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현│홈리스행동 집행위원장
올해는 ‘노숙인 복지’가 시작된 지 만 14년이 되는 해이다. 그동안 적잖은 시간을 보내며 노숙인 복지는 분명 개선행보를 보인 것은 사실이다. 반면, 단속과 배제의 구시대적 통제책도 반복적으로 펼쳐졌음을 부인할 수 없다. 국제행사시 지방으로 집단연수를 보내려 한다던지, 외국인 통행이 많은 곳을 중심으로 노숙을 금지시키는 따위의 비가시화 정책이 그것이다. 비단 이런 구분이 아니더라도 노숙인 복지 자체적으로 지원과 통제라는 두 가지의 목적이 교묘하게 버무러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2012년은 노숙인복지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해가 될 것이다. 작년에 제정된 ‘노숙인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노숙인지원법)’ 하위법령이 만들어지고 시행될 계획이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기대라면 그간 주먹구구식으로, 행정관료의 입장에 따라 좌우되는 무원칙한 지원을 탈피하여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지원이 가능할 것이라는 점이다. 반면, 법률 자체적으로 보더라도 노숙인에 대한 보장성이 취약하고, 도리어 통제와 침해를 정당화할 독소조항들이 즐비하다는 점에서 적잖은 우려 또한 있다.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으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정부와 복지시설들의 행보에 여느 때보다 감시의 눈을 날카롭게 해야 할 시기라는 것이다. 전술했듯, 노숙인 복지는 이제 법률로서 지원이 시작되는 걸음마 단계이기에 개선해야 할 점은 부지기수겠으나, 긴급을 요하거나 근본적이라고 생각되는 몇 가지를 꼽아보려 한다.
서울역 노숙인 퇴거조치, 이제는 철회해야
전(前) 철도공사 사장은 국정감사장에 나와 “지금까지 사회가 노숙인을 서울역에 버린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노숙인 보호는 정부와 지자체 업무로 철도공사와 무관하다는 입장을 그간 수차례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서울역은 노숙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애석하게도 시민적 공감대를 얻는 듯하다. 그러나 동시에 철도공사는 서울역이 철도공사의 “영업장”이라 주장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몇 년 새 철도역사는 자동차 전시 판매장, 대기업의 홍보 부스, 각종 상점, 대학 홍보관 등이 입주해 상업자본의 전시관으로 변모하고 있다. 비단 철도역사는 철도공사 뿐 아니라 상업자본의 목 좋은 영업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철도공사의 노숙인 퇴거조치의 이유다. 겉으로는 시민의 안전과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목적이라 하나, 실제로는 철도공사의 직․간접적 이윤 추구의 걸림돌인 노숙인을 청소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철도공사는 조작적 설문조사로 노숙인에 대한 악의적 여론을 만들고, 사건사고들을 침소봉대해 노숙인구 전체를 대상으로 일반화시켜 노숙인에 대한 혐오를 증폭하는 것이다.
혹자는 서울역 노숙인들이 들어갈 대체공간을 만들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한다. 서울시의 입장이 대체로 그러한데, 지하도의 응급대피소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세계적으로 주요 철도역사는 노숙인 뿐 아닌 다양한 위기계층의 유입로가 된 지 오래다. 철도역사는 교통과 정보, 최소한의 편의시설의 집합지가 되기에, 즉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구비하기에 위기계층의 유입이 상시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단지 현재의 노숙인구만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숙인들을 일방적으로 내쫓는 것은 사회적 충격을 안고 노숙상태에 처한 이들에 대한 2차 가해로 심리, 육체적인 재 손상을 유발하게 된다. 물론, 서울역이 줄곧 이들을 껴안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야를 넓혀서 철도역사가 노숙인 등 위기계층이 복지 지원체계와 만나는 공간으로 기능하게 하자는 것이다. 서울역에 있는 노숙인들에게 철도공사와 지자체가 협력하여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노숙의 장기화를 막게 하는 것은 공기업으로서 부적절한 일도, 못할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작년 8~9월 진행한 국가인권위 조사에 따르면 서울역 거주 노숙인의 95%가 “서울역을 떠나고 싶다”라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추방이 아닌 퇴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울역 퇴거조치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노숙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퇴보시킨다는 데 있다. 서울역 퇴거 조치는 노숙인에 대한 사회적 혐오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그 파장을 제일 먼저 맞은 것은 바로 서울시다. 서울시는 서울역 퇴거 조치 후 ‘자유카페’라는 노숙인 이용시설을 만들기로 했고, 신속히 건물을 임대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은 여전히 미완성인데, 지역주민들의 거센 반발 때문이다. 노숙인들을 우리 동네에 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노숙인 쉼터나 그룹홈 입주를 반대하는 지역 토호세력들의 집단행동, 거리 노숙인들에 대한 묻지마식 집단린치 사건들도 최근 빈번하다. 노숙인에 대한 이러한 인식 악화는 노숙인 인권의 심각한 침해는 물론, 노숙인 복지의 개선에 있어 정부 차원에서도 극복할 수 없는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이렇듯 서울역 노숙인 퇴거조치는 단지 서울역이라는 노숙인들의 ‘거처’에 대한 문제만이 아닌 사회가 빈곤을 대하는 방식, 인권적 가치의 보편적 적용에 대한 명백한 도전으로 시급히 철회되어야 한다.
