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1 2011-07-18   2624

[심층분석3] 복지국가에서 자본의 역할: 우리에게 주는 함의

최영준 |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들어가며

 

‘복지국가가 왜 발전했나요?’, ‘왜 요즘 서구에서 복지국가 위기론이 나오게 된 것은 왜 인가요?’ 라는 질문을 사회정책을 공부하는 학자들은 스스로 갖게 되며, 때로는 학생들로부터 질문을 받게 된다. 답하기 위해 머리 속의 교과서를 얼른 뒤져보면 좌파정당이나 노동조합의 힘을 강조한 스웨덴 코르피(Korpi), 정부관료제의 중요성을 강조한 헤클로(Heclo), 그리고 윌렌스키(Wilensky)의 산업화 이론도 떠오르고, 최근 위기론과 관련해서는 레이건이나 대처와 같은 보수당 정권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로 큰 변화가 없다는 피어슨(Pierson)과 같은 주장도 떠오른다. 이들을 적절하게 잘 버무려 설명을 하고, 뒤돌아서면 나는 여전히 뒷맛이 개운치 않다. 정부도 있고, 정치정당도 있고, 노동조합도 있고, 세계화도 산업화도 다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에서 가장 중요함에도 복지국가론 교과서에는 잘 등장하지 않는 변수가 한 가지 있다. 그것이 바로 자본(capital) 혹은 기업(business)이다. ‘경제나 관심 있는 그들이 사회정책에 무슨 영향이 있을까’ 혹은 ‘복지국가 발전에 대해서는 항상 반대를 했겠지’라는 가정을 쉽게 갖게 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본 글에서는 복지국가 발전에서 자본의 역할과 영향에 대한 기존의 연구들을 일본의 사례와 함께 간략히 소개하면서 한국에 주는 함의를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자본과 복지국가: 그들의 선호와 영향력 

 

노동조합과 좌파정당이 복지국가의 확장과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다만, 종종 이러한 주장을 하는 입장에서는 자본은 수동적인 존재나 단순하게 반대만을 하는 존재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자본이 복지국가 발전에 있어서 능동적인 행위자로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음을 여러 학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미국의 쿼다그노(Quadagno)라는 학자는 미국이 사회보험을 도입할 때 선구적인 자본가들이 이 제도를 적극적으로 찬성했음을 밝히고 있으며, ‘자본주의의 다양성’으로 유명한 홀과 쏘스키스(Hall and Soskice)는 유럽에서 장애급여와 조기퇴직연금의 도입은 기업이 보이지 않는 장기적 계약을 침해하지 않고 노동을 해고할 수 있게 하였으며, 충성심이 필요한 생산체제를 유지할 수 있게 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단순한 정책적 차원을 넘어서 써본(Therborn)과 같은 학자는 조직화된 노동이 권리에 기반한 보편적이고 전국적인 복지제도를 원하며, 이러한 제도는 완전고용, 소득과 부에 대한 재분배, 그리고 노동에 의한 운영을 바탕으로 한다고 관찰한다. 이에 반하여 자본은 축적과 이윤에 도움이 되는 복지제도를 원하며, 복지제도의 우선순위를 숙련노동을 확보하고 충성된 노동력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학자는 자본이 원하는 사회보험은 기여에 의해서 운영되면서 보험수리적으로 적자가 발생하지 않는 제도를 원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맑스주의 이론에 뿌리를 두고 복지국가를 설명하는 오코너(O’Connor)가 자본주의 국가는 소비와 투자를 원활히 하기 위해서 사회자본(social capital)에 투자를 하며, 반면에 잉여인구에 의한 사회적 불안정성을 방지하기 위해서 사회비용(social expense)을 지출하게 된다는 주장과 일치한다. 다시 말해서 자본은 단순히 복지국가 발전의 방관자가 아닌 자신의 이익을 실현을 위해서 때로는 복지국가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더 나아가 마레즈(Mares)는 자본과 기업들이 다 같은 사회정책의 선호를 가진 것이 아니며 기업의 숙련노동에 대한 요구 수준이나 작업장 내 위험 가능성의 상호작용에 따라서 기업의 사회정책에 대한 선호가 결정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녀는 독일과 프랑스의 초기 사회정책 발달을 분석하면서 숙련노동을 필요로 하는 대기업이 사회보험 운영에 있어서 높은 수준의 개입을 요하는 제도적 설계를 지지한 반면 작은 기업들은 이러한 사회정책이 자신들의 비임금 노동비용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하였다고 언급했다. 이와 유사하게 본인도 몇 년 전 한국과 대만의 연금제도 발전을 비교하면서 대기업 중심의 기업구조를 가지고 있는 한국이 기업에 의한 퇴직금제도의 발달이나 사회보험 제도를 발전시킨 반면 중소기업 중심의 기업구조를 가지고 있는 대만에서는 한국과 같은 발전이 나타나지 않았으며 반대로 세제에 기반한 노령수당제도가 최근 발전한 것을 주장한 바 있다. 그렇다면 자본은 어떻게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하는가?

