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이후 압축적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는 지속적 고성장과 중산층의 양성, 정규직 노동시장의 지속적 팽창, 비교적 건강한 가족구조와 비교적 젊은 인구학적 구조, 사회적 욕구분출을 억제하는 비민주적 정치구조를 배경으로 사회정책에 있어서 '시장 -기업-가족'에 의존하였고, 국가의 역할은 극히 미미하였다. 이러한 시장-기업-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복지공급의 모델은 80년대 중반 이후 가족 기능의 약화, 노인인구 증가 등 인구학적 구조 변화 등으로 한계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더군다나 IMF 발생 이후, 신자유주의 내용을 중심으로 한 정규직 고용구조의 변화는 시장과 기업의 복지공급 능력을 극도로 약화시키고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호무역 철폐와 개방과 세계화를, 사회적 측면에서 사회복지의 축소를 내걸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우리 사회에서의 장기 실업과 비정규직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는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요구를 증대시키고 있으며 신자유주의에 대응하는 사회권 운동을 보다 절실하게 요청하고 있는 실정이다.
IMF 이후 한국사회의 변화
우선 IMF 이후 정규직 고용구조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우리 사회(동양사회)에서는 연공서열 위주의 평생직장 개념이 문화적인 바탕을 두고 관행으로 내려져 오고 있었다. 그러나, 오로지 '수익성'만을 위하여 우리 나라에 진출한 외국자본(더구나 외환부족으로 파산직전에 이른 한국에 떵떵거리며 입성한 외국자본으로서는)은 한국기업의 관행이나 한국 노동자들의 입장에 눈치를 볼 이유가 전혀 없이 합병과 인원감축을 통하여 수익구조 극대화를 거침없이 추구하였고, 더구나 노동의 유연성이 극대화된 미국의 자본들은 우리기업들에게 비정규직화와 연봉제 문화를 급속도로 확산시켰다.
이러한 비정규직화의 진행으로 인하여 평생직장의 개념이 붕괴되고 해고위험이 상시화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2000년 상반기에는 비정규직 근로자가 680만 명으로 전체임금근로자의 53%를 차지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저임금, 기업복지(퇴직금, 학비, 주거비 지급과 융자 등)에서의 소외, 사회보장혜택의 제외, 노동조합 등 조직화된 힘으로 결집 불가능 등으로 인하여 'working poor'층을 형성하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노동계층은 고임금 정규직 핵심노동자층과 저임금 비정규 주변노동자층으로 양극화되는 현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노동의 유연성이 극대화된 영국과 미국에서 해고뿐 만 아니라 고용도 유연하여 노동시장의 진출입이 비교적 자유로워서 해고가 되더라도 다시 일자리를 찾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는 반면에 한국사회는 연령에 따른 서열문화가 강하게 남아 있어서 신규 채용시 연령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일단 해고가 되고 나면 재취업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 조기퇴직과 장기실업을 가져오는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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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정보산업의 발달과 산업구조의 첨단화로 인하여 20%의 고부가가치 생산자들이 GNP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첨단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대부분은 사회변화에 뒤쳐지고 낮은 생산성에 머물게 되는 20 대 80의 사회가 급격하게 형성되고 있다.
