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동사랑방 소개-
쪽방에서 피어나는 ‘꿈’을 이야기하다
(동자동사랑방 사무국장)
동자동사랑방은 2008년 2월 한 평도 채 되지 않는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9-18 4층 5호 쪽방(9-18 4층5호)에서 시작된다. 3년여 시간동안 쪽방 주민들과 동거동락을 해가며 친분을 쌓은 엄병천 지금의 대표는 어쩌면 동자동사랑방을 만들기 위한 장기 전략을 이미 짜 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초기에는 아래층, 위층에 사는 사람들이 아프면 같이 병원에 가고 입원하면 보호자로 간호도 해주면서 병원에서 밤을 세우는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수급권신청을 할 때는 동사무소에 따라가서 수급권이 안되는 이유를 따지기도 하고…. 지역주민들의 부탁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사를 할 때나 도배를 할 때도 어김없이 도움을 청했고 그 대가로 쌀 및 쌈짓돈을 내 놓으며 준비모임을 지지한다는 표현을 하기도 했다. 모임을 만든 지 4개월, 드디어 용산구 동자동 11-22에 10평 남짓한 공간을 얻어 “동자동사랑방”이라는 간판을 달게 되었다.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여전히 가슴이 벅차오르고 어깨가 무거워지는 책임감이 동시에 들지만 그런 것쯤은 잠시 잊은 채 그저 탄탄대로만 있을 것이라는 야무진 착각이 밉지 않을 정도였다.
나무판위에 정성껏 동자동사랑방이라는 글자 하나하나를 써서 작고 초라한 사무실에 걸기 까지에는 너무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기도 했다. 쪽방촌 주위에는 무료급식소도 있고 쪽방상담소도 있는데 비슷한 거 하나 더 생기는 거 아니냐고 하면서 만류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거기 사는 사람들은 게을러서 그렇다며 그 사람들은 도와줘봐야 아무런 변화도 없으니 소용없다는 말도 들어야 했다. 그냥 놔두어도 공짜로 밥주는 데도 있고 수급비 받아서 그걸로 술만 마시는 사람들인데 차라리 무료급식소를 하든지 아니면 쉼터를 하면 어떻겠냐 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사실, 그러한 얘기들이 나오는 건 무리가 아니었고 어쩌면 무료급식소를 하나 더 만들거나 하룻밤 쉴 수 있는 잠자리를 만드는 게 더 나은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난하다고해서 사람취급도 못 받고 최소한의 인간으로 대접 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 및 인권에 대해서 얘기하고 주장 해야돤다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따라서 동자동사랑방을 만든 목적은 잘못 알려진 복지의 시혜적인 개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당당한 권리로서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하는 데에 초점을 두는 것으로 설립배경을 정하게 되었다.
동자동사랑방이 주로 하는 일은 첫째, ‘동자동 공원 문화제’라고 하여 날씨가 따뜻한 봄에서 여름까지 매주 정해진 요일(현재는 목요일)에 사랑방에서 가까운 공원(새꿈공원)에서 영화를 상영한다. 이것은 단순히 영화를 트는 차원이 아닌, 소외된 도시빈곤층에게 보다 쉽게 문화생활을 접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다양한 문화를 통해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는 간접적인 의도도 포함되어 있다. 영화상영1~2시간 전에는 동자동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 기초법 수급권자들의 권리를 보장받고자 하는 상담을 진행하기도 한다. 이 상담에는 사회복지사 및 상담 전문가들이 초빙되어 진다. 둘째, ‘지역주민들의 인권 상담 및 권리보장을 위한 항시사업’으로서 동자동 지역의 특수성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점(알콜중독 환자나 도박 또는 여가생활의 부재)을 알고 이들의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항시적이고 지속적인 프로그램이다. 이 사업은 사랑방의 실무자인 사무국장을 비롯, 3년간의 나눔의 집 활동을 통해 풍부한 경험을 쌓은 사랑방 대표가 동시에 진행한다. 세 번째로는, ‘주말 농장 운영’인데 이 프로그램은 지역주민들의 무료한 시간을 유익하게 보내기 위하여 진행 하는 프로그램으로써 작년부터 매주 토요일 경기도 고양시 현천동에 주말농장을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주말농장에는 가는 사람들은 지역주민 분들을 우선으로 하고, 활동가 및 자원봉사자들도 참여 할 수 있다. 삭막한 도시생활, 그리고 좁디좁은 쪽방에서 벗어나 흙냄새를 맡고 건강한 노동을 통하여 싱그러움을 만끽하고 먹음직스러운 농작물을 거둬들이는 기쁨은 자연이 준 큰 선물임을 실감케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네 번째, ‘토요 반찬 배달 사업’이라고 하여 녹색교통 유자녀팀이라는 민간단체와의 협력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거동이 불편한 지역주민이나 장애인에게 반찬을 나누어 주는 일인데, 단순히 반찬을 나누어 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위기상황을 발견하고 말벗이 되어 줌으로써 친근감을 형성하게 하는 게 목표이다. 비록 일주일에 한번 이지만, 이 반찬으로 단 몇끼의 식사만이라도 균형 있는 식사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외롭고 고단한 삶에 활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사업은 중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소외된 지역주민과의 소통 및 지속적인 관계를 목적으로 하는 사랑방의 가장 비중 있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다섯 번째, 설립당시 사랑방이 목표로 했던 것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쪽방주민의 권리찾기 및 연대 사업‘이다. 빈곤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에서 동떨어질 수 없다, 라는 점을 알리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주민들을 만나야 한다. 