학자들은 자본의 영향력은 크게 직접적인 도구적 영향과 간접이고 보이지 않는 구조적 영향력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판스워스(Farnsworth, 2004)는 네 가지 형태의 도구적 영향력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로비(lobbying)이며, 이는 기업이나 기업을 대표하는 이가 정책결정가나 행정부를 상대로 영향력을 미치려는 행위이다. 둘째는 제도적 참여(institutional participation)으로서, 정부의 다양한 위원회나 사회정책의 행정에 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는 정당이나 씽크탱크 혹은 복지관련 기관들에 스폰서나 자금을 지원하는 형태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직접적인 기업복지제공으로서 그들의 피고용인이나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복지를 의미한다. 하지만, 문제는 자본의 영향력은 항상 보이지만은 않는다는 것이며, 실제 보이지 않는 영향력이 더 큰 경우가 많다. 고프와 판스워스(Gough and Farnsworth, 2000)는 이에 더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다섯 가지 자본의 구조적 영향력의 원천을 지적하였다. 다섯 가지는 1) 투자에 대한 통제권, 2) 자본 이동과 탈출의 가능성, 3) 노동과 고용에 대한 권한, 4) 국가 수입에 대한 의존, 그리고 5)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이다. 이 다섯 가지 영향력의 원천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다. 투자에 대한 통제권은 자본의 이동성에 영향을 미치며, 증가하는 이동성은 노동에 대한 지배권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한 사회의 내재된 선호를 지배할 수 있는 힘으로 정의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는(Gough and Farnsworth, 2000:87) 여론이 정부가 세계화의 영향력과 시장의 힘에 어쩔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을 지지하게 한다.

이러한 자본의 구조적 영향력의 원천을 보게 되면 자본이 집중된 곳일수록 자본의 구조적 영향력이 높을 것이라는 가설과 자본의 이동이 쉬울수록 혹은 경제적 자유화와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한 국가와 사회에 대한 자본의 구조적 영향력은 증대될 것이라는 가정을 도출된다. 또한 최근 연구에서는 자본이 부담이 높은 노령화 사회에서 덜 노령화가 된 사회로 이동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결과도 보인 바 있다. 이러한 배경들과 주기적인 경제 위기와 침체는 자본의 위기설(곧 국가경제의 위기설)로 이어지면서 이들에 대한 구조적 영향력은 증가하는 배경을 낳게 하고 있다.  

일본의 연금발전과 개혁과정은 이러한 자본의 역할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1973년 국민연금이 도입되려고 했던 의도가 복지보다는 산업화를 위한 내자동원이었던 것과 같이 일본의 연금이나 퇴직관련 제도들은 단순한 복지보다는 복잡한 의도들이 있었다. 전후 재정적 역량이 약했던 민간부문에 비해서 공공부문은 연금을 포함한 공적자금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목적에 다양하게 사용되게 된다. 젊은 인구구조 하에서 퇴직금이나 퇴직연금제도 역시 세제혜택을 받는 사내 가용기금 마련을 위한 목적과 함께 숙련되고 충성된 노동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 이래로 일본 기업들이 국제적으로 성공을 거두게 되고 정부로부터 점차 독립적이 되어가면서, 또한 다양한 연금제도의 성숙과 빠른 노령화로 인해 부담이 가중되면서 자본은 연금축소를 위한 도구적이고 구조적인 영향력을 동시에 행사하게 된다. 실제로 카울링과 톰린슨(Cowling and Thomlinson)과 같은 학자는 일본 경제의 투자와 고용에 대한 전략적 선택이 일부 초대형 기업들의 손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일본의 경제전문가는 Japan Times와의 인터뷰에서 (2004년 4월 27일) “어짜피 일본 경제가 대기업 수출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기업들은) 더 이상 엄청난 정치자금을 제공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은 어짜피 자신들의 길을 간다”라고 증언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일본의 자본의 구조적 힘이 세계화와 함께 급격히 증가하면서 도구적인 영향력을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될 상황에 왔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도구적 영향력도 동시에 행사가 되었다. 이러한 개혁과정 속에서 기업연합단체인 케이단렌은 다양한 정책보고서를 통해서 정부를 압박하였으며, 직접적으로 연금개혁을 포함한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정당에게는 정치자금을 제공하지 않겠다는 등의 압력을 행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결과, 1985년 개혁을 시작으로, 1994년, 1999년, 그리고 2004년 개혁을 거치면서 공적연금은 상당히 축소되게 된다. 기업연금 부분에 있어서도 2000년 개혁을 통해서 기업의 재정적 부담을 덜어줌과 동시에 연금 운용에 있어서도 기업의 자율성을 높여주게 되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첫째 일본사회 내에서 체계적인 저항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기간 내의 지속적이고 집중적인 감축은 선진국에서는 매우 예외적인 것이었지만, 정치정당이나 시민사회단체 심지어 노동조합으로부터도 저항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면, 저항이 전혀 없었을까? 그렇지는 않다.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하여 기초연금에 기여를 하지 않는 이들이 광범위하게 증가하였으며, 연금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이들의 불만이 체계적으로 전달될 통로가 없는 상황이다.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은 자본의 요구사항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 중 중요한 한 가지는 세제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기초연금제도로의 개혁이다. 현재 일본의 기초연금은 기여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케이단렌은 현 제도가 사각지대를 넓히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의도는 적자상태의 기초연금 재정이 기여로부터 충당되는 것이 아니라 소비세로 충당되게 하려는 것이다. 자본에게 더 이상의 재정출현을 요구하지 못하는 정치권은 정치적 이유로 소비세 또한 인상을 하지 못하면서 딜레마 상황에 빠져 있다. 이 딜레마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일본 재정적자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으로의 함의: 자본을 복지국가 논의의 장으로 초대하자

