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이 | 제주의대,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이진석 | 서울의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1. 건강보험 통합의 의미
2000년 건강보험이 단일 보험자로 통합되었다. 그리고 2003년 건강보험 재정까지 통합되면서,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명실상부한 단일 보험자 체계를 구축하게 되었다. 이로서 짧게는 10여 년, 길게는 20여 년에 걸친 건강보험의 관리운영체계를 둘러싼 논란은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사회보험 방식으로 출발한 건강보험을 단일 국가보험 방식으로 전환한 것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실험이었다.
건강보험 통합의 의미는 기존에 수백 개로 나누어져 있던 조합을 하나로 합치는 관리운영체계의 변화에 국한되지 않는 것이었다. 건강보험 통합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었다는 점이다. 수백 개의 조합으로 나누어져 운영되던 체계 하에서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재정 상태가 열악한 조합에 맞춰 건강보험의 급여 수준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조합은 막대한 누적 적립금을 쌓아두고 있으면서도 조합원들에게 충분한 급여 혜택을 주지 못하는가 하면, 또 다른 조합은 최소한의 급여 혜택조차도 감당하기 힘든 열악한 재정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물론 각 조합 간의 재정 위험을 분산하는 기전을 갖추고는 있었지만, 그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건강보험 통합은 보장성 강화의 중요한 걸림돌이었던 조합 간의 재정 격차를 일시에 해소하는 제도적 변혁이었다. 통합 건강보험체계라는 제도적 기반이 없었다면, 참여정부 시기의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보험료 부과체계의 형평성 향상 역시 건강보험 통합을 빠뜨릴 수 없는 성과이다. 과거 조합 방식에서는 재정 상태가 열악한 농어촌 지역조합의 보험료는 상대적으로 비싸고, 재정 상태가 양호한 직장조합과 서울 강남과 같은 부유한 지역조합의 보험료는 상대적으로 저렴했다. 각 조합이 독립채산 방식으로 운영된 데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었다. 이 같은 보험료 부담의 불합리성을 해소하고, 전국 어디에 거주하든, 어떤 직장에 근무하든 간에 동일한 기준으로 보험료를 부과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건강보험 통합의 성과이다. 물론 지역가입자와 직장가입자의 보험료 부과체계가 완전 통합되지 못한 점은 한계로 지적할 수 있지만, 이는 건강보험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우리나라 조세체계 전반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흔히 간과되는 성과 중의 하나가 건강보험 관리운영체계의 투명성과 책임성 향상이다. 과거에는 수백 명의 의료보험 조합장과 그 몇 곱절되는 임원들이 있었다. 이들로부터 비롯되는 비리와 부패가 심각했으나, 수백 개에 이르는 조합들을 일일이 감독하는 것도 쉽지 않은 실정이었다. 게다가 직장의료보험 조합의 누적 적립금은 마치 해당 기업의 사금고인 양 간주되었다. 수많은 직장의료보험 조합의 조합장과 간부들, 그리고 기업들이 건강보험 통합을 결사적으로 반대했던 이면에는 이런 이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건강보험 통합으로 수백 명에 이르던 조합장은 1명의 공단 이사장으로, 수천 명의 임원들은 십수명의 임원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정부와 국민의 실질적인 감시와 감독이 가능하게 되었다.
국민의 사회 연대 의식을 제고한 점도 중요한 성과이다. 건강보험 통합으로 의료급여 수급권자를 제외한 모든 국민은 하나의 보험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이 가지는 사회적, 정치적 의미는 작지 않다. 과거 조합 방식에서는 사회 연대의 범위가 특정 지역과 직장에 국한되었지만, 통합 건강보험체계에서는 사회 연대의 범위가 전 지역과 전 국민을 아우르게 된 것이다. 통합 건강보험체계에 이르러서야, 국민의 건강권을 국가가 책임진다는 헌법 정신이 온전히 구현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된 것이다.
마지막 성과는 시장주의 세력의 의료민영화 공세에 맞설 수 있는 버팀목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과거의 조합 방식을 유지했었다면, 시장주의 세력의 의료민영화 공세에 맞서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시범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의료보험조합 몇 개를 떼어내서 미국식 의료체계를 적용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예컨대, 삼성과 현대그룹의 직장의료보험조합과 서울삼성병원, 서울아산병원을 직접 연결하는 네트워킹이 진즉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10여년 전의 건강보험 통합이 지금의 의료민영화 정책을 가로막는 중요한 버팀목이 된 셈이다.
