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인하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보몰은 현재 미국 GDP의 거의 90퍼센트가 1870년 이후 진행된 인류공통의 지식과 기술의 축적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경험적으로 논증했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부를 창출하는데 있어 자본과 노동의 기여는 과거로부터 직접 된 인류 공통의 역사적 유산과 비교하면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렇듯 현재의 부가 자본과 노동에 의한 것이 아닌 인류 공통의 역사적 유산이라면, 그 부를 향유할 자격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어찌 보면 “더 이상 슈퍼리치들을 감싸지 마라”는 워런 버핏의 뉴욕타임즈 사설 또한 인류의 유산을 부당하게 독점하고 있는 세계최고 부자의 양심선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비판의 출발은 노동소득에 대한 세율이 금융소득에 대한 세율보다 높다는 것이었지만, 논란은 이내 부자들에 대한 증세 요구로 확대되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이명박 정부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점점 더 확대되고 있다. 민주당조차 주저하던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을 부자정당이라고 비난받는 한나라당의 국회의원이 나서서 도입을 주장하는 역설이 연출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면피용 ‘버핏세’가 도입되었다.
형식적 도입에도 불구하고 버핏세에 대한 반대도 만만치 않다. 반대의 핵심은 부자에게 높은 세금을 물리면 부자들이 투자 의욕을 잃어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세금이 낮은 국가로 자본이 유출되어 한국경제를 황폐화시킬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반대주장과 달리 버핏세는 경제성장의 성과를 보다 균등하게 배분함으로써 불평등을 완화하고, 한국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정부의 재정능력을 배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30여 년간 지속된 신자유주의 지배체제하에서 이루어진 부자에 대한 세금인하는 자본주의의 경제적 지속가능성은 물론 사회적 지속가능성도 보장하지 못했다. 부자에 대한 세율은 지속적으로 낮아졌지만 좋은 일자리는 계속 감소했고, 불평등은 확대되고, 빈곤은 심화되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가 시행했던 부자를 위한 감세정책은 좋은 일자리를 늘리지도, 시민들의 생활을 개선하지도 못했다. 오히려 불평등과 양극화를 확대시켰을 뿐이다. 백번 양보해 설령 부자에 대한 낮은 세금이 경제성장을 촉진시킨다고 해도 이는 착시현상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은 국민의 구매력 수준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고 불평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국민의 구매력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한국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국민의 낮은 구매력으로 인한 취약한 내수시장이다.
부자에 대한 세금을 낮추지 않으면 자본이 해외로 유출된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일부의 우려와 달리 세율 때문에 자본이 이동하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세율은 자본이 투자지역을 결정하는 다양한 요인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본의 투자 국가 선정은 낮은 세율보다는 투자 대상 국가의 인적자본과 사회경제적 인프라 수준과 더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더욱이 버핏세는 부자들의 탐욕에 대한 단순한 징벌적 세금이 아니다. 버핏세는 1970년 후반부터 시작된 불평등한 신자유주의 조세체계에 대한 근본적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조세체계는 자본의 세계화와 경제성장을 이유로 부자들에 대한 대규모 세금인하와 조세지출을 정당화하는 대신 평범한 시민들의 소득과 소비에 대한 세금을 높이고, 국가부채를 전례 없는 수준으로 증가시켰다. 결국 신자유주의의 부자에 대한 감세정책은 불평등, 빈곤, 국가부채를 급격히 증가시키면서 자본주의 체제를 심각한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버핏세는 이러한 신자유주의 조세체계의 근본적 개혁, 더 나아가 시장경제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버핏세로 촉발된 부자들에 대한 증세는 사회지출에 대한 국가의 재정능력을 확대시켜 경제적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지속가능성의 선순환 관계를 복원시킬 것이다. 더불어 버핏세는 지난 1970년대 말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폐기되었던 “능력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공정한 조세원칙을 복원시키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무엇을 할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 또한 필요하다. 우리는 기업과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는다고 현재 한국사회가 직면한 불평등과 빈곤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한다. 부자증세를 통해 우리가 확보할 수 있는 재원은 대략 15조 정도에 불과하지만, 중간수준의 복지국가를 지향하더라도 우리가 필요한 재원은 110조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버핏세는 우리 모두가 자신이 가진 능력에 따라 우리사회에 어떻게 기여할지를 묻는 계기가 되어야한다.
마지막으로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한국의 부자들은 왜 세계적 부호인 워런 버핏이 자청해서 부유세 도입을 주장하는지, 한국사회에서 자신들의 부가 어떻게 만들어 졌고 지속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필요하다. 부자들이여! 계속 맛있는 달걀을 먹고 싶은가? 그렇다면 한국사회가 건강해야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
월간 <복지동향> 2012년 01월호(제1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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