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0 2010-02-01   1241

[동향6] 장애여성 주거권, 평화롭고 안전한 공간에서 살 수 있는 권리

진경
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숨]활동가


                              
 최근 장애인 주거권 담론이 활발해지고 있다. 한국에 1990년대 후반부터  IL이념 이 들어오기 시작했으며 2000년대 들어서 IL운동이 본격화되어서 지금은 전국에 많은 IL센터들이 활동해나가고 있다. 그리고 장애인 생활시설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장애인들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 권리’를 주장하는 탈시설 운동도 중요한 흐름이 다. 시설에서 나오려고 하는 장애인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살 집이다. 이러한 운동의 담론 안에서 장애인의 독립을 위한 3대 권리가 ‘활동보조 서비스, 소득보장, 주거권’으로 얘기되고 있는 것이다. 임대주택 쿼터제 실시, 가족이나 시설로부터 독립해서 살고자 하는 장애인을 위한 자립주택 도입 등에 대한 요구가 장애인 주거권담론의 핵심적인 부분이지만 이 안에서 젠더적인 관점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몇 개월 전에 모 IL센터에서 장애여성을 대상으로 한 부엌 개조 사업이 진행되었다. [숨]센터는 장애여성의 주거 실태가 ‘요리하기 어려운 부엌 구조의 문제’를 강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에서 다양하게 얘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애여성의 관점에서 주거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런 고민을 가지고 [숨]센터는 올해 장애여성 주거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정형화된 설문조사에서 벗어나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 장애여성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생각을 알아낼 수 있도록 질문 구성에도 많은 고민을 기울였다. 기존의 실태조사에서 해온 수치화되어 있고 그만큼 명료할 수 있는 질문들보다 공간을 세밀하게 살펴보고 그 안에서 어떤 활동을 하며 같이 사는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했다. 장애여성이 화장실을 사용할 때 갖는 물리적, 심리적 불편함을, 직접 가사노동을 하든, 활동보조에게 가사보조를 요청하든 확실하게 해결되지 않는 가사노동에 대한 복잡한 심리를 주거권의 맥락 안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실태조사에서 나온 주제는 안전문제, 동거인과의 관계, 이웃 및 주변 지역 내에서의 상황 등 상당히 다양하며 장애여성의 삶 전반에 걸쳐진 이야기들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번 글에서는 그 중 몇 가지 중요한 주제만을 언급하도록 하겠다.


 이번 실태조사의 결과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얘기되었던 것이 공간에 대한 권리와 안전문제에 대한 취약성이다. 물리적인 공간 확보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서 장애 여성이 얼마나 권리를 가지고 이용하는지를 같이 고민해야 한다. 장애여성공감은 사무실을 이사할 때 마다 공간 세팅에 대해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하고 회의를 수차례 진행한다. 사무실 안에서의 휠체어 동선과 가구, 기기 등에 대한 접근성을 고려해서 최대한 공간을 잘 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팩스나 프린터기를 어디에 둘 것인지에 논의하는 것에도 몇 시간이 걸린다. 장애여성이 직접 활용할 수 있도록 기기가 배치된 상황에서 비장애여성이 주로 기기를 사용하는 것과 접근조차 안 되는 공간에서 장애여성이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은 다른 차원이다. 다른 사람에게 매번 도움을 요청하는 것 자체가 심리적 부담이 될 수 있다. 하루에 한번이든, 일주일에 한번이든 본인이 원할 때 쓸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가구 배치나 공간 구성은 한 번 정해지고 나면 그 후에 다시 조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전에 충분히 고민하고 논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처럼 공간 활용에 대한 문제는 접근성의 문제를 넘어서서 일상적 자기결정권 실현에 중요한 요소이다.


 집에서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주거권의 보편적인 의미이다. 안전문제에 있어서 먼저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걱정하게 된다. 비장애여성도 집이 외진 곳에 있거나 반지하처럼 침입이 쉬운 곳에 살 때 일상적으로 위험을 인식하게 되며 혹여 누군가 침입한다 해도 쉽게 대처하기 어려운 장애여성의 경우 더 불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둘째 내부적인 사고의 위험성이 있다. 화장실 사용과 관련하여 바닥이 너무 미끄러워서 위험하다는 응답자들의 의견이 많았다. 화장실뿐만 아니라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지 않은 집에서 생길 수 있는 사고의 위험은 매우 높다. 같이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는지, 집에서 물리적/정신적 폭력을 느끼지 않는지 살펴보는 것도 평화롭고 안전한 주거 공간을 만들기 위하여 요구되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응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큰 사고뿐만 아니라 집에서는 전기가 갑자기 나간다거나 변기의 물이 넘치거나 한겨울에 보일러가 고장 나는 등의 크고 작은 문제들이 일상적으로 발생한다. 같이 사는 사람들이 문제가 생겼을 때 장애여성을 같이 의논해서 해결해야 할 주체로 보지 않기 때문에 장애여성은 문제 해결의 경험이 부족하고 어떻게 해야할지 방법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방법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몸을 움직이기 힘들기 때문에 응급 상황에서 대처하기가 어렵다. 때문에 이에 대한 지역적 비상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왜 안전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가? 사회적으로 여성들이 살기에 ‘전혀 안전하지 않은 구조’ 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사회문화적으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독립을 여전히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특히 혼자 사는 여성은 강력범죄의 위험에 쉽게 노출된다. 장애여성의 안전 문제도 개인적인 주거환경의 열악함을 개선하는 것에서 나아가 사회적인 구조의 변화와 대책이 시급하다.


 [숨]센터는 작년과 올해 장애여성을 위한 주택개조 사업을 진행했으며 그 과정이 보다 근본적으로 장애여성의 주거권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주택개조를 신청한 장애여성들 중에 굉장히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문제를 드러낼 때 물리적인 환경의 열악함만을 강조하는 것은 많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주거의 문제는 지역적, 사회적, 관계적으로 보다 복잡한 양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실태조사를 준비하면서 가졌던 사전 세미나 때도, 설문 조사 이후 결과에서도 이런 점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리고 집에 대한 정형화된 생각이 얼마나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는 지를 다시금 확인했다. 빈곤한 중증장애인이 살아야 할 집의 모델을 ‘10평형대의 임대 아파트’로 규정하고 있는 현재의 주거정책은 집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획일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실태조사에 참여했던 장애여성들은 집에 대해 할 이야기들이 무척 많은 듯 했다. 장애여성이 얘기하고, 주장하는 ‘주거권’은 어떤 권리가 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이제 조금씩 시작되고 있다.


 집에 대해 할 말이 많은 것은 장애여성 뿐만은 아닐 것이다.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공적 대책은 전무하고 오히려 ‘집’을 둘러싸고 많은 차별과 폭력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재의 한국사회다. 많은 빈곤층이 주거 문제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보편적인 주거권의 확보를 위해 개발과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한편으로,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공고한 편견과 차별의 벽을 두껍게 치고 있는 지역 사회를 바꾸어나가지 않고 소수자의 주거권이 확보되기는 어렵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소수자의 주거권을 인권의 입장에서 얘기하게 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당연한 맥락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회적 소수자들의 주거권 문제와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면서 장애여성의 주거권을 폭 넓은 맥락에서 확보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월간 <복지동향> 2010년 02월호(제1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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