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희│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 간사
좋은 가을 날씨, 조금 먼 곳으로 나들이를 가려고 경부고속도로를 탑니다. 한참 가다보니 제가 살고 있는 천안을 광고하는 입간판을 봅니다. ‘기업하기 좋은 도시 천안’, 기업과는 별 상관없이 사는 저이지만, 왠지 기업이 많아지면 우리 지역이 부자(?)가 될 것 같은 상상이 듭니다. 뭐, 천안만이 아니라 다른 동네에서도 많이 쓰는 ‘기업하기 좋은’ 유치전이니까요. 그리고 최근 천안시가 내걸고 있는 슬로건 중의 하나는 ‘100만이 살아도 넉넉한 도시 천안’입니다. 아파트도 많이 짓고, 도로도 계속 짓고 있고, 외부에서 기업이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유입인구도 많아지는 것. 가장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천안시에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재원(자주재원)이 늘어날 가능성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기업유치작전에 가까운 공격적인 마케팅을 실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천안시가 부자가 될 것 같다는 막연한 상상은 막상 현실을 들여다보면 1,600억 원이 넘는 부채를 갚느라 허덕이고 있는 천안시가 보입니다.
천안시 부채상환으로 시영임대주택 건설은 또 보류
2011년 현재 천안시의 특별회계는 총 10개 사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중 33.2%로 가장 많은 예산비중에 해당하는 ‘산업단지조성사업’은 지난해보다 300억 원이 증가되기도 하였습니다. 산업단지조성의 주요 내용으로는 제5일반산업단지 조성사업에 297억4천만 원이 편성되어 있으며, 산업단지 분양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산업단지조성 특별회계 중 그 규모가 가장 큰 내역은 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금융권에서 빌린 1,000억 원과 차입금 이자상환액 100억 원이 포함되어 더욱 예산비중이 증가된 상황입니다. 전체 산업단지조성 예산 중 원금상환과 이자에 해당하는 비율은 무려 73.3%에 달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큰 규모(24.2%)에 해당하는 공영개발사업 특별회계는 청수지구택지개발로 인한 원금 500억 원 상환과 청수지구 지역개발기금 차입금 이자 24억5천만 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체 예산 중 원금상환과 이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47.9%에 해당합니다. 문제는 원금상환과 이자상환의 비용이 일반회계에서 특별회계로 내부거래 지출로 비용을 충당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반회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이 특별회계로 전출됨에 따라 예산의 경직성이 커지는 주요한 원인이 되는 것이지요. 천안시의 부채문제는 2011년 천안시지방재정공시자료를 통해서도 그 심각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천안시의 채무는 3천1백억 원으로 자치단체 평균의 3배 이상 동종단체 평균 2배 이상 높은 상황입니다. 또한 채무증감 추이 역시 2006년 1천419억원, 2008년 2천385억원, 2010년 3천억 원을 넘어서며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부채 때문에 긴축재정으로 본예산에 수립된 사업계획 중 예산부족 등의 이유로 취소 또는 보류된 사업이 96개, 총 125억9천만 원에 이르고 있는 상황입니다(보조사업을 제외한 천안시 자체사업 기준). 천안시는 공무원 인건비도 동종단체 평균 83.3% 수준으로 동결하여 집행하고 있으며, 일반수용비 및 물품구입비 등 사업집행을 보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행정경비를 절약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몇 년째 예산서에만 오르락 내리는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화를 위한 ‘시영임대주택(28세대)’ 건립사업도 전면 삭감되었습니다. 시영임대주택 건설비용 26억 원 6억원만을 본예산에 편성하였으나, 전체사업비 확보가 불투명하여 추경예산에서 예산이 삭감된 것입니다. 원금 상환과 이자로만 1600억원을 집행하면서,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화를 위한 26억원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은 천안시의 정책적 의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사회복지가 정책사업 중 예산배정 1위? 과연?
