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참으로 뒤숭숭하고도 슬픈 나날이다. 경찰총장이라는 자가 80년대식 진압 운운하더니 드디어 광우병대책회의를 압수수색한답시고 참여연대 사무실에 들이닥치지를 않나 그것도 모자라 대책회의 간부들의 개인 집까지 수색했다. 이 쯤 되면 누구 말대로 “한 번 해보자”거다.
카톨릭 사제들까지 나서서 정권의 오만함을 꾸짖는 마당에 정부와 보수언론은 정신 나간 경제학자 몇 명을 동원해서 작금의 경제위기 조짐이 촛불시위 때문에 발생한 것처럼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 불법폭력시위라는 말은 아예 전제로 깔아놓고 있다. 현 정부와 보수언론은 1950년대의 냉전적 사고방식과 1970년대식 개발주의 사고방식에서 단 한 치도 바뀌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세계관을 증명하기 위해 헛것을 보고 싶어 한다. 자기가 있다고 믿는 헛것이 안보이면 한없이 불안해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헛것은 헛것일 뿐이다. 지금 집권한 세력과 보수언론은 자기들이 저지른 과오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그들은 대통령과 권력을 얼마나 조롱했던가? 아마도 지금의 10대나 20대들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혹은 사고를 형성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대통령과 권력을 마음대로 조롱하는 한국의 “자유로운” 언론과 인터넷의 바다에서 소통하며 컸을 것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0교시 수업을 강요하고 성적으로 줄세우기를 하고 불법폭력시위 운운한들 부당한 권력의 정당성에 의심을 품을 줄 아는 그 “애틋한” 마음이 사라질 것인가? 그런데도 정부와 보수언론은 기어이 헛것을 보겠다고 저 야단들이다. 이건 정신분열증세다. 장애등록이라도 해줘야 할 것 같다.
프랑스의 한 유수언론은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라고 하면서 이를 “브로드밴드 민주주의(broadband democracy)”라고 부르고 그 주역을 네티즌이라고 소개하였다고 한다. 브로드밴드 민주주의는 아마도 누리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브로드밴드 민주주의는 정보의 불균형을 크게 완화하였고 그로부터 시민과 국가 간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가 어떠애햐 하는지에 대해 심각한 문제제기를 가능하게 하였다. 서구국가들이 브로드밴드라는 인프라 없이 이룩한 국내정치의 민주주의와 국가간 관계를 우리는 브로드밴드라는 인프라에 힘입어 우리 것으로 규정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존경받는 한 정치학자는 정년퇴임사에서 브로드밴드 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의 제도적 틀 내로 들어올 수 있어야 하고 그럼으로써 기존 대의민주주의를 확대시켜야 한다고 말했는데 현재의 이 새로운 흐름을 어떤 형태로든 제도화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라면 이를 굳이 기존의 대의민주주의 제도 틀을 준거로 바라볼 필요가 있을까?
필자는 정치학 전공자가 아니어서 이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가 갖는 본질을 정치학적으로 정확히 포착할 능력이 있다고 자신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라면 그것은 새로운 틀에 의해 제도화되어야 하지 않을까? 브로드밴드 민주주의, 아니 누리민주주의를 이 땅에 착근시키려면 어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것인가? 누리민주주의의 새로움을 내용적으로도 정말로 새로운 것으로 승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현재의 정치적‧제도적 현실이 매우 암울한 것이 사실이지만 새로운 것을 새롭게 제도화할 방안은 끊임없이 고민되어야 할 것이다.
월간 <복지동향> 2008년 07월호(제1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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