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적인 질문부터 던져보자. 왜 국민연금을 왜 개혁해야 하는가? 정부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국민연금기금이 2040년대 후반에 고갈되면 연금 지급이 어려워지니 기금고갈을 막기 위해 개혁하자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현재 국민연금에서 빠져있는 사람이 너무 많아 나중에 연금을 못 받는 노인들이 많아지니 이들을 연금제도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중 현재의 연금개혁논리를 지배하는 ‘국민연금기금 고갈론’이 과연 근본적인 대안인지 생각해보자.
국민연금기금이 고갈되면 미래세대의 보험료 부담이 과중해지고, 사회전체의 경제적 부담이 커지니 현세대가 보험료를 더 내고 연금을 덜 받자는 정부의 생각은 어찌보면 맞는 말 갖지만 잘못된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정부의 개혁안은 기금고갈 차제를 막는 것이 아니라 기금고갈 시점을 2040년대 후반에서 2070년 초반으로 연장하는 것이다. 보험에서 기금고갈이 나지 않으려면 내는 돈과 받아가는 연금액이 완전히 일치시키는 것, 즉 낸 것만큼만 받아가는 사보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칠레나 싱가폴같은 나라는 이런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한국의 국민연금은 처음부터 이런 방식이 아니라 기금고갈을 전제로 하여 설계된 것이다. 기금고갈이 예정되어 있는 것은 현재 연금에 가입되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낸 보험료에 비해 2배 가까운 연금을 받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설계를 했을까? 이를 이해하려면 한국의 연금제도는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가는 과도기를 전제로 하고 설계되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지금의 60대 이상 세대들은 노후를 위해 연금에 가입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다. 왜냐하면 늙으면 자식들이 돌봐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세대는 이것이 당연한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농업사회의 사고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30-50대는 산업사회에서 태어났거나 성장한 사람들로 자식들이 더 이상 자기들의 노후를 챙겨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세대들은 공적연금이나 혹은 사적연금에 의존하여 노후를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이 세대는 농업사회의 마지막 세대인 지금의 노인들을 자신들의 월급을 털어 부양해야 한다. 대부분의 30-50대가 부모에게 생활비를 보내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즉, 지금의 30-50대 세대들은 현재의 노인세대도 부양하고, 자신의 노후도 준비해야 하는‘이중부담’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지금의 10대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들은 나중에 지금의 30-50대를 부양해야 할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왜냐하면 30-50대 세대들은 국민연금에서 어느 정도 수준의 노후생활비용을 충당받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후세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현재의 30-50대 세대들이 보험료를 더 내고, 연금을 덜 받자는 논리는 지금의 30-50대 세대에게 과중한 부담을 지우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현행 국민연금은 미래세대에게 짊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노인부양의 세대간 공평성을 확보하는 장치이다. 따라서 후세대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보험료를 높이고, 연금액을 줄이자는 것은 세대간 공평성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대간의 불공평성을 조장하는 것이다.
국민연금기금이 고갈되면 큰 경제적 문제가 생기니 빨리 연금을 뜯어 고쳐야 한다는 논리도 단순하기 짝이 없고 연금개혁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될 수 없다. 공적연금제도의 본질은 특정시점에서 젊은 세대가 생산한 부의 일부를 노인세대에게 배당하는 것이다. 국민연금기금이 고갈되는 것은 노인을 부양하는 여러 가지 수단중의 하나인 국민연금의 기금이 고갈된다는 것이지 노인을 부양할 수 있는 경제적 총량이 없어진다는 것이 아니다. 국민연금기금이 고갈되면 연금을 지급하지 않을 것인가? 세상에 그런 나라는 없다. 국가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어떤 방식으로든 노인을 부양해야 한다. 기금이 고갈되면 미래세대는 노인부양을 위해 보험료에 더하여 모자라는 부분을 세금으로 충당되게 될 것이다. 서구의 모든 나라들이 다 그런 방식으로 노인을 부양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노인들을 부양하기 위해 소비되는 경제적 총량이 그 사회에 어떤 수준의 경제적 부담을 주는가에 있다. 기금고갈이 나더라도 보험료와 세금으로 충당하는 연금지급 총량이 가령 GDP의 10% 수준을 넘지 않는다면 서구의 경험에 의하면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즉 국민연금기금의 고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노인부양의 총량을 경제가 부담가능한 수준으로 통제하는 것이 연금개혁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정부의 보고서에 의하면 현행 연금제도를 그대로 두어도, 즉 보험료를 올리지 않고 연금액을 깍지 않아도 앞으로 44년 뒤인 2050년에 국민연금의 지급총량은 GDP의 7%에 수준에 불과하다고 명확하게 서술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연금수준을 깎지 않아도 우리경제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데 왜 연금을 깍아야 하는가?
