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9 2009-05-01   1568

[심층분석1] 국가인권위원회의 탄생과 축소에 이르기까지

국가인권위원회의 탄생과 축소에 이르기까지


정연순(변호사)



 지금부터 8년전 2001년 11월 25일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라 함)가 출범하였다. 독립된 인권옹호국가기관인 인권위의 설립은 1987년 이래 우리 사회가 이룩한 민주화운동의 중요한 성과이다. 민주화가 되기는 하였으나 군사독재기간동안 권력에 의한 고문, 납치, 살인, 의문사를 경험한 국민들로서는 국가권력에 대한 불신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때마침 세계적으로도 정부의 인권침해에 대한 반성과 함께 국가권력에 대한 견제가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그 논의 끝에 1993년 파리에서 열린 총회에서 유엔은 ‘국가인권기구의 지위에 관한 원칙’을 채택하였는데, 이 원칙에서 유엔은 국가기구가 인권의 수호자이면서 동시에 가장 심각한 인권침해자가 될 수 있음을 고려하여 세계 각국에 국가권력을 감시하고 인권을 지키는 독립적 인권옹호기구를 설치할 것을 권고하였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국제흐름에 맞추어서 인권옹호기구를 설립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그에 따라 1997년의 대통령 선거 당시에는 각 대통령후보자들의 선거공약으로 제시되기에 이르렀다. 


  1997년 다른 누구보다도 이 문제에 적극적이었던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정부와 시민단체, 인권운동가들은 인권기구의 설립을 위한 구체적인 협의에 들어갔는데,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국가인권기구 자체에 반대하는 보수적 정치인들은 그만두고서라도, 대통령의 공약이어서 어쩔 수 없이 시행하기는 하겠지만 되도록 국가인권기구의 권한과 지위를 줄여서 유명무실하게 만들려고 하는 정부, 특히 법무부에 맞서는 싸움이 무려 3년간이나 계속되었다. 권력으로부터 독립한 올바른 국가인권기구를 설립하기 위한 투쟁은 회의장에서의 격렬한 논쟁을 넘어서 눈보라를 맞으며 동사의 위험을 무릅쓴 인권운동가들의 단식농성투쟁으로까지 이어졌다. 그 투쟁 끝에 마침내 2001년 봄 국회는 법무부안을 배척하고 입법,사법,행정으로부터 독립한 기구를 설치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국가인권위원회법을 제정하였다. 


   법이 제정된 이후의 구체적인 설립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초대 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창국 위원장은 공무원들이 국가기관을 설계해주는 것이 관행이라는 주장에 맞서서 민관이 함께 참여하는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기획단을 설치하였다. 이 역시 출범초부터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기획단의 활동에는 여러 난관이 있었지만 가장 치열한 문제가 조직구성에 관한 것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정책, 교육은 물론이요, 국가기관에 의한 인권침해부터 사인에 의한 차별행위까지 조사할 수 있고 진정에 의한 조사와 방문조사를 모두 포괄하고 있다. 또한 인권향상을 위한 국제적 협력의무와 재판과정에 대한 의견 제출까지 하도록 되어 있다. 기획단에서 이처럼 광범위한 업무를 적절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인력이 필요한 것인가를 산출해 본 결과 당시만 하여도 430명이 넘는 인원이 필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행자부에서는 80여명의 인원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맞섰으며 출범일인 11.25.이 되어서도 직원을 채용하지 못한 상태로 상임위원들이 직접 진정접수를 받고 업무를 처리하여만 했다. 결국 인권위는 180명의 직원으로 출범하였는데 기획단에서 우려했던 것처럼 밀려드는 진정 건수를 처리하느라고 급급하고, 국회에서 보내주는 법안에 대한 의견회신을 하는 것도 벅찰 정도였다. 진정 처리는 자꾸 늦어지게 되었고, 장애인들의 인권문제와 관련한 다수인 보호시설에 대한 조사나 정기조사, 그리고 찾아가는 현장조사는 꿈도 꾸지 못하였다. 인권위의 업무처리를 둘러싸고 법원이나 헌법 재판소에서 처리 중인 중요사안에 대한 의견 제출권한은 설립 5년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행사되었으며, 중요한 정책권고 사안도 상당한 시일이 걸렸고 그것도 인권위를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도와주려는 다수의 전문가들의 도움이 있어서 가능했다. 인권위가 정신장애인들이 다수 수용되어 있는 다수인 보호시설에 대한 조사에 집중하면서 그에 따른 정신장애 국가보고서 사업을 시작하는 등, 정책적 검토를 하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인권위는 조사뿐 아니라 정책과 교육, 협력사업을 통한 인권홍보와 인권침해 예방이 중요한 기능이어서 지역사무소의 설치가 절실하였다. 애초 법무부 안에서도 지역사무소가 필요하다고 하였으나, 막상 인권위가 독립기구가 되자 정부부처는 지역사무소 설치에 반대하였고, 결국 지역사무소 없이 출범하여야 했다. 막상 업무가 시작되고 보니 우려했던 바대로 지역 인권운동가들과 협력해서 지역 인권현안을 의논하고 함께 협력하기가 어려웠다. 인권의 현장성이 확보되지 못한 것이다. 결국은 자연스럽게 2005년에 부산과 광주에 지역사무소가, 그리고 2006년에 대구에 지역사무소가 출범하였다. 짧은 기간 안에 지역사무소는 그 거점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시민인권단체들과의 모범적인 협력을 이끌어 내었고, 진정사건의 조사와 인권관련 재판 모니터링 등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 이런 활동을 지켜 본 지역 시민단체들, 특히 대전을 중심으로 한 충청도 지역에서도 지역사무소를 유치하는 것을 현안 과제로 삼을 정도였다.