힘든 일이기는 해도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서 이들이 혼자 하지 못하는 싸움을 함께 하며 심리적인 지원을 해주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를 실감케 하는 일임이 분명하다. 이 사업을 진행하기위해서는 지역에 있는 진보적인 사회단체들과 긴밀한 연대사업 속에서 진행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위에서 열거한 프로그램들은 어떻게 보면 기타 복지관에서 수행하는 프로그램과 큰 차별성이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사랑방의 설립취지에도 말했듯이 판에 박힌 복지행정과 복지서비스가 아닌, 진정한 빈곤문제의 해결이 무엇인지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이 소외되고 차별받는지에 대한 저항의 활동을 하는데 꼭 필요한 것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루아침에 변화된 모습을 기대하는 의식화 활동만이 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끊임없이 주민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편에 서서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그들의 친구처럼 연인처럼 함께 한다는 믿음을 주는 것에서 출발하는 작지만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을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사랑방의 재정은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CMS 후원회원 70여명과 일반후원 20여명 그리고 지역주민들의 후원물품 등이 있으며 운영비로는 임대료와 상근비 및 사업비를 포함해서 월 150만원 정도 든다. 정부지원금이나 다른 지원금이 전혀 없이 운영하려니 그 어려움을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주민들의 얼굴에 활짝 웃음꽃이 피어나는 걸 보면 그만한 시름 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허허 웃는 엄병천 대표가 든든한 지원금과 다르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방에서 활동하던 초창기의 내 모습이 담긴 글을 하나 싣는다.
사무실에 출근한지 한달이 되어 간다. 하루도 쉬지 않고 사건사고가 터지는 이곳은 서울역 쪽방촌이다. 아침부터 술 마시고 비틀 거리면서 사무실 문을 열어 제끼고 주저리 주저리 신세 타령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머리 풀어 헤치고 술 마시다가 기어이 자해까지 해버리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한다. 며칠 전에는 평일 하루 쉰다고 하고 지방에 내려갔는데 대표로부터 문자가 왔다. 자해한 환자를 보호할 사람이 없어서 응급실 보호자 대기실에서 잠자려고 한다고, 내일 아침 출근할 수 있겠냐고…다음날은 토요일이라 출근하지 않기로 한 날인데 거절하기도 뭐하다. 알았다고 급히 일정을 정리하고 부랴부랴 서울로 돌아오기까지 했다. 엊그제는 한 알콜중독자가 찾아와서 알콜센터에 보내달라고 하기에 사무실에서 잠깐 기다리라고 했는데, 병원에서 관계자들이 도착하자 사람이 없어졌다. 부랴부랴 찾으러 나갔다 왔더니 제 발로 다시 걸어 들어오는 클라이언트… 우여 곡절 끝에 병원에 동의서를 써서 보내고는 한시름 놓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병원비를 낼 수 없는 상황이라 다시 돌려 보낸다고… 뭐, 이런 싸가지 없는 병원이 있나…. 제길~!
처음 겪는 일은 아니지만, 현장 경험이 그닥 많지 않은 나로서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이러한 일들에 순발력 있게 대처 하는 데는 아직은 많이 서툴다. 대표는 그런 나를 한편으로는 답답해하면서도 지켜보겠다는 눈치고…난, 그저 고맙기만 할 뿐이다. 내가 이런 일을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분명히 비장한(?) 각오쯤은 했음직 한데,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그리고 이제 겨우 한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마음이 흔들린다면 나의 ‘나약함’을 그대로 증명해 주는 일임과 동시에 나는 그동안 얼마나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살아 왔나를 되돌아보아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아직은 반성보다는 현장을 더 경험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과 ‘동화’되는 게 먼저겠지만…
갑자기 생활의 리듬이 바뀌고 템포가 달라져서인지 나도 모를 긴장감과 ‘스릴’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들과 부대껴야 하고 그들과 동화되어야 하는 과정 속에서 나에게도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기 상황을 생각하면 하루에도 몇 번씩 갈등이 일어나기 일쑤이다. 그러나, 그 어떤 것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시간들을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라치면 웬지 모를 홍조가 띨 정도로 행복한 미소가 번지기도 한다. ‘내가 정말 그들에게 필요한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정말 그들의 따뜻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기도 하면서……. 그랬을때, 나오는 답은 늘 “아니”라는 쪽보다 “맞아”라는 쪽으로 기우는 경우가 많다면서 착각하고 사는 것도 어쩌면 복에 겨운 소리가 아닐까?
세상에 태어나서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느낌을 강렬히 받을 때는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요사이는 새록새록 그러한 느낌을 자주 가지게 된다. 나이 사십에 뒤늦게 복이 터진 건가……. 하루종일 정신이 없고, 늦은 퇴근을 하면서도 마음은 더 없이 뿌듯하기만 하루하루다. 과연 이러한 마음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2009년 2월 블로그에 쓴 글..
월간 <복지동향> 2009년 08월호(제1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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