국민연금의 목적은 노후빈곤을 예방하는 것이다. 기금을 적립하는 것은 단지 연금지급을 위한 수단이다. 그러나 정부를 비롯한 일부 학자들은 국민연금의 목적이 노후빈곤예방이라는 점을 완전히 망각한 듯 하다. 국민연금은 노후빈곤을 예방하는 것이지 재정안정화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광범위한 노후소득빈곤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재정이 아무리 안정적이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정부안대로 국민연금급여수준을 60%에서 50%로 인하하면 가입자중 절반 이상이 최저생계비 이하의 연금을 받게된다. 40%로 깍으면 아마도 대다수의 가입자들의 연금이 그야말로 용돈수준의 연금을 받게 될 것이다. 연금재정은 수십년간 안정되겠지만 (그렇다고 고갈이 안되는 것도 아니다) 노인빈곤예방이라는 근본적 목적을 상당부분 포기해야 한다. 향후 수십년간 국민연금의 총지출을 한국 경제가 감당할 수 있고, 연금을 깎으면 광범위한 노후빈곤이 예상되는데 왜 연금액을 깎는 소위 연금개혁을 해야 하는가? 한마디로 목적과 수단이 완전히 전도된 개혁이 아니라 개악에 가깝다.
그렇다면 왜 자꾸 이런 식의 개혁방안이 나오게 되는가?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을 세대간에 노인을 부양하는 노인부양의 연대장치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낸 돈 만큼 자기가 가져간다는 사보험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보건복지부가 국민들에게 국민연금을 자꾸 사보험으로 인식하게끔 만들고 있다. 기금고갈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국민연금은 노인부양에 대한 세대간 연대라고 설득해야 할 복지부가 오히려 기금고갈의 무서움(!)을 홍보하고 있다. 국민연금을 연대가 아닌 사보험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국민연금은 방어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보자. 40년동안 총 5천만원의 보험료를 낸 부부가 65세 은퇴하고 2달치 연금 120만원을 받고 여행 중에 둘 다 사망했다고 하자. 그럼 이 사람에게 나머지 잔액인 4천 8백 80만원을 돌려줘야 하는가? 반대로 동일한 부부가 100살까지 살았다고 하자. 그러면 낸 보험료보다 최소 2-3배의 연금을 탈 것이다. 그럼 5천만원 이상 타간 연금을 도로 뺏어야 하는가? 공적연금의 기본원리는 노후생활이라는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비슷한 사람들이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될 사람(즉 오래사는 사람)을 위해 공동의 기금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런 연대적 사고방식으로 생각하면 사망한 부부에게 못타간 돈을 지급하지 않고, 100살까지 산 부부에게 낸 돈보다 훨씬 많은 연금을 주는 것은 논리적으로 정당한 것이다.
정부의 연금개혁안은 또 다른 중요한 문제를 갖고 있다. 현행의 국민연금을 그냥 두면 최고 GDP의 50% 가까운 연금기금이 적립된다. 정부안대로 연금을 개혁하면 GDP의 70%가까운 기금이 적립된다. 국가가 운영하는 하나의 기금이 GDP의 70% 가까운 기금을 적립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 추세대로 가면 우량주식과 우량채권의 상당부분을 국민연금이 독식하게 된다. 160조원 이상 쌓여있는 지금 국민연금기금은 총채권 발행액의 17%를 차지하고 있다. 좀 더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국민연금기금이 대기업의 투자자금화되는 측면이 나타나고 있다.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기 위해 우량주와 우량채권에 투자하는 것은 국민연금기금이 국민의 돈을 모아 대기업의 투자자금을 대주는 꼴이다. 물론 이것이 반드시 나쁘지 않다. 하지만 지금처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가 발생하고, 중소기업의 활성화가 한국경제 활성화의 핵심적인 정책으로 부각되는 시점에서 기존의 투자방식이 국민연금기금의 올바른 투자방향인지 대대적인 토론을 해보아야 한다.