이렇듯 IMF 이후에 한국 사회는 장기실업과 비정규직화 및 20 대 80사회의 진행으로 인하여 신빈곤층이 출현하게 되었고, 그 수는 최소 4백만(보사연, KDI 추정)에서 최대 1천만명((참여연대 UNDP 추정)에 이르고 있다. 또한 외환위기 이후 금리상승, 환율상승, 주가폭등 등으로 모든 정부 공식 통계에서 소득분배가 악화되고 있는 것이 나타나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신자유주의의 진행에 따라 부익부 빈익빈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많아서, 향후 이 신빈곤층이 구조화되고 고착화될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정치, 경제, 사회적 변화로 인해 기존의 시장-기업-가족모델은 장기실업과 비정규직화로 인한 신빈곤층에 대해서는 더 이상 적용되기 어렵게 되어가고 있고 이는 사회권 운동의 필요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사회권운동의 필요성
■ 사회권
국민의 기본권으로써 사회권은 의료, 교육, 사회안전망, 환경, 소득재분배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사회권은 기본적으로 의료와 교육인데, 선진국에서 의료와 교육은 국가에서 세금을 거두어 누구에게든지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회안전망은 일자리를 잃었을 때, 노인이 되어 더 이상 일할 수 없을 때, 사고나 선천적인 장애로 인하여 일할 수 없을 때, 어떠한 이유로든 일정수준 이하로 가난해졌을 때 국가나 사회공동체가 최소한의 생활, 나아가 일정수준의 생활을 보장하여 주는 것이 그것이다. 누구라도 쾌적하게 살 권리도 사회권의 중요한 내용이다. 사회공동으로 제공되는 공원시설, 도서관시설, 체육시설, 깨끗한 공기, 저렴하고 편리한 대중교통 등이 어느 수준인가가 그 나라의 사회권의 수준을 이야기해준다. 약자에 대한 배려 또한 사회권의 내용이다. 아이들, 노인들, 장애인들, 여성들, 기타 사회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불리함을 극복할 수 있도록 수당을 준다든지 여러 가지 배려를 해준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사회의 소득을 하후상박으로 재분배하는 모든 내용이 사회권에 포함된다. 세금을 낼 때 소득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일정하게 매겨지는 간접세를 되도록 없애고, 소득에 비례하여 누진적으로 부과하는 직접세를 확충하는 것, 소득에 따른 누진율을 적정하게 결정하는 것, 사회보험제도에서 보험료를 소득에 따라 누진적으로 부과하고 보험금을 지급할 때에는 되도록 평등하게 하는 것 등이 소득재분배의 내용이다.
이러한 사회권은 기존의 사회복지나 사회보장을 포함하나, 두 가지 점에서 구별된다. 첫째, 사회복지나 사회보장은 제도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며 공급자 즉 정부의 입장에서 설명한다. 반면 사회권은 권리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며 수요자 즉 국민의 입장에서 설명한다. 둘째, 더욱 중요한 차이는, 사회권은 기존의 사회복지나 사회보장의 범위를 넘어서서 소득재분배와 인간답게 살 권리, 모든 국민에게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한 모든 사회정책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권은 자유권을 보완하면서 동시에 충돌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란 최소한의 생활조건이 확보됨으로써 실현가능한 것이기에 사회권적 기본권은 자유권적 기본권의 전제이자 이를 보완하는 것이고 할 수 있다. 경제적 약자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려면 경제적 강자의 경제적 자유를 일정하게 제한하는 것은 불가피하므로 사회적 기본권과 자유권적 기본권은 특히 재산권을 둘러싸고 충돌하게 된다. 또한 사회권적 기본권은 국가가 직접 사회문제에 개입해서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어서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주장하는 자유권과 갈등하게 된다. 규제완화와 탈규제 등은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국가의 기능을 최소화하려는 입장인데, 그러한 입장에 따르면 연금제도나 사회보장제도, 교육제도나 국가기간산업도 민영화하고 수익성모델에 따르자는 주장으로 연결되어, 국가가 개입하여 공공성과 형평성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사회권적 기본권과 충돌하게 된다.
■ 신자유주의에 대응하는 사회권 운동으로
이러한 경향에 따라 미국은 물론 선진복지국가인 유럽에서도 사회보험의 수급자격요건 강화, 의료부분에서 비용효율성의 제고, 연금제도에서 미래세대의 부담 완화, 공공부조나 실업보험의 경우 노동연계복지(workfare)의 강화 등의 조치가 취하여졌다. 유럽연합 집행부에서 권고한 사회보장체계의 현대화 과제 중에도 노인보호와 여성의 사회보험 권리를 고려한 성(性)균형적인 사회보험개혁 등 진취적인 내용 뿐 아니라, 사회보장제도를 고용친화적 제도로 바꾸고 인구변화에 대비하여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것 등 신자유주의적인 내용도 포함되게 되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 영향에 의하여 진행된 유럽 사회보장제도의 변화가 사회보험을 완전히 폐기하거나(즉 민영화하거나), 혹은 사회보험의 지속가능성에 심각한 위험을 주는 상황은 아니다. 실제로 유럽의 사회보장예산은 신자유주의 출현 이후에도 줄지 않았다. 그에 비해 남미나 동유럽 등 개발도상국에서는 세계은행의 구조조정 개입으로 인하여 기존의 복지시스템이 민영화 혹은 시장친화적 복지 쪽으로 상당히 이동해가고 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우리 나라에서는 세계화가 오히려 일정부분 사회복지 필요성을 증대시키고 사회복지 제도 확충을 촉구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기왕에 사회복지를 시장-기업-가족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던 상황에서 세계화에 따라 소득분배가 악화되고 고용구조가 변화하면서 시장-기업-가족모델의 한계가 극명하게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신자유주의 노선을 분명히 하고 있는 IMF가 우리 정부에 대해 재정긴축을 요구하면서도 사회안전망 확대와 사회복지 예산 확충을 강권하였다는 점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IMF가 권고하는 재벌개혁의 내용이 진정한 지배구조의 개선이라기보다 결국 투명성을 강화해서 외국자본의 개입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는 비판이 있듯, IMF가 권고하는 사회안전망의 내용도 진정한 소득재분배라기보다 결국 구조조정과 해고를 당연시하는 신자유주의를 배격하지 않고 소화할 정도의 안전망을 의미한다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필요최소한의 제도도입은 오히려 빨라질 수 있으나, 필요최소한도를 넘어선 부분은 오히려 수익성 극대화와 강자의 논리인 신자유주의라는 벽에 부닥치게 되어 훨씬 더 어려워지게 되었다.