  인권위가 활동해 온 기간 동안 국민들의 인권과 차별에 대한 인식도 많이 높아졌다. 특히 초기에는 교도소의 문제나 국가기관의 인권침해에 대한 진정으로 집중되었던 진정은 차츰 차별문제로 확대되어서 2005년경부터는 해마다 배에 가까운 진정건수가 접수되었는데, 성차별 뿐 아니라 장애차별, 나이차별 진정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우리 사회의 성소수자나 비정규직등 힘없고 억눌린 사람들이 인권위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주로 단속만을 일삼았던 법무부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비하여 인권위는 이주 노동자의 인권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였다. 그 노력으로 산업연수생제도가 폐지되고 고용허가제로 개선되는 등, 우리 사회에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애쓰는 국가기관이 있다는 사실이 국제사회의 좋은 평가를 이끌어 내었다.  


  그러나 동시에 인권위에 대한 보수층의 반발과 비난도 더욱 심해졌다. 인권위는 우리사회의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는 사형제나 국가보안법, 양심적 병역 거부 등에 대해서 세계적 인 인권 흐름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의견을 제시하였지만 그때마다 보수층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인권위는 비교적 우호적인 참여정부에서조차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거나 여의도농민 시위에서 경찰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을 지적하는 등 인권기준에 비추어 부당한 점에 대해서는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기를 서슴치 않았다. 그러나 보수층은 인권위를 참여정부의 비위를 맞추는 좌파 기관이라고 근거없는 비난을 퍼부었다.  


  결국 인권위에 비판적이었던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2008년 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는 인권위를 대통령직속으로 두겠다고 발표하였다. 국제사회에서 가장 모범적인 국가인권기구로 최상급의 평가를 받으며 국제인권기구조정위원회 부의장국을 수행하고 있었던 인권위를 폐지하기는 곤란하고, 대통령직속으로 두어서 대통령이나 정부의 정책과 반대되는 의견을 제출하기 힘들게 하겠다는 의도에서였다. 우리나라처럼 강력한 대통령제 하에서 대통령 직속의 위원회가 된다는 것은 언뜻 생각해 보면 권한이 강화되는 것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의 의지가 그대로 관철되는 즉, 독립성의 상실을 의미한다. 인수위의 이런 계획은 곧 강한 비판을 불러 일으켰다.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의 우려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비판, 그리고 다시 7년 전으로 돌아가 농성도 마다않는 인권활동가들의 헌신적 투쟁 끝에 결국 방송위원회만 대통령직속으로 편입되고 인권위는 독립기구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을 돌리는 것도 잠시, 2008년 5월경 인권위는 감사원으로부터 예정에 없던 14일간의 대대적인 업무감사를 받았다. 표적감사라는 말이 떠돌았지만 인권위는 이에 굴하지 않고 세달 넘게 계속된 촛불 시위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인권침해감시단을 발족시켜 현장에 나가 경찰폭력을 감시하였고 치밀하고 신속한 조사를 펼쳐서 경찰의 과도한 진압방식에 문제점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 때문인지 한나라당이 과반을 차지한 2008년 국정감사에서는 인권위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고 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의원이 ‘현 정부 하에서 국가인권위원회가 왜 필요한가’라는 발언을 했다는 언론의 보도가 있었다.


