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생존도 보장 못하는 최저생계비, 이제 바꿔야 합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는 내년도 최저생계비 결정을 앞두고 지난 8월 16일부터 20일까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블로그(http://blog.peoplepower21.org/Welfare)와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를 통해 “최저생계비를 결정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들에게 보내는 공개편지”를 보냈고, 이를 묶어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들에게 발송하였습니다.
이번 공개편지에는 참여연대가 지난 2004년과 올해 7월 진행한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체험단과 前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 학계 전문가 등 5명이 필진으로 참여하였고, 이들은 편지를 통해 비현실적인 최저생계비의 현실화와 상대빈곤선의 도입을 촉구하고,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역사적 책임을 강조하였습니다. 편지원문을 이번호 복지동향에 게재합니다.
①『위원님들의 손에 빈곤층의 삶이 달려있습니다.』
/ 장일호 (2010년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체험자)
②『중앙생활보장위원회, 거수기로 전락 말아야』
/ 이영환 (성공회대 부총장, 전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
③『최저생계비 현실화, 기본이고 시작입니다』
/ 유민상 (2004년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체험자)
④『최저생계비 현실화가 진정한 ‘친서민’』
/ 안성호 (2010년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체험자)
⑤『사회안전망이 아닌 사회배제망, 이젠 거둬 냅시다』
/ 이태수 (꽃동네현도대 교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릴레이 편지 ①
위원님들의 손에 빈곤층의 삶이 달려있습니다.
장일호
2010년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체험자
안녕하세요, 중앙생활보장위원회(중생보위) 위원님들
저는 지난 7월 참여연대가 주최하는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희망UP 캠페인’의 2인 가구 체험단으로 한 달을 보낸 장일호라고 합니다. ‘고작’ 한 달이었지만 우리나라의 사회안전망이 얼마만큼의 삶의 질을 보장해주고 있는지, 제도는 갖춰져 있는데 그 제도가 현실에서도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몸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어느 분의 유행어처럼 “내가 해봐서 아는데…”같은 우스개소리가 될까봐 편지를 쓰면서도 두렵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중생보위 위원님들 중 체험 ‘현장’에 와보셨던 분은 딱 한 분밖에 없으니, 미욱하나마 제 ‘잔소리’를 보태고자 합니다.
저는 지난 7월 장수마을에서 ‘방살이’를 했습니다. 제가 한 달간 살았던 단칸방은 아무리 쓸고 닦아도 누추한 제 모습을 감출 줄 몰랐습니다. 곰팡이는 ‘내가 주인입네’ 위풍당당하게 벽과 천장을 수놓고 있었고, 아침에 일어나 비누를 갉아 먹은 쥐의 이빨 자국에 나도 모르게 등이 서늘했던 것이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최저생계비, ‘문화’는커녕 ‘건강’도 장담할 수 없는 돈
최저생계비의 법적 정의가 ‘국민의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소요되는 최소한의 비용’이라고 되어 있는 건 저보다도 더 잘 아시겠지요. 2인 가구 한 달 생활비인 858,740원을 받아들었을 때, 저는 일찌감치 ‘법이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나마 실제로최저생계비를 받는 분들은 각종 공과금을 제하고 2인 가구 기준으로 받을 수 있는 돈이 최대 70만 원 정도라니, 저는 그나마 사정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요.
월세를 제하고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는 데 들어가는 돈을 제하고 나니 첫 날 저한테 쥐여진 돈은 고작 56만 원에 불과했습니다. 용돈이라면 많은 돈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2명이 함께 생활을 꾸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임이 분명합니다. ‘문화’는커녕 ‘건강’도 장담할 수 없는 돈이지요. 먹을 것을 제외하고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만 사는 것으로 지출 기준이 엄격해졌습니다. 룸메이트와 저는 모기에 물린 손등과 발등을 긁고 또 긁다가 결국엔 멍이 들고 나서야 3000원짜리 모기약을 샀습니다.
