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6 2006-03-10   941

[동향1] 노숙인에 대한 폭력: “증오의 문화”

얼마 전 언론보도(2005. 2. 16. 오마이뉴스 등) 통해 미국사회에서의 “홈리스 구타살해사건”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된 바 있다. 이는 지난 1월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 재판 도중 경찰의 사건발표를 통해 구타행위 자료화면이 방송에 소개되었고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던져준 사건이었다.

마이애미에서 세 명의 십대가 세 명의 홈리스에 대해 차례로 몽둥이 등을 이용한 폭행을 가하였다. 이들 십대에게 폭행을 당한 세 명의 홈리스 중 두 명은 중상을 입었으며, 한 명은 사망했다. 특히 이들의 폭력은 특정한 마찰이나 시비에 의한 과정에서가 아니라 홈리스에 대한 편견에선 나온 ‘증오 범죄’로 알려졌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최근 5년간 홈리스(노숙자)들에 대한 증오범죄가 꾸준히 증가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내셔널 홈리스'(nationalhomeless.org) 사이트는 지난 2000년부터 2004년 사이에 홈리스 증오범죄가 5배로 늘어났다고 밝히고 있다.

홈리스 전국연맹(NCH)의 기록에 따르면 지난 6년간 전국적으로 386건의 홈리스 구타사건이 발생했으며 이중 156명이 사망했다. 공격의 80%는 백인에 의해 발생했으며 공격자의 대부분은 20세 이하 청소년이었다.

노숙인에 대한 폭력이 먼 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노숙인도 비슷한 양상에 대한 호소를 하곤 한다. 지난 2005년 인권실태파악을 위해 이루어진 노숙인과 주거불안정계측에 대한 면접녹취기록을 살펴보면 이러한 점이 드러난다.

회현역 같은 데는 혼자 자다가 (지나가는 행인이) 그냥 칼로, 소주병으르두 찌르고 ……칼, 칼 사건은, 헛, 작년인가 그랬어요. 병으로, 그냥, 얼굴 …… 병, 병, 특히! 소주병 같은 걸로 그냥!, 예에, 아주, 그런 경우가 있죠. ……또 지나가며는, 발길질도 하고, 치잇, 그으냥!! 귀빵망이를 때리는 사람들도 있구요. [지나가는 행인들이] 맨날 싸워요!! 일주일에 한 서 너번은 싸울 거예요!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그냥 다, 다 뿌셔버리고 가는 거예요-. 화장실이고 뭐고 맨 정신에는 그렇지 않아요, 한잔 먹고! 그냥 화풀이 하고 가는 거예요!!!

(서울의 거리노숙인 A)

폭력도 하죠. 맞은 친구들도 있구요. 그냥, 밤에 잠자고, 그냥 때려놓고, 그냥 야반, 그, 그 도망가는데 잡을 수가 없죠. 누가 때렸는 줄 알고 잡아요. …… 발로 차고! 저희로서는, 손을 댈 수 없어요. 왜? 저희는, 약자예요! 모두가 그 사람들을 때리며는 저희가 다!……

(쪽방거주자 B)

뭐 막 공원에 누워있다고 막 발로 차고, 차고 일어나라고 때리고 그런 거도 몇 번 보고 그랬죠. 그런 거 동영상으로 찍어 가지고 말려야 된다고. 누워있으면 막 발로 걷어차고, 막.

(서울의 거리노숙인 C)

대구역에 와가지고 저, (XXX) 거 가서 내가 좀- 이렇게- 말하자면 문 앞에 좀 앉아 놀았어요. 고가 햇빛이 가리길래, 고 좀 앉아 놀다가 담배도 피고, 이래 가지고 고 좀 앉아 노니께네, 주인아저씨가- “왜 여기 앉았냐” 그카면서 뭐라 카드라고. 그래 내가 “아저씨 나 쪼금 앉았다 갈게요” 이러니까, “그래-도” 그카면서 뭐라카고서 몽둥이를 갖고 뚜드려 패더라구요- 그래가 내, 허리도 못 쓰고. 그래서 내가 파출소에서 신고를 했지요- 신고를 해가지고 인제 파출소를 갔지요. 그 사람하고- 그해 갖고 인제 거 파출소에 있는데 이렇게 아프니까 약도- 사먹으라 카고 이래, 거- 아저씨한테 돈 해가지고 나를 주더라구요. (고소) 그걸 또 몰랐지요.

