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2 2012-03-15   1877

[동향4] 복지국가 ‘당위성’ 넘어 복지국가 ‘건설 방안’ 논의로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발족에 부쳐

 

오건호|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

 

 

1. 이제는 복지국가를 만드는 ‘방안’을 이야기하자!

10년 전 우리는 한 신용카드회사로부터 “여러분~ 모두 부자 되세요~”라는 신년 인사를 받았다. 그렇게 지금까지 우리는 부자가 되기 위해 경쟁했고, 이제 그것이 소수의 승자를 위해 다수가 쓰러져야 하는 길임을 생활에서 절감하고 있다.

 

의회 권력과 정부권력이 동시에 교체되는 역사적인 2012년이다. 올해는 너무 오래 꿈을 상실하고 살아온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전과 달리 희망과 함께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반세기 역사에서 처음으로 복지국가 꿈이 피어오르고 있다. 과거에는 ‘복지’를 이야기하면 ‘비효율’이나 ‘복지병’ 딱지가 붙곤 했는데,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이 누려야 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만큼 우리 서민들이 오랫동안 민생에 허덕여 왔고,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고 있다. 더 이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 중에서 꼴찌를 다투는 복지후진국에 살 수는 없다.

 

올해 우리 앞에 놓여진 핵심 과제는 무엇일까? 이제는 보편복지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수준을 넘어 ‘어떻게’ 복지국가를 만들 것인지 방안을 이야기해야 한다. 보편복지 담론을 정착시키는 일이 1단계 복지국가운동의 과제였다면, 이제는 복지국가 구현을 위한 실질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2단계 복지국가 운동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복지국가는 막연한 기대만으로 건설되지 않는다. 지난 반세기 이상 대한민국을 억눌러왔던 수많은 장벽들을 넘어서야 한다. 첫째, 복지재정을 확충해야 한다. 낭비되는 재정지출을 대폭 절감하고 능력에 따라 세금을 내는 연대재정을 구축해야 한다. 둘째, 복지서비스 인프라를 공공화해야 한다. 보육, 의료, 요양, 주거 등은 공공이 운영해야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 셋째, 일자리 안정화도 시급하다. 복지국가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 지불능력 강화, 일자리 나누기 등 노동시장이 건강해야 한다. 넷째, 복지국가를 만들어가는 대중적 복지주체들이 커가야 한다. 보편복지를 바라는 민심들이 세력으로 형성돼야 한다.

 

2. 대한민국 복지국가 경로의 특수성: 연성 권력자원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 넘어야 할 장벽 중에서, 특히 대중적 복지주체를 꾸리는 일은 모든 과제를 풀어가는 공통의 열쇠이다. 진정 복지국가를 원한다면, 복지국가를 건설하고 운영할 세력들의 동맹, 즉 복지국가 동맹이 서야 한다. 서구의 경험을 보면 진보정당, 노동조합 등이 복지국가 동맹의 주요 주체였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선 이러한 전통적인 복지주체가 취약하다. 국내에서 복지국가론을 연구한 학자일수록 대한민국의 복지국가 진입에 회의를 표한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복지국가동맹이 형성될 가능성이 충분치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대한민국 민심이 지닌 역동성을 믿는다. 나는 서구 복지국가들이 진보정당, 노동조합 등 전통적인 ‘경성 권력자원’에 토대를 두고 건설됐다면, 향후 대한민국의 복지국가 경로에서는 다른 형태의 자원들, 즉 일종의 ‘연성 권력자’원이 힘을 발휘하리라 기대한다. 서울과학기술대 김영순 교수에 따르면, 연성 권력자원은 다양한 시민사회 세력들의 제휴 형성능력, 대중 설득 이슈 프레이밍 등을 통해 풀뿌리 민심의 에너지를 응집시키는 집단행동, 지식기반 능력을 의미한다. 지난 2008년 촛불, 무상급식 운동,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소셜 네트워크(SNS) 등을 보면 근래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힘은 경성 권력자원보다 오히려 연성 권력자원에서 나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대한민국 복지국가운동에서도 전통적인 경성 권력자원이 부족해도 연성 권력자원이 주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또한 이러한 계기를 통해서 경성 권력자원도 자극을 받아 기기재를 펼 수 있으리라는 점을 시사한다. 이에 정치권의 복지국가 논의의 방향을 제시하고, 실제 복지국가를 위한 한국형 연성 권력자원의 잠재력을 확장하는 복지국가운동을 주목하게 된다. 바로 보편복지를 바라는 풀뿌리 시민, 노동자들이 직접 주체로 나서는 복지국가 주권운동이 그것이다.