결론
그 동안 우리사회는 정치역학관계와 정치인 중심의 논의, 경제정책 분야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21세기에는 사회정책과 사회문제가 주요현안이 될 것이다. 미래지향적 정치인들이 생활정치를 이야기하고 분배문제를 좌우하는 나라살림살이인 예산에 관심이 높아지는 것도 그러한 경향을 반영한다. 정치와 경제 중심의 우리 나라에 사회복지나 사회정책 담당 공무원이 그 수가 매우 적고 파워도 없음에 비해 스웨덴에서는 사회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이 전체 공무원의 절반을 넘어서 60-70%에 해당하는 점은 이를 시사하고 있다.
앞으로 20 대 80의 사회가 더욱 진행되게 되면 고부가가치를 생산하는 20%의 국민이 벌어온 자원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분하느냐가 사회의 수준을 좌우하게 될 것이고, 80%의 국민 중 상당 부분을 어떻게든 사회가 책임을 져주어야 할 것인가의 문제를 논의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적으로 자원을 분배하고 사회를 운영하는 공적분야의 일을 담당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소외된 사람들의 문제는 오로지 연대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강자들은 프로들이고 무엇이 중요한지를 본능적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소외된 사람들이 아마추어처럼 자신이 소외된 특별한 계기에만 집착하고 그 특별한 계기에 의해서만 소집단을 만들어 따로따로 이야기하고 따로따로 행동할 경우 강자의 논리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고 자신들의 문제조차도 결코 해결할 수 없게 된다.
노동조합은 노동조합대로 따로 가고, 여성단체는 여성단체대로 따로 가고, 장애인들은 장애인들대로, 노인들은 노인들대로, 청소년은 청소년대로 따로 가고, 학력에서 소외된 사람들, 지역문제로 소외된 사람들 모두 따로따로 간다면 모두들 열심히 노력하고 일했으나 사회적인 변화와는 거리가 멀고 서로가 충돌하여 힘을 소모하게 되며 자칫 집단이기주의로 평가될 수도 있다.
특히나 사회정책들은 각 분야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예를 들면 실업문제만 해도 직업훈련, 고용보험, 생계보장, 자활, 실업가정지원 등 복지, 노동, 예산, 지자체 관련정책들과 연관되어 있다), 각 부문사회집단간에 서로 연대하고 조정하지 않는 한 실현가능한 정책이 나올 수가 없다.
신자유주의 질서의 확산으로 사회복지와 사회보장의 확대는 불가피해졌으며, 사회권이 급속도로 신장되지 않으면 부익부 빈익빈의 불안정한 후진사회로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기로에 서 있다. 한편으로 신자유주의적 상황을 사회권 확대를 위한 기회로 활용하면서 한편으로 신자유주의라는 강자의 논리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서 시민운동과 노동운동 그리고 각 부문사회운동이 사회권이라는 대 목표하에 연대하여 모든 사회정책에 적극 개입하고 또한 상호 조정하여 일치되고 일관성 있는 정책을 제안하고 또한 연대의 힘으로 이를 관철하는 지혜를 발휘하여야 할 것이다.
월간 <복지동향> 2001년 02월호(제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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