(대구의 거리노숙인 D)

노숙인에 대한 폭력은 이해관계의 다툼이나 서로 개인적으로 감정이 상하여 이루어지는 싸움이 아니다. 대개는 일방적인 ‘미움(?)’에 의한 구타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양상과 관련하여 흔히 ‘증오범죄’, ‘증오폭력’이라는 용어를 많이 쓴다.

보통 사회의 다수 혹은 주류가 아닌 일부의 집단에 대해(대개는 특정한 사회적 약자) 객관성이 없는 편견과 악감정을 기초로 하여 폭력이나 범죄가 행사된다. 이러한 증오범죄나 증오폭력을 빈번히 행사하는 사회에 대해 우리는 ‘야만’이라며 비판하곤 한다. 유태인에 대한 독일의 과거사, 일부지역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나는 인종차별 등이다. 하지만 우리사회에서도 이러한 증오폭력과 범죄가 적지 않다. 지역감정의 문제가 이와 무관하지 않았고 최근 이주 노동자의 문제에서도 잘 드러난다.

미국에서의 이번 홈리스에 대한 증오폭력 사망사건을 다른 나라의 가십거리로 생각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노숙인 문제에 대한 인식과 상황은 어떠한가?

우리나라에서 노숙인 문제에 대한 인식은 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에 새롭게 부각되었다. 그 이전 시기에는 ‘거지’나 ‘부랑인’의 문제로만 여겨졌고 수용단속의 정책대상이었다. 가끔 사실상 전국에 10,000여 명 이상을 수용하던 부랑인 복지시설은 ‘현대적 사회복지’의 범주로 고려되지도 않았다. 외환위기 이후 소위 ‘실직 노숙자’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노숙인 문제와 사회적 대책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그로부터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아주 아쉬운 측면이 하나 있다. 극단적인 ‘인식’의 부분이다.

외환위기 당시와 직후, 노숙인에 대해서 ‘일할 수 있는, 일하려고 하는’ 측면에 대해 강조하는 인식이 많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사회적 인식이나 여론 중 상당 부분은 ‘일하지 않는, 일하지 않으려고 하는’ 노숙인의 측면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진다. 사실상 노숙인은 우리사회 시민들 중 일부이다. 우리사회 누구나처럼 두 가지 측면을 다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당시와 지금에 있어 우리사회 노숙인의 속성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생각할만한 합리적 근거는 없다(물론 이에 대해서 세부적인 측면에서 반론의 여지가 있지만 이는 오히려 우리나라의 노숙인 복지 서비스 체계의 부적절성과 관련되는 것이다). 우리사회에서도 편견에 따른 사회적 인식이 나빠지면서 증오폭력의 개연성은 점점 더 높아질 수 있다.

분명히 노숙인과 관련된 범죄양상 중 다수는 피해자로서의 노숙인이 관련되는 것이다. 노숙인이 가해자인 범죄 몇 사례에 대한 선정적인 보도태도도 노숙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더욱 조장할 수 있다. 노숙인 복지 체계가 구성되고 있다고 해도 우리나라에서의 노숙인 인권상황은 매우 열악하다. 종종 발생했던 역사에서의 노숙인 사망사건과 그 후속처리 과정은 매우 우려스럽다.

우리사회의 경제구조는 다수의 ‘실패자’를 만들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빈곤과 주변화를 경험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노숙의 생활을 하도록 강요받는다. 그게 누가 될지 알 수 없다. 노숙인은 나와 다른 이상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우리 이웃 중 일부가 경험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나와 다른 사회적 약자, 나와 다른 사람으로 구별짓고 이들에 대한 편견 속에서 ‘미움’을 키워가도록 방치하는 것은 ‘왕따’의 재판이다. 어쩌면 우리사회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과 미움을 공유하면서 스스로 주류에 속해 있다는 안도감을 갖게끔 공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회복지는 ‘클라이언트’의 인권옹호의 의무를 부여받은 역할영역이다. ‘홈리스에 대한 증오폭력’이 ‘미국사회의 일’이기를 바란다.

남기철 / 동덕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월간 <복지동향> 2006년 03월호(제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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