이러한 상황임에도 천안시는 사회복지예산의 비중이 30%를 넘어서는 등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는 발표를 하고 있습니다(주거영역은 사회복지예산에 포함). 하지만 이 30%란 일반회계예산으로만 한정하였을 때입니다. 2011년 1회추경기준 1조2,450억 원이 넘는 천안시의 재정은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별회계의 경우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별도의 예산을 배정하여 추진하고 있다는 이유로 일반회계 중심으로 예산을 발표를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특별회계의 예산 역시 일반회계와 완전히 별개로 볼 수만은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1조2,450억 원의 천안시 예산을 기준으로 보면, 천안시에서 28.4%로 ‘국토및지역개발’영역이 가장 많은 정책단위에 해당합니다. 세부적으로는 제5산업단지조성, 청수지구택지개발 등 주거환경조성, 친환경생태하천조성 등의 내용입니다. 네. 맞습니다. 아까 보셨던 부채가 이 정책단위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사회복지 영역이 17.4%로 많은 비중에 해당됩니다. 이쯤 되면 천안시에서 내걸은 ‘기업하기 좋은 도시’라는 슬로건에 따라 정책을 착착 집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천안시는 외부기업유치 등 양적 인구확대 및 아직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시민들을 위한 투자에 집중하기보다 현재 천안시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시정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삶의 질, 외부의 인정이 아닌 시민에게 인정받아야
지난해 민선5기 출범과 함께 천안시는 ‘시민의 삶의 질 100대 도시’를 목표로 시정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발표하였습니다. 천안시가 이제는 도로와 산업단지 조성만이 아니라 천안시민의 삶의 질을 정책목표로 수립하였다는 것은 꽤나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세계적인 인사․조직 컨설팅 회사인 머서(Mercer)사의 지표를 참고하여 총 12개 분야(사회 및 안전환경, 경제적 환경, 사회문화적 환경, 보건과 건강, 학교와 교육, 공공서비스와 교통, 여가와 문화, 소비재 상품, 주택, 자연환경, 거버넌스, 사회적자본)에 대한 천안시의 현황을 전문가 델파이 조사를 통해 점검 한 후, 지난 8월 11일 천안시청에서 시민공청회가 진행되었습니다. 공청회에 참석하여 관심 있게 발제내용을 들을수록, 이 지표가 천안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현황점검과 대안모색인지, 머서(Mercer)사의 기준에 통과하여 천안시가 살기 좋은 도시임을 천명하고자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심이 계속되었습니다. 학계교수 10명, 공무원 20명으로만 구성된 전문가들은 델파이 조사를 통해 ‘여성취업률’, ‘시민단체가입률’, ‘노조활동률’, ‘다문화가정 지원예산비율’, ‘자전거도로율’, ‘주요 정책영역에서 거버넌스 기구의 상설적 운영’ 등의 지표가 전문가 평가기준으로 평점이 낮다는 이유로 시민대상 설문조사에서 아예 배제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하였습니다. 더불어 2011년 1회추경 천안시 예산서에서도 자전거도로와 관련된 예산은 거의 삭감되어 사업집행이 되지 않는 등 실제로 천안시의 정책집행방향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기도 합니다. 천안시민의 삶의 질을 객관적인 지표로 점검하려는 시도는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외부의 인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짜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인정과 만족도일 수밖에 없습니다.
7년간의 시도, 참여예산복지네트워크
사회복지. 시혜적 관점의 편재, 예산의 파워게임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영역. 참여예산복지네트워크는 사회복지예산의 균형 있는 편성과 복지서비스의 권리지향성 확대를 목표로 2005년부터 천안시 예산분석 및 정책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매년 9월 사회복지예산제안토론회를 진행하고 있으며, 지난 6년간 총104개의 정책, 222억원을 천안시에 제안하였으며 그 중 41.9%(93억원)가 예산으로 반영되었습니다.