 

이에 지난 2월 29일 풀뿌리 복지국가 주권운동을 표방하는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이하 내만복)가 발족했다. 약 160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한 내만복은 기존 사회단체들의 통상적인 연대기구가 아니라 복지국가운동에 스스로 참여하는 시민, 노동자들의 개인 네트워크이다. 남찬섭(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오건호(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 최창우(반값등록금실현을위한학부모모임 총무) 3인이 공동운영위원장을 맡고, 각 주제 분야를 책임진 팀장들이 운영위원으로 일하며, 귀농 농부, 주부, 사회복지사, 회사원, 의사, 변호사 등 다양한 시민들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3. 내만복의 3대 사업: 세금 정의, 복지 체험, 능력별 증세

올해 대선에서 복지국가 후보가 승리하는 일이 대한민국 복지 발전에 큰 계기가 되겠지만, 집권 이후 복지 프로그램을 실제로 집행하려면 단순히 득표수의 우위를 넘어 대중적 복지운동을 밑거름으로 하여 당선돼야 한다. 그래야 복지국가 공약에 숨결이 부여되고, 반복지 세력의 저항도 넘어설 수 있다.

 

내만복은 시민과 노동자들이 단순히 한 표를 행사하는 투표자의 지위를 넘어 복지국가의 관람자(observer)에서 행위자(actor)로, 즉 복지국가 운동의 주체로 나서게 하는 실천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이에 풀뿌리 시민들이 실제 관심을 가지고 풀고자 하는 사안들을 활동 과제로 삼았다. 다음 세 가지 사업이 진행된다.

 

내가 낸 세금을 정의롭게 사용하자

첫째, ‘세금 정의 세우기’ 활동을 수행한다. 복지국가는 막대한 복지재정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아무리 복지가 바람직하더라도 재정지출에 대한 불신이 완화되지 않는 한 재정 확충 주장이 힘을 얻기 어렵다. 자신이 낸 세금이 제대로 쓰일 수 있다는 확신을 국민들이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이에 첫 단추는 세금 징수, 재정지출 분야에서 정의를 세우는 일이다.

 

특히 이 활동은 특정 사례를 폭로하는 일에 멈추지 말아야 한다. 기존 언론, 국회에서 선보인 단편적인 활동은 애초 의도와 다르게 조세 불신만 키울 수 있다. 이는 증세 논의를 봉쇄함으로써 오히려 세금을 내야할 부유계층에게 안전판을 제공할 뿐이다. 내만복은 문제를 지적하되 종합적인 해법을 내놓으려 노력할 것이다.

 

조세팀은 ‘세금 탈루 방지 및 과도한 세금감면의 축소’를 목표로 삼는다. 재벌탈세를 공론화하고, 의사, 변호사, 학원, 고급주점 등 고소득 자영자의 탈루에 맞선다. 대기업, 상위계층에 과도하게 제공되는 세금 감면 특혜를 드러내고, 사회보험료 부과체계를 형평하게 개편하는 데도 관심을 쏟을 계획이다.

 

의료팀은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튼튼히 만드는 방안을 마련한다. 서민의 가계를 휘게하는 민간의료보험의 문제점을 알리고 민간의료보험 대신 국민건강보험으로 무상의료를 구현하는 경로를 제시한다. 과잉진료, 리베이트 등 의료인들의 거품 행위를 공론화하고 이에 대한 감독 평가활동을 강화하도록 촉구할 것이다.

 

경제팀은 복지국가 요구를 포퓰리즘으로 몰아가거나 경제발전과 상충하는 것으로 매도하는 보수적 담론에 맞선다. 토목지출을 줄여나가야 하고 복지가 내수중심 발전전략의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을 알리고, 보수진영이 내놓는 세금폭탄론이 모양새는 서민의 조세 부담을 걱정하는듯하지만 사실상 조세 저항을 심화시켜 세금을 내야할 상위계층의 책임을 면해보자는 주장임을 밝힐 것이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복지 TF를 구성해 복지국가 운동에 대응하고 있는데, 내만복은 정부의 반복지 활동의 문제점도 따져 물을 것이다.