너무 많이 적립금을 쌓아두면 나중에 기금을 현금화할 때도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문제점이 발생된다. 가령 연금을 주식이나 채권으로 줄 수는 없으니 연금관리공단은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주식이나 채권 혹은 부동산을 현금화해야 한다. 현금화는 다른 사람들이 주식이나 채권을 구매해야 가능하다.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 연금을 개혁하던 GDP의 50% 이상 쌓이는 돈을 10-20년 사이에 모두 현금으로 전환하여 연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이게 경제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주식시장에서 수천억원의 매물이 아닌 수조원의 매물이 나온다고 생각해보자? 그것도 단기간이 아닌 10여년에 걸쳐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고 생각해보자. 도대체 경제가 어떻게 되겠는가?
국민연금의 기금고갈이란 망령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우리 사회와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기금고갈의 두려움을 완화시킨다는 명분으로 혹은 국민연금의 재정안정화를 기한다는 명분으로 급여수준을 인하하면 이는 국민연금의 기금규모를 더욱 키우게 된다. 이렇게 되면 국민연금의 노후소득보장기능은 대부분 훼손되고 너무 많은 기금을 적립하는데서 오는 경제적 문제점은 더욱 커지게 된다. 이런 이유로 최근의 국민연금개혁논의는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국민연금 개혁의 대안은 또 다른 중요한 문제인 연금사각지대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경제활동인구의 대략 2/3를 포괄하고 있고, 나머지 1/3은 제외시키고 있다. 연금에 들어와서 보험료를 내는 사람은 정규직근로자, 소득이 어느 정도 파악되는 일정규모 이상의 자영업자와 농민들이다. 빠져 있는 사람은 비정규직, 영세자영자, 실업자 등 우리사회의 취약계층이다. 즉 먹고살만한 사람은 연금에 들어와서 나중에 연금의 혜택을 받고, 현재 어려운 사람은 연금에서 제외되어 나중에 연금을 못받게 된다. 국민연금의 노후생활의 양극화를 부추키는 형국이다. 따라서 진정한 연금개혁은 사각지대 해소와 너무 많이 쌓이는 적립금 양자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야 한다.
사각지대 문제와 과도한 적립금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방식은 현재 축적되고 있는 연금기금의 일부를 현세대 노인에게 연금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즉 연금보험료의 일부를 현세대 노인들을 위한 연금으로 지급하고 나머지 부분을 적립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각지대 문제와 과도한 연금적립금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현재 논의되는 기초연금제도는 모든 노인들의 최저생활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진보적이다. 문제는 재원을 어디서 끌어올 것인가이다. 수조원의 돈이 들어가는 기초연금의 재원을 조세에서 충당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연금기금의 일부를 기초연금의 재원으로 쓰면 재원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가령 한해 15조원의 돈이 걷히는 국민연금보험료 중 약 5조원 정도를 기초연금의 재원으로 쓰고 나머지는 적립하는 것이다. 약간의 세금을 보탠다면 충분히 기초연금의 재원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과도하게 쌓이는 적립금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쌓여있는 연금기금을 현재의 노인들에게 지급하면 돈을 낸 사람들이 반발할 것이고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도 연금에 대한 생각 자체를 바꾸어야 할 필요성이 w제기된다. 국민연금기금은 세대간의 노인부양을 위한 다양한 수단중의 하나이지 반드시 돈을 낸 사람이 연금을 타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연금보험료를 낸 사람은 국가가 완전히 망하지 않는 이상 나중에 후세대의 누군가에 의해 그것이 연금보험료를 통해서이건 아니면 조세를 통해서 이건 다시 부양을 받게 될 것이다.
※이 글은 신진보리포트에 기재된 글입니다. 편집자 주
월간 <복지동향> 2006년 07월호(제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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