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소비자시민연대 사무총장
우리 단체는 의료사고 관련 업무와 예방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로서 부설로 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월요일엔 남편이 안과 치료 중 실명하고, 아버지가 전립선 수술 중 과다출혈로 사망하고, 지방 흡입 수술을 했던 젊은 여성이 사망하는가하면, 맹장 수술이 늦어져 사망한 사례 등 치료나 수술도중 졸지에 가족을 잃거나 장애가 남는 사례가 접수되는 등 하루에도 많은 안타까운 사례들을 접한다.
이러한 의료사고는 의료인들에 의해 병․의원이라는 제한된 공간이나 수술실, 응급실, 중환자실 등에서 치료나 수술행위 중에 발생하는 악결과를 총칭하는 말로 이와 같은 의료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이를 입증하기 위한 유일한 증거는 진료기록이 된다. 진료기록은 사고 당사자인 의료인들에 의해서 작성되고 보관되는 한계로 인해 의료사고 피해자나 가족들이 병원이나 의료인의 과실여부를 입증하기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의료사고 피해 구제를 위한 제도와 새로운 법 제정
의료사고 관련 운영되고 있는 제도로는 민영 손해보험사의 의사 및 병원배상책임보험과 대한의사협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의사공제제도가 있고 의료법 상 의료분쟁조정 제도로서 의료분쟁심사 조정위원회가 있다. 이와 같은 보험이나 분쟁심사조정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명무실하거나 의료소비자로부터 철저히 외면(중앙의료심사조정 위원회의 경우 조정신청 건수가 전무하고 각 시도에 있는 지방의료심사조정위원회의 경우도 07년 한 해 동안 16건이 접수되어 2건 만이 합의되고, 10건이 조정취하/거부) 당하여 유명무실한 위원회가 되고 말았다.
한국소비자원의 경우 조정된 금액을 기준으로 100만 원 이하가 42.2%, 500만 원 이하가 33.5% 등 1,000만 원 이하의 소액조정이 85.9%에 이르는 등 소액분쟁에서의 역할로 한정되어 있다.
의료소송의 경우 평균 소송기간이 일반소송과 비교했을 때 3~4배 이상 긴 시간이 걸리지만 1심에서 끝나는 경우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항소율이 71%가 넘는 등 대부분의 사건이 대법원 판결까지 가고 있어 소송에 승소하더라도 실익이 거의 없다. 당사자 간의 합의 역시 의료인과 환자가 사고발생에 대한 문제제기와 해결시도를 동등하게 할 수 없는 정보와 힘의 불균형으로 의료사고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현 의료 환경에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처럼 관련 제도들이 제기능을 못하고 유명무실해지거나 의료소비자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는 이유는 뭘까? 새로운 대안 법을 만들어야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의료행위의 특성을 극복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진료나 치료 과정 중에 예측이 불가능한 사고는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며, 결국, 평생 병원을 가지 않을 수 없는 국민이라면 언제든 닥칠 수 있는 문제가 바로 ‘의료사고’이다.
자동차사고의 경우, 사고 발생 시 종합보험에만 가입되어 있으면, 가해자는 보험회사에 연락만하면 되고, 피해자는 보험회사로부터 협의와 보상금 지급 시스템이 사회적 제도로 정착되어 있어 가해자 측에 직접 배상을 요구하며 난동을 부리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이와 같은 시스템을 의료사고에서도 빨리 도입해야 한다. 즉, 모든 의사는 어떤 형태든지 의사배상책임보험 등에 가입하여 만약의 사고에 대비한 피해자 보상대책을 마련해 주고, 환자들은 비록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직접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진료방해를 하는 등의 물리력이 동원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물론 이는 결코 의사, 보험사 또는 환자 측 일방의 노력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지만 의료사고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또한 피할 수 없는 것임을 서로 이해한다면, 이를 원만하게 해결하는 방향을 모색하는데 지혜를 모아야 하며 이를 위해 마련하고자 하는 법이 의료사고피해구제법 또는 의료계에서 주장하는 의료분쟁조정법이다.
의료사고의 특성을 감안하여 피해구제를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입증책임 전환규정이다. 이 법안은 처음 의사들이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을 기본모델로 하여 제안된 법이고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은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과 한 궤를 이루고 있고 자보법은 자동차사고에 대한 입증책임이 운전자에게 전환되어 있는 특수한 법이다.
의료사고피해구제를 위한 새로운 법 제정 과정
이 법은 1988년 이후 의료단체의 입법요구를 시작으로 의료사고피해구제 및 분쟁조정 제도 마련을 위한 많은 시도와 의견이 있었지만 그동안 환자의 입장에서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법 제정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제17대 국회에 와서 의료사고 피해구제를 목적으로 한 입증책임전환 규정을 도입한 법안이 제안되어 이를 중심으로 법안이 논의되었고 당시 보건복지위원회 법안 소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의결되었으나 의료계의 반발로 전체회의에서 재심의 결정된 후 회기 만료로 폐기된 바 있는 법안으로 법안소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의결될 당시 의료행위나 의료사고의 특수성을 반영하여 입증책임전환을 근간으로 하는 법안으로 의결된 바 있다. 그러나 결국 우여곡절의 상황을 반복하다 17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되는 불운을 겪었다.