참여예산복지네트워크는 대상영역별 정책범주화 과정을 통하여 단순히 ‘장애인예산이 증가되었다’라는 정책논평이 아니라, 장애인예산 중 편의시설, 노동권, 사회보장 등의 현황을 확인하고자 하였습니다. 이후 2008년부터는 사업예산서로의 전환 등의 외부적 환경변화와 복지영역에 한정하여 예산을 증액하라는 요구가 아닌, 천안시의 전체 예산과 정책을 권리의 관점으로 평가하고 시민의 삶의 질에 초점을 맞춘 권리로서의 정책집행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이에 7대 권리(기초생활보장권, 사회보장권, 교육권, 건강권, 문화권, 노동권, 주거권)로 예산과 정책을 분류하고, 분석 및 모니터링 과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삶으로서의 사회복지, 시민에게 확인하다
사회복지사와 사회복지활동가를 중심으로 정책을 개발하고, 모니터링을 진행하며 현장의 요구를 정책으로 반영하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복지영역의 종사자가 아닌 일반시민들에게 사회복지가 과연 관심주제인지, 우리의 정책과제가 우리만의 요구로 그치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내부와 외부의 검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11월 2011년 천안시예산(안)이 공개되었을 때, 예산제안토론회를 통해 제안한 정책의 반영정도를 분석하고 그 내용을 시민들에게 공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시민들이 내년에 꼭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책에 대한 모의투표도 진행하였습니다. 햇볕도 들지 않는 응달에서 진행되었기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까라는 우려는 스티커를 중간에 공수(!)해 진행할 정도로 높은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작은 스티커를 손가락에 붙인 채, 10개가 넘는 정책들을 진지하게 살펴보며 본인의 의사를 표현하였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노인에 대한 부양의무감이 커지면서 실제로 복지가 몇몇 어려운 사람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삶의 문제와 관련된 것임을 시민들도 느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올해는 ‘2012년 천안시, 복지도시를 부탁해!’라는 슬로건으로 4개월여에 걸친 정책모니터링과 예산분석과정을 거쳐 총 11개 사업을 정리하였습니다. 토론회에 앞서 9월 3일(토)에는 4곳(천안남산중앙시장, 성정동 롯데마트, 쌍용동 롯데마트, 용곡동 동일하이빌 아파트)에서 동시에 복지정책의 우선순위 투표가 진행되었으며, 850여명의 천안시민들에게 정책에 대한 우선순위를 확인하는 캠페인을 통해 독거노인, 공공작은도서관, 장애인 평생교육, 영유아필수예방접종, 공공주택 확보 등에 대한 시민들의 높은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내용을 종합하여 지난 20일(화) 오후2시부터 두정도서관 다목적실에서 ‘천안시민이 제안하는 복지도시 천안토론회’가 진행되었습니다. 토론회를 통해 11개 정책 총39억9백만 원의 예산으로 문화권(△천안시 공공작은도서관 내실화), 주거권(△천안시 공공주택 유형 다양화, △저소득층 임대보증금 지원으로 주거 안정화, △전세/월세 거주 수급가구에도 집수리사업 확대 실시), 사회보장권(△시민여성문화회관, 천안여성인력개발센터 탁아방운영 활성화, △공공기관병의원 통번역체계 구축, △올바른 성인지와 양성평등의식 확산, △독거노인 통합지원망 구축), 교육권(△장애인 평생교육의 실질적 교육 기반 조성, △다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한 다양하고 체계적인 교육 활성화), 건강권(△필수예방접종비용 국가부담사업 전액지원)의 해당하는 정책을 제안하였습니다. 전체 3시간 20분에 걸친 발제와 토론과정을 거쳐 내년도 천안시 복지정책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제안하는 시간을 진행하였습니다.
2012년, 천안시도 주민참여예산제도 시행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비교하면 다소 늦은 조례제정이기도 합니다만, 천안시에서도 내년부터 주민참여예산제도가 시행됩니다. 참여예산복지네트워크는 예산참여과정이 제도화되기 전부터 이러한 과정을 만들며, 공공의 대안을 만들고 논의하는 시간을 지난 7년간 진행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내가 원하는 것이 반드시 정책화되어야 한다는 당위보다도, 생활하면서 변화가 필요한 점을 이야기하고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어떠한 상황인지를 좀 더 꼼꼼하게 살펴보는 참여과정의 유의미성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주민참여예산제도의 시행으로 대규모 사업이 추진 시, 시민이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과정도 공식적으로 마련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지금처럼 1,600억 원 대의 어마어마한 빚을 지지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됩니다. 이러한 시민의 참여를 통해 단지 외국에서 선정한 기준에 맞추는 숫자로서의 삶의 질이 아니라, 진정으로 ‘시민의 삶의 질이 세계 100대도시’에 이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월간 <복지동향> 2011년 10월호(제1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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