한 달간 가장 많이 먹었던 음식은 달걀, 과일 한번 먹기 어려워
매일 줄어드는 돈을 보면서, 삶도 왜소해졌습니다. 다른 ‘욕망’은 끼어들 틈이 없었습니다. 한 달을 마무리 하면서 가계부를 정리해보니, 가장 많은 지출을 한 품목이 식료품비더군요. 가장 많이 먹었던 음식은 달걀이었습니다. 식재료 중에서 가장 싸고 활용도가 높았기 때문입니다. 둘이서 한 달간 60개를 먹어치웠습니다. 매일 하나씩은 먹은 셈이지요. 단칸방에서는 늘 달걀 비린내가 났습니다. 그밖에도 각종 통조림을 섭렵했습니다. 유기농이나 친환경 따위 마크가 붙어 있는 식재료는 왜 그렇게 고깝게 보이던지요. 과일 한 번 장바구니에 올리는 일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출퇴근했던 저는 5000원짜리 백반 집 한 번 들어가는 일에 큰 결심을 해야 했습니다. 최저생계비가 정하고 있는 식비는 후하게 쳐줘야 2100원 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동료들하고 편하게 밥 먹는 것도 쉽지 않아, 점심에는 컵라면과 김밥을 주로 사먹었습니다. 그렇게 적어도 굶어 죽지는 않았습니다. ‘싸구려 음식’을 먹는 사람 앞에서 대놓고 “굶지 않으니 다행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정책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빈곤세’를 쉽게 풀면 가난하기 때문에 지출해야 하는 돈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겁니다. 지난 한 달간 빈곤세를 톡톡히 물었습니다. 마을버스도 다니지 않는 열악한 교통편, 생활편의시설이 전무한 마을 내 구멍가게의 물가가 비싼 건 어쩌면 당연했습니다. 무엇보다 원치 않는 지출을 유도하는 주거환경은 빈곤세의 주원인 이었습니다. 체험 막바지로 치달을수록 주거 문제는 위협적이었습니다. 최저생계비가 정한 2인 가구 주거비(14만8100원)보다 무려 6만원이나 비싼 월세 20만 원짜리 방에서 저는 자주 뒤척였습니다. 열대야가 지속되던 7월 한 달간, ‘난방비를 걱정해야 하는 겨울보다 그래도 여름이 낫지 않을까’라던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더워서 잠 못 이루는 방에서 룸메이트는 전기세를 걱정하더군요.
10년 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현장’에서 무력하기만 해
재개발에 묶여 있는 마을에는 도시가스조차 들어오지 않습니다. 겨울이면 기름 한 드럼에 20만 원이 훌쩍 넘는 난방비 탓에 제가 만난 이웃들은 벌써부터 근심걱정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재개발을 바랄 수도 없는 게 현실입니다. 전세 600만원에서 많으면 3000만 원 짜리 집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는 새로 지은 집에 들어갈 돈이 없으니까요. 여름이라 처음에는 미처 몰랐는데, 제가 살던 방에는 석유 보일러조차 없었습니다. 매일 찬물로 샤워하며, 감기 기운을 달고 다녔습니다. 그나마 수돗물도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래된 집의 녹슨 배관은 ‘녹물’을 쏟아냈습니다. 물을 끓여 먹기로 한 애초의 계획을 포기하고, 생수를 사 먹었습니다.
아랫집 아주머니의 집에서는 찬송가와 기도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아랫집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신앙에 자신의 삶을 위로받고 있었습니다. 지난 7월 한 달간 서울 성북구 장수마을에서 지내면서 저는 그것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에게라도 의지하지 않는다면 삶을 지탱해 나갈 힘이 없을테니까요. 내세의 삶의 아닌, 속세의 ‘천국’을 위해 사람들은 무릎을 꿇었습니다. 사회안전망(제도) 대신 사람들은 신에게 기댔습니다. 저 역시 수많은 ‘아무개’씨들이 처해 있는 삶을 한 달간 살아 내면서, 오랜만에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래도 이들에게 속세가 ‘지옥’은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체험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푹신한 제 방의 침대에 누워 저는 몸살을 앓았습니다. 제가 마주했던 가난의 풍경 앞에서 자주 분하고 속이 상했던 걸 몸이 알아 챈 탓이겠지요. 가난을 체념하고 인내하며 정작 제 나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투박한 저의 분노를 쉽게 내색할 수 없었으니, 몸이 앓았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올해로 도입된 지 10년 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현장’에서 무력하기만 했습니다. 제도는 만들어져 있으나 현장에는 와 닿지 않음을 저는 수없이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곳에서 인간의 존엄에 대해 혼자서 자주 묻곤 했습니다.