  한편 이명박정부는 공무원 조직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명목 하에 팀과 본부체제로 움직이던 행정부서를 대국대과체제로 바꾸어 나가면서 인권위도 이러한 취지에 협조해줄 것을 직간접으로 요청하였다. 인권위는 지난 7년간 180명에서 208명으로 인원이 늘어났으나 실제로는 초기에 정원외로 지원해주었던 파견 및 전문계약직 22명을 계속 감축해 왔기에 실질적인 인력증가는 6명에 불과했다. 반면에 진정은 2배이상 상담은 5배 이상이 늘어났으며 민원은 10배가 넘게 증가하였다. 무엇보다도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연령차별금지법등 새로 시행되는 법률에 따른 인력증원이 절실하였고 이미 행안부와는 협의를 통해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시행에 따른 20명의 증원을 사실상 확정해 놓았던  상황이었다. 이는 장애계의 원래 요구인 80여명에 턱없이 적은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전까지 행안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 어디에서도 인권위의 정원을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가 없었고 감사원의 대대적인 감사결과에서도 정원감축의 필요성은 지적된 바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위도 국가기구인만큼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국가적 차원의 노력에 부응하는 취지에서 조직을 국과체제로 변경하고 인원을 현원으로 동결하는 안을 만들었다. 그러나 행안부는 이런 인권위의 안을 무시하고 2008년 12월 10일 현정원을 102명, 즉 49%를 감축하는 조직개편안을 인권위에 보내어 왔다. 조직의 절반을 줄이면 기본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다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다. 실제로 건국 이래 조직을 아예 통폐합하는 일은 있을 지 언정 어느 국가조직도 이처럼 조직의 반을 줄여 버리는 일은 없었다. 어떤 근거로 그와 같이 줄이는 지를 묻는 인권위에 대해 행안부는 감사원의 지적사항과 해외선진국 사례등을 봐서 원점에서 검토한 것이라는 공허한 답변만을 했을 뿐 어떤 구체적인 근거도 대지 못했다. 오히려 감사원에서는 인권위에 대하여 인력감축을 지적한 바가 없다고 해명하는 실정이었다. 인권위가 인력 감축의 근거가 없음을 계속 지적하자 행안부는 2009년 1월 22일경 62명을 감축하는 안을 보내왔다가, 2009년 3월 20일. 갑자기 42명을 줄이는 안으로 바꾸어서 보내면서 일주일 안에 차관회의에 상정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였다. 그리고 인권위와 국내외의 거센 반발에도 아랑곳 않고 3월 30일 이 안은 국무회의를 통과하였다.


  행안부의 논리는 조직에 관한 직제령은 대통령령으로 한다는 인권위법의 조문을 기계적으로 해석하여 직제령 개정권한이 행안부에 있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나, 인권위의 탄생과정과 기구의 성격을 이해한다면 그러한 주장은 억지에 불과하다. 인권위는 행정,사법,입법으로부터 독립된 조직이어야 하고, 그러한 독립성은 예산, 조직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직제령의 형식으로 조직을 구성하는 것일 뿐, 그 실질적인 내용은 행안부와의 협의를 통해서 인권위가 정하여 왔으며, 설립 이후부터 행안부가 인권위의 의사를 무시하고 조직을 마음대로 주물러서 바꾼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만일 그게 가능하다면 인권위의 독립성은 공허한 말잔치가 될 것이며 인권위는 행안부 소속기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업무가 늘어났음에도 조직의 20%가 넘는 인원을 줄인다는 것은 지금 이명박정부의 다른 부처가 한자리 숫자 미만으로 조직 감축을 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서도 지나치게 과도한 것이며 사실상 인권위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인권위는 2005년경부터 대대적으로 사회권에 관심을 갖고 사회권을 우리 사회에 정착시키기 위한 포럼과 정책과제 발굴에 애를 써왔다. 반독재민주화의 과제를 뛰어넘어 우리 사회의 진정한 인권보장은 최소한의 생존권과 인간다운 생활을 만들어 가는 것에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런 과제들은 모두 시간과 인력을 들여 차분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제 줄어든 조직으로는 밀려드는 진정도 제대로 처리하기 힘들 것이며, 결국 인권위에 대한 국민들의 불편과 불만은 더욱 커질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인수위 시절,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만들어내지 못했던 정부가 두 번째의 방법으로 의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정부는 축소된 인권위가 일 못하는 무능한 기관으로 낙인찍혀 그나마 인권위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도 천천히 버림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 다음 수순은 어딘가의 조직에 통합시켜 버려 사실상 없애 버리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월간 <복지동향> 2009년 05월호(제1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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