 보편적이고, 이것이 주거 불평등과 주거빈곤을 만들어온 원인이다. 사회복지 정책을 다루는 사람들도 대부분 중산층 아니던가?
우리 사회가 급격한 개발의 시대를 경험하는 동안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사회를 살아왔다. 주거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낮은 수준이고 운동의 토대는 탄탄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과제를 제시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아마 이것도 주거권 운동이 풀어야 할 몫일 것이다. 여기서는 주거권 운동을 기획함에 있어서 현재 상황에서 고려해야 지점들을 언급하는 것으로 구체적인 과제를 제시하는 것을 대신한다.
<주거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주거문제로 인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주택보급률은 높아졌지만, 주거위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주거권 운동은 주거위기의 실상이 어떠한지 조사하고, 자료를 만들고, 홍보해야 한다. 소득은 얼마나 불평등하고, 소득과 주거비의 격차는 얼마나 크며, 과도한 주거비를 부담해야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되며,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생활해야 하는 사람의 고통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알려야 한다. 또 가난한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앉게 될 처지가 되고 결국 가족이 해체되고 노숙에 이르는 과정의 아픔을 사회는 느껴야 하고, 노숙자에게 제공되는 임시숙소에서 인간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주거권 운동은 주거빈곤의 양과 질, 그리고 구체적인 사연들에 보다 민감해야 하고, 이를 주택정책의 문제점과 연결시켜야 한다.
<주택정책의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
현재의 주택정책은 비판의 대상이지만, 주택정책은 여전히 중요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주거권 운동은 정부의 주택정책에 대해서 올바른 이해를 하고, 그 모양새를 제대로 갖추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며, 또 성공적인 사례들을 만들고, 이를 알려야 한다. 이를 통해 주택정책이 보다 신뢰할 만한 것이 되도록 하여 주거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국가의 능력을 키워야 한다.
흔히 주택정책이라 하면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보조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생각은 중간계층이 주택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갖게 하는 원인이 된다. 그래서 많은 나라에서 실제 저소득층을 위해 얼마를 투자했는가와 무관하게 주택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공격을 받고 있다. 이러한 비난은 주택정책의 역할을 약화시키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한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은 주택정책이 가난한 사람만이 아니라 훨씬 넓은 계층을 지원하고 그 규모가 저소득층에 대한 지출에 비해 훨씬 크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그리고 중간계층 역시 현재의 주택정책 하에서 결코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중간계층 역시 주택정책과 무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함께 힘을 모아 올바른 정책 수립을 위해 노력해야 할 동반자이다. 정부가 주택정책의 역할을 포기하고 작은 정부를 만드는 것은 중간계층에게도 결코 좋은 해결책일 수 없다. 정부가 가지고 있던 비효율성을 극복하고 주택정책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대안이 되어야 한다.
<보다 폭넓은 연대>
지금까지 해오던 것처럼 주거권 운동은 보건, 탁아, 환경, 노동 등의 분야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노력하는 집단들과 함께 일해야 한다. 또 노인, 어린이, 장애인, 여성 등을 대변하는 집단이나 종교단체와도 긴밀하게 연대해야 하고, 이러한 연대를 통하여 권리에 대한 공통의 인식을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주거는 사회복지의 한 영역으로 제대로 자리잡아야 하지만, 단지 사회복지의 영역에만 국한시키기는 어렵다. 경제와 주거는 긴밀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양질의 저렴한 주택재고가 풍부하고 주거비 부담이 낮으면 노동력 재생산비가 낮아지고 노동력의 생산성은 높아지며, 결국 기업에게도 유리한 조건을 제공한다. 또한 주택을 생산하는 것은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 전반에 대한 파급 효과도 크기 때문에 경기를 회복시키는 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노동자는 물론이고 기업가들과도 연대해야 하고,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으로도 검토되어야 한다. 경제적 위기와 실업 문제가 심각한 시기에 공공이 중심이 되어 양질의 저렴한 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사안이다.
월간 <복지동향> 2001년 02월호(제28호)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