 

복지국가를 체험하자

둘째, 시민과 노동자들이 미리 복지국가를 체험하는 ‘복지체험 앱’ 활동을 벌인다. 아이들 점심 급식이라는 조그만 경험으로도 보편복지를 상상하는 게 우리나라 시민들이다. 그만큼 복지 열망을 마음속 깊이 지니고 있다. 이에 국민들이 더욱 복지국가에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복지국가를 가상으로 경험하는 애플리케이션 체험활동을 벌인다.

 

이 애플리케이션에는 급식, 보육, 의료, 등록금, 장애인연금 등 보편 복지가 실현됐을 때 우리가 누릴 급여 프로그램이 담겨 있다. 자신의 가족 구성과 소득 등을 입력하면 현재 받는 급여와 앞으로 복지국가에서 받게 될 복지 혜택을 알려주고, 또한 시민들의 능력에 따라 추가로 내야할 세금도 계산해 제시 한다. 복지체험 앱은 미래 복지국가에 대한 이용자의 선호 의견을 모아 그 결과를 알릴 것이며, 국민들의 관심을 반영해 다양한 모델들을 개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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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체험 앱은 시민들이 지하철 안 스마트폰에서, 집 컴퓨터 책상 위에서 자신이 받게 될 복지급여와 부담할 세금을 곰곰이 따져보도록 도와줄 것이다. 시민들에게 생각보다 자신이 더 내야 할 돈이 적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미래에 받을 복지급여가 상당하다는 소식을 전할 것이다.

복지체험 앱 사업은 많은 시민들이 복지국가를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내만복,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한겨레21, 시사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 8개 기관이 공동으로 주관하고 있다.

 

낼 테니 내라!

셋째, 복지국가 재정 확보를 위해 능력별 증세 운동을 대중적으로 전개한다. 내만복의 계산으로는 미래 보편복지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약 60조원의 돈이 더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 복지지출 약 110조원). 25조원은 토목· 국방지출, 대기업 세금 감면 등 정부 씀씀이를 손봐 마련하지만, 그래도 약 35조원은 복지증세를 통해 조성돼야 한다. 내만복은 대기업과 상위계층에게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부자증세를 강력히 주창하면서, 동시에 보편복지를 바라는 시민들도 형편껏 참여하는 ‘능력별 증세’를 제안한다. 보수세력의 세금폭탄론에 대한 가장 강력한 대응은 시민들이 직접 ‘그래, 나도 내 능력에 맞추어 낼 테니 당신들도 가진 경제력만큼 더 내라’며 세금정의론을 주창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3월 초 출시되는 복지체험 앱 기본모델은 누진 직접세인 사회복지세 도입, 국민건강보험료와 고용보험료 인상 등 3개 항목의 증세 방안을 담고 있다. 이후 시민들과 소통하며 다양한 증세방안을 논의할 예정인데, 최종 증세방안 선택은 복지국가를 누릴 시민들의 몫이다. 내만복은 세금정의 활동, 복지체험 앱 활동의 성과를 기반으로 여름부터는 직능인별로, 지역별로 복지국가 세금 내기 선언 활동을 시작한다. 이 선언 참여자들이 직접 나서서 상위계층과 대기업들에게도 증세를 요구하며 풀뿌리 복지국가 주체세력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4. 2012년 역사적 기회를 놓치지 말자!

많은 시민들이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에 지쳐 있다. 이런 세상을 자식들에게 그대로 물려줄 수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그리고 이제 미래를 향한 긍정적 희망으로서 복지국가를 꿈꾸고 있다. 대한민국이 복지국가로 도약하는 데 2012년만큼 중요한 해는 없을 듯하다. 쉽게 오지 않은 시대적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내년부터는 우리 스스로와 자식들이 복지국가를 누리도록 해야 한다. 복지국가 대한민국을 꿈꾸는가? 시민과 노동자가 직접 나설 때 복지국가 꿈이 이루어질 수 있다. 대한민국이 복지국가로 진입하는 데 내만복이 조그만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첨부파일:

월간 <복지동향> 2012년 03월호(제1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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