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1 2011-08-13   2109

[칼럼] 복지국가와 사회적 경제

이영환│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최근 우리나라의 대자본들은 가히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다. 한 번의 정리해고로 수천 명의 실직자를 만들기도 하고, 특정 계열회사에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순식간에 거부(巨富)를 쌓아 편법상속하기도 한다. 저축은행은 서민들의 예금을 자기 주머니 돈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이러한 대자본의 힘은 1990년대 이래 신자유주의가 풍미하면서, 특히 외환위기 이후 양극화가 심화되는 과정과 병행하여 짧은 시간에 빠른 속도로 증폭되었다. 이러한 대자본의 권력과 횡포에 대해 여러 가지 사회적 논란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 힘을 견제할 사회적 힘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힘이 없을 때, 자기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대자본의 행동을 어떤 논리로 억제할 수 있을까? 대자본의 횡포에 중소기업들이 줄줄이 도산위기에 처해지는 상황인데도 이에 대항하는 중소기업들의 연합된 힘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근본적으로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 등 시장경제의 횡포를 견제하는 사회적경제의 존재가 미미하다는 것이 치명적이다. 우리는 시중은행을 견제할만한 농민은행도 없고, 대기업과 비등한 힘있는 협동조합연합체도, 이마트에 필적할만한 협동조합 마트도 없다. 농협에는 90% 이상의 농민이 가입하고 있지만, 농협을 협동조합으로 인식하는 조합원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복지국가는 정치적 차원에서 시장경제의 횡포를 견제하는 장치이다. 최근 복지국가가 선거판의 이슈로 부각되고, 복지국가 만들기 운동도 다양하게 펼쳐지는 상황이라 자못 기대를 모으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서구의 복지국가를 모델로 할 때, 복지국가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사회복지 재정지출이 현재보다 3~4배 늘어야 하고, 적어도 2배는 늘어야 명함을 내밀텐데 이러한 비약적인 발전이 과연 가능할지 걱정이 앞선다.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힘있는 정당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국가복지를 추동하는 강력한 사회세력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복지국가를 뒷받침하는 사회적 연대의식이 형성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정치적 민주주의를 위한 훈련은 어느 정도 겪은 셈이지만, 이를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로 심화시키는 시민훈련은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지방자치가 정치적 민주주의의 학교라면, 사회적 경제는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훈련의 장이다. 이와 관련하여 서구 복지국가의 역사를 통해 사회적 경제의 의미를 반추해 볼 수 있다. 실제 서구에서 협동조합과 상호조합 등 사회적 협동경제는 자본주의 초창기에 시작되었는데, 이는 초기 자본주의의 야수적 횡포에 대항하는 민중의 자구적 노력에서 출발하였고, 이것이 제도화된 것이 복지국가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협동경제는 복지국가의 주요 프로그램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전달체계까지 일부 담당하면서 상승작용이 더해졌고, 이를 통한 사회연대의식의 확산이 복지국가의 밑바탕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좁은 의미에서의 경제적 조직들뿐만 아니라 각종 민간단체와 노동, 농민단체 등을 포함한 제3섹타의 광범한 참여가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 협동경제는 복지국가의 발전과정에서 하위 파트너로 편입되면서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기도 했지만, 복지국가의 위기를 겪으면서 그 의미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나아가 자본주의 전체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오늘날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렇듯 사회적 경제는 자본주의의 횡포에 대항하여 민중의 자생력 회복을 지원하고, 경제적 민주주의에 대한 훈련을 통해 복지국가의 초석을 놓아가는 의미를 갖는다. 복지국가를 향한 우리 사회의 전망이 밝지 않은 것도 이러한 바탕이 많이 부족한데서 그 중요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결국 복지국가로의 먼 길을 가기 위해서는 더디 가더라도 돌아가야 한다는 것인데, 문제는 이러한 사회적 경제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이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기대가 높다. 정부와 지자체가 일자리 창출에 대한 기대감으로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상황인데, 기대가 높다보니 그에 대한 실망이 커지기도 한다. 사회적 경제는 정부가 성급하게 드라이브를 건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사회적 경제조직들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우선적 과제이다. 이러한 환경조성은 다양한 방식으로 추구되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 경제조직들이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 자본(공공부문과 민간부문 모두에 걸친)의 확대와 사회적 경제조직들간의 네트웍 확장이다. 즉, 사회적 경제조직들이 비빌 언덕이 되고, 서로 의지하고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회적 경제의 생태계가 풍부하게 조성되어야 사회적 경제는 본격적으로 번창하고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인증 사회적 기업이 불과 500여개에 불과하지만, 영국 등 서유럽의 사회적 경제조직들이 수만개에서 수십만개에 달하고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적 경제 생태계 확장을 위해서는 사회복지기관 등 수많은 NPO와 NGO들의 관심과 참여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NGO와 NPO들은 정치적 민주화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였고, 아직 사회적 경제 영역에의 관심과 참여는 미흡하다. 이러한 관심과 참여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월간 <복지동향> 2011년 8월호(제1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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