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1 2001-08-10   1506

자판기로 흘러나간 수급자 복지

"서울시와 각 구청들은 조례 알기를 뭘로 아는 거죠?"

서울시와 각 구청에 식음료 자판기와 매점, 신문·복권판매대 등의 운영실태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하면서 자원활동가들이 한결같이 느끼는 것이었다.

서울시와 서울시내 강동구를 비롯한 16개의 구에는 '공공시설내의신문·복권판매대,매점및식음료용자동판매기설치계약에관한조례(이하 '설치계약조례')'가 있다. 말 그대로 시와 구 청사, 소속 공공기관에서 자판기 등을 설치·계약할 때에 이 조례가 적용되어야 한다. 조례의 내용은 훌륭하게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장애인 1, 2급, 65세 이상의 노인, 모자가정, 독립유공자 등에게 우선적으로 이 사업을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지난 2월말부터 지자체의 저소득층 지원상황을 점검하기 위한 첫 조사로 서울시 각 지자체의 저소득층 지원 조례의 운영상황에 대한 점검을 시작했다. 1차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인한 결과 사실상 저소득층 지원을 위한 조례는 명절과 때때마다 수급자들에게 농협상품권 등을 지원해 주는 것과, 중앙정부와 광역자치단체의 예산지원을 받는 생활안정기금의 대부사업이 대부분이었고, 지자체 별 특화된 조례나 지원책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한편으로는 설치계약조례에 근거한 자판기 등의 위탁 건수가 너무 작아 도대체 이 조례의 적용을 받는 자판기 등의 수량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해 보기 위해서 2차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2차 정보공개청구는 서울시와 25개 구청 모두를 대상으로 하였고, 설치계약조례 여부와 무관하게 청사를 비롯한 보건소, 구민회관, 문화회관 등에 있는 자판기와 매점 등의 수자를 파악해 보고자 했다.

몇 차례의 정보공개청구와 구청에 개별확인 등을 거친 조사결과는 총 1,120대의 자판기 중 64%에 해당하는 717대만이 이 조례의 적용을 받고 있었다. 그마저도 지하철공사와 도시철도공사를 제외할 경우 434대 중 고작 7.1%에 해당하는 31대만이 저소득층에게 위탁관리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자판기는 누가, 어떻게 운영하는 것일까? 거의 대부분이 직원상조회와 직원후생복지위원회에서 자체적인 복리후생비, 체육대회 지원, 구내식당 지원, 심지어는 콘도구입에 자판기 수익을 사용하고 있었다. 결국 사실상의 조례위반을 행정기관 스스로가 범하고 있는 것이었다.

[표] 공공기관 내의 자판기 설치계약 상황

공공기관
청사 및 소속기관 자판기대수
장애인, 저소득층 위탁
설치계약조례 있는 자치구
서울시

  시청

  지하철공사

  도시철도공사

 

50

520

166

 

0

520

166

16개 구청
384
31
1,120
717
조례 없음
9개 구청
219
1
총계
1,339
718

문제가 되는 것은 조례의 적용범위를 어떻게 보느냐 이다. 공공시설 내에 설치계약이 있을 경우에는 우선하여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서울시와 각 구청에서는 자판기 등을 "직영"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직영"이라 함은 그 수입과 지출이 지자체의 공식예산에 반영되고 지출되어야 하는데, 각 지자체의 자판기 수익은 직원상조회 혹은 직원복지후생위원회에서 별도로 관리되고 있었다. 따라서 이것은 사실상의 위탁관리이고, 설치계약을 정식으로 맺지 않고 직원상조회에 편법으로 지원하는 것과 같다.

이번 조사 과정에서 파악된 서울시내 공공기관 및 시구 소속기관의 자판기 대수는 1,340여대에 달한다. 자치단체 별로 공공기관의 범위를 달리보아 공개를 한 점을 고려하면 실제 공공기관 내에 설치·운영되는 자판기의 수자는 1,500여대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조례가 제대로 운영되거나, 해당 지자체의 의지에 따라서 1,500여명의 저소득층에게 자활과 소득보장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설치계약조례가 진정한 의미를 다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

설치계약조례의 적용범위 중 자판기는 가장 소소한 수익거리이다. 신문판매대, 복권판매대의 수익에 비하면 '새발의 피'인 셈이다. 신문판매대나 복권판매대는 그 임대료만도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달하고, 임대료의 30% 정도에 해당하는 계약보증금도 납부해야 한다. 대상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해 놓고, 수백만원의 현금을 임대료로 납부하라는 것이 저소득층 지원의 내용이라 하면 이치에 맞다고 할 수 있는가. 또 하나는 설치장소에 따라 그 수익의 편차가 매우 크다는 점이다. 자판기만 해도 서울시 청사에 있는 50대의 자판기 수입은 1년에 1억3천여만원에 달하지만 동사무소에 있는 자판기는 월 수입이 십여만원도 못되는 경우가 있다. 신문판매대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종로3가 역과 같이 환승역의 신문과 복권판매 수익은 아마도 대단할 것이다. 그 수익을 장애인 1인에게 준다는 것은 저소득층 지원의 합리적인 방법이 아니다. 그 계약을 체결하면 중산층 이상의 반열에 오르게 되니 말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점은 계약을 맺은 저소득층 장애인들에게 실익이 돌아가는지가 가장 중요한 점이다. 수익이 큰 신문과 복권 판매대의 경우에는 중간업체나 특정 단체에서 장애인 계약자의 명의를 사고 팔아 정작 계약 당사자에게는 수익이 없거나 적은 수익만이 돌아갈 뿐이라는 것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라 한다.

따라서 서울시와 각 구청은 현재의 자판기, 신문복권판매대, 매점 등의 설치계약 상황에 대한 점검을 시급히 실시하여야 한다. 특히 지하철공사와 도시철도공사와 같은 사업소의 경우 다른 이권의 개입이 없는지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 이에 따라 조례 위반이 있는 경우 이에 대한 즉각적인 시정조치를 내려야 하며, 편법적으로 직원상조회나 후생복지위원회를 비롯하여 특정인 혹은 단체에게 불법적인 특혜가 가지는 않는지 조사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자체가 저소득층을 지원하려는 "진심"을 갖고 있느냐이다. 그런 "진심"을 갖고 있다면 현행 조례를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것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특정 이해에 경도되지 않고 목적한 바를 달성하기 위한 사업의 형태가 무엇인지에 대한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조사결과 발표 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들이 언제부터 자판기를 운영할 수 있는지, 신청은 어디에다가 해야 하는지를 물어왔다. 그들의 절박한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문혜진 /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월간 <복지동향> 2001년 08월호(제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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