2. 건강보험 통합을 가능하게 했던 조건
일각에서는 사회보험형 의료보장제도의 원류인 대륙 유럽 국가들은 다보험자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어서, 한국과 대만의 단일 보험자 체계는 매우 예외적이고 정상적이지 않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유럽 국가들과 한국·대만 건강보험의 역사성에 대한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주장이다. 유럽 국가들의 건강보험은 이미 100여 년 이상의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근대적 사회보험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중세 길드의 공제조합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수백년의 역사성을 가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에 사회보험형 의료보장제도를 도입한 유럽 국가들은 중세 시대부터 지속되었던 자발적 공제조합을 국가 제도화하는 방식으로 공적 의료보장제도를 구축했다. 따라서 다보험자 체계는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그간 유럽에서도 다보험자 체계의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지만, 100여 년 이상에 걸쳐 형성된 경로 의존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소규모 조합을 크게 묶는 수준의 개혁에 머무르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과 대만은 건강보험의 역사가 짧아서 고착화된 경로 의존성이 없었다. 따라서 비교적 수월하게 단일 보험자 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국제적으로도 한국과 대만은 유럽 국가들의 사회보험형 의료보장제도와는 구분되는 유형, 국가보험체계로 인정받고 있다.
건강보험 통합은 시민사회운동을 통해 성취한 개혁이었다. 건강보험 통합 과정은 진보적 시민사회운동과 개혁적 민주 정치세력이 연대해서 제도 개혁을 달성한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1994년 ‘의료보험통합일원화 및 보험적용확대를 위한 범국민연대회의(약칭, 의보연대회의)’가 결성되었다. 의보연대회의는 노동, 농민, 시민, 보건의료 등 총 77개 단체와 6개 지역연대회의를 포괄하는 대규모 연대조직이었다. 전경련을 비롯한 경제단체, 한국노총, 보수언론은 건강보험 통합을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의보연대회의는 당시 시민사회운동의 역량을 총 집중하면서, 건강보험 통합 운동을 지속해 왔다. 그리고 건강보험 통합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김대중 후보가 1997년 12월 대통령 선거에 당선되면서, 건강보험 통합은 급물살을 타며 현실화되었다.
건강보험 통합은 국민의 광범위한 동의와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1989년 전국민건강보험이 달성되었지만, 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은 국민의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다. 조합 간의 재정 격차로 인한 보험료 부담의 불형평성도 심각한 상황이었다. 건강보험 통합에 대한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는 건강보험 통합을 통해 이 같은 건강보험의 고질적 문제들을 해소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건강보험 통합은 시민사회운동의 성과인 동시에 국민적 합의의 산물이기도 하다.
3. 1999년과 2009년의 위헌 소송
① 1999년 위헌 소송의 쟁점과 결론
1999년 직장의료보험조합 소속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건강보험 통합이 헌법에 규정된 평등권과 재산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2000년 6월 다음과 같이 판결을 내렸다.
“법상의 보험료 부과체계는 형식적으로는 소득을 단일기준으로 하는 부과체계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직장가입자의 경우에는 파악된 실소득에 대하여, 지역가입자의 경우에는 추정소득에 대하여 보험료를 부과하는 이원적인 부과체계인 것이다. 따라서 법 제62조 제3항, 제4항, 제63조, 제64조는 지역가입자와 직장가입자의 본질적인 차이를 고려하여 그에 상응하게 달리 규정한 법률조항으로서 그 자체로서는 평등의 원칙 관점에서 헌법적으로 하자가 없다”
“소득형태와 소득 파악률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이질적인 직장, 지역가입자 집단의 통합에도 불구하고, 법은 지역가입자의 소득파악 또는 객관적인 소득 추정을 위하여 1년 반의 유예기간을 두고 있고, 한편으로는 재정이 통합되는 2002.1.1. 이후에도 지역가입자의 소득이 합리적이고 신뢰할 만한 방안을 통하여 파악 또는 추정될 때까지,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 모두의 이익을 함께 적절하게 고려하는 재정운영위원회의 민주적인 운영을 통하여 직장, 지역가입자 간의 보험료 분담률을 조정할 수 있고, 이로써 직장, 지역가입자 간의 부담의 평등을 보장할 수 있는 법적 제도장치(법 제31조)를 두고 있으므로,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재정통합을 규정하는 법 제33조 제2항은 헌법에 위반하지 아니한다.”
즉, 지역, 직장가입자 간의 평등한 부담을 위한 정책적 노력과 제도 개선의 필요성은 인정하되, 건강보험 통합 자체는 헌법을 위배하지 않는다는 것이 1999년 헌법 소원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었다.