거리에서 주거로! 시혜가 아닌 권리로 보장하자
노숙인들에게 있어 명백한 공통점을 하나 꼽자면 ‘주거지’가 없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노숙인들은 아무리 가난해도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지 못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주거를 기반으로 급여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또한 주소지에 살지 않는다는 것이 행정을 통해 드러나면 주민등록이 말소된다. 철저하게 법적인 무권리상태, 사회보장의 사각에 처하는 것이다. 따라서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한 욕구조사 결과들을 보면 예외 없이 주거지원이 1순위를 이룬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노숙인에 대한 주거지원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2006년부터 노숙인 복지기관들이 민간 모금기구에 의존하여 ‘임시주거비 지원’이란 이름으로, 거리에서 쪽방이나 고시원으로 입주하도록 돕는 사업을 진행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사업은 민간 펀드에 의존하는 한계로 인해 매해 존폐를 걱정해야 했고, 올 해 역시 시행여부가 불투명한 상태다. 반면, 위 사업을 통해 지원을 받은 이의 80.5%는 노숙에서 벗어난 것으로 나타나 여타 노숙인 복지 정책에 비교할 때, 압도적인 효율을 보이고 있다.
물론, 작년에 제정된 노숙인 지원법에 ‘임시주거지원’이 명문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올해 시행계획은 물론 예산도 편성되지 않아 법에 따른 사업 집행은 현재 오리무중이다. 이제 더 이상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노숙인 복지 주체인 보건복지부는 더 이상 민간 모금사업에 의존하는 방임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최소한 하위법령이 시행될 6월 이후에는 민간 사업과 협력하여 노숙인에 대한 임시주거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더불어, 지금까지 한정된 재원으로 인해 극도의 선별적 지원만이 가능했던 한계를 넘어, 주거를 박탈당한 노숙인이면 누구나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신분도용 범죄, 예방과 해결책을 만들자
노숙인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은 기존의 사회복지제도로 해결될 수 없는 것들이 중첩된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신분도용, 신용사기와 같은 법률적 문제다. 이는 노숙의 원인사건이기보다는 노숙으로 인한 문제인 경우가 많은데, 노숙인들을 노리는 명의도용, 신용사기 집단에 의한 범죄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이런 집단들은 노숙이라는 극한의 빈곤상황을 악용해 금전이나 취업, 숙소제공을 미끼로 개인정보를 취득, 이를 활용하여 신용과 대출사기를 일으킨다. 이들에게 있어 노숙인들이 재기가 어렵고 사회적 지지망이 파탄 났다는 점에서 적합한 영업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범죄에 연루되면 상상불허의 채무와 세금 체납을 겪게 돼, 탈 노숙은 물론 철저하게 사회․경제적인 고립상태에서 평생을 보내야 하는 처지가 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예방책이나 해결책은 전무하다.
물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용공여와 금융정책에 대한 손질이 보다 근원적일 것이다. 그러나 노숙인들이 이런 범죄의 공공연한 주 표적이 되는 만큼, 우선적으로 이들에 대한 신분도용, 신용사기 예방과 해결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로서는 지자체 차원에서 법률 복지 개념을 차용한 기구를 만들고, 이를 통해 피해자에 대한 상담과 지원을 실시하는 것이 주효하리라 판단된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명의도용에 취약한 해당 법률과 제도를 개선할 수 있는 내용을 정리하는 것도 필요하다.
거칠게나마 노숙인의 현실에 비춰 개선해야 할 제도들을 대략 언급하였다. 그러나 제도 개선이 능사는 아니다. 당면 문제로서 제도에 천착하나, 이를 발판으로 이뤄야 할 목표는 분명히 제도의 범위를 능가한다. 그동안 노숙이라는 현상에 녹아있는 한국사회 구조의 병리가 분석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발견에 그칠 뿐, 이를 과제로 하는 실천계획은 전혀 시도되지도 발언되지도 않았다. 물론 이는 노숙인 복지의 영역을 넘어서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볼 때 복지에 관심한다는 것이 굳이 사후조치, 외과적 시술로 귀결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올 한 해 노숙인 복지에 대한 마지막 바람이 있다. 노숙인 복지 영역이 관찰자나 종사자만 늘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노숙 문제의 이면을 노숙 대중들과 함께 드러내는 세력이 움텄으면 하는 것이다.
월간 <복지동향> 2012년 01월호(제1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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