 

한국의 자본은 직접적으로는 복지와 사회정책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 이유는 그다지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 없었으며, 또한 지금까지의 정부에서 친기업적인 경제운용이 되었기 때문이다. 핵심적인 관심은 다양한 기업복지를 통해서 숙련되고 충성된 노동력을 확보 및 유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최근 급격히 변했다. 숙련노동이 풍부해지고, 스스로 국제화에 성공하면서 기존의 기업복지는 그렇게 매력적인 옵션이 되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대기업의 자본이 보건이나 금융분야로 진출하면서 사회보험이나 공공서비스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복지확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현 보수적 정부에 의해서 끊임없이 고용과 투자에 대한 압력을 받고, 사회적 양극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동시에 ‘국민연금 주주권리 행사’ 이슈까지 들고 나오게 되자 적극적인 입장 표명이 이루어지고 있다(중앙일보 2011년 6월 25일). 사회적 욕구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소비세만을 만지작거리는 사이에 가세(家勢)가 급격히 기운 일본 정부와 ‘국가 부도‘를 논하고 있는 미국 정부의 현실을 보고, 반면에 높은 공공복지지출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재정을 자랑하는 스웨덴과 같은 북구국가들을 보면서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김용익 교수의 ‘재벌, 복지를 부탁해’(한겨레신문 2011년 6월 23일)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국고는 텅 비어가고 세도가의 곳간에는 금은보화가 넘쳐’나는 상황이 되어 갈 것이다.

자본을 테이블로 끌어드리려는 현 정권은 한국 사회에서 적하현상(trickle-down)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마침내(?) 깨달은 것이며, 또 하나는 정치가 자본에 대해서 행사할 수 있는 압박의 카드가 별로 없다는 것 역시 깨닫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한국 사회는 고프와 판스워스의 구조적 영향의 원천을 검토할 때 일본 사회만큼 자본의 구조적 영향력이 강한 국가이다. 본인 만해도 모 재벌과 관련된 제품과 관련 서비스에 포위되어 있으며, 심지어 관련 스포츠 팀을 응원하고 있다. 당연히 한국 사회에서 ‘재벌흥망=한국경제흥망’을 바탕으로 하는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는 강력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 쪽에서는 여전히 법인세를 2009년에 이어 또 내리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며, 노인빈곤률이 45%가 되어도 ‘투자’적 성격을 가진 제도들과 달리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번 복지국가에서 ‘자본의 역할’을 검토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자본을 현 복지국가 논의에서 제외하고 진행한다면 제한된 재료를 가지고 훌륭한 파이를 만들어야 하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복지국가는 정치와 노동만의 산물이 아니며 자본의 산물이라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며,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든지 그들의 요구는 실현될 것이며 혹은 이미 실현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 복지논쟁에서 보다 명확하게 자본을 협상의 자리로 초대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Farnsworth, Kevin (2004) Corporate Power and Social Policy in a Global Economy. The Policy Press.
Gough, Ian and Kevin Farnsworth (2000) The enhanced structural power of capital: a review and assessment. In Ian Gough, Global Capital, Human Needs and Social Policies: Selected Essays 1994-1999, Macmillan. pp.77-104.

월간 <복지동향> 2011년 07월호(제1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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