② 2009년 위헌 소송의 경과와 쟁점
2009년 대한의사협회 경만호 회장 외 6명은 1999년의 헌법 소원과 동일한 내용으로 건강보험 재정통합이 위헌이라는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 이들의 심판 청구서에 명시된 위헌 청구 소송의 핵심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2003년 재정통합 이후에도 지역가입자의 소득 파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직장가입자가 과도하게 보험료를 부담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직장가입자의 재산권이 침해당하고 있다. (2) 2000년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가입자 대표들로 구성된 재정운영위원회를 통한 지역, 직장가입자의 합리적인 보험료 분담을 전제한 것이다. 그러나 2002년 국민건강보험재정건전화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보험료 조정 권한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로 이관되었다. 건정심은 재정운영위원회와는 달리, 가입자, 공급자, 공익 대표로 구성된 조직으로 지역, 직장가입자의 합리적인 보험료 조정이 불가능하다. 이는 2000년 헌법재판소의 합헌 판결 전제조건을 위배한 것이다. 청구인들은 이 같은 근거로 건강보험 재정통합은 위헌이며, 지역, 직장가입자에게 단일한 보험료 부과체계를 적용하지 못한다면, 건강보험을 지역과 직장으로 분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청구인 측의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일 뿐 아니라 사회보장제도의 근본 원리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다.
첫째, 청구인 측은 지역가입자보다 직장가입자의 월 평균 건강보험료가 더 많다는 사실을 들어 직장가입자의 재산권이 침해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공적 사회보장제도에서는 어떤 계층이나 집단이 보험료를 더 부담하고 덜 부담하는 것 자체는 전혀 문제가 아니다. 어떤 계층은 자신이 부담한 보험료보다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고,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그리고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공적 사회보장제도의 ‘사회적 연대’가 구현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보험료 액수의 과소가 아니라, 자신의 경제적 능력에 상응하는 부담을 하고 있는지 여부이다. 그러나 이런 측면에서 보면, 현행의 부담체계는 오히려 지역가입자에게 불리한 상황이다. 2009년 기준으로 월 평균 가구소득에서 건강보험료가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보면, 직장가입자는 월 가구 소득의 1.8%를 건강보험료로 부담하는데 반해, 지역가입자는 2.2%를 부담하고 있다.
직장가입자는 근로소득(보수월액)의 일정 퍼센트를 건강보험료로 납부하고 있다(‘11년 현재, 직장가입자의 건강보험료율은 근로소득의 5.64%인데, 이것의 절반인 2.82%를 본인이 부담). 근로소득 이외의 임대소득, 사업소득, 금융소득에 대해서는 건강보험료가 부과되지 않고 있다. 이에 반해 지역가입자는 종합소득과 재산·자동차·성, 연령 등에 의한 추정소득(평가소득)을 기준으로 건강보험료가 부과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 동안 직장가입자가 자신의 경제적 능력에 상응하는 건강보험료를 부담하지 않고 있다는 문제제기가 지속되었으며, 이에 따라 최근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한 목소리로 종합소득 기준으로 직장가입자의 건강보험료를 산정하고,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분류된 고소득자를 지역가입자로 전환하여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며, 지역가입자의 전월세 세대, 자동차 등에 대한 보험료 경감 대책을 연이어 내놓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직장가입자가 건강보험료 부담에서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는 청구인들의 주장은 우리의 현실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둘째, 재정운영위원회에 부여되었던 보험료 조정 권한을 건정심으로 이관했기 때문에 2000년 헌법재판소의 합헌 판결 전제조건을 위배한 것이라는 청구인 측의 주장은 형식 논리에 얽매인 그야말로 억지 주장이다. 보험료 권한 조정이 건정심으로 이관된 이유는 2000년 의약분업으로 건강보험재정이 위기를 맞게 되면서, 건강보험재정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이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건강보험 수입(보험료)과 건강보험 지출(수가와 보장성)을 건정심이라는 한 틀 내에서 심의 조정하게 된 것이다. 건정심은 가입자, 공급자, 공익대표가 동수로 참여한다. 그리고 가입자 대표로는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를 대표하는 단체가 추천하는 위원이 각각 4명씩 동수로 참여한다. 공급자 단체와 공익 대표가 참여한다고 해서, 지역가입자 혹은 직장가입자 어느 일방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지금껏 그런 결정이 내려진 적도 없다. 그리고 정히 이 부분이 문제가 된다면, 법 개정을 통해 보험료 조정 권한을 다시 재정운영위원회로 이관하면 끝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안을 빌미로 헌법 소원까지 제기한 청구인들의 의도가 의심스럽다.
