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8 2008-04-03   2540

[동향1] 건강보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폐지와 서민의 의료이용

 



건강보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폐지와 서민의 의료이용

 



감  신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건강보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란 우리나라의 모든 의료기관들이 건강보험 요양기관으로 당연적으로 지정되어(모든 의료기관들은 의무적으로 건강보험과 계약을 맺고), 모든 요양기관은 정당한 이유 없이 건강보험 요양급여를 거부하지 못하도록 하여 건강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되어 있는 국민들이 어느 의료기관에서나 건강보험을 통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건강보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를 폐지하고 요양기관 계약제를 실시하는 것은 의료기관들이 건강보험과 계약할 것인가를 의료기관의 의지에 따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며, 보험자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입장에서는 기준에 맞지 않는 의료기관을 퇴출시키거나 계약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98년, 2000년 요양기관 대표자들이 건강보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에 의해 영업활동의 자유, 재산권 등이 침해되었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하였고, 이에 대하여 2002년 헌법재판소는 그러한 측면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당시 헌법재판소가 우리나라에서 공공의료시설의 점유율이 지나치게 부족하여 의료법에 의하여 등록된 의료기관 모두가 공공 의료보험의 요양취급기관으로 당연히 적용받도록 규정한 국민건강보험법 제40조가 공공복리를 위한 기본권 제한으로서 합헌임을 인정하였다.

  의료계 등 일각에서는 지난 2002년 국민건강보험법상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의 합헌판결 이후에도 요양기관 계약제를 주장하여 왔고, 최근 건강보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폐지 또는 완화가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사회정책은 어떤 정책이든 나름대로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어 이것에 대한 치밀한 검토를 근거로 한 판단과 선택이 요구되며,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이해당사자들이 있다. 일반 국민, 국민건강보험공단, 의료기관, 민간보험회사, 의료산업부문 등은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폐지를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일 것이며, 이들의 이해관계는 일부 일치하기도 하고, 상충되어서 양립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어느 한 이해당사자의 이해관계가 일방적으로 채택되거나 혹은 기각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나, 상충되어서 양립할 수 없는 경우에는 우선적으로 고려할 가치에 근거해서 선택과 판단을 하여야 할 것인데, 의료정책은 서민의 의료이용과 직결된 정책이므로 당연지정제 폐지라는 의료정책이 “서민의 의료이용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가 우선적인 판단과 선택의 기준이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폐지는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영리법인 병원 도입 등과 맞물려 있는 정책으로 의료기관이 수입을 극대화 하려고 노력하는 방식에서 이윤을 극대화 하는 방식으로 의료시장이 재편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의료기관, 특히 의원은 대부분의 수입이 건강보험으로부터 생기므로 수요가 있는 곳, 즉 환자가 있는 곳에 위치하게 되고, 많은 환자를 진료하여 수입이 많아지면 수익도 많아지게 된다. 그러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폐지 등 앞에서 제시한 일련의 정책들이 도입되면 이윤이 있는 곳, 즉 돈 되는 환자가 있는 곳, 돈 되는 치료와 검사가 있는 곳으로 향하게 된다.

  요양기관 당연제 폐지의 근거로 여러 가지가 제시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고급의료에 대한 국민의 선택권 확대”가 제시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부유한 사람이 의료이용을 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으며,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높아졌다 하나 비급여 등으로 인하여 여전히 보장성이 낮아 서민은 의료이용에 경제적 장벽이 있고, 농어촌의 경우는 경제적 장벽 외에 부족한 의료자원으로 지리적 장벽이 있는 곳도 있다. 이런 사정에서는 서민이 의료이용에 장애를 받지 않도록 하는 정책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건강보험에서 요양기관 당연지정제가 폐지되고 계약제를 실시하게 될 경우 민간의료보험과 의료기관의 계약을 허용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민간의료보험의 유형은 공보험의 역할을 보완하는 ‘보충형’ 모델에서 민간의료보험이 건강보험을 대체하거나 경쟁하는 ‘대체형’, ‘경쟁형’ 모델로 발전하게 될 것이며, 이는 기존 우리나라 건강보장의 틀 전체가 크게 변화될 수밖에 없게 된다.