먹는 것 외 모든 지출은 모험이자 사치였던 한 달
아끼고 아꼈지만 저는 결국 6만원의 적자를 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체험단 모두 가계부에 마이너스를 그렸습니다. 먹는 것 외 모든 지출은 모험이었고, 사치였습니다. 컵과 수저, 스타킹과 양말 따위 까지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담아 최저생계비를 정한다는 ‘전물량 방식(마켓 바스켓)’은 “가난한 너희의 삶은 우리가 이렇게 정할 테니 이대로만 살아라”라고 말하는 듯 했습니다. 한 달은 그렇게 더디게 지났고 제 ‘쇼’는 끝났습니다. “사람들이 우리의 ‘쇼’로 인해서 최저생계비가 얼마인지라도 알면 다행이다”라던 한 체험단 친구의 말대로 저희 5가구 11명 체험단의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우리나라 복지의 ‘기준선’ 결정하는 막중한 임무
이제 중생보위 위원님들의 손에 이들의 삶이 결정됩니다. 위원님들이 결정하시는 최저생계비는 수급자 결정 외에도 긴급복지 지원, 장애아동 수당, 보육료 지원 등 각종 사회복지제도의 대상자를 선정하는 기준이 됩니다. 위원님들은 우리나라 복지의 ‘기준선’을 결정하시는 막중한 일을 맡으셨습니다. 3년 전인 2007년 최저생계비 실계측 당시 위원님들은 ‘국민의 정서’를 고려해 휴대전화를 최저생계비 계측 대상에서 아예 제외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국민의 정서가 아닌, 위원님들의 가난에 대한 ‘편견’ 때문은 아니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현재 최저생계비를 받고 있는 수급자 146만 명 외에 최저생계비조차 받지 못하는 빈곤층 역시 410만 명에 이릅니다. 합산해 빈곤층이 모두 560만 명입니다. ‘정책’과 ‘예산’이라는 강력한 무기 앞에 가난을 골치 아픈 ‘비용’으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말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부디 위원님들의 결정이 이들이 가진 인간의 존엄 반해 무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릴레이 편지 ②
중앙생활보장위원회, 거수기로 전락 말아야
이영환
성공회대 부총장, 前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
최저생계비 문제로 이런 공개편지를 쓰려고 하니 옛 생각이 납니다. 80년대 후반 아직 우리나라 사회복지가 제대로 발전을 시작하기도 전,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복지국가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던 때 말입니다. 나라 사정이 쥐뿔도 없는 형편이었지만, 서구 복지국가들의 각종 제도들은 물론이고, 그 한계와 위기까지 우리 일처럼 입에 거품물고 토론하면서, 우리도 곧 복지국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흥분을 느끼곤 했던 기억들입니다. 아마 많은 분들에게 이런 기억이 있으실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연금제도의 도입초기 고령세대에게 무갹출 연금을 제공하며 인간에 대한 예의를 보인 영국의 경우를 보면서, 자손들을 위해 평생 고생하던 노령세대를 팽개치는 연금제도를 강행한 우리의 현실을 안타까워하기도 했고, 외국인 임산부에게까지 각종 모자보건서비스를 아끼지 않는 나라들, 한 아이의 탄생을 국가 전체가 환영하는 복지국가에서의 인간존중을 감동으로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우리는 셋째 아이에게는 아예 의료보험혜택도 주지 않고, ‘왜 태어났니?’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러한 무지의 결과가 오늘날 어떤 사회적 위협으로 나타나고 있는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차라리 복지수준 열악했던 옛날이 지금보다는 덜 부끄러워
이런 말씀을 꺼내는 이유는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연구자로서 역설적으로 그 때가 차라리 행복했었다는 감상 때문입니다. 비록 많이들 가난했지만, 나라형편이 조금만 피면 우리도 남부럽지 않은 복지국가를 만들 수 있으리라는 꿈과 열정을 모두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비록 복지수준이 열악해서 안타깝기는 해도 그리 부끄럽지는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당히 다른 것 같습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을 자랑하면서도 수많은 빈곤자들이 방치되어 있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빈곤과 부유함의 격차가 계속 벌어지는 것에도 무감각한 나라가 된 것입니다. 아니, 그러한 격차를 좁히려는 노력에 대한 기득권세력의 노골적이고 완고한 저항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있는 현실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현실에 대한 사회복지, 사회정책 학도들의 정의감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입니다.