의료공급자단체의 대표격인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건강보험 재정통합은 위헌이며, 단일 부과체계를 적용할 수 없다면 건강보험을 직장과 지역으로 분할해야 한다고 헌법 소원을 제기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바람직한 발전을 위한 우국충정에서 비롯된 것일까? 직장가입자에 대한 한없는 애정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들이 건강보험을 분할하려는 이유는 건강보험과의 협상력에서 우위를 확보하려는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이다. 이들은 단일 보험자 체계가 해체되고 다보험자 체계로 전환되면, 건강보험수가를 비롯한 각종 협상과정에서 의료공급자 단체의 협상력이 훨씬 강화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자신들의 정치적, 경제적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해 국민건강의 보루인 국민건강보험의 근간을 무너트리려는 것이 이번 헌법 소원 사건의 본질이다.
4. 건강보험 재정통합 위헌 소송의 전망
일반적인 상식과 객관적인 사실 관계에 비추어볼 때, 건강보험 재정통합이 ‘위헌’으로 판결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직장가입자가 부당하게 건강보험료를 더 부담하고 있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며, 그간 자영업자의 소득파악률도 신용카드 사용 확대와 현금영수증 제도 도입 등에 힘입어 대폭 향상되었기 때문이다(2000년 30%대에서 2010년 65% 수준으로 향상된 것으로 추정).
그러나 지난 11월, 대표적인 건강보험 분리주의자인 김종대 전 보건복지부 기획관리실장이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으로 임명되면서, 위헌 소송에 대한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다. 신임 김종대 이사장은 취임 일성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쏟아냈다.
“보험가입자에 대하여 소득을 기준으로 한 공평한 단일 보험료부과기준을 마련한다는 것이 직장과 지역의료보험 통합의 주된 이유가 아니었습니까? 지난 10년간 5차례에 걸쳐 막대한 연구비를 투입하여 연구용역까지 수행하였지만 여전히 2000년 6월의 헌재가 합헌이라고 허용해준 전제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가입자에 대한 보험료의 부과기준과 조정이 헌법재판소가 명시한대로 보험자인 건보공단에 설치된 가입자의 대의기구(재정운영위원회)에서 민주적 절차로 결정되어지고 있습니까? 이 문제가 2009년 또 다시 헌재에 위헌 소청이 제기되었는데 우리 건보공단에서는 세 가지의 서로 다른 보험료 부과기준을 사용하여 가입자에게 보험료를 부담시키면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 많이 노력해왔다는 식의 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하였다니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 아닙니까?”(2011년 11월 15일, 신임 김종대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의 취임사 중 일부)
그리고 김종대 이사장의 취임사는 지난 12월 8일 헌법재판소의 공술인 증언 과정에서 건강보험 재정통합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청구인 측의 증거자료로 제출되었다. 한 쪽에서 건강보험 재정통합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를 방어해야 할 이해관계 기관의 수장이 청구인의 주장대로 건강보험 재정통합은 ‘위헌’이라고 맞장구를 치는 웃지못할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만약, 건강보험 재정통합이 ‘위헌’으로 판결나서, 건강보험이 직장과 지역으로 분할된다면, 그 결과는 파국적이다. 직장건강보험과 지역건강보험으로 분할하는 것은 사실상 건강보험을 저소득층 건강보험과 고소득층 건강보험, 노인 건강보험과 비노인 건강보험, 환자 건강보험과 건강한 사람의 건강보험으로 분할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직장가입자는 지역가입자에 비해 소득수준이 높고, 노인 인구 비율이 낮으며, 건강상태도 더 양호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득수준, 연령대, 건강수준에 따라 건강보험이 분할된다면, 건강보험이 가지는 ‘사회적 연대’ 기능은 심각하게 훼손되고, 건강보험은 민간의료보험과 다를 바 없는 상태로 전락하게 된다. 공적 사회보장제도가 계층과 세대를 통합하기는커녕, 이들을 분할하고, 서로 갈등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생애주기적 관점에서 볼 때,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엄격한 자격 구분 자체가 무의미하다. 이는 전국민적 사회연대성의 측면에서 뿐만이 아니라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지금의 경제사회 구조 하에서 가입자의 자격 변동이 일상화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0년 한 해 동안 총 270만 세대가 직장에서 지역으로 혹은 지역에서 직장으로 자격이 변동되었다.
