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3 2003-08-12   676

경제자유구역과 보건의료

작년 11월 14일 국회는 제 16차 본회의를 열고 각계의 반발로 그 동안 처리가 지연된 “경제자유구역지정및운영에관한법률(이하 경제자유구역법)”을 재적의원 272명중 193명이 참석한 가운데 찬성 125명, 반대 55명, 기권 13명으로 통과시켰으며 올해 6월24일 시행령을 통과시킴으로써 7월부터 부산, 인천, 광양 등 국제공항이나 국제항만을 갖춘 지역에 한해 경제자유구역이 지정되며 자유구역 내 외국인 전용 의료기관 설립이 허용된다. 또한 자유구역 안에 외국교육기관을 설립할 수 있고 누구나 입학할 수 있도록 함에 따라 외국인이 설립한 의·약대에 내국인이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의료계 모두 반대하는 경제자유구역법

한편 이 법안이 통과하기 전인 작년 10월 26일, 보건의료단체연합은 “경제자유구역법은 요양기관 당연지정제의 폐지를 의미하며 이는 민간의료보험의 도입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의료의 상업화나 사치화를 조장”하기에 김대중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요구한 바 있다. 대한의사협회 역시 “외국인에게만 의료기관과 약국 설립을 허용토록 한 것은 공정경쟁에 어긋”나며 “의대가 신설되면 의료인력 대부분이 국내 유입되어 의사, 약사, 간호사의 적절한 정원을 통제할 수 없어 많은 문제점이 발생한다”며 정부에 공식적인 반대의견을 제출한 상태다.

정부와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의견은 조금 다르다. 정부 관계자는 “현행법상 경제특구에 설립되는 외국의료기관은 내국인을 진료할 수 없기 때문에 진료여건상 외국 대형병원들에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고 말하고 있으며, 복지부 관계자도 “특구내 외국의료기관은 외국인만 진료하도록 하고, 진료 범위를 확대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 방침”이라며 “국내 의료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외국계병원 목소리 대변하는 인천시

그러나 이미 작년 3월, 송도 신도시 167만평에 127억 달러를 투자해 국제 비즈니스 센터를 조성하는 계약을 맺고 영종, 용유, 무의 지역과 서북부매립지 두 곳을 포함해 총 4천여 만평을 경제자유구역으로 개발할 계획인 인천시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인천시는 경제자유구역에 외국의 유명병원을 유치하기 위한 접촉을 추진하면서 “외국계병원이 직접 시설을 신축하지 않더라도 상업시설에 병원을 임대하거나 외국 영리법인과 국내 의료법인이 병원을 합작 설립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밝히고 있다. 인천시는 이들 병원이 들어올 경우 송도 신도시와 서북부 매립지에 1만∼10만평의 부지를 무상 제공하고 지방세와 국세를 면제해주는 한편 병원 신축공사 자금의 70%를 저리로 융자해줄 방침이다. 아울러 인천시는 이들 외국병원들이 외국인 뿐 아니라 내국인 진료허용을 조건으로 내걸고 있어 재경부 등에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을 요청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이는 국내로 진출하고자 하는 외국계 병원의 요구를 인천시가 대신해주고 있는 셈인데 이들 병원은 국내진출 후 의료서비스의 전면개방과 민간의료보험을 요구할 것이고 경제자유구역 이외의 다른 대도시로 이러한 움직임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끊임없이 제기되는 요양기관 자유계약제 요구

작년 10월 31일 헌법재판소 전원합의부는 서모씨 등 의사 5명이 “모든 의료기관을 의료보험 요양기관으로 강제 지정하는 제도는 직업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합헌결정을 내렸다. 우리 나라의 의료보험은 전 국민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사회보험이며 또한 모든 의료기관도 의료보험 요양기관으로 강제 지정되어 있다. 의료계 일각에서 이러한 의료보험 요양기관 강제 지정제도의 위헌 소송이 제기되어 왔는데 지난 99년 7월과 2000년 8월에도 각각 헌법소원을 낸 적이 있다.