전임 중앙생활보장위원으로서 책임 다하지 못해 부끄러움
짐작하셨겠지만,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위원님들에게 몇 가지 당부를 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작년까지 위원을 역임했던 사람으로서 제대로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이런 당부를 드리게 된 것이 한편으로 자괴스럽기 그지없는 일이긴 합니다.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 중앙생활보장위원회는 최저생계비에 대한 실질적인 결정권을 갖는 정부내 몇 안 되는 권위 있는 위원회라고 소개하곤 했는데, 그러한 권위를 부여받고도 실질적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던 현실 또한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렇게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 것은, 무엇보다도 너무나 많은 빈곤자들이 방치되어 있고, 생활보장을 받는 사람들도 점점 더 열악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너무나 잘 아시는 위원님들께 새삼 수치를 들이대는 것이 무의미할 수도 있지만,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요보호 빈민만도 410만 명이 넘는데, 그 중 160만 명 정도만 기초보장수급자로 보호받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엄청난 문제임이 사실입니다. 부양의무자라는 연좌제의 사슬에 묶여있는 사람 등 비수급 빈곤층의 문제는 하루빨리 해결되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소위 차상위계층이라고 하는 준빈곤층의 경우도 수급자들과 큰 차이가 없는데 이들을 근로의욕상실이라는 빈곤함정으로 내몰지 말고 주거, 교육, 의료서비스 등 적절한 지원을 통해 실질적인 자립, 자활의 길로 나서게 하는 것이 국가적으로도 큰 이익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이번 중앙생활보장위원회는 상대적 빈곤선 도입해야
이번 여름에 참여연대가 성북구 장수마을에서 진행한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이 경험하고 관찰한 얘기를 들어보시면 가난에 갇혀 사는 사람들의 삶이 어떤 것인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서구의 복지국가가 가장 강조한 것이, 최소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부여하자는 것인데, 우리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이러한 배려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이번 중앙생활보장위원회는 최저생계비의 가치하락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1999년 최저생계비가 처음 계측될 때 그 수준은 4인 가구 기준 901,357원으로 당시 도시근로자 중위소득의 45.5%였습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2008년에는 그 수준이 34.8%까지 하락하였습니다. 복지국가들이 나라마다 상황은 다르지만, 상대적 빈곤선으로 중위소득의 40-60%를 상정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중위소득의 40%에 훨씬 못 미치는 우리나라의 최저생계비는 이미 그 의미를 상실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미 3-4년 전에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서 상대적 빈곤선을 도입하여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자는 결의가 되었고, 제가 위원이었던 2008년도에 이를 확인한 바 있으며, 이에 관한 연구 작업도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연유인지 아직까지 제대로 작업이 추진되지 않은 채, 저는 작년 말 중앙생활보장위원회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론보도로는 금년도 최저생계비 결정시 부분적으로나마 상대적 빈곤개념을 도입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위원님들께서 이 문제의 중요성을 새삼 자각하셔서 제대로 된 상대적 빈곤선 도입의 중요한 계기로 삼아주시기를 간곡히 당부 드리는 바입니다. 최저생계비의 의미를 다시 살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아울러, 상대적 빈곤선의 경우에도 중위소득의 일정수준을 소극적으로 유지하는 방식을 넘어, 우리의 경제수준과 국민적 생활수준에 걸맞게 중위소득과의 격차를 점차 축소하여 좀 더 평등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힘써 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물론 복지국가를 만드는 길은 다양하고, 우리는 우리 나름의 복지국가를 만들어야겠지만,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고 좀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노력은 모든 복지국가의 공통적인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균형을 무너뜨린 중앙생활보장위원회 구성은 재고해야
또 한 가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에 관한 것입니다. 애당초 저는 참여연대라는 시민단체의 추천으로 위원이 된 경우인데,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출범당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도입에 공헌이 컸던 참여연대와 여성단체연합 등 시민단체에게 위원추천권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시민단체라는 배경을 가지고 가난한 사람들을 잘 대변하라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작년을 끝으로 양 단체 모두 위원추천에서 배제되고 말았음은 잘 아실 것입니다. 물론 참여연대와 여성단체연합만이 그러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최소한 기초보장제도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오랜 기간 활동을 통해 역량을 보여준 단체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타당할 것인데, 현재의 구성은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중앙생활보장위원회는 중요한 결정을 해야하는 기구이지만, 이를 다수결로 해오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아무리 많이 걸리더라도 논쟁과 타협을 통해 결정을 해온 역사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논쟁의 중심에는 국가의 재정과 예산을 걱정하는 경제관료들과, 시민의 복지를 강조하는 보건복지부 그리고 가난한 민중을 대변하는 시민단체를 3각 축으로 하면서 관련 전문가들이 보완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논쟁과 타협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그러한 균형을 무너뜨린 다음 중앙생활보장위원회는 과연 무엇을 추구하는 기구가 될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중앙생활보장위원회, 거수기로 전락 말아야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운영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법률상 중앙생활보장위원회는 최저생계비 결정 뿐만 아니라 기초보장제도에 관한 중요한 의사결정에도 참여하게 되어 있지만, 이러한 참여가 원활히 이루어져 왔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겠지만, 최저생계비 결정 등 불가피한 부분을 넘어선 참여는 잘 되지 않았고, 복지부 관료들의 주도하에 수동적으로 운영되었고, 이로 인해 결과적으로 최저생계비 결정도 심도 있게 논의되기 보다는 시한에 쫒기는 논의가 되는 경향이었습니다. 이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자칫 거수기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상황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우리나라 복지제도에서 모범이 되는 중요한 기구가 될 수 있을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이번 여름이 우리나라 기초생활보장제도와 최저생계비 결정의 역사에 있어서 길이 기억될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도록 위원 여러분들의 헌신과 수고를 기대하며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릴레이 편지 ③
