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진
젠더사회연구소 소장
자칭 사교육시장의 ‘B급 강사’라는 C씨, 그녀와 만날 약속이 쉽게 잡히지 않는 걸 보면 액면 그대로의 B급이 아님은 분명하다. 어렵사리 그녀를 만날 때면 ‘사랑스런’ 학생들 얘기를 들을 때가 있다. 찐한 386세대인 그녀의 학생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과외선생인 그녀를 통해 전인적인 인간으로 성장해가는 것 같았다. 그녀의 영어수업은 세계사나 한국현대사 때로는 철학수업인 것 같기도 했다. 하여간 내 보기에 상당히 잘 나가는 사교육강사인 그녀의 화두는 ‘교육’이다. 학생운동, 노동운동, 여성운동을 두루 섭렵(?)한 그녀는 한국사회의 모든 운동이 교육문제를 풀기위해 총력단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나는 말한다. 누가 몰라?
그런데 사실 나는 정말 모르겠다. 알고도 이러고 있다면 이건 도대체 말이 안되는 거니까…나는 교육학을 공부하지도 않았으며 더구나 경제학이나 사회복지학을 공부하지도 않았다. 굳이 학위를 대라면 여성학이고, 그중에서도 여성노동이 전공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여성학자 주제에 교육문제에 대해 이러고저러고 할 일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이제 새 학기가 시작되고 온나라가 ‘보편적 복지’라는 그 원대한 목표를 향해 한발 두발 내딛고 있는 이 시점에 교육이야기를 하려는 이유는 있다. 그것은 우리가 얘기하는 ‘복지국가’가 어른, 아이, 남성, 여성 모두가 행복하게 살기 위함이며 동시에 우리의 일상적 삶이 파괴되지 않는 새로운 사회를 필요로 하기 때문일 것이라는 단순한 믿음 때문이다.
먼저 여성문제부터 살펴보자. 한국여성들의 경제활동참가 유형이 M자 곡선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결혼과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은 7, 80년대에나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2011년의 지금도 여전히 자의반타의반 경력단절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 여성들은 30대 중반이후에 올망졸망한 자녀를 가진 어머니가 되어 다시 일터로 돌아오는데 그들 중 상당수는 판매직이나 서비스직의 비정규직으로 일하게 된다. 2009년도 기혼 여성임금근로자 중 거의 절반에 가까운 48.1%가 비정규직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임금은 얼마나 될까. 통상적으로 비정규직의 월평균임금은 125만원 정도로 알려져있다.
이제 얼마전 발표되었던 2010년 가족실태조사의 결과를 보자. 생계비 지출항목 중 눈에 띄는 것은 주거비도, 식료품비도, 여가비도 아니다. 자녀의 사교육비로 50만원~100만원을 지출한다는 응답이 29.7%나 나온 점이다. 학원보내고 과외받도록 하는게 생계비에 해당하는 지도 모르겠지만 더 기가 막힌 것은 심지어 가구소득이 100만원~200만원인 집에서 사교육비로 50만원이상을 지출한다는 가구가 20.5%나 되었다. 한부모가정의 경우에도 50만원 이상의 사교육비 지출 가구는 10%가 넘었다. 지난해 보사연의 조사에서 자녀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7만1천원이라고 했다. 만약 두 자녀가 있는 한부모 여성가장이 있다면, 그리고 이 여성이 비정규직의 일자리밖에 찾을 수 없었다면 그녀는 소득의 50%를 아이들 학원비로 쓰고 있는 셈이 된다.
한겨레21(794호)은 지난 연말, 현대차동차 노조가 15년만에 무분규 임금협상이 타결되었다며 종업원의 월평균 임금은 524만원이라고 보도했다. 매년 파업하고 투쟁하면서 인상되는 임금은 가계지출의 어느 항목에 쓰이는 걸까. 혹시 학원비, 과외비 주느라 잔업, 특근의 초과근로를 미리 책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연 아니라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을까. 잘 아는 대학교수 부부는 사교육비 때문에 저축이란걸 할 수가 없다고 푸념한다. 도대체 일은 왜 하는 것인가. 아이를 키우려니 직장을 계속 다닐 수가 없었고, 다시 아이를 더 잘 키우려니 월급 125만원을 받는 일이라도 하게 되는 어머니들. 과외비로 월급 전부를 쓰는 한이 있더라도 사교육 외면은 자식의 미래를 저당잡히는 일이라 거절못하는 비정규직의 일하는 엄마들…그들은 왜 그렇게라도 일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맞벌이가 필수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여성의 경제활동은 더 이상 가계보조적이지 않다. 더 낮은 임금의 더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리고 있는 여성들은 학원 보내달라는 아이들의 요구에 무능한 엄마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일을 찾아 노동시장에 나온다. 등골 휘는 사교육비가 한해 30조원이 넘는 사회에서 우리가 지향하는 복지국가는 사교육문제라도 풀고 가야 하지 않을까. 이건 여성문제이자 노동문제이자 교육문제인데, 솔직히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잘모르겠다. 과외금지가 제일 좋은 방법이라는데 위헌 소지가 있다고도 한다. 조국 교수의 [진보집권플랜]에서는 아이들의 수면권을 보장하지 않는 사교육 시간을 엄격히 제한할 것, ‘학과 공부하지 않는 프로그램’으로 ‘의무적인 놀기’ 실행, 불법이자 반칙으로서 선행학습 금지 등의 이야기가 제안되기도 했다. 어떻게든 중지를 모았으면 한다.
‘교육’문제에 관한한 우리 모두가 공범자이다. 그리고 한국의 교육문제는 어느 한 부문운동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입시경쟁과 사교육의 지렛대처럼 호명되는 전업주부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시작되는 특별활동과 사교육비용을 벌기위해 청소하고 서빙하고 간병하는 일들에 나서는 일하는 어머니들. 이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갖게 하자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해왔다. 그 주장이 진부해서 더 이상 얘기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해마다 커져만가는 사교육시장에 복지와 노동의 댓가를 강탈당하지 말자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여성단체도, 노동조합도, 그리고 시민사회단체들도 이 문제를 자신의 운동과제로 삼아야 한다. 보편적 복지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복지국가’는 복지지출을 증가시키려는 것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운영전략을 이름하는 것이다. 복지국가로 가는 길목에서 여성의 삶을 피폐하게 하게 만들고 아이들의 행복을 사교육에 저당잡히는 이 현실에 더 이상 침묵하지 말자.
월간 <복지동향> 2011년 2월호(제1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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