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
세상 많이 달라졌다. 17대 총선에서 주요정당 모두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장애관련 공약 중 최우선해서 채택했다. 법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이지 않지만 어쨌든 법 명칭만 보면 장애문제를 차별로 보겠다는 의미라고 보여진다. 하지만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는 것은 지난 16대 장애인복지공약 첫 머리에 공히 주요 정당들은 장애수당 4만5천 원을 10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 4년 동안 1만5천 원 인상되었고 그나마 대상도 생활보호대상자 중에 중증장애인에 한정되는데 그치고 있다. 해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운운하는 것 또한 단순히 차별을 규정하는 수준으로 그치거나 장애인복지법 개정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지 우려가 되기는 하다. 왜냐하면 장애계가 요구하는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요구수준과 그동안 정부를 비롯한 법 전문가들의 생각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동법 제 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법 제30조 2항은 “평등권침해의 차별행위라 함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종교, 장애…….이유로 차별 받는 행위를 말한다”라고 보고 있다. 어쨌든 헌법에 보장하고 있는 평등조항이 열거적 의미가 아니라 예시적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법에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 규정에 장애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장애를 가진 사람의 차별을 금지하고 평등의 이념을 구체화한 장애인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별도로 제정되어야 한다.
1990년 미국은 민권법에 기초해서 ADA(미국장애인법)을 제정했고, 1993년 이후 호주,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는 DDA(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했고 2002년 독일은 ‘장애인기회균등에관한법’을 제정 시행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어떠한 형태로든 차별금지에 관한 법규정을 가진 나라가 40여 개 국가에 이르고 있으며 독립된 단일 법 형태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가진 나라도 20여 개국에 이르고 있다.
2.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에 있어서의 쟁점
차별의 범주
차별의 범주를 직접차별로 한정할 것인지 아니면 간접차별과 정신적인 폭력(harassment) 중 일부를 포함시킬 것인지 아니면 전면 포함시킬 것인지, 역차별을 방지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affirmative action)를 장인차별금지법에 모두 포함시킬 것인지에 대해 이견이 많다.
차별의 범주는 직접차별은 물론 간접차별 중에 분명하게 통계적으로 입증 가능한 부분으로 한정지어야 할 것이다. 특히 적극적 조치의 경우 할당제 등 명백하게 복지서비스와 구별될 수 있는 경우에 한정해야 할 것이다.
입증책임의 전환
입증책임의 전환은 이미 남녀고용평등법 제19조 “이 법과 관련된 분쟁해결에서의 입증책임은 사용자가 부담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어 이 법의 입법 예를 근거로 하면 크게 무리하지 않을 쟁점으로 생각한다.
손해배상액의 추정 제도
차별 영역별로 손해액을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 당사자의 선택에 따라 이 법에 의한 영역별 배상액의 범주에 관한 근거 규정을 둠으로서 손해액의 입증의 책임을 서로에게 완화시킴으로서 이 법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기존의 위자료보다는 두 세배 상향해서 정하고, 명시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좀더 명확한 규정을 두는 것이 바람직 할 것으로 생각된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
고용 등 일부 영역에 국한하여 이 법에서 실체법상의 금지 조항 중 가장 반사회적이고 금전적으로 제재하는 것이 유효 적절할 사안에 한해서 제한적이고 열거적으로 도입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시정명령제 도입
강제력 있는 시정명령 도입 시 상징성과 생명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는 사법적 심사 대상이 된다는 이유로 인해 행정소송의 결과 현실적으로 국가인권위원회의 경우 이를 감당할 만한 조건이 되느냐에 대한 의심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 만일 시정명령 제도가 없이 이 법이 제정된다면 차별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구제조치가 약해 법 실효성에 문제가 있다고 보여진다. 시정명령에 따른 이행강제금 부과방식을 통해 즉각적으로 차별에 따른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집단소송제/ 단체소송제
2002년 3월부터 증권분야의 집단소송제 도입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고 본다면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집단소송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크게 무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독일의 단체소송제도는 개별 법규에서 일정한 요건을 갖춘 단체에게 원고 적격을 인정하여 집단피해구제소송을 수행하도록 하는 제도로서 대표당사자 소송과는 달리 단체소송에서는 소송당사자에게 직접적인 이해 관계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 가장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상의 일상성에서의 차별에 따른 피해의 상당부분은 소액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의미에서 단체소송제도를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보여진다.
처벌 규정에 대해서
처벌 규정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이 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처벌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차별유형에 따라 기준이 다르고 입증하기가 너무 어려워 사실상 이 법에서는 차별유형은 열거적이고 제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우려로 인해 처벌규정은 가능한 한 최소화하면서 민사소송의 근거를 명확히 하고,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명시된 차별유형 조항 중 가장 반사회성이 심각하고 중대한 사안의 경우에 대한 형사처벌 근거 조항을 명시하여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집행력과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벌칙 조항을 세분화 할 필요가 있다고 보여 진다.
3.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 전망
인권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은 규범적 법으로 제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차별금지법에 장애차별분야와 노동분야가 어느 정도 포함될 수 있을지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왜냐하면 노동분야의 경우 현재 노동위원회, 노동사무소 등과의 업무관계를 조정해야 하고, 장애분야의 경우는 예산이 수반되는 조항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가부가 비교적 분명해야 할 차별금지법에서 이를 수용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차별금지법에서는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이행 강제금 부과 방식, 집단소송제, 단체소송제, 시정명령제 도입 등 극히 부분적으로나마 반영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관련부처간의 이해관계와 장애인단체의 요구가 각기 상이하고 있어 장애차별을 둘러싼 복잡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구제절차와 시정기구 등 큰 틀에서 해결되어져야 할 전제조건에 따라 제정 속도와 내용에 있어서의 합의 과정상의 논의가 복잡해 질 수도 단순해 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수위를 어느 정도에서 합의가 될 지에 대해서는 장애계 내부의 치밀한 합의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의 대응에 대처하지 못하거나 일반 국민의 지지도 얻어내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4. 글을 맺으면서
장애관련 4대 법이 짧게는 수년, 길게는 20여 년의 넘는 시행기간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우리 사회는 아직도 장애를 가진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모든 사람이 누리는 기회의 평등에서도, 조건의 평등에서도 수많은 장벽으로 가득 차 있다. 더구나 결과적 평등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앞서 소개한 통계에서 보여지듯이 극심한 불평등 상황에 놓여 있다.
장애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입체적으로 보아야 한다. 장애문제는 보편적인 문제이기도 하고 동시에 특별한 상황에 놓여 있는 특별한 욕구가 필요한 사람들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장애문제는 복지서비스 차원으로만 접근하려 했다. 이러한 시도는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편견만 고착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했다.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특별한 욕구를 가진 ‘사람’이기도 하고 동시에 ‘모든 사람’이 누리는 ‘모든 권리’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복지서비스는 장애문제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장애차별을 해결하기 위한 입법 운동은 꼭 성공해야 함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월간 <복지동향> 2004년 6월호(제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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