최저생계비 현실화, 기본이고 시작입니다
유민상
2004년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체험자
저는 2004년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하월곡동에서 ‘최저생계비로 한 달 나기’에 참여했던 유민상이라고 합니다. 한 달의 체험으로 최저생계비의 현실을 알린지 벌써 6년이나 지났는데,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 같아 다시 펜을 들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면서 ‘최저생계비로 살기가 너무 어려우니 조금만 더 올려 달라’ 라고 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일종의 동정심 유발 작전이라 할까요. 하지만 저는 최저생계비를 조금 더 올리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저생계비의 문제를 단지 시혜적 차원이 아닌 권리적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는 인식의 전환을 이끌어 내는 것이 바로 그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최저생계비는 ‘시혜’가 아닌 ‘권리’ 차원의 문제
10여 년 전 우리나라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도입된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기존의 시혜적이고 빈민 통제적 성격이 짙었던 생활보호제도를 대체하면서 국민들은 최저한도의 생활을 국가로부터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국가와 사회로부터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 즉, 사회권이 등장을 한 것이지요. 이 때문에 이 제도의 도입으로 비로소 우리나라도 복지국가에 진입했다는 학계의 평가도 있었습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권리를 부여한 것이라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급여 기준선이 되는 ‘최저생계비’는 국가로부터 보장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수준을 정해놓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최저생계비는 우리 국민이 권리로서 국가로부터 보장받을 수 있는 최저한의 삶의 수준입니다.
이와 같이 최저생계비는 이미 시혜의 차원이 아닌 권리 차원의 문제입니다. 국가와 사회는 이러한 권리를 보장할 의무가 있고, 국민은 이러한 권리 보장을 국가와 사회에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따라서 최저생계비를 인상하고 현실화하자는 주장은 단지 빈곤한 사람들에게 ‘몇 푼 더 얹어 달라’고 구걸하는 것이 아닌, ‘국가는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라’라고 당당히 요구하는 것입니다.
국가로부터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권리’, 최저생계비 현실화가 출발점
관념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발전된 자본주의와 성숙된 민주주의를 가지고 있는 사회에서는 국민이 국가로부터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권리, 즉 사회적 시민권이 발전하게 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실업이나 질병, 노령 등으로 경제활동이 불가능한 경우에도 모든 시민과 그 가족이 사회의 문화적 유산을 공유하고 사회의 보편 기준에 따라 문화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발전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현실적으로 사회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복지권은 여러 사회복지제도의 발전으로 인해 보장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있다면, 과연 발전된 자본주의와 성숙된 민주주의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시민권이 얼마만큼 발전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들의 연합체인 OECD의 회원국이고, 세계적인 올림픽과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G20 정상회의를 유치한 국가입니다. 이제 우리의 문화를 많은 국가에서 함께 향유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부강한 대한민국’에서는 과연 사회적 시민권이 얼마만큼 발전하고 있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의 부강함에 비해 사회적 시민권의 수준은 형편이 없어 보입니다.
그 부강한 나라에서는 아직도 밥을 굶는 아이들이 있으며, 그로 인해 건강한 신체적․정신적 성장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아직도 가정 형편이 어려우면 급식비를 내지 못해 서러움을 받아야 하고 심지어 그로 인해 목숨을 끊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열악한 지위의 일을 하지만 빈곤을 탈출할 수 없는 덫에 걸린 삶을 살기도 하고, 건강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의료비 부담으로 치료법이 있어도 치료받지도 못하고 삶에 대한 의지를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노인들은 가정과 사회에서 노후를 보장받지 못하고 홀로 남겨져 하루하루 ‘마지막 그날’을 기다리기도 합니다. 이게 우리의 부강한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최저생계비의 인상으로만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최저생계비를 현실화하여 가장 열악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보장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우리의 복지제도를 공고히 하는 것은 매우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최저생계비를 현실화 하여 우리사회의 최저한을 보장하고 여러 사회서비스와 사회보험제도로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한다면 위에 열거한 ‘시대의 아픔’을 상당히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사회의 사회적 시민권의 발전을 이끌어 더욱 성숙된 민주주의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권리로서의 인간다운 삶 보장, 그리고 그 이상
저는 이 글에서 최저생계비의 현실화는 권리로서의 인간다운 삶 보장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더하여 저는 그 이상의 많은 것들을 꿈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복지는 최저한의 삶을 사는 사람뿐만이 아닌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로 발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최저생계비의 현실화는 단지 ‘그 길’을 걸어가는 첫 발걸음일 뿐입니다.
저는 아직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그를 위해서라도 그 길을 가는 첫 발걸음을 빨리 내딛을 필요가 있습니다. 최저생계비 현실화가 그 첫 발걸음이라면,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습니다.