한편 민주당 등 정치권에서도 요양기관의 강제지정제도를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는 사실은 상황이 예사롭지 않음을 시사한다. 작년 11월 29일, 한 정치권 관계자에 따르면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를 자유계약제로 전환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며 대선 후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힌바 있다. 헌법재판소의 강제지정제도 합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이와 모순되는 정책 추진이 정치권에서 검토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민간의료보험의 시발이 될 외국인 전용 의료기관

경제자유구역안의 외국인 전용 의료기관은 건강보험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즉 요양기관으로 지정되지 않아 환자를 보험이 아닌 일반으로 진료할 수 있다. 결국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도는 경제자유구역으로 진출하려는 외국계 병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여러 가지 여건상 지체되던 민간의료보험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높아진다. 문제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외국인 전용 의료기관이 외국인 “전용” 의료기관이 아니라 외국인”도” 이용하고 내국인”도” 이용할 것이라는 불안감이요, 경제자유구역에 진출할 외국계 병원이 자신의 활동을 경제자유구역 안으로 한정짓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결국 경제자유구역에서 시작된 변화는 국내 전체로 퍼질 것이고 국내 의료계도 경제자유구역 안의 외국계 병원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작년 11월 16일, 생명보험협회가 개최한 “단체보험시장 현황 및 활성화 방안”세미나에서 “보험업법 개정으로 2003년 중 생보사의 단체실손보상상품 판매가 허용될 예정”이라며 “오는 2005년 민영건강보험 시장규모는 약 11조 805억 원에 달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보험회사의 입장에서 단체보험은 개인보험보다 가격이 저렴해 민영건강보험시장 개척 초기에 시장 활성화가 유리한데 개인건강보험(사실상의 민간의료보험) 시장은 건강보험공단의 의료관련 통계 이용이 허용되는 등 시장 환경이 개선된 후 추진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 민간의료보험이 도입될 경우 가입할 능력이 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간의 불평등과 차별이 심화될 것임은 여러 곳에서 주장하고 있다. 민간의료보험을 도입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고 여러 가지 여건이 민간의료보험 도입에 점점 유리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앉아서 손놓고 바라보고만 있을 상황은 아니다. 경제자유구역법은 노동, 건강, 환경 전반에 걸쳐서 인간의 삶의 질을 악화시킬 것이 눈에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의료개방 막을 공공의료 강화

경제자유구역법은 그 성격상 의료시장 개방이라는 문제와 맞물려 있다. 비록 이번 1차 양허안에는 의료시장 부분이 빠져있다 하더라도 그 공세는 계속적으로 이루어 질 것이다. 이를 막아낼 수 있는 방법으로 공공의료를 대폭강화 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나 생각한다. 현재 우리의 왜곡된 의료체계가 공적의료부문이 매우 취약한 상태에서 의료의 공공성을 유지하기 위한 정부의 투자 없이 이를 사적 의료기관에 강제로 위임하는 과정에서 쌓이고 쌓여 나타나게 된 것으로 분석하는 시각이 많다. 따라서 우리는 공공의료기관의 확충과 현행 50%대에 머물고 있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80% 이상 확대, 노무현정부의 공약인 공공의료 30% 준수 촉구 등 의료의 공공성 확보 투쟁이 필요하다.

그리고 공공성의 요구가 충분히 성취되지 못하는 시점이라도 최소한 그때까지 민간의료보험 도입 반대, 영리법인의 의료기관 설립 저지, 의료보험 요양기관 강제지정과 같은 현행 의료체계를 고수하는 전략으로 가야 한다. 이를 위한 보건의료운동단체의 대응과 함께 이 문제가 단지 보건의료인들 뿐만 아니라 전 국민적 건강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으므로 경제자유구역 및 의료시장개방을 반대하는 제 시민사회단체들과 민중운동단체들과의 연대 속에 협상내용 공개, 공공의료 확충 등으로 정부를 압박하여 경제자유구역 및 의료시장개방에 적극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다.

천문호 /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 mediplex@freechal.com

월간 <복지동향> 2003년 08월호(제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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