  건강보험은 의무가입이므로 민간의료보험과 계약한 의료기관을 이용하기 위해 민간의료보험을 가입한 사람은 건강보험료를 지불하고 또 민간의료보험료를 별도로 물어야 하는 이중 부담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국민은 대체로 고소득자들일 것이며, 대기업 (고위직) 근무자들은 회사가 민간의료보험료를 대납해 주는 부가임금(fringe benefit)의 한 부분으로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민간의료보험으로 자신의 의료문제를 해결하게 되면,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를 위한 보험료 인상에 찬성하지 않을 것이며, 심지어는 건강보험 탈퇴를 요구할 수도 있어 사회적 연대에 기초한 사회보험으로서의 건강보험의 위상을 흔들 수 있다.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도 폐지와 민간의료보험이 국민들에게 주는 이익은 의료보험과 의료기관의 선택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의료기관은 현재도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하다. 당연지정제도가 폐지되면 건강보험 급여를 받고 지정의료기관을 이용하느냐, 전액 자부담 또는 민간의료보험으로 건강보험 비지정 의료기관을 이용하느냐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이는 결국 전액 자부담이든 민간의료보험 가입이든 부담 없이 선택할 수 있는 부유층에게만 보장되는 ‘선택의 자유’일 뿐,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선택의 자유’란 서류상의 명분에 불과할 것이고, ‘선택의 자유’는 지금보다 오히려 더 제한 받게 될 것이다. 또한 향후 건강보험 지정의료기관과 비지정의료기관으로 양분되어 건강보험 지정의료기관을 이용하게 되는 대다수의 서민이 상대적 소외감을 느낄 수 있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는데, 이런 경우 사회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상의 내용에 대해 논리의 비약이라든지, 요양기관 당연지정제가 폐지되더라도 현재도 건강보험 환자를 거의 진료하지 않는 일부 의료기관과 전문화된 의료기관 등 건강보험을 이탈하는 의료기관의 수는 많지 않을 것이므로 국민의 의료이용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제한적으로 이루어지는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폐지조차도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의 틀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장기적으로는 ‘환자’ 중심에서 ‘돈 되는 환자’ 중심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며, 의료의 상업화를 부추길 것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폐지를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게 하면, 부정적 파급효과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가정하기도 하는데, 어떤 제도든지 한번 형성되면, 자기 발전과 확대재생산 경로를 만들어 내게 된다.

  대도시에는 의원이 많아서 일부 의원이 건강보험에서 이탈한다고 해도 시민의 의료이용에 당장은 큰 영향을 주지 않을 수도 있다(이 경우에도 서민의 의료이용에 어떤 방식이든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의원이 별로 없는 농어촌의 경우는 당연지정제 폐지로 인해 건강보험에서 이탈하는 의원이 일부 아니 어떤 경우는 하나일지라도 서민의 의료이용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당장은 농어촌 지역에서 당연지정제 폐지로 인해 건강보험에서 이탈하는 의원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향후 민간의료보험이 활성화되어 건강보험이 위축되면 의료수요 감소를 가져와 농어촌 지역의 의원 중 경쟁력이 있는 의원은 돈 되는 환자가 있는 곳을 찾아 떠날 것이다. 중소도시도 일부 전문과목의 경우 의원이 몇 개 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들 중 일부라도 건강보험에서 이탈하거나 떠나는 경우 서민의 의료이용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의료인도 영업활동의 자유, 재산권을 침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어 당연지정제 폐지는 검토될 수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지금도 의료이용에 부담과 어려움을 느끼는 서민의 의료이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면, 당연지정제 폐지 검토에 앞서 서민의 의료이용 장벽을 해소하는 것이 우선 일 것이다. 당연지정제 폐지 검토에 앞서 선결되어야 할 과제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공공보건의료기관이 양적․질적으로 확충되어 기본적으로 건강보험과 계약된 서비스를 국민들에게 제공될 수 있어야 하고, 지역별 의료자원이 균등해야 한다. 지역별 거점 공공병원을 육성하고, 도시지역도 보건지소를 확대하며, 농어촌 지역 보건지소를 포괄적인 건강관리를 할 수 있는 기관으로 육성하여야 한다.

  둘째, 요양기관계약제를 실시할 경우 대체형, 경쟁형 민간의료보험 모델이 불가피할 수 있다. 따라서 건강보험 보장수준이 최소한 80%는 되어 건강보험만으로도 충분한 보장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셋째, 건강보험과 계약하지 않는 의료기관과 의료서비스에 대한 관리방안이 확보되어야 한다.
  넷째, 민간의료보험에 대한 관리 방안을 법률로 제정해야 한다.

  다섯째, 1차 의료의 경우 국민주치의제를 실시하여 주치의 의료기관은 건강보험과 계약하고, 이를 통해 건강보험 의료서비스의 전달체계가 확립되도록 해야 한다.

  여섯째, 건강보험 재정의 효율적 사용을 위하여 총액예산제를 도입하는 등 진료비 지불보상제도를 개편하여야 한다.

  일곱째, 의료기관평가, 의료의 질 평가 등 다양한 평가시스템을 구축하고 그 결과를 계약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월간 <복지동향> 2008년 04월호(제1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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