반드시 최저생계비는 현실화 되어야 합니다.
릴레이 편지 ④
최저생계비 현실화가 진정한 ‘친서민’
안성호
2010년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체험자
7월 한 달 동안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캠페인에 1인가구로 참가한 안성호입니다. 한 달간의 체험은 최저생계비에 대한 스스로의 편견을 발견하고 오해를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글로만 보고 알았던 최저생계비와 현실의 그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혹시 최저생계비를 결정하시는 위원님들도 저와 같은 오해를 하고 계시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체험 중에 방문을 요청드렸으나 만나뵐 수가 없었기에 편지로 대신합니다. 제가 몸으로 느낀 현실이 최저생계비 결정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최저생계비 산정기준 가구와 실 수급자의 괴리
최저생계비는 가상의 4인 가족을 기준으로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금액으로 정해집니다. 그런데 그 금액으로는 건강한 2,30대로 구성된 체험단도 한 달을 날 수가 없었습니다. 가상의 4인 가족의 삶이 현실에서는 아무리 애를 써 봐도 구현이 안 됩니다. 더 큰 문제는 실제 수급을 받으시는 분들은 가상의 4인 가족과는 달리 몸이 편찮으신 어르신과 장애인 가정 등 근로능력이 없는 분들이 대다수라는 것입니다. 최저생계비 산정의 기준인 ‘일하는 건강한 아버지와 초등학생 두 자녀로 구성된 4인 가구’가 최저생계비 수급자 중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장애보조기구에 대한 추가 지출이 필수적인 장애인, 병원비 지출이 생존과 직결되는 어르신들의 현실과 최저생계비는 동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해진 품목대로 살 수 있는 수급자는 지구상에 아무도 없어
최저생계비는 11개의 비목을 설정하고 각 비목별 생활필수품을 선정하여 전체품목 금액의 합으로 결정을 합니다. 반팔셔츠 2벌, 속옷 2벌로 2년을 나야 한다는 따위의 것들이 그렇게 나온 것이지요. 지난 2007년에는 핸드폰을 포함시켜야 하느냐를 놓고 고민하셨다지요. 그런데 위원님, 현실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고민하실 필요가 없으실 것 같습니다. 현실에서는 그 품목대로 살 수 있는 수급자가 없으니까요. 품목에서 제했다고 해서 필수품인 핸드폰을 쓰지 않을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외식도 두 번씩 하라고 반영되어 있고, 문화생활도 하라고 되어 있지만 현실에서는 굶지 않고 사는 것만도 감지덕지랍니다. 교통비, 피복비, 주거비의 비율을 정하고, 속옷이 몇 벌인지 몇 년을 입어야 하는지 정하는 것이 현실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더란 말입니다.
4인 가족이 발 뻗고 누울 수 있는 21만 원짜리 방이 과연 있을까요?
최저생계비는 친절하게도 각 비목별 품목과 금액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1만 원짜리 운동화를 2년을 신고, 1897원짜리 팬티 6장으로 3년을 지내야 하는 따위의 것들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정해진 품목 외에는 다른 것은 생각지도 말라는 의도로 비춰질까 걱정도 되고, 대한민국 정부의 가난한 사람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는 것 같아 부끄러운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위원님, 더 큰 문제는 백 번 양보하고 정해진 대로만 살아 보려고 해도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는 것입니다. 4명식구가 발 뻗고 누울 수 있는 21만 원짜리 방이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 하루 6,300원의 식비로 어떻게 끼니를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만난 동자동 쪽방에 사시는 할아버지는 지난 7월 방세 20만원 내고, 병원비가 6만원이 나오는 바람에 10만원 남짓한 돈으로 한 달 끼니를 해결하셔야만 했습니다. 병원에서 추가 검사를 받아야 했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방안에 틀어박혀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이 전부인 그 분의 삶이 최저생계비의 현실입니다.
저는 1인가구 최저생계비 50만4천원으로 한 달을 지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받을 수 있는 최대금액은 42만원 정도이지요. 1인가구 주거비로 책정되어 있는 87,000원짜리 월세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저는 87,000원을 주거비로 계산하여 차감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남은 금액으로 1달을 지낸 결과 몸무게가 3kg이 줄었고, 4만원의 적자가 났습니다.
현실에서는 절대 수급자가 될 수 없는 20대의 건강한 청년이 실제로는 불가능한 금액을 받아,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저렴한 주거비를 내고, 난방비가 들지 않는 여름 한 달을 지냈는데 적자가 났습니다. 몸이 아픈 고령의 독거노인이 실제 받는 40만원 중 월세 20만원을 제하고 추운 겨울을 나는 현실을 생각하면 아찔하기만 합니다.