더군다나, 현재의 지역가입자는 과거의 지역가입자보다 사회경제적 특성이 훨씬 취약한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건강보험료 부과의 형평성을 높이고, 단일 기준의 보험료 부과를 위해 소득파악률을 지속적으로 제고하는 동시에 지역가입자로 분류되었던 1인 이상의 근로소득자가 있는 모든 사업장 종사자를 2003년부터 직장가입자로 전환하였다. 이로 인해 2000년 초반에 전체 국민의 50%를 차지하던 지역가입자의 수가 2011년 현재 32% 수준으로 감소했다. 특히, 지역가입자 중에서도 고소득 자영업자(의사, 변호사 등), 종업원을 고용한 규모 있는 자영업자들이 대거 직장가입자로 전환되었다. 지역가입자 중에서도 그나마 소득 수준이 높고, 소득이 안정적이어서 보험료를 많이 낼 수 있었던 집단이 대거 직장가입자로 옮겨진 것이다. 그리고 현재 지역가입자의 주된 인적 구성은 종업원 없이 가족노동에 의존하는 영세자영업자, 근로소득이나 일반적인 사업소득이 없는 은퇴자, 고령자, 4대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근로자, 농어민 등으로 변화되었다. 청구인 측의 주장은 이들을 따로 떼어내서 별도의 게토화된 건강보험을 만들어서 운영하라는 것이다. 이들에게 과연 국민건강을 위한 최소한의 애정이라도 있는 것인가?
건강보험이 직장과 지역으로 분할되면, 그나마 취약한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과거 조합방식으로 건강보험이 운영될 당시는 재정이 열악한 조합의 재정 상황에 맞추어 건강보험 급여 수준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이 ‘진료비 할인제도’라는 오명을 상당 기간 떼어내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건강보험이 통합된 이후에야, 개별 조합의 재정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청구인 측의 주장대로 건강보험이 직장과 지역으로 분할되면, 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은 재정이 열악한 지역건강보험의 재정 상황에 맞추어 하향 조정될 수밖에 없다. 지역건강보험 가입자는 말할 것도 없고, 직장건강보험 가입자조차도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5. 건강보험 개혁의 과제
공적 의료보장제도인 국민건강보험은 민간보험과는 운영 원리에 큰 차이가 있다. 민간보험은 ‘보험 시장에서 개인의 위험을 개인의 경제적 능력으로 대비하는 사적 제도’라면, 국민건강보험은 ‘국가가 사회구성원 모두의 위험을 사회구성원의 공동 부담과 상호 협력으로 보편주의와 사회연대성의 원칙으로 대비하는 제도’이다.
여기서 ‘사회연대성’이란 계층간 연대, 세대간 연대를 포함하는 것으로 사회구성원 모두가 한 배를 타고 있다는 의식을 보편적으로 제도화한 것이다. 이는 강자가 약자에게 베푸는 일방적인 시혜와는 구분되는 것으로 사회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합당한 부담을 하는 ‘보편적 부담’과 함께, 예기치 않은 위험에 직면했을 때 필요한 혜택을 보편적으로 누리는 ‘보편적 급여’를 법률의 형태로 제도화한 것이다. 즉, 국민건강보험과 같은 의료보장제도를 통해 소득수준, 연령과 성, 거주지역, 건강상태 등이 상이한 국민들이 하나의 제도적 풀(pool)을 형성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적 연대’를 최대로 구현하는 구체적 방안이 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전 국민을 하나의 국민건강보험(단일보험자)으로 포괄하는 것은 ‘사회적 연대’를 극대화한 것으로, 이는 개별 직장 단위로 위험을 분산하는 협소한 회사별 조합주의 의료보험제도 등에 비해 사회적 연대의 범위를 전체 국민으로 넓힌 것으로, 이는 전 국민적 연대(National solidarity)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은 ‘전 국민적 연대’의 틀을 갖추고 있지만, 취약한 보장성 수준이라는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 OECD 조사결과에 따르면, OECD 국가의 평균 입원진료비 보장률은 90% 수준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60%대 중반 수준에 불과하다. 보건복지부 조사결과에 따르면, 의료비는 가계 파탄의 3대 원인 중의 하나이다. 이처럼 취약한 보장성을 강화하는 것은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이 당면한 시대적 과제이다. 금번 건강보험 재정통합 위헌 소송은 국민건강권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무책임한 발상에서 비롯된 시대착오적인 행위로서, 전 국민의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2012년 1월 중으로 금번 건강보험 재정통합 위헌 소송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결이 나올 예정이다. 만약, 건강보험 재정통합이 ‘위헌’으로 판결난다면, 국민건강보험은 되돌릴 수 없는 파국적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런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시민사회가 잠시도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이와 더불어,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할 수 있도록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건강보험의 획기적인 보장성 강화가 금번 위헌 소송과 같은 시대착오적인 움직임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대응이 될 것이다. <끝>
월간 <복지동향> 2011년 12월호(제1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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