18대 국회에 들어와서는 최영희 의원 안과 심재철 의원 안 그리고 박은수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민청원안 등 세 개의 법률 안이 제출되었고 해당 법률안들은 모두 입증책임전환을 전제로 하여 제출되어 논의 되고 있는 가운데 보건복지가족부(이하 보복부)에서 검토한 법안이 국회와 시민 단체에 비공개로 제안되었으나 제안된 내용은 사실상 외국인 환자 유치를 목적으로 외국인 환자의 의료사고를 대비한 급조된 법안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논의 되어온 입증책임을 전환하는 규정을 무용화 시키는 내용으로 국회와 시민 단체에 충분한 논의와 합의가 이루어 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이렇게 제시된 법안이 12. 28 국회 보복위 법안심사소위원장 대안법안으로 법안심사소위를 갑작스럽게 통과하였고 다음날인 12. 29 상임위를 열어 해당법안을 통과시키고 12. 30 법사위에 이어 12. 31일 본회의 통과를 계획하였으나 법사위를 통과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해당 법안은 예산이 이미 반영된 법안으로 올 2월 임시국회에서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법안이 정한 2010년 7월 1일부터 시행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을 기만한 새로운 법안 내용
의료사고의 입증은 의료인이나 의료 기관에서 작성하고 보관되어지는 진료기록에 의존해야 하고, 전문지식이 없는 환자나 가족이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진단 및 치료의 적절성에 대한 판단과 입증은 의료행위의 주체이자 전문가인 의료인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대법원에서도 의료소송에서 환자 측이 의료과실을 증명하기 어렵다는 것을 고려하여 입증을 완화하거나 전환시키는 추세이고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이나 장애인 차별금지법 등에 관련 규정이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의료가 특수한 영역임을 고려해 전문가인 의료인이 자신이 무과실을 입증하도록 하는 것은 현재 의료인과 환자의 불균형적인 상황을 해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이것이 입증책임전환 규정이다. 이 규정은 다른 영역과 달리 의료의 전문성과 특수성으로 인해 그 필요성이 충분히 공감되었던 것이다.
국회 및 보복부는 이번 법안에 ‘감정부가 의료사고가 발생한 보건의료기관의 보건의료인 또는 보건의료기관개설자에게 사고의 원인이 된 행위 당시 환자의 상태 및 그 행위를 선택하게 된 이유 등을 서면 또는 구두로 소명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어 조정 내에서 부분적으로나마 입증책임전환이 반영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의료소송에서 증인신문이 의료사고 주체인 의료인이 자신의 무과실을 변명하는 자리로 변질되어 버려 현재 사고 주체인 의료인을 법정에 세우지 않는 불문율을 깨뜨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결국 그동안 시민 사회단체와 논의되어 왔던 입증책임전환에 대한 규정은 무용화되고 말았다.
더욱이 의료인을 적극적으로 조정에 참여시키기 위하여 형사처벌 특례 조항을 두어 의료인과 환자 측의 정보와 힘의 불균형을 더욱 심화 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형사처벌 특례 규정은 특정 직업군에 대해 특혜를 주는 것으로 그 뒷배경에 의구심만이 생길 뿐이다. 과거 시민․사회단체에서 의사의 형사처벌 특례를 언급한 것은 의료사고가 고의적 사고가 아닐 뿐만 아니라 의료소비자 입장에서 입증책임이 전환된다는 전제하에 의료인 측의 입장을 고려하기 위함이었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서 운전자의 형사처벌 특례를 허용하는 것은 적용대상이 전 국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법안에서의 형사처벌 특례의 적용대상은 5천만 국민이 아니라 10~20만 여명의 의료인에 국한된다. 비록 형사처벌 특례조항에 대해서 1년간 유예기간을 두고 위원회를 구성하여 검토를 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는 의료계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라는 비난을 피하고, 법안이 제정되기도 전 이미 정부에서 책정한 26억이라는 예산을 배정하기 위한 미끼에 불과하다.
우리 단체의 주장
분만실이나 수술실, 중환자실 등에서 뜻하지 않은 의료사고로 사랑하는 가족이 사망하거나 장애인이 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인데 진실을 말해주지 않은 진료기록, 변명으로 일관하는 병원과 의료인, 이를 외면하는 정부…
치료 중 심장이 멎은 소아에게 응급처치가 늦어 이로 인해 뇌손상을 받았으나 진료기록 상 확인할 수 없었던 응급처지 지연상황이 응급실에 설치된 CCTV로 확인되어 10억이 넘는 배상 판결을 받았던 사건(기록에는 3분 이내 완벽하게 응급처치를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으나 cctv를 통하여 응급처치가 많이 지연된 것이 확인되었으나 cctv는 설치 의무화가 법제화 되어있지 않음)….
이것이 그동안 실효성 없는 유명무실한 법과 제도로 의료사고 이후 제2 제3의 피해와 고통 속에 방치되어 온 우리 의료사고 피해자와 가족들이 겪게 되는 고통의 현주소이다.
이렇게 사고 이후의 감당 할 수 없는 피해와 고통 속에 방치되어온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법제정에 대한 필요성은 그동안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되었었다.
지금은 의료소비자와 의료인간 불신의 골이 너무 깊어진 위기의 시기라 할 수 있고 의료사고가 그 원인 중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궁극적으로 이 법이 목적하고 있는 신속한 피해구제와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을 위해서는 입증책임전환 도입을 전제로 할 때라야 기존 제도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며 이것이 결국 의료소비자는 물론 의료인을 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법을 처리하는 과정을 지켜보자니 정작 국민을 위한 정부나 국회인지 아니면 의료계를 대변하는 정부나 국회인지 참으로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국회는 그동안 시민․사회단체에서 제안한 의견을 수렴하여 의료사고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국민들이 신속하고 안전하게 피해구제를 받을 수 있는 합리적이고 실효적인 법제정에 나서주길 바란다.
월간 <복지동향> 2010년 02월호(제1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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