현재의 최저생계비로는 먹는 문제 이외의 삶은 생각조차 할 수 없어
최저생계비의 결정은 적지 않은 국민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일이기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위원님, 한 달 체험은 그것이 더 이상 삶의 질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최저생계비로는 먹는 문제 이외의 삶은 생각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최저생계비는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비용이어야 한다고 법에 정의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한 달간의 현실의 최저생계비는 건강은 고사하고 생존을 이어가기에 벅찬 수준이 되었습니다. 법에 따라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의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것이 법치이고, 빈곤에 허덕이는 수백만 국민들의 삶을 보살피는 것이 진정한 ‘친서민’일 것입니다. 부탁드립니다. 부디 법대로 최저생계비를 현실화 시켜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릴레이 편지 ⑤
사회안전망이 아닌 사회배제망, 이젠 거둬 냅시다.
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교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간밤에 무척이나 더웠습니다. 열대야가 기승을 부려 전국이 밤을 설치며 뒤척였어야 했습니다.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이하 중생보위) 위원분들도 잠을 설치셨겠지요. 그러나 반드시 무더위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19일 열렸던 중생보위가 최저생계비에 대한 결심을 하지 못하고 다시 24일 재개하는 상황에서 과연 어느 수준이 우리나라 국민들의 ‘인간다운’ 최소한인지를 고민하였기 때문이라 추측해봅니다.
‘빈곤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
사실 빈곤은 인류의 역사에 있어 일종의 ‘주홍글씨’입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있어 물질적인 한계 때문에 ‘인간다움’을 상실하고 있는 이 비극은 인류가 생성된 이후 오늘날까지 뚜렷이 극복하지 못한 결함의 하나이지요. 예전에 사회전체의 생산성이 그 구성원들의 기본생활에 필요한 생활필수품의 총량을 따라잡기 어려운 때는 그렇다 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이후부터 자리잡은 자본주의 하에서는 대량생산체제의 발동에 힘입어 사회 전체의 생산물의 합이 사회전체의 생활필수품의 합보다 더 커진 상황이고 따라서 원론적으로는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빈곤의 문제는 더 심각하게 발생하는 아이러니가 여전히 존재하는, 아니 오히려 더 심화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현실을 위안하기 위해 언제부터인가 하나의 관습적 사고가 형성, 유포되고 있으니, “빈곤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인류의 주홍글씨에 해당하는 빈곤을 해소하기 위해 20세기 복지국가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짐짓 모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절대적 빈곤만이 아니라 상대적 빈곤까지도 계측하여 인간다운 최소한의 생활이란 것이 단지 극한적인 생존상태만을 연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그 사회의 발전정도에 따라 상대적으로 결정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이를 위해 각종 사회보장제도를 치밀하게 얽어 놓은 것이 바로 동시대 선진복지국가의 모습임을 중생보위 여러분들이 더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일할 수 있는 자 일로 벌어먹어라?’
또 다른 관습적 사고도 있습니다. “일할 수 있는 자는 스스로 일을 통해 벌어먹게 해야 한다”. 따라서 아무리 고통스런 일거리라 해도 스스로가 근로의지를 작동시켜 일할 수 있도록 복지제도는 최소한의 기반만 형성해 주도록 ‘인내(?)’를 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근로는 하나의 고통이고 결국 소득을 벌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강제력에 이끌려 행하는 단순한 ‘일’로 전락한 지 오래여서, 일하지 않고 여가라는 이름하에 놀고 쉬는 것을 더 동경하고 찬양하는 모양새를 만든 지 오래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을 통해 호구지책을 마련하라는 근엄한 경고는 새로운 바도 아니며 그렇게 유효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근로능력을 발휘하지 못할 정도로 짖이겨진 그들의 이력을 살펴보고 일에 대한 새로운 의미부여와 동기유발을 끌어내지 않는 상태에서 이들 스스로의 자립이란 유일한 출구만을 강요하는 것은 백이면 백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미 많은 예들은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도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에 접어들었고, 일자리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며 창업에 따른 자본금의 수준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가 팔짱을 낀 채 “일할 수 있는 자 일로 벌어먹어라”는 준엄한 구호만을 되뇌인다는 것은 결국 미필적 고의에 의한 폭력이 아니겠습니까?
결국 이러한 관습적 사고에는 “빈곤은 그 스스로의 책임일 수밖에 없다”는 오랜 전통의 철학이 깔린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중생보위에 여러분들도 조용히 자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혹 스스로도 이런 철학과 믿음을 가지고 계신 것은 아닐까요? 혹여 그렇다면, 다른 수많은 사상서를 굳이 들먹일 필요도 없이 1879년 세상에 나온 헨리 죠지의 『진보와 빈곤(Progress and Poverty』를 꺼내들고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헨리 죠지가 비주류경제학자이고 돈키호테적인 이상론자에 그친 자이기에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러나 인내심을 갖고 읽어 보신다면, 인류의 빈곤이란 것이 결국 발전의 산물이며, 개인의 나태나 게으름이 아니고 사회의 구조적 산물이란 점을 감동적이고 강력한 어조로 말하고 있는 헨리 죠지의 필체어 어쩌면 새로운 경지를 만나실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서류’가 아니라 ‘현장’, ‘논리’가 아니라 ‘실제’에서 출발해야
사실 이번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한 참여연대의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저는 중생보위 여러분들에게 유감스러운 점이 없지 않습니다. 인터넷과 언론 매체를 통해 잘 알려진 이 프로그램을 모르지는 않으실터인데도, 중생보위 여러분들의 관심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딱 한분, 전문가로서 참여하시는 교수님이 잠시 들러 말씀을 나누고 가셨을 뿐이고 그 외의 어느 누구도 일일체험은 고사하고 현장을 들러 빈곤한 분들의 어려움을 확인해 보려는 분이 없으셨던 것이지요. 물론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의 당시 전재희 장관은 물론이고 손건익 사회복지정책실장, 권병기 기초생활보장과장조차도 얼굴을 내밀지 않으셨으니 중생보위 여러분들에게만 기대한다는 것도 무리겠지요.
굳이 좋게 해석해보자면, 중생보위 여러분들과 주무 관료들은 이미 빈곤층의 삶과 생활의 실상에 대해서는 너무도 절절히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혹, 자신들의 냉정하게 집행되어야 하는 책무가 빈곤체험을 통해 감성적이고 주관에 흔들림을 우려하여 그 냉정함을 지키시려는 충정의 발로이셨을까도 생각해 봅니다.
그렇지만 수백만의 운명을 결정짓는 책무를 행하실수록 결국 전범으로 삼아야 할 것은 서류가 아니라 ‘현장’이며, 논리가 아니라 ‘실제’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빈곤층의 실질적 삶에서부터 문제의식을 느끼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최저생계비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현실을 옥죄는, 현실과 심각히 괴리된 결과만이 도출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사회안전망’ 아닌 ‘사회배제망’
저는 여러분들이 지난 한 달간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면, 현재의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더 이상 우리나라의 ‘사회안전망’제도가 아니고 역설적이게도 ‘사회배제망’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깨달으실 수 있었으리라 감히 추측합니다. 빈곤정책에 대해 전문가라고 칭할 수 있는 저의 경우에도 이번 프로그램이 예전보다 각별했던 이유가 바로 ‘사회배제망’이란 점을 또렷이 저의 의식에 각인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삼선동 장수마을이나 서울역 앞 동자동에서 섬처럼 고립되어 사회적 관계에서부터 배제된 수많은 분들이 존재하고 계심은 우리 사회에 사회안전망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철저히 이 분들을 사회로부터 배제하는 기제만이 있음을 실증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시간은 머지않아 중생보위 여러분들의 결단을 요구하게 됩니다. 과연 중생보위의 위원분들이 이미 정부의 행정적, 재정적 고려점들을 반영한 가이드라인을 뛰어넘어 지금 빈곤한 분들을 옥죄는 이 사회배제망을 허무는 일을 행하시는 일에 동참하실 수 있는지요? 물론 수많은 이들은 이미 짐작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2000년부터 운영되어온 중생보위의 결정과정이 결코 전향적인 결론을 내기에 어렵다는 것을. 그리고 금번에 새로이 구성된 중생보위의 구조는 더욱더 열악하게 되어있다는 것을.
역사적 책임과 국민의 엄중한 경고 뒤따를 것
따라서 우리는 중생보위 여러분들에게 전향적인 결정을 구걸하거나 읍소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역사의 당위와 사회의 정의에 대해 분명히 선언하는 것뿐이고, 이를 외면하는 것에 대한 역사적 부담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믿을 것은 인류의 역사가 그래도 이 주홍글씨인 빈곤에 대해 부분적으로 서광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우리나라도 이러한 서광의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깨어있는 시민’들이 더욱 더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중생보위 여러분들에게 외친 이 함성이 여러분들로부터는 아무런 반응 없이 공허한 메아리로만 화답되겠지만, ‘깨어있는 시민’들이 언젠가 거대한 메아리로 우리 사회에 대반전의 시기를 앞당길 것임을 믿습니다.
24일. 중앙생활보장위원 여러분들의 고뇌어린 결정을 지켜볼 따름입니다. 모두 건승하시길.
월간 <복지동향> 2010년 09월호(제1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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